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82)
182 화 휩쓸림.
휩쓸림.
하수도는 하수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굉장한 악취로 가득했다. 조금 걷다 보니 적응이 되긴 했지만, 내 코가 워낙 예민한 탓에 여전히 거슬렸다.
“냄새가 너무 지독해요… 진짜 참기가 힘들어요…”
코를 쥔 쟈멜이 힘 빠진 목소리로 투덜댔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아까부터 열심히 투덜대는 것치고는 엄청 잘 버텨 주고 있었다. 지젤은 얼굴 표정 하나 안 바뀐 채로 가볍게 말을 받았다.
“이런 냄새쯤이야, 고아로 뒷골목을 전전하던 시절엔 흔히 맡던 거지. 그땐 내 몸에서도 이런 냄새가 났을 텐데 말이야.”
“나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그래두… 오랜만에 맡으니까 냄새가 너무 심해. 쿰쿰하고 뜨끈하면서 눅눅한 데다 구역질 나는 이 냄새, 다신 맡을 일 없을 줄 알았는데…”
두런두런 대화까지 나누는 둘에 비해 정말 냄새를 못 참고 있는 건 다키아 쪽이었다.
“우웨에에엑!”
다키아는 거대한 하수도의 갓길에 서서 수로를 따라 흘러가는 구정물을 보며 연신 구역질을 해 댔다. 나는 뒤에 서서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먼저 돌아가 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 저는 레클레스의 진실을 알아야만… 우웨에에엑!”
그녀는 말을 하다 말고 또 한 번 게워 냈다. 사실, 벌써 나올 만한 것은 이미 다 나와 버린 탓에 다키아가 하는 것은 헛구역질에 가까웠다.
역시, 곱게 자란 탓에 이런 더럽고 냄새나는 것엔 조금 약한가. 본인은 싫다지만, 이대로 계속 적응을 못 하면 먼저 돌려보낼 수밖에 없는데. 차라리 냄새를 조금 걸러 낼 마스크 같은 거라도 있으면…
“아.”
마땅한 것이 있었다. 다키아의 목에 걸린 은빛 초커. 그걸 발동시키면 하관을 가리는 금속 마스크로 변했었지.
“다키아.”
“네, 네?”
하도 구역질을 해 댄 탓에 다키아의 두 눈은 이미 눈물로 그렁그렁한 상태였다. 나는 챙겨 다니는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입가를 닦아 주었다.
“목걸이를 발동시켜 보는 게 어떻습니까? 입가를 가리면 한결 나을 겁니다.”
“아.”
다키아는 마법으로 자그마한 물덩이를 만들어 내 입 안을 헹구고 곧장 목걸이를 발동시켰다. 은빛으로 빛나는 금속 마스크가 그녀의 하관을 덮자 곧 죽을 것만 같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훨씬… 낫네요. 냄새도 거의 안 나고요. 악취를 걸러 내는 기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그녀는 깊게 몇 번 숨을 들이쉰 다음 우리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정말 미안해요. 저 때문에 이동이 너무 지체됐네요.”
“곱게 자랐으니 그럴 만도 하지. 이해해.”
가볍게 대답한 지젤이 아차 한 표정으로 재빨리 뒷말을 덧붙였다.
“아,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괜히 오해하진 말아 줘.”
“저도 괜찮아요! 저도 사실 아까부터 속이 조금 울렁거렸거든요! 조금 이따가 토할지도 몰라요!”
다키아의 새하얀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은빛 마스크는 아쉽게도 달아오른 그녀의 귀까진 가려 주지 못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해요…”
“다키아도 나아졌으니, 일단 계속 움직이도록 하죠.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저를 제외하면 다키아가 가장 신체 능력이 뛰어나니 후미에 서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주십시오.”
“네.”
나는 한 손에 뼈로 된 검을 쥐고서 악취로 가득한 길을 걸어 나갔다.
만약 근처에 적이 있었다면 이미 들킨 지 오래겠지. 우리는 조금 시끄러웠으니까.
구정물 흘러가는 소리만이 들려오는 가운데, 나는 숨을 죽이고 최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웠다.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걷길 한참. 우리는 꽤 긴 길을 지나 왔지만, 그 어떤 것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찍찍.
여기저기 바삐 지나다니는 쥐와 날벌레들을 제외하곤.
그나저나 이 시대의 기술력으로 이 정도로 거대하고 체계적인 하수도를 지을 수 있긴 한 건가? 이 세계의 국가들은 대규모 건축에 있어서 마법사들을 동원하는 덕에 가진 기술력에 비해 웅장하고 거대한 건축물을 지을 능력이 있긴 했으나,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하수도는 규격 외의 건축물이었다.
다행히 그런 의문을 느끼는 건 나만이 아닌 듯했다.
꼬르르륵.
적막한 가운데 쟈멜의 배가 밥을 달라고 울어 댔다. 쟈멜은 울상을 지었다.
“여기 진짜 왜 이렇게 커요? 배가 고픈데… 끝이 안 보여요.”
“크게 지어 뒀으니, 크겠지. 이 위에 있는 수도도 그만큼 크니까. 아, 이거 돌아가서 씻어도 냄새가 안 빠지겠다. 아무래도 돌아가면 지금 입고 있는 옷은 그냥 싹 다 버려야겠는걸.”
지젤이 투덜대며 대꾸하자, 조용히 뒤를 따라오던 다키아가 말을 받았다.
“피데스 하수도의 규모가 이렇게나 거대한 건, 이 도시 자체가 고대제국 시절부터 존재해 온 곳이라 그래요. 즉, 이 장소 자체가 고대인들의 유산이나 다름없는 거죠.”
“엄청 더러운 유산이네.”
“이곳이 더러운 덕에 이 위에 있을 피데스의 사람들이 청결하게 살 수 있는 거니까요. 굉장히 소중한 유산인 셈이죠.”
지젤과 다키아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조금 걸음 속도를 늦춰 쟈멜에게 다가갔다. 내가 거리를 좁히자 쟈멜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마르낙 사제님, 앞에 뭐 있어요?”
“아닙니다. 왠지 모르게 빙글빙글 도는 느낌을 받아서 말이죠. 쟈멜, 아까 이곳에 내려오기 전에 썼던 건물 구조를 파악하는 권능 있지 않습니까? 그걸 좀 써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넵!”
쟈멜은 두 눈을 꼭 감고 양 손바닥을 펼쳤다.
“엉겨붙는 바위시여, 아까 썼던 거 좀 부탁드려요!”
바닥에서 솟아오른 자그마한 돌조각들이 쟈멜의 손가락 끝에 모여 뾰족한 손톱의 형태를 취했다. 쟈멜은 망설임 없이 더러운 하수도 벽에 자신의 손가락을 박아 넣었다.
“얍!”
“어떻습니까?”
“잠깐만요… 여기 크기가 커다래서 주변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조금 걸릴 거 같아요.”
쟈멜이 손가락을 꼬물꼬물하며 용을 쓰길 한참. 감겼던 눈이 번쩍 뜨였다.
“앗?!”
곧 쟈멜의 하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크, 큰일 났어요!!!”
“뭡니까?”
“저희 이대로 계속 걸어 봤자 주변을 빙글빙글 돌 뿐이에요!!! 이 커다란 통로는 거대한 도넛 모양이었어요!!! 너무 거대한 탓에 걷는 동안엔 직선으로 느껴졌지만 사실은 살짝 휘어 있던 거예요!!!”
찍찍! 찍찍찍!
쟈멜의 외침과 동시에 쥐들이 시끄럽게 울어 대기 시작했다. 쟈멜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쥐들이 왜 이렇게 울지?”
왠지 모를 불길함이 등을 타고 올랐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을 던졌다.
“그것 말곤 더 없습니까?”
“으음… 아! 또 있어요!”
“뭡니까?”
쟈멜은 활짝 웃으면서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옆 벽을 가리켰다.
“여기 조금 두꺼운 벽 뒤로 빈 공간이 뻥 뚫려 있어요! 여기보단 조금 작지만 그래도 충분히 큰 하수도인 거 같…”
드드드득.
쟈멜이 말을 채 끝내기 전에 그녀가 가리키던 벽이 갈라지며 통로가 열렸다. 그리고 열린 통로의 구멍으로 거대한 오폐수의 해일이 덮쳐 왔다.
“지젤!!! 어서 돌아가야…”
“알…”
불행히도 지젤은 마침 벽에 가장 가까이 있던 탓에 권능을 채 완성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물결에 휩쓸려 버렸다.
코앞까지 다가온 파도. 내가 할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일단, 손을 뻗어 깜짝 놀란 쟈멜을 챙긴다.
“제 허리가 생명줄이라고 생각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절대 놓지 마십시오!!!”
“네, 넵!!! 어, 엉겨붙는 바위시여! 뭐든 해 주세욧!!!”
뭉쳐 든 바위가 쟈멜과 내 몸을 단단하게 묶었다.
“다키아!!! 어서!!!”
“네!”
다키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품으로 뛰어들며 빠른 속도로 입술을 달싹였다. 내가 그녀의 허리를 감아 안자, 유동하는 마력이 차가운 냉기가 되어 거센 물결을 향해 작렬했다. 우리를 향해 덮쳐들던 물결이 얼어붙었다.
쩌저적.
이건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오물 덩어리 물은 쓸데없이 따듯한 데다 그 양이 너무나 많았다. 얼음이 깨져 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
몰아치는 오물의 해일. 하지만 다키아가 벌어 준 짧은 시간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 아니었다.
“지젤!!!”
덕분에 먼저 휩쓸려 간 지젤을 따라잡을 시간을 벌었으니까. 지젤은 무방비한 상태로 거센 물결에 휩쓸린 탓에 정신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지젤의 손을 잡고 어떻게든 빠르게 발을 휘저어 흘러가는 물결 위로 떠올랐다.
“푸아아아!!! 마, 마르낙 사제님!!! 이대로 가다간 저 물에 빠져 죽을 거 같아요!!! 사, 살려 주세요!!!”
“켈록, 켈록켈록.”
잠깐 물에 잠긴 사이, 오물로 가득한 물을 들이켠 건지 다키아는 헛구역질을 하며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결국, 제정신인 사람은 나와 쟈멜뿐이었다.
어떻게든 다 챙기긴 했지만, 정작 문제는 내가 양손을 지젤과 다키아를 붙잡고 있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쟈멜!!!”
“네, 넵!!!”
“아까 구조를 살폈을 때, 어땠습니까! 저런 구멍이 하나뿐이었습니까?”
“다, 다들 어, 엄청 뭔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긴 했는데… 저희가 서 있던 곳이 도넛 바깥쪽이었어요!”
“그것 말고는 없습니까!”
쿵. 쿵. 쿵. 쿵.
모든 하수구 통로들이 일제히 열려 오물로 가득한 폐수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거센 물살은 어느새 거대하던 하수도의 천장에 닿기 일보 직전까지 차올랐다.
나는 곧 작금의 상황이 누군가 의도한 것이란 걸 깨달았다. 이 거대한 방류는 절대 자연적으로 발생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빠르게 주변을 살폈지만, 어떻게 빠져 나갈 구멍이 보이질 않았다. 거기다 이 통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상, 이대로 여유를 부리다간 나를 제외한 셋은 익사하고 말 게 분명했다.
“쟈멜!!!”
“네! 어푸! 어푸!”
선택지가 없었다. 바깥쪽에서 물이 흘러 들어온다면 안쪽으로 구멍을 뚫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도넛 안쪽이 어느 방향입니까!!!”
“저, 저쪽이요!!!”
오른 손목의 팔찌가 빠르게 늘어나 내 양손을 뒤덮었다. 손등에서 튀어나오는 네 개의 포구. 나는 오른손을 내밀고 저장된 마력을 모조리 때려 부었다.
부서져라. 제발!
콰아아아앙!!!
포구에서 쏟아져 나온 마력포가 하수도의 벽을 그대로 붕괴시켰다. 나는 드러난 구멍을 향해 왼 주먹을 내밀었다. 손등에서 발사된 이모탈리움 작살이 정확하게 구멍 안을 파고들었다.
“쟈멜! 잠시만 숨을 참으십시오! 거슬러 올라갈 겁니다!!! 절대 정신을 잃지 마십시오! 곧 쟈멜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넵! 흡!!!”
촤르르륵.
작살과 이어진 이모탈리움 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센 물살을 이겨 내긴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그때. 내 피부 위를 따라 선명한 녹색 문신이 내달려 퍼져 나갔다.
부패의 문으로 한계까지 증폭한 다리로 벽을 디디고 수평으로 선다. 나는 그대로 작살이 이끄는 대로 물살을 거슬러 빠르게 달려 나갔다. 연결된 실이 흔들렸다. 작살을 박아 넣었던 벽이 붕괴하는 게 느껴졌다.
“흐아아압!!!”
콰직.
작살이 뽑힘과 동시에 간발의 차이로 내가 뚫어 낸 구멍에 몸을 던져 넣었다.
“쟈멜!!! 저 구멍을 막아야 우리가 삽니다!!!”
하지만 내가 뚫어 낸 구멍 안으로 수위가 높아진 물살이 넘쳐 오기 시작했다.
“켈록! 켈록! 어, 엉겨붙는 바위시여!!! 땜빵! 저거 땜빵 좀 해 주세요!!! 안 그럼 저 죽어요!!!”
쿵.
하수도의 벽을 이루는 암석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여 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단 한 방울의 물도 새어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사, 살았다!!!”
오물로 푹 젖은 쟈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다시 한번 소리쳤다.
“내가 살았다!!! 흐하하하하!!! 그야말로 불사신 쟈멜인… 어?! 마르낙 사제님!!!”
부패의 문을 해제하고 바닥에 드러누워 숨을 고르고 있자, 쟈멜이 다급하게 나를 찾았다. 진 빠진 몸을 일으키자 쟈멜이 울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인 눈을 하고 있었다.
“지, 지젤이 숨을 안 쉬어요…”
젠장. 정신을 너무 빨리 잃어서 물을 너무 많이 먹은 건가.
“비켜 보십시오!!!”
나는 빠르게 움직여 지젤의 가슴을 압박하고, 입술에 입을 가져다 대고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길 두어 차례.
“쿨럭, 쿨럭!”
더러운 건더기를 뱉어 낸 지젤이 다시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사, 살았다!!! 지, 지젤이 부활했어!!! 마르낙 사제님!!! 만세!!!”
“하아.”
다행히 다키아는 쓰고 있던 실론의 마스크 덕인지는 몰라도 정신을 잃었음에도 고르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진짜 겨우 살았네.
너무 긴장한 탓에 완전 진이 빠져 버렸다. 바닥에 주저앉자 시답잖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럴 땐 오히려 맛을 못 느끼는 게 다행인가. 맛을 느낄 수 있었으면, 방금의 오물투성이 입맞춤은 절대 잊지 못할 기억이 됐을 테니.
그런데 내가 여자랑 입을 맞춰 본 적이 있었나?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 현실의 기억은 너무나 흐릿했다.
설마 처음은 아니겠지. 누군가는 첫 키스가 레몬 맛이라고 하던데, 내 첫 키스가 하수구 구정물 맛이라니. 절대 참을 수 없었다.
주저앉아 실없는 웃음을 터뜨리자, 가슴 속에서 빛과 함께 어머니가 튀어나왔다. 어머니는 지젤을 빤히 노려보곤 그대로 바닥에 풀썩 쓰러져서 입술을 꾹 다물었다. 마치 아까 지젤이 숨을 못 쉬었을 때처럼.
‘살해살해…’
갑자기 숨이 잘 안 쉬어진다는 말과 함께.
“어머니, 그런 장난은 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여유가 생기자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는 마치 어딘가로 연결된 복도 한복판처럼 생긴 공간이었다.
“이곳은 대체…”
“앗!!! 어머니도 물을 너무 마시신 거예요?! 제가! 제가 도와드릴게요!!! 마르낙 사제님이 하는 걸 제가 다 봐 뒀어요!!!”
‘살해?!’
당연히 목소리는 닿지 않았고, 쟈멜이 어머니를 향해 빛살같이 달려들었다.
“그대로 해 드릴게요!!! 아무 걱정 마세요!!! 이 쟈멜이 반드시 살려 드릴게요!!!!”
‘살해애애애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