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 Struck by Thunderbolt Twice RAW novel - Chapter 71
00071 돈 벼락 맞은 사나이 =========================
트레이너는 기중에게 인사를 하더니 다른 곳으로 향했다. 혼자 남아 있는 기중은 휴게실로 향했다. 휴게실에 마련된 푹신한 소파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음료수 캔을 한 손에 든 기중은 TV를 틀었다. 기다리는 시간에 마땅히 할 것이 없어서 TV로 시간이나 때우자는 생각이었다.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며 흥미를 끌 만한 것을 찾아보고 있던 기중은 뉴스채널을 보고 있었다.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확률이 꽤 높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음 주가 크리스마스구나, 내 20대의 마지막도 역시나 솔로로 끝나겠구나.’
남들에게는 연인과 즐겁게 보내는 연말을 기중은 여전히 솔로로 28년을 지내왔고, 올해도 마찬가지의 해가 되어가고 있었다. 혼자서 이런 저런 우울한 생각을 하고 있던 기중의 시선에 휴게실로 들어오는 나희가 보였다.
“나희 씨”
“어머, 기중 씨 오늘은 오셨네요?”
“하하. 며칠 동안 일이 있어서 나오지를 못했네요. 운동 열심히 하시나 봐요?”
“그럼요. 확실히 등록 결정하기 전까지 빼 먹을 수는 없잖아요.”
나희는 여전히 싱그러운 미소를 기중에게 보여주었다. 발랄한 느낌을 들게 하는 말투와 표정까지 꽤나 귀여워 보였다. 무엇보다 운동하기 위한 옷차림새가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그럼, 운동 시작해 볼까요?”
기중과 나희는 트레이너의 지도하에 같이 운동을 시작했고,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었다. 가끔씩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는 운동으로 인해서 힘든 육체와는 별개로 미소가 지어졌고, 분위기가 꽤나 좋았다.
“휴. 수고하셨어요. 트레이너님.”
“수고하셨어요. 그리고 꾸준하게 나오세요. 운동을 시작하는 단계가 정말 중요합니다. 아셨죠?”
“네.”
기중과 나희는 트레이너와 인사를 하고 탈의실로 향하고 있었다. 문득 기중은 지난번에 자신이 민감하게 반응을 했던 행동 때문에 나희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오늘 다시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할 요량으로 나희를 힐끔 보면서 어떻게 말을 꺼낼지 생각을 정리하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저. 나희 씨.”
“네?”
기중은 막 나희를 불렀고, 돌아서면서 대답하는 얼굴을 보니 나희도 왠지 기대하는 눈빛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기중은 말을 꺼내려고 하는 찰나 주머니에서 전화벨 소리를 들었다.
“아. 죄송해요. 잠시 전화 좀 받을게요.”
“네. 저는 저쪽에 앉아 있을게요.”
나희도 기중이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챘기에 먼저 탈의실로 들어가지 않고 기다려 주겠다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중은 왠지 오늘따라 나희의 모습이 전부 마음에 들었고, 그 행동 하나하나에 기분이 좋았다.
– 여보세요. 솔미 씨?
– 안녕하세요. 기중 씨.
– 솔미 씨 무슨 일이세요?
기중은 솔미에게 전화 받는 일이 많지 않았고, 지금 상황상 조금은 타이밍이 어긋나는 느낌이었기에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무적인 말투가 튀어나왔다.
– 저 오늘 시간 되세요? 제가 오랜만에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왔거든요. 저녁이라도 할까해서요.
솔미의 목소리는 어째 조심스럽고, 기운이 없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번 보육원을 방문했을 때 마지막에 올라오기 직전에 보았던 솔미의 얼굴이 떠올랐고, 기중은 잠시 갈등했다.
– 물론이죠. 어디서 만날까요?
기중은 솔미와의 약속을 잡아버렸고,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나희를 돌아보았다. 나희는 여전히 기중을 주시하고 있었던지 기중의 시선을 보고서 마주 미소를 보내왔다.
‘휴. 오늘만 날이 아니지.’
기중은 통화를 끝내고 나희에게 다가 왔다. 그리고 아쉬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희 씨, 갑자기 약속이 생겨버렸네요. 내일 봐요.”
“네?”
“먼저 가볼게요.”
기중은 나름대로는 정중하게 나희에게 말했다. 어차피 나희에게 본론을 꺼내지도 않았기에, 그다지 잘못이 없기는 했지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희의 시선을 피해 종종 걸음으로 탈의실로 들어가 버렸다.
기중의 말을 기다리고 있던 나희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보였고, 이내 미소가 가득했던 얼굴이 짜증스런 표정으로 바뀌었다. 물론 기중은 이미 탈의실로 들어가 버렸기에 그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기중은 탈의실로 들어와 샤워실로 향했다. 운동을 처음 했던 날과 마찬가지로 몸이 무거웠다. 조금 전까지 나희와 같이 있어서 긴장 했던 때문에 그랬던 것인지 괜찮았지만, 지금은 또다시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아. 오늘도 마찬가지네. 으윽.’
마음은 급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에서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고 있었다. 막 외투를 걸쳤을 때 기중은 갑자기 몸이 시원해지면서 상쾌한 느낌을 받았다.
‘뭐지?’
그대로 굳어버린 기중은 이 느낌이 낯설지 않았다. 최근에도 자신의 몸으로 느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움직여 보는 기중은 운동하기 전보다 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놀라웠다.
조금 전까지 무거워 잘 올라가지 않는 팔은 유연하게 쭉 뻗어졌고, 걸음을 어색하게 만들었던 다리도 가벼웠다.
‘샤워로 몸이 바로 풀렸나? 아닌데 어제부터 이상하단 말이야.’
기중은 잠시 고민을 해 보았다. 오늘 하루 종일 고민했던 것들을 잊기 위해서 운동을 하러 왔는데, 오히려 그 고민이 더욱 심해진 상태가 되었다.
‘아차, 이럴 시간이 아닌데.’
기중은 솔미와의 약속이 생각났고, 바로 헬스클럽을 나와 차를 몰고 출발했다. 약속장소에 거의 와서 기중은 솔미의 얼굴을 떠올렸고, 조금 들뜨는 기분을 느꼈다. 얼굴을 본지가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서울에서 그것도 단 둘이 저녁을 먹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약속장소는 럭셔리 거리에 있는 기중이 그나마 자주 찾아갔던 한우 구이 식당이었다. 이미 예약을 했던 터라 기중은 3층으로 안내를 받아왔고, 일행이 곧 올 거라고 전했고, 안내를 부탁했다.
잠시 긴장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기다리던 기중은 노크 소리를 듣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놈 기중아. 잘 있었느냐?”
“네? 원장님이 갑자기 여기는 어떻게?”
“허허. 이놈이 솔미만 올 거라고 생각했나 보구나. 어째 나는 반갑지도 않다는 표정이구나.”
보육원 원장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중을 보고 있었고, 그 뒤로 솔미는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내 말이 맞지. 솔미야. 거 봐라.”
“기중 씨 미안해요. 원장님께서 장난끼가 발동하셔서요.”
“그게 무슨? 그럼 좀 전에 전화하실 때 원장님도 같이 계셨던 거예요?”
기중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이면서 솔미에게 말했고, 원장은 여전히 크게 웃고 있었다.
“네. 보육원 일 때문에 서울에 원장님이랑 같이 올라왔어요. 일이 끝나고 원장님이 기중 씨와 저녁 먹자고 먼저 말씀 하셨거든요.”
“그렇군요. 네.”
기중은 실망한 표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솔미와 아직까지 특별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상당한 기대를 품고 왔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기중이 이놈 역시나 그랬군.”
원장은 아직까지 기중을 놀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마치 친손자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인자하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기중에게는 그 모습이 조금은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 흠. 원장님도 잘 오셨어요. 오늘 한우 특등급으로 몸보신 좀 하세요.”
기중은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원장이 자신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흐뭇한 마음이 되었고, 기왕 왔으니 잘 모시고 싶었다.
“원장님 오늘은 제집에서 주무시고 가실거죠?”
“그래도 되겠냐?”
“물론이죠. 오늘은 제집으로 모실게요.”
“그러자꾸나. 솔미도 같이 말이다.”
기중은 솔미에게 시선을 살짝 보냈지만, 솔미는 조금 부끄러운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기중에게는 참한 새색시 같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기중이 말했던 것처럼 특등급의 한우가 구워지고 있었다. 원장도 기중의 말에 사양하지 않고 배부르게 먹고 있었고, 연신 웃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더구나 고급 전통주까지 곁들였기에 기분까지 좋았다.
“근데 원장님. 오늘 서울에는 무슨 일 오신 거예요?”
“우리 보육원에 좋은 일인건지 아닌 건지 잘 모르겠구나.”
보육원이 기중의 도움으로 새롭게 변화되고 난 후에 지역신문에서도 뉴스에 몇 차례 나왔고, 군청에서도 꽤나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자신이 모시는 의원이 보육원에 관심을 가지고 계셔서, 후원에 대해서 상의하자고 했던 것이었다.
“오늘은 단순한 인사 정도로 끝이 나긴 했지만.”
“그래요? 보육원으로서는 좋은 일 아닌가요?”
“그게 말이다.”
잠시 말을 끊은 원장은 술을 한잔 비웠다. 그리고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제가 말씀드릴게요.”
옆에서 대화를 듣고만 있던 솔미가 나섰다.
“보좌관으로부터 설명을 들으면서 저도 그렇고 원장님도 그렇고 위화감을 받았거든요.”
“어떤 위화감인가요?”
“나중에 보좌관과 대화를 마치고 나와서 원장님과 얘기를 하면서 같은 느낌이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들은 마치 우리를 도와주려는 의도보다는 자신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광고하려는 느낌이었어요.”
요즘 정치인들 중에 너무나 흔하게 이용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 어려운 취약 계층이나, 보육원등을 돌면서 마치 광고라도 하는 듯 요란하게 기자들을 대동하여 여기저기서 봉사하는 모습을 사진만 찍고 마치 진심으로 봉사를 하는 것처럼 요란을 떨어대는 모습 위선이 가득한 그 일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그쪽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보육원이 지금 특별히 누구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아니잖아요. 더구나 진심도 없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아이들이 힘들어 질 수도 있잖아요.”
“원장님과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다만, 어떻게 거절을 하는지가 문제겠죠. 자칫 밉게 보이면 저와 원장님은 상관없어도,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으니까요.”
“어렵군요. 어려워요.”
기중은 또 다시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조용하게 아이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고 싶은데, 자신이 했던 일로 인해서 오히려 아이들이 불편하고, 정서적으로 좋지 못한 관심이 쏠리는 것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쪽에서 우리 보육원 후원자를 물어 보더구나.”
“저를요?”
“물론 직접적으로 너를 자세하게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들도 금세 알게 되겠지.”
기중이 보육원을 후원하는 것에 대해서 특별히 숨기지도 않았고, 군청을 상대하면서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너무 걱정 마시고, 일이 생기면 저에게도 바로 연락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당연히 저에게 맡겨주세요.”
“그래. 고맙구나.”
“하하. 그렇게 고마워하시지 않아도 되는 일이에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오히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아셨죠?”
기중은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와 단둘이 오랜 시간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경제적인 부분에서라도 충분하게 지원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또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조금 걱정스런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우선 저녁을 먹고 기중의 집으로 향했다. 차고로 들어와서 기중과 일행은 내렸고, 막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쯧쯧. 이놈아 또 사고를 낸 거냐?”
“네? 갑자기 무슨 사고요?”
“여기는 또 왜 이렇게 된 거냐?”
원장은 기중의 차의 운전석쪽 문이 찌그러져 있는 것을 살펴보며 말했다.
“아. 그게 조금 일이 있어서요. 다친 거 아니니까 걱정마세요. 하하.”
“어째 볼 때마다 차가 이 모양이냐.”
“그러게요.”
기중은 또 원장의 걱정스런 말을 들었기에 민망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예전에도 차가 망가졌을 때 걱정해주던 모습을 오늘도 또다시 볼 수 있었다.
“어서 들어가시죠.”
기중은 차고의 문을 닫기 위해서 스위치를 조작하려고 하다가 또 다시 노인의 모습을 보았다.
“할아버지.”
“그래. 할애비 왔다.”
미소를 지으며 기중을 바라보는 노인은 뒤로 보이는 원장과 솔미를 한차례 훑어보고는 기중에게 쇼핑백을 내밀었다.
“이거 받아라. 그리고 오늘은 손님이 오신 모양이구나. 할애비는 이만 가보마.”
“할아버지 무슨 말씀이세요. 오셨으면 당연히 차라도 한잔하고 가세요.”
기중은 노인의 팔을 잡고 집안으로 이끌었다.
거실 테이블에 앉아서 각기 소개를 간단히 마쳤다. 기중은 막 차를 내오려고 일어났다.
“차 뭐 드릴까요?”
“차는 무슨 술이라도 내 오너라.”
“그럴까요?”
주방으로 향하는 기중의 옆으로 솔미가 따라왔다.
“저도 도와드릴게요.”
오늘따라 유난히도 조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솔미는 미소를 지으며 기중을 바라봤다. 순간 기중도 마치 신혼부부같은 느낌을 받았고, 기분이 싱숭생숭해지고 있었다.
거실에 남아있는 노인과 원장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원장님께서는 참 좋은 일을 하시는군요.”
“좋은 일이라.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제가 더 기쁘고 행복합니다.”
“허허. 원장님 참 대단하시네요.”
“어르신께서는 그럼 최근에 기중이와 만나신 거군요.”
원장에 비해서 한참이나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인이었기에 원장도 조심스럽게 노인을 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분위기와 기중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는 좋은 느낌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그래요. 조금 더 빨리 찾아오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더군요. 근데….”
“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노인은 원장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면서 약간은 걱정하는 표정을 보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혹시…”
말을 꺼내고 조심스럽게 원장의 얼굴을 보았고, 오히려 원장은 그 모습에 조금 긴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