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394
“임신해서 싫었어요?”
“모르겠어요. 제 부모님은 제가 이렇게 됐다는 걸 상상도 못 하고 계시겠죠?”
에이에이는 부모님이 살아있었다. 그들은 특별히 중요한 인물들은 아니었다. 게임 초반에 주인공이 마왕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겠다며 모험을 떠날 때 손을 흔들어주는 역할로 잠깐 등장하는 사람들이었다.
“집에는 가본 적 없나요?”
“마왕을 물리치고 한 번 가려고 했었는데……. 몸이 이렇게 변했잖아요. 그 뒤로 한 번도 가본 적 없어요.”
“이제 현실을 마주하셔야죠. 편지로 사실대로 고백은 했나요?”
“아니요. 그……. 그것도 좀 이해 못 하실 것 같아서…….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하지만 결혼식을 한다면 용사님의 부모님이 꼭 참여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내 말에 에이에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그녀로서는 부모님에게 연락하는 게 매우 힘든 일인 듯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브가 셀루에게 빨대로 음료수를 주고 있었다. 셀루는 수영장 속에서 고개만 쏙 내밀고 빨대로 음료수를 빨아 먹고 있었다. 이브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엄마. 그냥 나와서 먹어. 뭐 이런 식으로 음료수를 먹어? 애완동물이야?”
“이러면 이브가 나랑 더 오래 눈을 마주쳐 주잖아.”
“이런 거 안해도 맨날 붙어있으면서 뭘 그래?”
“헤흐.”
“어어, 흘린다!”
이브는 흔들리는 주스 잔을 붙잡아서 아슬아슬하게 음료수가 수영장에 떨어지는 걸 막았다. 셀루는 물속에서 튀어나와서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이브는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이브에게 물었다.
“이브. 마틸다는 언제 온대?”
“모르겠어. 내일 아니면 모레쯤 도착할 것 같은데…….”
“그런데 이번엔 방학을 빨리하네 저번 방학 이후에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났던가?”
“요즘 아카데미에서 시위하잖아요.”
소야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손에 든 마도구를 저택 벽면에 달기 시작했다. 벽에 기댄 지팡이에는 반질반질 윤이 났다. 소야는 자기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고개를 숙이고 말을 더듬었다.
“아, 그, 그러니까 그 시위대를 해산시키려고 고의로 일찍 방학했다는 분석이 있어요.”
“무슨 시위랬지?”
“인어 수인 인권 해방 시위.”
이브는 그 말에 어색하게 반응했다. 셀루도 마치 내가 전문 용어를 늘어놓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물었다.
“왜 그래요? 인어랑 수인이랑 다 같이 행복하게 살자는 시위인데, 마음에 안 들어요?”
“마음에 안들기보단 어색해. 살면서 이런 날이 올 때도 있구나.”
“엄마, 그 말 진짜 나이 들어 보여.”
셀루는 그 말에 심통이 났는지 다시 물속으로 쏙 들어가더니 이브에게 물을 끼얹었다. 이브는 화들짝 놀라서 이리저리 피하며 말했다.
“아 엄마! 옷 젖어!”
나는 에이에이의 배를 한 번 더 쓸었다. 그녀는 몸을 움찔하면서도 가만히 의자에 기대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움직이던 이브의 시선이 에이에이를 향했다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
마틸다가 도착한 것은 며칠이 지나고 난 뒤였다. 갑작스러운 방학이었기에 여러모로 준비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이브는 그녀가 늦게 왔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마틸다는 커다란 짐가방을 들고 새끼 새처럼 몸을 떨며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 마틸다. 오랜만이네. 그렇지?”
“아, 네. 안녕하세요. 루시우스 영주님. 이번에 그, 저택에 지내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딱딱한 어투에 경계하는 빛이 가득했다. 그녀는 영주인 나보다는 이브에게 더 많은 시선을 주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반응에 피식 웃고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
“네. 마틸다. 그럼, 여기서 푹 쉬도록 하세요. 공부도 공부지만, 아이는 푹 쉬고 노는 것도 중요하니까.”
마틸다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브는 마틸다보다 더 신난 기색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화사한 미소가 펴졌다가 그늘이 지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마틸다의 부모의 편지를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럼, 둘이 좀 이야기하고 있을래요? 저는 잠깐 할 일이 있어서요.”
“응? 신랑 오늘 일 있어. 그러지 말고 같이…….”
이브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이브와 마틸다는 꽤 친해지긴 했지만, 나는 두 사람이 더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니야. 둘이 이야기하고 있어. 오늘은 좀 바쁘거든.”
그렇게 나는 두 사람만 놔두고 먼저 집무실로 올라갔다. 복도 측 창문에서 슬쩍 내려다보니 이브는 대문을 잠깐 바라보다가 밝은 얼굴로 마틸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집무실에선 시에리가 업무 보조를 위해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씩 웃으며 말했다.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그래 보여요?”
나는 집무실 거울을 쳐다봤다. 정말 나는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입을 실룩 실룩 움직이며 거울 속 내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게 해주었다. 시에리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녀가 입을 가리고 웃는 동안 나는 시에리의 옆에 다가가서 그녀를 쿡 찔렀다.
“아, 아앗!”
시에리가 몸을 움츠리며 놀라자 나는 더 웃으면서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아래에서 이브와 마틸다의 잡담이 들렸다.
“그래. 아카데미 생활은 어땠어? 거기선 엄청 어려운 것들만 배운다면서?”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요. 오히려 재밌어요. 교수님들이 엄청 쉽고 재밌게 설명해주시거든요. 이브 씨도 한 번 들어보시면 깜짝 놀라실 거에요. 토미 에버슨이 주장한 [황금광 이론]이라는 게 있는 데, 거기 교수님들이 컴퍼스와 술잔을 가지고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시더라고요.”
“아, 그래?”
물론 이브는 [황금광 이론]이 뭔지 몰랐다. 덧붙여도 나도 몰랐으며, 시에리도 황금광 이론이 뭔지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황금광 이론이 뭔지 묻기 위해 시에리를 돌아봤지만, 시에리가 똑같은 눈으로 나를 돌아보는 걸 보고 또다시 피식 웃고 말았다.
두 사람은 1층에서 내가 있는 집무실까지 올라오며 계속 잡담을 나누었다. 즐거운 잡담 소리가 뒤섞이며 유쾌하게 번져나갔다. 나도 시에리도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평소라면 엿듣는 건 나쁘다고 말할 시에리였지만, 그녀도 이브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아카데미의 잡다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마틸다는 오랜만에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을 사람을 만나서 기쁜 기색이었다. 이브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거나 응응하는 추임새를 넣으며 그녀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문틈으로 슬쩍 엿보면, 이브의 방으로 걷는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이 훈훈하게 느껴졌다.
“이브 씨는 요즘에 어떻게 지내셨어요? 여기 영지에는 재밌는 분들이 많아서 이브 씨는 엄청 즐겁게 지내셨을 것 같아요.”
이브는 마틸다의 말에 다시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당연하지. 우리 신랑이 얼마나 잘해주는 데.”
“그런가요?”
“그래, 만일 너도…….”
이브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마치 체한 듯 불편한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다가 어색하게 웃다가 했다. 마틸다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브는 다시 입술을 달싹거렸다.
“너도…….”
그리고 이브는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으며 말했다.
“…..너도 나중에 결혼하면 알게 될 거야. 그래. 결혼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 우리 신랑만큼 멋진 사람이랑 결혼하면 너도 나만큼 즐겁게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려고 했어. 그리고, 기왕이면 여기서 지낼 때는, 내가 즐거운 만큼 너도 즐거웠으면 좋겠어. 그……. 가족처럼.”
“가족……. 처럼요?”
“응.”
이브는 그렇게 말하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수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 마틸다. 네 짐은 네가 들고 가야지. 나한테 다 맡길 셈이니?”
“아, 죄송해요! 언니 금방 갈게요!”
마틸다는 수녀의 불만을 듣고 화들짝 놀라서 다시 아래로 쏜살처럼 내려갔다. 이브는 마틸다를 보며 씩 웃다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문틈으로 상황을 엿보던 우리는 화들짝 놀라서 다시 책상에 앉았다. 시에리는 헛기침하며 보조석에 앉아서 서류를 정리하는 척을 했고, 나는 창문을 바라보며 턱을 어루만졌다.
이브가 집무실 문을 활짝 열며 말했다.
“신랑. 점심은 어떻게 할 거야? 오늘 무슨 지역 유지들이랑 모임 있다고 나가서 먹는다고 했잖아.”
나는 처음부터 고민에 잠겨있던 척 천천히 몸을 돌렸다. 시에리는 내 행동을 보고 웃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상황을 모르는 이브는 왜 시에리가 웃음 참는지 알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돌리고자 입을 열었다.
“그러게. 오늘은 그냥 미루고 내일 먹을까? 마틸다가 왔는데, 다 같이 먹어야지.”
“그래 줄 거야?”
“병사한테 연락 돌리게 해서, 식사 날짜를 좀 미뤄야겠네. 다 같이 먹으면 좋지. 이제 오랜만에 와서 어색한 것도 풀렸을 테니까 나도 정식으로 마틸다랑 제대로 인사도 하고, 대화도 하고,”
“그러면 좋지.”
이브는 내가 마틸다랑 친해지려는 게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나는 이브와 시에리의 팔짱을 끼고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집무실 밖을 지나는 하인이 있어서 점심 약속을 바꾸게 한 다음, 느긋하게 로비로 걸음을 옮겼다.
다음화 보기
식탁이 시끌벅적했다. 내가 출장을 가지 않는 날이면 저택의 식탁은 늘 이랬다. 셀루가 테이블을 손으로 붙잡고 의자 위로 기어올랐다. 아이라가 식기를 가져다 놓으며 웃고 있었다. 소야가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으며 마틸다에게 손을 흔들었다. 마틸다는 소야가 반가운지 몸을 움츠리고 있다가도 활발하게 손을 흔들었다. 엘시는 음식이 나오는 걸 기다리며 꼬리를 바삐 움직였다.
마틸다 옆에는 이브가 앉았다. 이브는 마틸다와 눈이 마주치고 씩 웃었다. 점심을 먹는 동안, 그녀는 오랜만에 만난 어색함을 떨쳐내고 다시 발랄하게 웃고 있었다. 수녀는 밝게 웃는 마틸다가 무례를 나눌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식탁에 앉았다.
밥을 먹는 동안 식당 너머 창문에서 전령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식사를 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고갯짓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전령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인 다음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왔다. 식사하던 내 아내와 마틸다는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전령을 바라보았지만, 그뿐이었다. 그들은 전령이 있든 없든 다시 잡담하며 식사를 재개했다.
영주다 보니 밥 먹는 중간에 전령이 급히 소식을 전하는 건 제법 자주 있는 일이었다. 나는 전령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 여기 후원 갱신 동의서를 작성해주셔야 해서……. 이렇게 급히 왔습니다.”
“아, 갱신 동의서.”
“뭐야?”
“별거 아니야. 그냥 서명만 하면 돼.”
정말 별거 아니었다. 다음 학기 때도 이 아이를 계속 후원하겠다는 후원 동의서였을 뿐이었다. 괜히 마틸다에게 말해서 불안감을 줄 필요도 없었기에 나는 조용히 서명을 끝냈다. 내가 서명을 하는 사이 대천신교에서 온 전령은 품속을 뒤적거리다가 내게 편지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그리고, 이건 영주님께 온 편지입니다.”
나는 눈을 찌푸린 채 편지를 받아들었다. 이브는 빵을 먹다 말고 내 쪽으로 몸을 기대서 편지를 바라보았다.
[친애하는 영주님께.]
“봤어? 친애하는 영주님께래. 다들 이렇게 친절하면 얼마나 좋아.”
나는 오랜만에 보는 정중한 서두에 기분이 좋아서 이렇게 말했다. 이브는 내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고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계속 읽어봐. 원래 뭐가 아쉬운 놈들이 꼭 이렇게 시작부터 빨아대더라.”
“친애하는 영주님께 저는…….”
나는 편지를 읽다 말고 마틸다를 쳐다봤다. 마틸다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수녀는 엄한 얼굴로 그녀의 식사 예절에 대해 다시 한번 주의를 줬다. 그녀가 미숙하다기보다는 수녀가 내 앞이라고 조금 엄격하게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소리 내지 않고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저는 마틸다의 어머니인 마거릿이라고 합니다. 사실 현재 저희 집은 너무도 가난하여 당장 내일 먹을 물도 없는 형편이랍니다. 지혜롭고 자애로우신 페타 루시우스 영주님께서 이런 저희를 불쌍하게 여기시고 부디 적선을 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제 딸도 집안의 가난이 걱정되어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니, 아무쪼록 부탁드리겠습니다.]
“마틸다.”
“네?”
나는 마틸다를 불렀다. 내 옆에서 이브가 굳은 표정으로 마틸다를 보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엘시가 말했다.
“성직자. 갑자기 그러면 꼬마가 무서워한다.”
그 말에 나는 씩 웃으며 마틸다에게 말했다.
“밥 좀 먹고 집무실로 와주겠니?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
마틸다는 무슨 이야기인지 아직 감을 잡지 못하는 듯했다. 그녀는 어리둥절하면서도 두려운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녀는 편지를 보고 내용을 짐작한 듯 이를 악물었다.
****
우리가 먼저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을 때, 마틸다보다 먼저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수녀였다. 그녀는 노크하자마자 문을 박차고 들어와 조금 전 우리가 봤던 편지에 대해 해명을 하려고 애썼다.
“영주님. 그, 마틸다 부모님의 금전적인 부분은 대천신교에서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방금 받으신 편지는 어떤 착오나 오해가 있으신 거로…….”
“저는 마틸다의 어머니인 마거릿이라고 합니다. 사실 현재 저희 집은 너무도 가난하여 당장 내일 먹을 물도 없는 형편이랍니다. 지혜롭고 자애로우신 페타 루시우스 영주님께서 이런 저희를 불쌍하게 여기시고 부디 적선을 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라는 데, 오해치고는 신기하네요. 후원받는 아이 중에 마틸다라는 아이가 또 있나요?”
“아, 그건…….”
수녀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수녀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