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73
176화〉
S급들의 대련2
새까만 어둠이 뒤엉킨 동굴.
석순이 짐승의 이발처럼 자라난 축축한 지면에서, 그림자 하나가 기다란 몸을 일으킨다.
로브를 뒤집어쓴 그림자는 입꼬리를 귀까지 찢어 올리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뭐가 그렇게··· 기쁩니까···? 페넬슐.”
“오랜 만이 군, 디아 칸. 그동 안 성 과는있 었 나.”
“그런대로요···. 계획대로··· 일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다크서클이 광대까지 내려온 디아칸이 초췌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는 둥글게 튀어나온 바위에 몸을 기댄 채 동굴 안을 둘러보았다.
“흥, 말도 안 되는 거짓을 지껄이고 있군.”
그때 걸걸하고 투박한 음성이 동굴 내부에 울렸다.
자연스럽게 디아칸과 페넬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희끗희끗한 백발의 노인이 날카로운 눈매로 그들을 노려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박 사가 이 런곳 에 걸 음을 할 줄이 야. 상당 히 의 외로 군. 대 체무 슨바 람이 분거 지.”
페넬슐이 늘어진 테이프 같은 목소리로 의문을 표했다.
그의 말마따나 박사는 언제나 네바다 사막에 있는 자신의 연구소에 틀어박혀 나오는 법이 없었다.
지난번 한국에서 첫 게이트 실험할 때를 제외하면 그가 밖으로 나온 역사는 손에 꼽힐 정도.
“왜? 내가 오면 회의가 진행 안 되기라도 하나, 페넬슐?”
“그럴 리 가. 박 사의 참 가라 면 언 제나환 영 이 지.”
“의외긴··· 하군요···. 화상 회의가 아닌··· 직접 대면은 대체 얼마 만인지··· 얼굴도 잊을 것 같습니다···.”
“흥, 네놈도 4위계 회의 때는 홀로그램으로 모습을 비추지 않나, 디아칸.”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그건··· 저보다 낮은 위계니까··· 그럴 수 있는 것이죠.”
박사는 투박하게 생긴 나무 지팡이를 동굴 바닥에 툭툭 찍었다.
드르르르륵.
그러자 돌덩이들이 일어나며 밋밋한 의자 하나가 만들어졌다.
“이제 마 기를 자 유자재 로 사 용할수 있 게 되 었군. 박 사도 이 제 한 명의 훌 륭한 마 도사 가 된것같 다. 드 디어 우 리의 일원 이 되었 어.”
“자네들처럼 원래 마력이라도 사용했던 몸뚱이가 아니라고. 평생 책상머리에 앉아 연구만 했던 내가, 이만큼 되기까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나.”
“이해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마기’를 드시는··· 걸 테죠. 몸에 부담을··· 이겨 내면서요. 어쨌 든··· 잘된 일입니다.”
“시끄럽다, 디아칸, 페넬슐. 자네들은 내 상사가 아니지 않나. 어쭙잖은 칭찬 따위는 집어치우시게.”
박사는 그들의 말을 일축하며 지팡이를 휘휘 내저었다.
디아칸은 작게 헛기침하더니 홀로그램 하나를 허공에 띄웠다.
옅게 빛나는 홀로그램엔 박사, 디아칸, 페넬슐의 얼굴과 함께 그들이 맡은 프로젝트가 쓰여 있었다.
“오늘 회의는··· 다들 알다시피··· 현재 진행 상황에 대한··· 정기 보고입니다.”
“쯧! 그런 거라면 각자 ‘자신의 상사’에게 보고하면 될 일 아닌가, 이렇게 굳이 모일 거 없이.”
“안 됩니다, 박사··· 이번 3위계 회의는 2위계분께서 직접 주관하신 것입니다···. 발언을 조심히 하십시오···.”
디아칸은 다 죽어 가는 얼굴로 박사를 쳐다보며 경고 아닌 경고를 했다.
“주관이라니··· 이 자리에 2위계분이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예···. 자리에 와 계십니다···.”
박사의 물음에 디아칸은 눈동자만 슬쩍 위를 향했다.
그 움직임을 읽은 박사는 낮은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군. 실례했네.”
“괜찮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박사의 프로젝트를··· 살펴보도록 하죠.”
디아칸은 홀로그램에서 박사의 얼굴을 터치했다.
“박사의 프로젝트는··· 대부분 크롤과 함께하고 있죠···. ‘인공 게이트 프로젝트’는 상부에서도··· 꽤 주목하고 있는 계획입니다. 특히 독일에서 펼쳤던··· ‘리버스 게이트’는··· 앞으로 〈판데모니엄〉의 핵심이 될 수도··· 있죠.”
그는 박사의 프로젝트를 설명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아직 개발 단계에 불과하단···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인공 S급 게이트’의 위력도··· 자연적인 ‘S급 게이트’보다··· 그 위력이 떨어지는 것 같단 평이 많고요.”
“흥, 더 강한 게이트를 만들려면 준비물도 엄청 필요한 법이야. 지난번 게이트 대란은 질보다는 양에 주력한 거라고.”
“아 쉽긴하 지. 그 래도 국 가몇 개 정 도는멸 망 할줄 알 았는 데. S 급게이 트 가열 린 나 라중 에서 한 곳도 망 하지않았 으니. 게 다가 우 리쪽 손 해도 많 이 입었 다지.”
페넬슐의 말에 안 그래도 어두웠던 디아칸의 표정이 더욱 가라앉았다.
3위계들은 기본적으로 4위계를 주축으로 〈판데모니엄〉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일종의 관리직이나 연구직에 가까운 위치.
박사는 연구직에 있으면서 개발한 마법이나 아이템을 크롤을 통해 공급했고, 디아칸은 주로 그것들을 활용해 수행하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런데 본격적인 임무에 들어가면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디아칸은 그 위치가 흔들리는 중이었다.
페넬슐의 ‘손해’란 말은 디아칸의 현 상황을 꼬집는 말이었던 것.
“프로젝트는 잘··· 이행되고 있습니다. 상부에서나 마족에서도··· 만족해하고 있고요.”
“거짓말하지 마라, 디아칸. 지난 게이트 프로젝트를 루슬라나 그 계집이 다 망치지 않았나. 게다가 악마 오로바스마저 당하고 말았지.”
“박사··· 애초에 게이트의 위력이 강했다면··· 그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을 겁니다···.”
“뭐?! 지금 네놈 프로젝트의 실패를 내 탓으로 돌리고 있는 건가? 처음부터 루슬라나 같은 멍청한 년을 책임자로 앉힌 네 탓이겠지!”
울컥한 디아칸의 몸에서 격한 살기가 바늘처럼 찔러 나왔다.
그에 질세라 박사가 지팡이를 앞으로 겨누며 주문을 읊으려 하자, 그들 사이로 파넬슐의 그림자가 떠올랐다.
“진 정들 해 라. 2위 계 분이 보 고계 신다. 싸 우고 싶 다면 정 식 으로 결 투를 요 청해 라.”
파넬슐이 고개를 좌우로 돌려 그들에게 어떻게 할 거냐는 듯 눈짓했다.
박사가 먼저 지팡이를 거두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흥! 어차피 나는 각성자 출신이 아니라 싸움 따위는 할 줄 모른다. 공평하지 않은 결투에 목숨을 걸 만큼 아둔하진 않지. 하지만 장담컨대··· 혼자 죽지는 않을 거라고 맹세하겠다.”
그는 디아칸을 노려보더니 곧장 동굴 밖으로 몸을 향했다.
“회 의는 중 지군. 그러 나 재 밌는 걸 봤 으니 괜 찮았 어.”
“파넬슐··· 저를 도발한 이유가 처음부터··· 이런 결과를 유도하고 한 일이었습니까···.”
“이 런이 런. 디 아칸, 나 는예 지를 가 진게 아 니야. 그저 예 측하 고, 관 찰 할뿐 이 지. 박 사나 자 네의 행 동은 뻔 하거 든.”
페넬슐은 로브 안쪽에서 입꼬리를 길게 찢은 채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디아칸은 그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왠지 처음부터 그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은 것이다.
“페넬슐··· 당신의 계획은 잘 되어가고··· 있는 건가요? 소문에 따르면··· 4위계의 협조도 없이··· 혼자 진행하고 있다는 것··· 같은데.”
“큭 큭큭큭. 디아 칸, 나 는 함 부로 다 른누 구와 일하 지 않는다. 4위 계는 그능 력 을 인 정받 지 못 했 어. 차 라리 내 가뿌 린씨 앗을내 가거두는 게더 낫 다.”
디아칸은 무어라 반박하려던 말을 멈추고 그의 말에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루슬라나의 죽음을 보니 확실히 아랫사람에게만 일을 맡기기엔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일을 맡긴 카이세와 라반, 아루무에게선 별다른 진전도 없는 상황이니.
“나 도이 만가 겠다. 가 끔은 직 접움 직여 보라 고, 디 아칸.”
“고려해 보도록 하죠···. 당신의 계획도 잘 되길 바랍니다···.”
“큭 큭큭 큭.”
페넬슐은 검은 잉크가 바닥에 떨어지듯 주르륵 흘러내리며 그 모습을 감췄다.
***
최강율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카데미 시절부터 수많은 헌터들의 전투 영상을 봐 왔던 그였다.
교수들의 모의 전투도 많이 봐 왔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날고 기는 랭커들의 전투 영상은 빼놓지 않고 다 관찰했었다.
하지만 지금 코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투는 그간 봐 왔던 장면들을 무색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늘어나라, 여의!!”
루안의 시동어와 함께 여의봉이 끝이 시우를 향해 솟구쳤다.
겹겹이 구축된 실드가 맹렬히 회전하며 날아오는 여의를 다른 방향으로 튕겨 냈다.
시우의 후방에서 커다란 원이 생성된다.
빼곡하게 들어찬 술식이 시퍼런 섬광을 내뿜는다.
[설화 : 하얀 송곳니]수십 개의 매얼음이 허공 중에 몸을 굳히더니 사위를 향해 총알처럼 쏘아졌다.
“그렇게 마음대로는 안 되죠!”
그 찰나, 베네딕트의 스태프가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처럼 움직이며 마법을 구현했다.
쩌저저적!
맹수의 이빨처럼 들이닥치던 얼음덩어리들이 허공에 붙박인다.
베네딕트가 춤추듯 스태프를 휘두른다.
그러자 무시무시한 한기를 내뿜던 시우의 공격이 마력 입자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하하하! 제 앞에서 마법은 쉽게 쓸 수 없습니다!”
환한 웃음을 짓던 베네딕트는 스태프를 재차 휘둘렀다.
순간, 공간을 베어먹는 시간의 칼날이 시우가 있는 곳을 향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시우는 마력 실드를 펼치고 있었지만, 무턱대고 그 공격을 받아 내려 하진 않았다.
그는 잽싸게 몸을 띄워 베네딕트의 공격을 피해 냈다.
[설화: 하얀 송곳니]를 단번에 마력 입자로 되돌려 놓는 것을 봤을 때, 저 공격도 비슷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감이 좋으시군요!”
베네딕트가 재차 공격을 감행하려는데, 옆에 있던 도경후가 손을 뻗었다.
“이제 내가 할 차례다.”
“오~~ 그렇게 하실래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경후의 몸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시우에게 향했다.
“크하하핫! 오랜만에 사람을 상대로 검을 휘둘러 보는군!!”
도경후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날이 번뜩인다.
시우는 360도로 감싸고 있던 실드를 전면으로 압축시켰다.
콰가가가가가가가!!
괴물 같은 일검(一劍)이 들이닥치며 시우가 섰던 자리를 할퀴고 지난다.
“그대로 받아냈으면 몸이 두 동강이 났겠는데.”
시우는 통째로 뜯겨 나간 자신의 실드를 보며 헛웃음 쳤다.
“내 애검 ‘귀살도’는 마력을 먹고 살지. 몰랐던 사실도 아니지 않나?”
“그럼, 대한민국에 그걸 모르는 헌터가 있겠어?”
“크크크··· 잊어버리지 않았다니 다행이군. 제대로 상대하지 않으면 제자들 앞에서 좋은 꼴은 보이지 못할 거다.”
“워밍업은 이 정도로 하고 본격적으로 붙어 볼까?”
시우는 손가락에 낀 반지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 히히히힝!
그의 마력을 게걸스레 먹어 치운 한 마리의 푸른 말이 현현하며 콧김을 뿜어 댔다.
“잘 막아 내야 할 거야.”
시우는 푸르미르의 등에 올라탄 채 발뭉을 뽑아 들었다.
“크하하핫! 이 괴물 같은 자식! 대한민국에서 내게 검으로 덤비는 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도경후가 열에 들뜬 얼굴로 소리쳤다.
푸르미르가 발을 박차더니 전광석화와 같은 모습으로 질주했다.
시우는 발뭉을 하늘 높이 들어 도경후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쩌어ㅡㅡㅡㅡㅡㅡㅡ어엉!!
섬광이 폭발하며 주위가 빛으로 물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