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48
048화
북해안, 얼어붙은 대지.
북풍이 불어오고 웅크린 초목만이 겨우 목숨을 건사하는 곳.
켄타우르스 타마리두는 팔짱을 끼고 이방인을 내려다보았다.
이방인은 엘프 예언자로, 타마리두가 지난 몇 주간 찾아다니던 이였다.
이 엘프 예언자는 황야와 북해안에 하나의 이야기를 퍼트리고 다녔고, 타마리두를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때문에 쇠발굽 부족의 타마리두는 최초의 이야기를 하는 자를 찾아내고 싶었고, 그렇게 되었다.
“예언자야.”
“예.”
“이 대지에 널리 퍼트리고 다녔던 그 이야기를 내게도 들려다오.”
“좋습니다. 이것은 곧 이루어질 예언입니다…”
예언자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머지않은 시기에 ‘왕’이 찾아올 겁니다. 왕이 오면 세상의 질서는 새롭게 편성되고, 지금 군림하고 있던 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잃을 것이며, 자유롭게 땅을 오가는 이들은 길을 잃을 것입니다.”
“왕이라고.”
“예.”
타마리두가 질문했다.
“왕은 무엇이냐?”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는 자입니다.”
“각 부족의 부족장들을 말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부족장들조차도 머리 조아리는 자입니다.”
타마리두는 큰 켄타우르스 부족의 부족장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 누구에게도 머리를 조아리지 아니하였다.
단 하나의 존재를 제외하고는.
“왕이란, 신을 말하는 것이냐?”
예언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하지만 신들께선 이 땅에 아니 계시지요. 하지만 왕은 이 땅에 있을 것입니다.”
“부족장들의 부족장, 신만을 머리 위에 두는 자란 말이렸다.”
“그렇습니다.”
타마리두가 한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쳤다.
“그럼 그것은 나를 뜻하는 것이구나.”
“유감스럽게도 아닙니다.”
타마리두는 자신의 말에 토를 다는 예언자를 보고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그런 말을 한 이는 흔치 않았다.
타마리두는 이야기를 좀 더 이어 나가 보기로 했다.
“그럼 리자드맨들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타마리두는 생각했다.
최근 남쪽에 검은 비늘 부족이라 불리는 리자드맨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잘린 귀 놀들이 지배하는 넓은 영역 때문에, 그들이 도망가고 나서 최근에야 그 존재를 알게 된 부족이었다.
타마리두는 과연 세상은 넓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두렵지는 않았다.
‘나도 리자드맨들을 만나 보았다. 그들은 추위를 두려워하고 굼뜨고 느린 이들이다. 여타의 종족과 다름없이 숫자를 앞세워 힘을 과시하는 이들일 터.’
예언자가 말했다.
“분명 그 리자드맨들은 강하고 두려운 이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차마 이 북해안에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을 가로막을 강자가 있기 때문에.”
“하, 그것은 나를 뜻하는 것이로구나.”
“예. 맞습니다.”
“그럼 왕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예언자는 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빈 땅처럼 보였지만 몇 개의 야트막한 언덕을 넘으면 오우거들이 지배하는 땅이 나왔다.
“왕이 될 자는 거인입니다. 거대한 체구로 두 발로 대지를 딛고 서며 돌로 된 반석 위에 앉는다고 합니다. 켄타우르스조차 힘으로 이기지 못하고 그 지혜는 엘프보다 높다고 합니다. 그는 북쪽에 있습니다.”
“내가 왕이 되지 못한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내가 저 오우거 부족장 카진을 왕으로 섬긴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틀렸다, 귀쟁이.”
그 말에 엘프 예언자는 타마리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타마리두를 보기 전에 목이 떨어졌다.
타마리두는 자신의 애병인 거대한 도끼를 허공에 휘둘러 엘프의 피를 털어 냈다.
“나 타마리두는 신을 제외하고 그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는다.”
─┼
엘프 예언자의 시체 위로 황량한 바람이 불었다.
엘프의 신 엘다르는 무감하게 그 예언자를 바라보았다.
엘다르가 처음으로 얻은 소영역은 바로 ‘예술’이었다.
대부분의 소영역과 달리 극초반에 별다른 가치가 없는 데다 빌드업을 하기 위해 난해한 부분이 있어 낮은 평가를 받는 소영역이었다.
‘물론 지금부터는 쓸모가 있어지지.’
성운은 엘다르에게 어떻게 소영역을 사용할지 설명했고, 엘다르는 그 말대로 했다.
다른 소영역들이 첫 번째 레벨에서 ‘창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예술 또한 첫 번째 레벨에서 개체에게 창조적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꿈을 통해 계시를 내리는 것과 다른 점이라면, 영감이 불어넣어진 개체가 자신에게 도취된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영감이 자신이 해낸 생각이라고 믿었고 이야기나 시, 회화, 춤이나 연극 같은 예술적인 행위로 널리 알리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런 영감은 전염되었다.
그리하여 엘다르는 떠돌이 엘프에게 거짓된 예언을 불어넣었고, 떠돌이 엘프는 예언자를 자칭하며 여러 부족들에게 그 이야기를 퍼트렸다.
엘다르가 성운에게 말했다.
“겨우 이걸로 괜찮겠사옵니까?”
“무슨 말이야?”
어차피 성운의 말을 따라서 본 손해는 떠돌이 엘프 하나와 조금의 신앙 자원뿐이니 별 효과가 없더라도 큰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성운이 자신만만해하는 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엘다르가 말했다.
“켄타우르스 부족장인 타마리두의 특수 능력치 중 ‘자존심’이 높은 걸 확인하고 화를 돋구는 데는 성공한 것 같사옵니다만… 하지만 이것만으로 켄타우르스와 오우거 사이를 이간질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사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타마리두가 오우거 부족에게 적개심을 가지더라도 결국 타마리두를 조종하는 이는 신이옵니다.”
성운은 엘다르의 말을 쉽게 수긍했다.
“그러니까 더 좋지.”
“더 좋단 말입니까?”
“플레이어와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부족의 생각이 일치하면, 괜찮은 상태야. 그게 결과적으로 플레이어의 종족과 부족을 패배하는 길로 이끌더라도 괜찮은 길이라는 거지. 하지만 플레이어와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부족의 생각이 다르면?”
“아.”
엘다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로스트 월드는 각 개체를 조종하고 움직이는 것이 직관적이지 않다.
로스트 월드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플레이어들은 소영역을 이용해 부족을 움직이는 방법이 발달하지 않아서 무슨 관상용 게임이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었다.
이 게임에서 각 개체를 ‘강제로’ 이동하는 방법은 강신같이 신앙 자원을 엄청나게 소모하는 방법뿐이었고 그마저도 제한적이었다.
성운이 덧붙여 설명했다.
“솔직히 말해 켄타우르스의 신인 솔롱고스가 무슨 전략을 짜고 있는지는 몰라. 하지만 내가 장담하는데 솔롱고스는 언제까지고 ‘느슨한 동맹’ 관계에 기대서 성장할 수는 없어.”
“왜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성운이 말했다.
“정주민들은 땅을 기반으로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어. 하지만 켄타우르스는 결국 약탈 기반이지. 오우거 부족은 다소 척박한 환경이긴 하지만 땅에서 나는 산물들을 통해서 발전할 거야. 하지만 켄타우르스는 주변에 거대한 정주민이 동맹이지. 그럼 작은 NPC 중소 부족을 털면서 성장해야 되는데 결국 한계가 있지. 그리고 이게 애초에 오우거의 신 임춘식이 택한 전략일 거야.”
“아!”
엘다르가 자신이 이해한 것을 정리했다.
“초반에 강할 수 있는 켄타우르스를 우호적으로 만들어 두고, 중반 이후에 격차가 나기 시작하면 그때 집어삼키는 것이옵니까?”
“그런 셈이지.”
성운이 말했다.
“나는 북해안에 새로운 음모를 집어넣는 게 아니야. 잊고 있던 사실을 알려 줄 뿐이지. 아니면, 곧 알게 될 사실을 좀 더 빨리 알려 주거나. 헤게모니아는 그걸 빨리 알아차리고 도망갔지만, 솔롱고스는 아니었지.”
켄타우르스 부족장 타마리두는 이미 오우거들을 향해 적개심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럼 그들의 신인 솔롱고스는 어떨까?’
성운의 입장에서 솔롱고스가 계속 임춘식을 믿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았다.
임춘식을 계속 믿으면 자신의 제사장인 타마리두와 갈등할 테고, 임춘식을 믿지 않으면 임춘식과 갈등하게 될 테니까.
엘다르가 걱정하며 말했다.
“하지만 타마리두가 이 이야기를 믿지 않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예언이라고 하지만 진짜가 아닙니다. 추측일 따름입니다. 당장은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 진짜로 만들면 그만이지.”
“예?”
성운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계속 도와줄 거지?”
─┼
엘프 예언자가 죽은 뒤에도, 그 예언은 쇠발굽 켄타우르스 부족의 부족장 타마리두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엘다르가 가진 예술의 소영역이 가진 ‘영감’의 힘이었지만 그것을 타마리두가 알 방법은 없었다.
타마리두는 왕이라는 단어에 집착했고, 자신의 부하들에게 자신이 왕으로서의 자질이 있는지, 그리고 또 다른 부족장들이 왕으로서의 자질이 얼마나 부족한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타마리두는 자신이 집착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려면 왕이 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언에 따르면 왕은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에게 섬김 받는 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거친 황야에 타마리두의 이름을 알겠는가.’
하지만 운명이 타마리두의 탄식을 듣기라도 한 듯, 세 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첫 번째는 녹안 부족의 엘프였다.
엘프는 오랜 동맹이었기에 타마리두는 새삼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이 엘프 손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예언을 언급했다.
“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셨습니까?”
“듣다마다.”
“예언 속의 왕이 곧 오우거 부족장 카진을 뜻하는 것도?”
그 말에 타마리두는 주먹을 움켜쥐고 천막의 기둥을 후려쳤다. 마구간과 같이 거대한 천막이 크게 흔들렸다.
“너도 카진이 왕이 되리란 이야길 하고 싶은가?”
“아닙니다, 타마리두 부족장님. 저는 오히려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반대?”
“왕이 되어야 한다면 곧 타마리두 님이 되셔야지요. 카진은 겉보기엔 온화해 보이나 둔하고 힘이 있어 보이나 그 힘을 휘두르기 싫어하는 겁쟁이입니다. 우리는 예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타마리두는 예언에서 벗어나라는 이야기에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난 지금까지 예언이 이루어지리란 걱정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깟 예언이 무엇인가? 내가 예언을 이겨 내면 그만 아닌가?’
그리고 두 번째 손님은 자동성의 인간이었다.
소문으로만 들어오던 곳에서 왔지만, 그 유명함은 익히 알고 있었다.
인간은 예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더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그대가 왕인 타마리두입니까?”
“뭐라?”
타마리두는 그렇다고 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지만 가로저었다.
“아니, 나는 왕이 아니다.”
“아, 저 자동성에는 켄타우르스 왕이 나타났단 이야기가 있기에 그대가 왕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 소문이 있나?”
“소문뿐입니까? 저희 자동성 성주님은 왕이 나타났으니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렇게 선물을 보냈습니다.”
타마리두는 진귀한 선물을 확인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동시에 아쉬워했다.
“하지만 난 왕이 아니니, 이 선물을 되가져가는 게 좋겠군.”
“무슨 말씀을.”
자동성에서 온 인간 손님은 가로저었다.
“그런 소문이 퍼졌다는 말은 곧 왕이 되실 분이란 말 아닙니까? 적어도 왕이 될 만한 자질이 있단 말이지요.”
“하지만…”
“그냥 가지고 계시지요. 두 번이나 걸음 하는 건 낭비 아닙니까?”
그 말에 타마리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보물들을 받아 챙겼다.
하지만 타마리두는 세 번째 손님은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손님은 검은 비늘 부족의 리자드맨이었다.
다른 두 손님들과 달리, 이들은 켄타우르스와 같이 소를 치는 이들이었다.
전투를 즐기는 데다 둘 다 잘린 귀 놀 부족과 싸웠던 경험도 있었다. 적의 적이기 때문에 아군이라는 말은 정주민들에게나 통하는 이야기다. 유목민들에겐 같은 적을 두었다는 건 언젠간 서로 마주쳐 싸울 운명이란 이야기였다.
타마리두는 세 번째 손님을 돌려보낼까 고민했다.
‘그러나 오늘 온 손님들은 모두 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왕이라 이야기하였고. 이것이 만약 우연이 아니라면…’
고민 끝에 타마리두가 세 번째 손님을 들라 했고, 천막에 비단 옷을 입은 검은 비늘 리자드맨이 걸어 들어왔다.
리자드맨이 말했다.
“반갑소. 오웬이라고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