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91
091화
“오, 오우거다!”
해적들의 비명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아스타시디안이 외쳤다.
“겁먹지 마라! 그냥 선원이잖아! 오우거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화살을 쏴라!”
그 말에 화살이 일제히 훼사를 향해 쏘아졌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의 사격이라지만 해적들의 활솜씨는 나쁘지 않았다.
몇 대의 화살이 훼사의 몸에 박혔지만 두꺼운 가죽을 뚫지 못하고 살갗에 상처를 냈을 뿐이었다.
바센 라크 오라즌은 감탄했다.
‘역시 오우거는 오우거군.’
이대로 훼사가 난간에 걸린 밧줄만 떨쳐 준다면 해적들이 배에 오르지 못하도록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적들이 쏴 대는 화살이 문제였다.
“앗, 아얏…!”
훼사가 난간으로 나아갔으나 해적들에겐 거대한 표적에 불과했다.
화살들이 쏟아지자 훼사는 팔뚝으로 얼굴을 가리며 물러났다.
“우… 1등 황훼사, 아푸다…”
금세 전의를 잃은 모습에, 바센이 황당해하며 티오네 이티모에게 말했다.
“왜 저러는 거지?”
“네? 화살 맞고 멀쩡할 사람 여기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오우거잖나.”
“오우거는 사람도 아니에요?”
티오네가 한껏 바닥에 몸을 낮춘 상태로 덧붙였다.
“뭐, 훼사는 고집은 세도 엄살이 좀 있거든요. 저 덩치에 말도 잘하는데 용기도 충만했으면 어디 가서 장군하고 있었겠죠.”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바센이 말했다.
“그렇다고 해적들이 승선하게 둘 수는 없지 않나?”
“그렇죠.”
“훼사를 통해 잠깐이라도 시간을 끌어 주면 내가 어떻게든 해 보지.”
“왕자님… 이 아니라 단장님이요?”
바센은 뭐 어떠냐는 듯 눈을 부라렸다.
티오네가 가로저었다.
“안 되죠. 단장님 몸에 생채기라도 나면 제 목은 어떡하고요?”
“아니, 해적들이 올라타면 사람들이 멀쩡하리란 보장은 어디 있고?”
“단장님은 적어도 흑린에서 온 왕자님이라고 하면 목숨은 보장되겠죠. 저 해적들도 생각이란 걸 한다면요.”
운이 좋으면 그렇게 될지도 몰랐다.
해적들은 귀한 신분을 잡으면 포로로 잡고 비싼 몸값을 요구하기도 했다.
“나야 그렇다 치고 그대까지 멀쩡하리란 보장은 어딨어?”
“이때를 위해서 야천 님을 열심히 믿어 왔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
“농담이니까 정색하진 마시고요. 일단은 훼사가 있으니 사람들에게 접근하진 못할 테고…”
바센이 보기엔 안이한 판단이었다.
오우거는 훌륭한 전투원이 될 수 있지만 무적은 아니다.
그리고 오우거다운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면 오우거의 이점을 살리지도 못하는 것이다.
바센은 활을 매고 칼집에서 칼을 뽑았다.
“왜 칼을 뽑으세요?”
“저 해적선 뒤로 뛰어내릴 생각이다.”
“미쳤어요?”
“배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나머지 두 배가 따라붙으면 반대쪽에서도 해적들이 올라탈 거고 오우거라고 해서 더 많은 숫자의 해적을 이길 방법은 없어. 그전에 놈들을 먼저 물리쳐야한다.”
“하지만…”
“내가 화살꽂이가 되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훼사 보고 밥값 좀 하라고 해.”
바센이 그대로 배 후미로 달려 나가자 티오네가 급하게 훼사를 불렀다.
바센이 진심임을 알았던 것이다.
마침 티오네에게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지, 훼사!”
“왜 부르나, 선장?”
“바다를 이기기 위해서 이 배를 탄 거 아냐?”
“맞다. 하지만 화살 아푸다… 훼사, 패배했다…”
티오네가 의기소침해진 훼사의 등을 때렸다.
“그럼 멀리서 공격하면 되잖아!”
“…멀리서?”
바센은 바짝 엎드리고서 배 후미에서 난간 아래를 내려다봤다.
역시나 해적들의 시선은 오우거가 사라진 중앙 쪽으로 향해 있었다.
‘하지만 내려서는 순간 소음이 들릴 거다. 훼사는…?’
그런 생각을 했을 때 훼사가 두 팔을 번쩍 들고 난간을 향해 달렸다.
훼사의 머리 위에는 거대한 식수통이 들려 있었다.
“흡!”
허공을 날아오른 식수통은 해적선 난간을 향해 날았다.
“피해!”
“이쪽이다!”
다만 그 피해는 크지 않았다.
훼사의 던지는 동작이 워낙 컸기에 사람은 피할 수 있었고, 배끼리의 높이 차이에서 나오는 중력 가속도 정도로는 해적선에 큰 피해를 줄 수 없었다.
깨져서 나오는 것 또한 뱃사람에겐 익숙한 물.
‘하지만 이걸로 충분하다.’
해적들은 훼사가 던지는 식수통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피해 다니느라 응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센은 뛰어내리면서 한 바퀴 굴렀다.
가장 뒤에 있던 해적만이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봤다.
“응?”
그것이 유언이 되었다.
바센이 몸을 일으키며 칼을 꽂아 넣자 칼날이 경추를 부러트리며 관통했다.
바센은 해적이 쓰러지는 동시에 칼을 빼내고, 등을 보이고 있는 다음 해적을 향해 다가갔다.
“형님! 오우거가 또 던집니다!”
“멍청한 놈들아! 화살을 먼저 쏘면 저놈이 던지지 못할 것 아니냐!”
“하지만 놈이 식수통으로 몸을 가리고 있어서…”
-쾅!
누적된 피해 때문에 훼사가 연달아 식수통을 내던진 자리의 해적선 갑판이 내려앉았다.
“일단 밧줄을 쥐고 올라타라!”
“혀, 형님!”
“또 뭐냐!”
“뒤, 뒤에서… 컥!”
말하던 해적의 가슴 앞으로 길쭉한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해적이 쓰러지자 바센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선장인가 보군.”
해적선 선장인 아스타시디안 고단은 화들짝 놀랐다.
바센의 뒤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던 해적들이 모두 죽어 있었던 것이다.
남은 해적은 고단 뒤로 서 있는 셋 밖에 없었다.
“이, 이놈! …어, 어떻게?”
“항복하겠나?”
고단은 무심코 그 제안을 받아들일 뻔했다.
하지만 자신이 보기에 유리한 것은 아직 자신이었다.
다른 해적선 두 척이 지척에 있었던 데다, 이 상선에서 가장 뛰어난 전투원이 바센임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오우거는 다른 놈들에게 맡기더라도, 이놈만 제거하면 일이 수월해진다. 우리 뒤를 노린 건 영리했지만, 칼싸움이 꼭 뛰어나리란 법은 없지.’
고단은 두 집게손으로 단검을 뽑고 큰 집게를 머리 위로 올리며 전투 자세를 잡았다.
가재라고도 불리는 아스타시디안 특유의 집게는, 약한 부위라면 단번에 부러트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부러트리지 못하고 그저 붙잡을 수만 있어도 다른 집게손을 통해 적을 제압할 수 있다.
아스타시디안이 근접 전투에 자신감을 보이는 건 흔한 일이었다.
‘죽어라!’
고단의 머리통만 한 집게가 바센을 향해 날아들었다.
바센은 그 공격을 가볍게 피하더니, 꽤 멀리까지 뒤로 물러났다.
‘내 집게발에 겁이 난 건가? 등만 노리는 겁쟁이답군.’
고단은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하며 한 발 걸어 나갔다.
“혀, 형님! 피하십쇼!”
“응?”
고단은 고개를 돌렸다.
훼사가 던진 식수통이 정면으로 얼굴에 꽂혔다.
─┼
“확실히 가재는 가재야. 저걸 맞고도 살아 있다니.”
“단장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뭐지?”
“리자드맨들은 아스타시디안을 가재라고 부르면 진짜 가재는 뭐라고 부르죠?”
“…먹는 가재?”
“…먹을 수 있냐 아니냐를 진짜 가재와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걸 알면 아스타시디안들이 리자드맨들을 싫어하지 않을까요?”
“그런가?”
겨우 정신을 차린 고단이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그렇다!”
그러면서 고단은 힘차게 집게를 내지르려고 했는데, 당연하게도 밧줄로 묶여 있었다.
해적선 위도 아니었다.
상선 위에 묶인 고단 앞에 두 사람이 서 있었고, 다른 선원들은 바쁘게 전투 후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고단의 부하 셋도 고단 뒤로 묶여 있었다.
“헉, 내 배는 어딨지?”
티오네가 말했다.
“우리 선원 내려보내서 따라오게 하고 있어.”
“다른 해적선도 있었을 텐데?”
“도망갔지.”
“그럴 리가 없다!”
티오네가 턱짓으로 해적의 수치 옆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어느새 따라붙은 군선이 호위하고 있었다.
고단은 충격받은 듯 더듬이를 떨었다.
“우리가 빠르게 너희를 쳐부수고 나니까 다른 해적선들이 서로한테 먼저 배를 붙이라고 떠들면서 눈치를 보더라고. 우물쭈물하는 와중에 우리가 기다리던 군선들이 와 준 거고.”
“크윽, 형제들이 나를 버리다니, 그럴 리 없…”
그렇게 말했지만 바센은 고단이 재빠르게 현실을 인식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다음 말을 들어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지만 제발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누님!”
“당장 바다에 안 내버리는 것만 해도 다행인 줄 알아. 흑린 군선의 호위를 받는 데다가 다음 목적지가 사시안이니 거기서 법대로 처벌할 테니.”
“흑린 말입니까? 흑린의 법대로 처벌하면 전 죽습니다요!”
“음, 유감스러운 일이야. …하지만,”
“하지만? 뭡니까?”
바센이 한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잘해 준다면 다른 방도도 생각해 보도록 하지.”
“질문?”
“나는 야분 해적단에 궁금한 게 몇 가지 있거든.”
“아무리 그렇다 해도 형제들을 팔아넘길 수는…”
“대답하고 말고는 너의 자유일 텐데.”
고단은 생각하는 듯하더니 더듬이를 흔들었다.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좋다.”
그것만으로도 바센은 해적들에게 신의 따위가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자, 우선 첫 번째 질문이다.”
“뭐지?”
“아스타시디안들은 바닷속을 걸어 다닐 수 있는데 왜 배를 타고 다니지?”
티오네가 뭐 하냐는 듯 눈을 홉뜨고 바센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일하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선원들이 웃으며 지나갔다.
바센은 당황하며 말했다.
“궁금하지 않나? 나는 늘 궁금했는데.”
“단장님이 평소에 얼마나 다른 종족에 무관심했는지는 알겠네요.”
고단도 바센의 질문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그, 뭐냐. 당연하지만, 바닷속을 걷거나 수영하는 것보다 배를 타는 게 더 빠르다. 게다가 힘을 덜 들이기도 하지. 무엇보다 좋은 점은 짐을 잔뜩 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하. 방금은 개인적인 질문이었어. 다음 질문.”
“…그래.”
바센이 말했다.
“너희가 말한 ‘하얀 거미신’은 어디에서 온 종교지?”
“내가 태어난 곳에서 믿는 종교다.”
“어디서 태어났는데?”
“흑린에서 남쪽으로 배를 타고 내려가면 아스타시디안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 우리는 각자 섬마다 이름이 있지만, 흑린에서는 남방 제도라고 부르더군.”
“아, 거기 말인가.”
흑린이 세워지고 얼마 되지 않아서 발견된 섬들로, 명목상의 도주도 존재하는 곳이었다.
“하얀 거미신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보지. 어떤 신이지?”
고단은 조금 고민했다.
바센이 보기에 설명하기 싫어한다기보다 이런 경험이 얼마 없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 설명해야 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얀 거미신은 백 년 전에 크고 흰 거미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시 족장님을 꼬리 셋 달린 땅뱀으로부터 구해 주셨다. 그것 말고도 우리 부족이 굶주렸을 때 새우를 땅 위에서 창조해 주셨지. 하지만 이런 기적은 섬 곳곳에서 일어났다고 하고, 섬마다 같은 신을 다르게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면?”
“가장 북쪽에 있는, 흑린과 가까운 섬의 경우 푸른 벌레신으로 부른다더군.”
그 말에 바센이 웃었다.
티오네가 어리벙벙해서 질문했다.
“왜요?”
“푸른 벌레신은 야천 님의 옛 이름이지. 이자 또한 우리와 같은 신을 믿고 있었던 거야.”
“네?”
“오라즌에서 거리가 워낙 먼 곳이다 보니 체계가 통일되지 못한 거지. 하지만…”
바센의 눈이 다소 싸늘하게 변했다.
“야천의 다른 이름을 부르면서 해적질을 하다니 더 용서할 수가 없군. 바브린 주변으로 야분 해적단이란 이름이 떨쳐지고 있다는데, 설마하니 너희 부족 전체가 모두 해적질을 하는 건 아니겠지?”
그 말에 고단이 허둥지둥 더듬이를 흔들었다.
“아, 아니다. 다른 아스타시디안들은 남방 제도에서 잘 살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 해적단에 붙잡혔다가, 내가 길러진 해적단이 야분 해적단에 흡수되어 야분의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럼 야분도 남방 제도 사람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다. 그분은 다른 대륙에서 오셨다.”
그 말에 바센은 의아해졌다.
다른 대륙에서 왔다면 흑린을 기준으로는 서쪽 대륙 밖에 없다.
동쪽에선 그 어떤 배도 찾아오지도 않았으니까.
서쪽 대륙을 다녀왔다는 상선조차도 동쪽을 향해 떠났다가 돌아와 망망대해뿐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륙… 이라고?”
그런데 서쪽 대륙 출신이 단리와 암굴을 지나쳐서 단염과 흑린 앞바다에서 해적질을 한다는 건 이상했다.
하지만 바센 생각에 다른 대륙을 생각하긴 힘들었다.
“그 야분이라는 자는 그럼 서쪽 대륙에서 온 건가?”
고단이 말했다.
“아니, 그분은 남쪽 대륙에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