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질서의 힘을 그저 기합만으로 억누른건가?’
레딘 비알 오서는 황당해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놈을 포위하는데는 성공했어.’
그 말에 레딘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놈에게 힘이 전혀 통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
‘울’이라고 불리는 두 신의 창조물이었다.
울은 뱀과 같은 모양이었고 레딘에게 부족할 수 있는 능력들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레딘이 질서의 힘이라고 부르는 그 기적 또한 속선과 창류를 경유하고 있었다.
속선에게서는 힘의 모습을, 창류에게선 신앙 자원을 받는 것이다.
‘힘이 통했나?’
-그래. 심지어 아직까지 놈의 몸을 흔들고 있다. 아직은 놈의 힘으로 기적을 억누르고 있지만 그 힘이 쌓이면 놈도 어쩌지 못할 거다.
레딘은 희망이 보이는 것을 느꼈다.
‘방진은 갖춰졌다. 라크락이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피해를 감수해야만 할 거다.’
라크락은 분명 레딘과 기사단을 일거에 날려버릴만큼의 강대한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준비 동작이 커지거나 많은 힘을 소비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방진은 오로지 라크락과 같은 사도를 죽이기 위한 방진이라고, 속선께서 말씀하셨지.’
방진 안에서는 끊임없이 기사단과 싸워야하고,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큰 틈을 보여줘야만 한다.
레딘은 생각했다.
‘방진이 갖춰진 순간부터 이미 이긴 싸움이나 다른 없다. 죽어라, 사도여.’
─┼
크람푸스는 위즈덤과 장완에게 순간이동 했다.
“상황이 좋지 않아. 그쪽은?”
위즈덤은 장완을 한 번 보았다가 다시 크람푸스에게 향했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군. 그쪽부터 이야기하지.”
크람푸스가 말했다.
“흑린군과 석면군이 맞붙었어. 분명 미리 진을 치고 있던 건 석면군이었는데도 흑린군의 기세가 대단해서 도저히 막아내질 못하더군. 우리가 상정했던 1차 방어선은 이미 뚫렸어.”
“아시엔 성의 성벽 방면은?”
“다행히도 흑린군은 다시 아시엔 성에 도전하려는 것 같진 않아. 아무래도 남측 성벽을 파괴했는데 구태여 공성전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겠지. 서쪽으로 계속 이동 중이야.”
“방어가 유리한 거점을 찾고 있겠군. 2차 방어선 중에 괜찮은 거점이 있지 않았나?”
크람푸스는 지도를 켰다.
지도에는 이번 전투를 위해 새겨둔 마커와 메모들이 빽빽했다.
크람푸스는 지도의 남서 방면을 확대한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군. 흑린군의 방향도 일치해.”
“막을 수 있겠나?”
그 말에 크람푸스가 쓰게 웃었다.
“…솔직히 모르겠는데. 네뷸라의 간섭이 너무 심해. 창조물이 아니더라도 어디서 기적을 계속 수급해내는지 돌격 직전에 아군 부대에 기적이 휩쓸리고 떼어놓은 별동대는 미리 발견되고… 그래서 나는 네뷸라가 저쪽 전선에서 힘을 쓰느라 이쪽은 상황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위즈덤이 말했다.
“부분적으로는 좋다.”
위즈덤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라크락과 레딘, 그리고 성기사단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성기사단의 숫자가 하나하나 줄어들고 있긴 했지만 싸움 비슷한 것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크람푸스는 이번 아시엔 성 전투를 준비하면서 위즈덤이 사도를 만들기 위해 장완의 경험치를 소비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크람푸스는 그런 시도 자체는 아무래도 좋았다.
문제는 그런 일을 해서 얼마나 효율을 낼 수 있는가, 의도한 것과 같은 성과를 보일 수 있는가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크람푸스가 보기엔 다 좋아 보였다.
“라크락 하나를 잡기 위해 급조했다는 것 치고는 제법 괜찮지 않아?”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애초에 목표는 발목만 잡아두기만 해도 좋다고 봤는데 저 정도면 라크락을 잡을 수도 있어. 내 계산이 틀린 것만 아니라면.”
“그래? 그런데 왜 ‘부분적으로’ 좋다는 거지?”
옆에 있던 장완이 말했다.
“이번 싸움을 철저히 준비하던 건 우리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겉보기에 이번 아시엔 성 싸움은 크람푸스와 성운의 대결로만 보였다.
그리고 크람푸스는 이번 동맹 전쟁의 초기와 같이, 위즈덤과 장완의 싸움을 벌어주기 위한 수단으로만 쓸 생각인 양 굴었다.
그리고 그 의도대로 흑린만이 아시엔 성에 도착했다.
물론 흑린은 세 플레이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어마어마한 화약 무기를 가지고 왔고, 아시엔 성에서 신단염과 석면군이 쏟아져나와 흑린군을 포위한다는 계획은 무산되었다.
아시엔 성은 그저 무력하게 닷새 동안의 포격을 건뎌야만 했다.
위즈덤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생각과 달리 흑린의 화력이 강했지만, 성벽이 무너지는 걸 기점으로 은밀하게 기동했던 석면군이 흑린을 덮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위즈덤과 크람푸스, 장완은 이번 아시엔 성 싸움으로 반전할 기회를 얻을 것으로 보았다.
“적과군이 나타났어.”
“적과군이? 방금 경계를 넘었단 말인가?”
“아니야. 이제 국경을 넘었다면 흑린군을 정리하고 상대하면 그만이겠지. 북동부에서 지척이야. 조금 있으면 맨눈으로도 볼 수 있을거야.”
플레이어들의 전반적인 신성 레벨이 오르면, 신성 차단 스킬을 사용하기 때문에 정찰에 실패하는 경우가 더 잦아진다.
동맹의 세 플레이어들은 흑린에 집중하고 그에 따라 작전을 수행하느라 적과군의 움직임을 파악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숫자는?”
“4만.”
창류의 사제들은 몇인가 있었지만, 만굴군은 아시엔 성에 없었다. 신단염군은 5천 뿐이고, 석면군이 2만이었다.
장완이 말했다.
“적과군은 흑린이 구멍을 내놓은 성벽 틈새 쪽으로 오고 있어. 성을 뺏을 생각이겠지.”
크람푸스가 말했다.
“수비군이 부족해. 신단염군을 성으로 되돌려야겠군.”
“그게 쉬울지는 모르겠는데.”
위즈덤이 성벽 틈새쪽을 향해 손짓했다.
크람푸스가 의아해하자, 성벽 너머에서 성운의 창조물 스라티스와, 위즈덤의 창조물 오스트로가 피를 튀겨가며 싸우고 있었다. 두 거수의 몸에서 튄 핏물들은 작은 시냇물이 되어 낮은 곳으로 흘렀다.
“저 상태론 수비군이 들어가봤자 별로 쓸모가 없을 거다. 어떻게든 밖에서 막아야 해.”
“…그러니까 이런 상황이군.”
크람푸스가 말했다.
“흑린군은 네뷸라의 도움을 받으며 화력을 투사해가면서 방어 거점을 향해 이동중이고, 그 와중에 적과군이 압도하는 병력 숫자로 방어선을 외부에서 치고 들어오는군. 두 괴수와 두 사도가 서로 싸우고 있지만 향방은 아직 알 수 없고.”
크람푸스가 두 플레이어를 바라보았다.
“방법이 있나?”
위즈덤이 무언가 제스처를 취하면서 말을 하려다 말았고, 옆에 있던 장완이 말했다.
“있어.”
“어떤 방법?”
장완이 말했다.
“지금 흑린군을 막을 수 없는 이유는 네뷸라의 서포트가 있기 때문이야. 제 아무리 기세가 좋다고해도 이미 짜여진 방어선을 뚫고 막무가내로 나아갈 수는 없지. 흑린군을 최소 병력으로 막으면 나머지 병력을 적과군을 막는데 쓸 수 있을 거야. 그 다음 두 괴수와 두 사도 중 하나라도 우리 쪽이 승리한다면, 전투의 향방이 바뀌겠지. 다시 아시엔 성을 수복하고 성벽 틈새를 메우면서 수성전을 해내가면, 만굴군이나 석면의 원군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거야.”
크람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계획이군. 네뷸라가 느닷없이 손 놓지 않는 이상 현실성이 없다는 걸 제외하면.”
위즈덤이 말했다.
“가능할지도 모른다.”
“무슨 말이야?”
대답한 것은 장완이었다.
“내가 할 수 있을 거야.”
크람푸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안될걸.”
크람푸스는 위즈덤과 장완이 사도를 만들었다는 사실 말고도, 다른 사실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장완과 네뷸라가 실제 친인척이며 사촌 관계라는 것이다.
“그 네뷸라가 그저 사촌동생이 있다고해서 싸움을 멈출 거라는 거야?”
“싸움 자체를 멈출 필요는 없어. 내가 말을 붙이는 동안이라도 아무런 조작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그것만으로도 게임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있어. 나와 네뷸라, 그리고 네뷸라의 동생에 대한 이야기야.”
크람푸스가 말했다.
“말해봐.”
장완이 말했다.
“그리 놀라운 사실은 아니겠지만, 네뷸라는 프로게이머였어. 로스트 월드를 하기 전에 말이야. 그리고 동생도 하나 있었지. 문제는 동생의 몸이 되게 약했다는 거야. 잔병치레도 잦았고, 실제로 큰 병도 앓았어.”
“미안하지만, 긴 이야기를 할 시간은 없다, 장완.”
장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마. 어차피 여기서 끝날 이야기니까. …동생은 병으로 죽었어.”
그 말에 크람푸스가 짧게 “흠”하고 침음을 내었다.
“문제는 네뷸라가 프로 대회에 나가 있느라 동생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는 거야. 꼭 참가할 필요가 없는 대회였는데도 말이지. 그 동생은 마지막에 오빠를 보고 싶다고 말했었고, 그건 네뷸라도 알고 있어. 그 뒤에 네뷸라는 은퇴했지.”
크람푸스가 말했다.
“…확실히, 그게 네뷸라의 트라우마가 되었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장완 너랑은 관계 없지 않아? 남매 관계의 이야기 같은데.”
순간 장완, 최서윤은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잘 참아내었다.
이 두 사람이 알 필요는 없는 이야기였다.
“난 네뷸라의 동생을 잘 알았어. 아주… 친했지. 생긴건 물론이고 말투나 취향도 다 아는 사이였어.”
“그래서?”
“그러니 이렇게 할 거야.”
장완의 설명을 듣자 크람푸스와 위즈덤 두 사람은 잠시 마주보았다.
그리곤 장완의 작전에 동의했다.
─┼
네뷸라, 성운은 조작을 하던 중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사자탈을 쓴 작은 사람이 있었다.
“…장완?”
“미안하지만 내 이름은 장완이 아니야.”
장완은 사자탈을 벗었다.
그러자 나타난 것은 성운보다 두 살 정도 어려보이는, 하지만 눈매와 귀 모양이 닮은 여자였다.
“오빠, 나야. 오빠 동생 지우.”
성운은 펼쳐둔 자신의 시스템 창과 자신을 지우라고 밝힌 여자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곤 지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지우? 최지우라고? 니가 여기 어떻게…”
지우, 라고 밝힌 장완은 자신이 목표한대로라고 생각했다.
긴 설명따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생전의 지우와 똑같은 모습일테니까.
현실이 되어버린 로스트 월드, 이곳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생전의 지우와 자신은 핏줄 덕인지 많이 닮아 아바타를 크게 고칠 것도 없었다.
머리를 어깨 아래로 기른 뒤, 키는 좀더 크게 하고 코 모양이나 턱을 조금 다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오히려 사촌 동생인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 보다, 죽은 성운의 동생이 나타나는 것이 오히려 더 그럴듯할지도 모른다.
장완이 말했다.
이제 목표를 이뤄야할 시간이었다.
“오빠, 나랑 이야기 좀 할까?”
성운은 주저하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 뭐야, 지우야. 잠깐, 잠깐만, 기다려줄래? 이 오빠가 좀 바빠서.”
그리곤 방금의 짧은 대화로 잃어버린 흐름을 찾기 위해인지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르게 시스템 화면창을 툭툭 조작하기 시작했다.
장완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