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1)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11화
* * *
“연습생분들 합숙소로 이동해서 마저 촬영 진행하겠습니다! 탑승 부탁드려요!”
자연스럽게 혼자 앉는 자리에 가서 앉으려고 하는 유찬 형의 어깨를 붙잡으며 내 옆자리에 앉혔다.
“형, 저랑 같이 앉아요.”
“어? 그래, 그러자!”
내가 돌아오기 전, 유찬 형은 [타겟팅 스타>의 방송 초반에 카메라와 익숙하지 않은 홀로 따로 노는 모습을 종종 보여서, [무찬새키 ㅈㄴ 사회성 떨어지는 거 티냄 ㄷㄷ] 같은 좋지 않은 반응을 듣곤 했다.
사실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사회성이 높은 게 유찬 형인데, 굳이 이번에도 그런 말을 들을 필요는 없지.
“형, 브이요. 브이.”
“오, 춘용이. 적극적이다, 너? 좋아. 브이―”
서울 외곽에 자리한 합숙소로 향하는 대형 관광버스가 출발하고, 나와 유찬 형이 카메라에 대고 이것저것 스스로에 대한 것을 어필할 때즈음.
버스 앞에 달려 있던 대형 티비가 팟, 하고 켜졌다.
– “연습생 여러분, 즐겁게 숙소로 이동하고 계신가요?”
화면 너머로 나온 건 진행자인 최가온 선배님이었다.
미리 찍어 놓은 영상인 듯, 오늘과 다른 옷차림인 최가온 선배님은 손뼉을 짝, 치면서 생글거렸다.
– “제가 이렇게 등장한 이유는…… 알 사람은 알고 모를 사람은 모르겠죠? 과연 뭐 때문에 제가 등장한 걸까요?”
“…숙소 방 배정 때문인 거 모르는 사람도 있나?”
내 옆에 앉은 유찬 형이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은 나는 황급히 몸을 숙여 형에게 속삭였다.
“유찬 형, 그것도 카메라에 다 잡혀요.”
“헙.”
당황한 유찬 형이 제 입에 주먹을 박아 넣자, 마치 그걸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화면 속 최가온이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 “네, 여러분의 숙소 방 배정 때문에 등장했습니다! 휘익, 박수!”
방송을 위한 연습생들의 맥아리 없는 짝,짝 소리가 버스에 울려 퍼졌다.
그래. 방송 찍기란 더럽게 귀찮고 힘든 거다.
데뷔 하고 싶다는 게 24시간 내내 촬영하고 싶다는 말이랑 동음어는 아니거든.
– “누구든 좋은 방을 쓰고 싶은 마음은 똑같겠죠? 그렇지만, 여러분의 등급이 나눠진 순간부터는 숙소의 방을 쓰는 것마저 등수의 영향을 받습니다!”
“…못 알아 듣겠다. 사람 말로 해라.”
한국인이 아닌 누군가의 공격적인 발언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화면 속 최가온은 아랑곳 않았다.
– “숙소의 방은 총 5개. 여러분이 버스에서 내릴 때 뽑은 숫자의 순서대로 랜덤하게 방에 입실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해당 방의 정원이 꽉 찰 경우, 낮은 등수의 연습생이 방을 떠나야 합니다!”
가혹했다.
등급 낮은 것도 서러운데 방도 마음대로 못 고른다니. 등급 만능주의의 서바이벌의 생태계는 두 번 겪어도 잘 적응이 안 됐다.
물론 그 지긋지긋한 생태계라도 괜찮다고 다시 한번 몸을 내던진 장본인은 나니까, 할 말은 없지만.
안 돼도 해야지, 뭐.
“다들 이제 내려서 뽑기 뽑는 씬 딸게요. 메이크업 스스로 확인해 주세요.”
20분가량 달려온 버스가 멈춰 서고, 여전히 우울한 얼굴의 막내 작가가 한 명씩 뽑기통을 내밀었다.
“김춘용 연습생은 4번이요.”
막내 작가의 힘없는 대답을 뒤로하고, 나는 고개를 처들며 두 번째로 마주하는 숙소를 다시 눈에 담았다.
서울 외곽의 청소년 수련회장을 개조한 [타겟팅 스타>의 숙소.
이곳은 2층의 복도식 방에 더불어 아래에는 보컬룸, 댄스 연습실, 그리고 개인 인터뷰실 등이 자리한 종합 아이돌 양성소에 가까웠다.
시청자들은 이걸 아이돌 통조림 공장이라고 불렀지만, 제작진은 굴하지 않았다는 후문.
뭐, 통조림 공장이나 아이돌 양성소나 결국에는 똑같잖아.
“김춘용 연습생 들어가실게요.”
나는 잠시 후 내 캐리어를 돌돌 끌며 2층에 위치한 방들을 쭉 훑기 시작했다.
이 중에는 누군가가 벌써 들어간 방도 있을 테고, 비어 있는 방도 있을 거다.
내 앞에 들어간 연습생들은 2위의 류웨이, 13위의 서빈, 7위의 이로건이었다.
솔직히, 한 명 말고는 누가 같은 방이 되어도 상관없다.
“류웨이. 너는 춘용이한테 해 줄 말 없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춘용이한테, 안 좋은 일이 있었잖아. 그러니까, 힘이 될 만한….”
“내 몸에 손대지 마.”
차게 내려 앉은 얼굴, 경멸하는 표정.
“고작 그런 걸로 힘들어하는 녀석에게 해 줄 말은 없어.”
…같이 오랫동안 활동을 했음에도, 대놓고 나를 싫어하던 애로우즈의 전 멤버.
[타겟팅 스타> 첫 경연 상위 3명 중 유일한 중국인, 류웨이. AG 글로벌 비공개 오디션 합격생. 연습생 기간은 2년 남짓.애로우즈의 메인 댄서였던 류웨이는 나와 함께 데뷔하고, 2년 후 중국 에이전시로 옮기면서 신속하게 탈퇴한다.
압도적 악성 멤버인 나 때문에 가려진 거지, 실상을 따져보면 류웨이도 만만치는 않았다.
어쨌든 우리 팀이 무너지는 빌미를 제공한 것과 다름없으니까.
그리고 류웨이의 중국 도피는 나의 악성 멤버 행위랑은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서, 더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이번에도 안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잖아.
뭐, 이전에 걔랑 쌍벽을 다투던 악성 멤버인 내가 이런 말을 하기도 뭐하긴 하지만 말이다.
“후우.”
나는 203호 방문 앞에 서서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직 류웨이 얼굴 보기는 기분이 좀 그러니까, 다른 아무나라면… 아니, 기왕이면 우리 멤버들은 전부 빼놓고….’
내가 속으로 되뇌며 천천히 방 문고리를 잡는 순간.
“…어?”
아직 돌리지도 않은 문고리가 제멋대로 돌아갔다.
“Wow, 어서 와요, Mate!”
그리곤,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의외의 얼굴이 미리 팔을 활짝 벌리며 나를 환영해 줬다.
* * *
그러니까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일까.
나는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멀뚱멀뚱 앉아 있는 룸메이트들 몰래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애써 자연스럽게 상황을 이끌어 가고자 노력했다.
“어, 그러니까, 다들 자기소개나 한 번씩 할까요? 저는 김춘용이고, 20살인데….”
“그 다음으로는 내가 하겠다.”
내 말을 끊어 낸 녀석이 2층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쾅!
“커흡.”
물론 2층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장렬히 머리를 천장에 박았지만,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곧 다시 벌떡 일어나 위풍당당하게 외쳤다.
“내 이름은 가오옌. 한국 나이 19살의 홍콩 남자. 존경하는 사람은 가오옌.”
“아아….
나는 그 호쾌한 자기소개에 살짝 당황해서 입을 뻐끔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방금 자기 이름이 가오옌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맞다. 난 나만 존경한다. 나보다 멋진 남자는 없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온 개인 연습생, 가오옌.
짙은 눈썹, 진한 이목구비. 희한한 말투, 어디서 비롯된 건지 알 수 없는 넘치는 자신감.
“결국 나와 같이 데뷔할 사람들이 전부 이 방으로 왔군. 예상한 바다.”
한 번도 같이 무대를 꾸며 본 적이 없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내가 알기로 얘는 [타겟팅 스타>에서 떨어지고 팔로워 1,500만 명을 자랑하는 유명 인플루언서가 된다.
“타겟팅 스타에서 1등을 하고 내 멋짐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다. 18위는 단지 밑거름에 불과할 것.”
그때는 내 앞가림하기도 바빠서 신경을 못 썼는데, 이런 성격이었군.
저러니까 팔로워가 1,500만 명이나 붙지.
참고로 나는 팔로워가 30만이었는데, 그중 90%는 나에게 욕하기 위해 붙은 안티였다.
“다음은 저입니다!”
가오옌의 환상적인 자기소개에 자극을 받은 건지, 나의 반대편에 앉아 있던 녀석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앉아서 해도 되는데, 왜 그렇게 자꾸 비장하게 일어나는걸까.
깡마른 몸에 관절 여기저기 반창고를 붙인 남자애는 부드러운 번역투로 조곤조곤 말했다.
“이시카와 료타입니다. 한국의 아이돌 동경해서 나왔어요. 꼭 데뷔하고 싶어요.”
케이팝과 관련된 만화를 보고 진지하게 아이돌을 꿈꾸게 되었다던 이시카와 료타.
얘와는 한 번 팀이 된 적이 있었다. 춤 기본기는 많이 부족하지만, 노래는 제법 잘했던 기억이 있다.
료타는… [타겟팅 스타>에서 떨어진 이후에 일본으로 돌아갔던 거 같은데. 아마 일본의 프로젝트 그룹에 들어갔던가.
“흠, 료타. 몇 위지?”
가오옌이 거만한 얼굴로 료타에게 물었다.
“15위예요. 떨려서 춤을 제대로 못 췄어요.”
료타의 대답에 가오옌은 왼손을 척 내밀며 비장하게 말했다.
“나보다 낫다. 역시 료타는 나랑 같이 데뷔할 거 같아.”
“고마워요, 가오옌. 우리 같이 좋은 그룹을 만들어요. 나는 매일 우리 그룹의 내일을 꿈꾼답니다.”
둘 다 데뷔 못하는데.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두 사람의 대화 때문인지, 나머지 한 명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다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던 나에게 먼저 문을 열어 준 당사자.
머리카락 아래로 강아지 귀가 펄럭거리는 것 같은 장신의 한국계 영국인.
“Oh, Holy. Um, 나는 로건이에요. Logan Lee. 영국 리버풀에서 왔고, 어. 한국 나이로 가오옌과 똑같이 19살입니다.”
로건 리.
이미 수준급 프로듀싱 능력을 갖추고 있고, [타겟팅 스타> 이후에는 영국의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서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하는 재능 넘치는 연습생.
그런 로건이 [타겟팅 스타>로 데뷔 못 한 이유는 떨어졌기 때문이 아녔다.
‘…이렇게 영국으로 돌아가게 됐, 됐지만. 너무 좋은… 경험이었어요. 나를 응원해 준 Fan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촬영 중간에 하차를 해서였지.
“나는 그, only child, 아, 한국어로 뭐지? 하여튼, 그거라서. 새로 flatmate들 만나게 돼서 너무 재밌어요. 우리 재밌게 지내요!”
저렇게 좋아하는 애가 뭐 때문에 그렇게 슬픈 얼굴로 하차를 했대.
“하여튼….”
나는 허탈함을 담아 허허, 웃으며 뼈가 있는 말을 슬쩍 꺼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방에 4명이 있는데, 4명 다 국적이 다르네요. 그렇죠?”
“Wow. 그러니까요. 코리안, 홍콩 피플, 재패니즈, 그리고 브리티쉬!”
“넷 다 홍콩인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애초에 여기 나온 홍콩인은 나뿐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우리 방에는 누가 찾아오지도 않아요. 우리끼리 완성인가 봐요.”
내 말이 그 말이다.
왜 우리 방에는 더 높은 등급의 사람이 찾아와서 밀어내기도 안 하지?
– “가위, 바위, 보오오!”
– “아악!”
– “제가 3위니까, 아무래도… 네. 죄송합니다. 이 방은 제가 쓸게요!”
다른 방은 누가 튀어나오면서 카메라에 대고 징징거리고, 가위바위보를 하고 난리가 나고 있는데 말이다.
아냐, 혹시 모르지. 좀 기다리면 이 멤버가 바뀔지도. 유찬 형이 갑자기 방문을 열고 들어올지도.
이렇게 혼란과 카오스의 방에 한국인이 나 혼자 있을 리가 없잖아.
…그렇지?
– “모든 연습생들의 숙소 배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연습생들은 짐을 정리하고 휴식 후, 내일 아침 7시까지 1층 식당으로 집합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방구석에 달린 작은 스피커는 나의 그런 작은 바람마저 무참히 꺾어 버렸다.
“Wow! 이제 우린 real 플랫메이트예요! 잘 부탁해요, Mates!”
“그러게….”
나는 로건의 신난 목소리에 절망하는 대신 빠르게 마음을 정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 다국적 친구들과 함께 무슨 일이 있어도 최선의 방송 분량을 만들고야 말겠다고.
서바이벌 데뷔에서 카메라 노출도는 생명이었다. 그걸 순순히 포기할 순 없지.
그리고 그렇게 마음먹은 내가 잠도 안 자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가오옌, 료타. 로건, 잠깐만 들어 봐요.”
“응? 왜 그러지?”
“대한민국에서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한테 ‘형’이라고 불러요.”
간단한 호칭 정리였다.
“Hyun… Oh, Sorry. What?”
“아니, 됐다. 그냥 다 따라 해요. 나를 부를 때는 형. 춘용이 형.”
“춘용… 아니키.”
“아니, 형이라니까?”
여긴 유교의 나라다, 이 자식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