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56)
256 화 비수.
비수.
쾅! 쾅! 쾅!
호를루의 공간권(空間拳). 그 이름이 허명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벽과 바닥을 뚫고 튀어나오는 거대한 묵빛 주먹은 집요하게 내 시야의 사각을 노려왔다.
오히려 너무 시야의 사각만 노려서 이젠 대충 보이지 않아도 어디서 날라올지 짐작이 갈 정도로.
쾅!
내 등 뒤의 바닥을 부수고 튀어나오는 금속 주먹. 바로 내가 여태 녀석의 권을 피해내며 기다리던 그 주먹이었다. 나는 부패의 문을 발동시킨 탓에 벌써부터 쓰라려 오는 배를 한껏 무시하곤 등 뒤에서 튀어나온 녀석의 주먹을 발판으로 삼아 힘껏 박차고 튀어 올랐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지면과의 거리. 원래라면 호를루와 같이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적들을 상대할 때 발판 하나 없는 허공으로의 도약은 절대 지양해야 할 행위였지만 나는 녀석의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몇 가지 시험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과연 벽과 바닥이 없는 이 허공에서도 녀석의 권이 내게 닿을 수 있을까?
지근거리에서 뻗어 나온 녀석의 권에도 반응하는 나인데, 벽과 바닥을 시작점으로 멀리서부터 내게 뻗어 나온 금속 주먹 따위, 내겐 그저 밟기 좋은 발판에 불과했다.
끼릭끼릭.
쉼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호를루의 톱니 머리. 녀석은 허공을 도약해 자신과의 거리를 좁히는 날 바라보는 듯했지만, 여타 다른 인간들과 달리 저 톱니 머리엔 인간의 표정 이랄만한 것이 전혀 없어 지금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당최 짐작할 수가 없었다.
물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지 나랑은 크게 상관없지만.
쿵.
짧은 착지. 녀석과의 거리가 대폭 줄어들었다. 무방비하게 허공을 나는 동안 녀석은 전혀 공격을 해오지도 않았고. 아니, 못한 건가?
내가 착지하기 무섭게 호를루는 다시 한번 제자리에서 주먹을 내뻗었다.
콰앙!
역시나 내 시야의 사각에서 벽을 깨부수고 튀어나오는 주먹. 방금의 내 도약으로 내가 녀석과의 거리를 줄이려는 걸 눈치챈 건지 거대한 금속 주먹은 밟고 뛰어오르기 애매한 각도로 날 공격해왔다.
까아아앙!
나는 손아귀에 쥐고 있던 절망으로 녀석의 권을 흘려냈다. 금속 주먹이 절망의 푸른 날을 긁어내며 화려한 불티를 피어 올렸다.
쾅!
채 공격을 다 흘려내기도 전에 새로운 주먹이 튀어나왔다.
녀석에게 가까울수록 발동속도가 빠른 건가? 아까보다 박자가 빠른데.
나는 뒤로 펄쩍 뛰어올라 간발의 차이로 거대한 금속 주먹을 피해냈다. 물론, 뒤로 뛰어오를 수밖에 없는 각도로 공격해온 탓에 기껏 좁힌 호를루와의 거리가 다시 조금 늘어났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녀석은 굳이 나와의 거리를 좁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
그 말은 곧, 저 톱니 머리가 달린 몸에 공격을 가하면 녀석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좋아. 나도 조금 더 빠르게 가볼까.
내 피부 위를 뒤덮은 암녹빛 문신이 환히 타올랐다. 나는 한껏 증폭된 육체의 힘을 터뜨려 바닥을 박찼다. 다시 한번 순식간에 바닥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그래, 녀석의 발판이 아니어도 나 혼자서 충분한 높이로 도약할 수 있었다.
끼릭끼릭.
몸이 부유하는 찰나 간 묘하게 규칙적인 녀석의 톱니 머리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나갔다.
일단, 아까 내가 밀어낸 펄리가 소리 소문도 없이 전투에서 사라졌다.
뭐, 펄리야 알아서 자기 앞가림은 잘하는 사람이니까 아마도 호를루를 상대하는 것보다 ‘그릇’이 있는 공간으로 가는 통로를 찾는 게 우선이라 판단한 거겠지.
그리고 공간권(空間拳). 호를루의 권은 녀석이 사제로서 받은 권능인가? 펄리조차도 호를루 저자가 신을 모시는 사제인 건지, 그게 아니라면 그저 사제로 선택받지 못한 광신자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부서진 바닥의 틈 사이로 보이는 묵빛 금속 덩어리를 근거로 판단해보자면 아마도 녀석과 내가 존재하는 이 거대한 공간, 그 자체가 녀석의 몸일 확률이 높았다. 공간권(空間拳)이란 것도 녀석이 자신의 몸을 변형하여 공격하는 거에 멋대로 이름을 붙일 것일 테고.
그럼 녀석은 사제가 아닌 그저 한 명의 광신도인가?
그걸 마냥 확신하기엔 아까부터 사방에서 미묘하게 느껴지는 신성이 거슬렸다. 비록, 권능이 펼쳐질 때처럼 강렬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신성이 이 거대한 공간 전체에서 느껴졌다.
이건 또 신의 그릇이 이 공간 근처에 있어서 벌어지는 현상일 수도 있단 말이지.
육체가 허공을 활보하는 와중에도 내 머리는 계속해서 빠르게 돌아갔다. 하지만 명확한 답을 내리기엔 아직 근거가 너무 부족했다.
결국, 저 톱니 머리의 밑바닥을 보기 위해선 내가 먼저 패를 까는 수밖에 없나?
결단을 내린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곤 그대로 바닥에 착지했다.
쾅!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오는 금속 주먹. 여태 내 사각만을 집요하게 노렸던 것과 달리 이번엔 내 정면에서 날 노리고 있었다.
다가오지 말라는 의도가 너무 뻔했다. 나는 잠깐 호를루의 머리 쪽을 한 번 바라보곤 그대로 검을 쥔 주먹을 뻗어 눈앞의 금속 덩어리를 후려갈겼다.
콰앙!!!
튀어나올 때보다 더욱 큰 굉음. 내 주먹에 후들겨 맞은 금속 주먹의 궤도가 끊겼다. 나는 직접 궤도 틀어 만들어낸 빈틈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호를루와의 거리는 대충 어림잡아 열 걸음 이내.
쾅! 쾅! 쾅! 쾅! 쾅!
아까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다양한 각도에서 금속 주먹들이 튀어나왔지만, 더는 간 볼 이유가 없었기에 나는 하나하나 주먹으로 직접 쳐내며 녀석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혀나갔다.
순식간에 나와 녀석과의 간격은 삼보 이내로 줄어들었다.
끼릭끼릭.
더욱 빠르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 호를루의 자세를 보자마자 깨달았다. 지금 녀석은 여태까지 해왔던 대로 허공으로 주먹을 내지르는 대신, 직접 저 몸으로 날 상대하려 하고 있었다.
“건방지긴.”
내 비웃음에 녀석은 평온한 목소리로 답했다.
[내 공간권(空間拳)은 무적이다!!!]내가 미처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처음으로 녀석이 내게로 다가왔다. 이 간격이 녀석의 최후인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카앙!
내가 휘두른 절망이 호를루의 주먹을 갉아내며 궤도를 틀었다. 호를루는 민첩하게 권을 회수하곤 다음 연격을 이어나가려 했다.
나는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대신 호를루의 주먹을 빗겨낸 절망을 손에서 놓았다.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진 절망은 마치 자신을 놓아버린 날 원망하듯 선명한 소리를 내뱉으며 바닥을 굴렀다.
그 뜻밖의 광경에 호를루의 시선이 잠깐 내게서 떨어져 바닥을 구르는 내 검, 절망에게로 향했음을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찰나. 그 짧은 방심을 나는 노렸다.
내 손목에 차고 있던 이모탈리움 팔찌에서 거미줄처럼 뻗어 나온 이모탈리움이 내 오른손을 뒤덮었다. 이윽고 이모탈리움이 완벽한 금속 장갑의 형태를 갖추자 나는 기다리고 기다렸던 기도를 올렸다.
“어머니.”
‘살해!’
어머니의 응답과 함께 아무것도 없었을 내 손아귀에서 암녹빛 검 한 자루가 솟아올랐다.
‘부패의 검(劍).’
‘닿는 모든 것’을 순식간에 부패시키는 걸 넘어 금속마저 부식시키는 신성의 검(劍). 지독하게 불길한 신성을 뿜어내며 권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 권능의 검을 잡아 쥐었다.
실론의 유물은 부패의 검과 접촉하자마자 손등에서 홀로그램 고대어로 경고를 내뱉었다.
– 복구 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앞으로 70초.
70초? 시간은 차고 넘치게 충분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부패의 검으로 호를루를 그어 내렸다. 호를루는 침착하게 내 권능에 대응했지만, 그가 내 부패의 검을 막아내기 위해 뻗어낸 주먹은 부패의 검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부스러져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 이게 무, 무슨?!]한 번 호를루를 집어삼킨 부패는 호를루의 손을 타고 팔까지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한시도 쉬지 않고 녀석의 몸통을 향해 나아갔다.
나는 녀석이 부패에 집어 삼켜지길 기다리지 않았다. 그대로 부패의 검을 다시 한번 내뻗어 아까부터 쉬지 않고 거슬리던 녀석의 톱니 머리에 그대로 부패의 검을 박아넣었다.
[끄아아아악!!!]비명을 내뱉는 호를루의 톱니 머리는 녀석의 몸과 달리 바로 부식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꽤 버티는 꼴을 보니 이 톱니 머리통 자체는 통짜 이모탈리움일 확률이 높았다.
그래봤자 시간문제지만.
내 장갑이 70초가량이나 내 부패의 검을 버틸 수 있는 건, 이것이 실론이 가공한 유물이기 때문이지 보통의 이모탈리움이라면 이 권능을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내 장갑보다 훨씬 짧았다.
나는 녀석의 머리통에 꽂아 넣은 부패의 검을 이리저리 흔들며 부드럽게 웃었다.
“괜한 반항 말고 얼른 죽으십시오.”
[끄아아아악!!! 비, 빌어먹을!!! 하등한 인간 주제에 감히!!!]“예예.”
정중하던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어조. 나는 대충 대답하곤 더 열심히 톱니 사이에 꽂힌 부패의 검을 흔들어댔다.
마침내 부패의 검에 맞닿은 묵빛 톱니가 조금씩 뭉개져 갈 때. 호를루가 움직였다.
툭.
바닥으로 떨어진 건 부식되어가고 있던 녀석의 팔뚝이었다. 제 스스로 팔을 떼어낸 호를루는 곧장 다음 행동을 취했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신성의 유동. 녀석의 전신에 강렬한 신성이 모여들었다.
‘살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경고. 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여기서 계속 녀석의 머리에 부패의 검을 꽂고 있을지, 아니면 잠깐 물러나서 상황을 지켜볼 것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당연히 녀석의 숨통을 끊는 것이 우선. 나는 내 몸의 재생력을 믿었다.
“변하는 건 없습니다. 포기하십시오.”
나는 녀석의 머리에 꽂힌 검을 더욱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와 함께 호를루의 소리 없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까득.
그와 동시에 녀석의 톱니 머리통이 쪼개졌다. 반으로 뜯긴 녀석의 윗머리의 톱니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스스로 머리통을 쪼갠 녀석은 뒤로 훌쩍 뛰어 나와의 거리를 벌리려 했다.
“어딜.”
나는 녀석을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재차 부패의 검을 꽂기 위해 녀석에게로 따라붙었다. 호를루는 뒤로 몸을 내빼며 아직 남아있는 한쪽 손을 내밀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무엇인지 몰라도 일으킨 신성으로 권능을 완성하려는 게 분명했다. 나는 권능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임페트로에게 배운 대로 있는 대로 신성을 끌어모아 내 몸에 둘렀다.
뒤로 나지막한 호를루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발(發).]내 피가 역류했다.
“쿨럭.”
‘살해!!!’
뒤이어 따라온 어머니의 걱정 가득한 외침.
녀석의 권능은 내 몸‘밖’이 아니라 ‘안’에서 완성되었다. 다른 사제의 신체 안에서 권능을 발현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역류하는 피 가래를 계속해서 뱉어내며 이 권능의 정체를 깨달았다.
독(毒). 이건 신성이 만들어낸 독이었다. 특히나 거의 모든 독에 면역인 내 육체를 뚫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독.
그런데 대체 언제 내 몸속에 매개체를 집어넣은 거지? 녀석에게 공격을 허용한 적은 없을 텐데.
[크하하하하핫! 어떠냐! 이 권능의 맛은! 이 신의 독에 중독된 이상, 네 녀석이 승리하는 더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여태까지와의 말투는 전부 위장이라는 듯이 호를루가 본색을 드러냈다. 나는 내 몸 안에 피란 피는 다 토해낼 때까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 구역질을 겨우 억누르곤 입을 열었다.
“…대체 언제 중독시킨 겁니까?”
호를루는 이젠 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 톱니를 붙잡고 잠깐 휘청이더니 다시 자세를 잡았다.
[하하핫! 내 주먹에 덮여있는 묵빛 코팅이 왜 그리 쉽게 벗겨지는지 의문이 들지 않았나? 아니, 네놈은 제 기분에 취해서 눈치도 못 챘겠지! 권능의 매개체인 금속 가루들이 네 놈의 호흡기를 통해 몸속으로 파고드는 걸 말이야!!!]녀석은 자신의 반쪽 난 톱니 머리를 툭툭 두들기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공간권? 웃기지도 않는 그 이름에 홀려 날 권사라 착각한 순간 네놈의 최후는 이미 결정된 것이었다! 전투는 자고로 머리가 좋은 놈이 승리하는 법이지. 되지도 않는 정중한 말투와 권사 흉내. 그 모든 것은 이 한 수를 위한 밑거름에 불과했다! 알겠나? 마르낙!!!]“쿨럭.”
참아내지 못한 피가 또 한 번 내 목을 타고 역류했다. 한 움큼의 피를 토해낸 나는 중독되어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니. 넌 틀렸다. 호를루”
바닥에 떨어진 절망을 집어 들고 몸을 낮췄다. 내 피부를 뒤덮은 부패의 문(文)이 그 어느 때보다 환히 타올랐다.
죽을 만큼 고통스럽지만, 이 끈질긴 몸뚱이는 아직 죽지 않았다. 충분히 움직일 수 있었다.
[어떻게…?]한껏 구역질을 억누른 나는 호를루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 전투는 머리가 아니라 몸 좋은 놈이 이기는 법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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