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02)
302 화 괴도와 강도, 그 사이 어딘가.
괴도와 강도, 그 사이 어딘가.
“어? 둘 다 어디 가세요?”
길을 걷던 우리는 앞치마를 하고서 길가에 대충 주저앉아 쉬고 있던 레페에게 발견됐다. 레페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나와 솜니아를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맨날 잠만 자던 연 씨가 무슨 일로 외출을 다 하셨어요? 그리고 솜니아 넌 또 왜 손수건을 마스크처럼 쓰고 있는 거야?”
나는 슬쩍 눈을 돌려 솜니아와 눈을 마주치고는 가볍게 턱짓했다.
네가 대답하라는 뜻으로. 솜니아는 어떻게 잘 이해한 건지 입을 가린 손수건을 툭툭 두드리곤 레페에게 답했다.
“…먼지가 너무 많아서 썼어.”
“먼지? 딱히 이 주변에 먼지라고 할 만한 건 없는 거 같은데. 바람도 선선하게 불고.”
“…미세한 먼지란 게 있어. 레페는 못 느낄 거야.”
“내가 못 느낄 정도면 당연하게 솜니아 너도 못 느끼는 거 아냐?”
눈을 한 바퀴 데굴 굴린 솜니아가 날 힐긋 보곤 다시 대답했다.
“…내가 아니라 연이 느꼈어.”
“음? 진짜에요?”
아니, 이게 자연스럽게 나한테 바통을 넘겨? 그럼 나도 참을 수 없지.
“미세먼지는 솜니아가 한 거짓말이고 사실 우리는 그냥 도둑질하러 가는 중이야.”
“네?”
“들키면 도둑에서 강도로 2차 전직을 해볼 것도 고려 중이야. 요즘은 도둑보단 강도가 대세라고 하더라고.”
레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몇 번 끔벅이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이거 둘 중 누가 저 먼저 웃기나 내기해서 이렇게 말하는 거죠? 아쉽네요. 둘 다 낙제예요. 사람을 웃기려면 좀 더 노력을 해야죠. 딱 봐도 밥 먹고 심심해서 둘이서 산책 한 바퀴 도는 거잖아요.”
“…”
혼자 알아서 착각해주면 나야 좋지만, 이 미묘한 패배감은 뭐지.
“그나저나 너, 대체 언제까지 쓸데없이 여기서 밥 배급해주고 잡일이나 하면서 지낼 거냐? 집 안 가고 싶어?”
“딱히 집 가는 게 급하지는 않은데요? 여기 머무는 데 숙소하고 다 제공해주시니 따로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밥도 재깍재깍 잘 나오잖아요. 곤란한 사람들도 아직 많이 남아있고요.”
“이거 아주 그냥 푹 눌러앉을 기세네? 일단 너는 그렇고 페르카 녀석은 어디 갔냐?”
“아, 페르카는 여기가 아니라 저쪽 마수 고기랑 부산물 옮기는 데를 도와주고 있어요.”
잠시만.
“너희 둘 다 돈 안 받고 있지?”
“그렇죠? 저희야 어차피 ‘그게’ 있으니, 딱히 돈이 급한 것도 아니고…”
자기들은 황금 가득 든 가방이 두 개나 있어서 여유 있다 이거지?
“착한 사람 놀이도 적당히 하고 슬슬 집 갈 준비나 해.”
“곤란한 사람이 눈앞에 있고, 마침 남는 손이 있으면 조금 돕기도 하고 그러는 거죠. 착한 사람 놀이가 아니라요.”
“하아. 대체 뭘 먹고 둘 다 이렇게 쓸데없이 바르게 자랐을까? 이게 다 어렸을 때 불량식품 같은 걸 못 먹어서 그래. 이래서 사람이 바다 너머 대륙에서 넘어온 원재료 불명의 과자들 같은 것도 사 먹고 해야 하는 건데. 몸에 좋은 것만 보고 먹고 자라니까 사람이 이러잖아.”
“바다 건너… 대륙요? 그런 게 있어요?”
“나야 모르지. 궁금하면 네가 배 타고 가보던가. 됐고. 내 인내심도 슬슬 한계야. 페르카한테 말해서 슬슬 집 갈 준비하라고 그래. 물론, 너도 준비하고.”
레페는 입고 있던 앞치마에 손을 툭툭 털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뭐.”
“음? 이렇게 순순히 대답할 줄은 몰랐는데.”
“첫날에야 체계가 안 잡혀서 정신없이 바빴는데, 며칠 지나고 슬슬 체계가 잡히니까 막 일이 너무 많지도 않거든요. 마수 시체 때문에 식량이 엄청 급한 상황도 아니고 다른 물자도 제법 충분하다더라고요. 저랑 페르카가 없어도 충분히 잘 돌아갈 정도로요. 그러니 저도 슬슬 떠나도 괜찮지 않을까 싶던 차에요. 근데 페르카 생각은 잘 모르겠어서 일단 한번 말해볼게요.”
마냥 착하기만 한 건 아니었네. 상황을 볼 줄도 알고. 레페랑 달리 페르카 쪽은 좀 더 앞뒤 없이 도우려고 하는 편이라 아마 더 있고 싶어 하겠지만.
“잘 생각했어. 근데 너 과일 좋아해?”
“있으면 잘 먹죠? 근데 과일은 갑자기 왜요?”
“너도 도둑질 공범시켜줄까 해서.”
레페가 다시 피식 웃었다.
“그 개그 아직도 시도 중이세요? 참 열심히 시네요. 공범해드릴 테니까 일단 가던 길마저 가보세요. 슬슬 점심 배식 준비 시간이거든요.”
“그래. 네 것도 챙겨줄게.”
“네네~.”
레페는 대충 대답하고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는 휘적휘적 걸어 음식을 배식하는 곳으로 떠나갔다.
이로써 공범 하나 추가인가.
“가자.”
“…응.”
나와 솜니아는 다시 도둑질을 하기 위한 여행길 위에 올라섰다. 대충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던 와중 솜니아가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대체 왜 레페랑 페르카랑 같이 다니는 거야? 너는 그럴 이유가 없잖아.”
“나한텐 굳이 너 같이 쓸데없이 눈치 빠른 꼬맹이를 데리고 다닐 이유도 없지.”
솜니아는 도리도리 고래를 저었다.
“…아냐. 나는 분명 쓸모가 있어.”
“그건 네 생각이고.”
“…지금 말 돌리는 거지?”
“아닌데. 내가 말을 왜 돌려? 말 돌리는 건 숨겨야할 게 있는 사람들이나 돌리는 거지. 나는 그런 거 없어.”
“…그럼 대답해줘.”
가만 보니 되게 귀찮은 꼬맹이네 이거.
“한 번만 말해준다. 이해 못 해도 더 캐묻지 마.”
“…응!”
나는 손가락 하나를 펼쳐 솜니아에게 내보였다.
“우선 나는 지금 제법 한가한 상황이야. 물론, 내 마음은 좀 급한데. 상황이 날 강제로 한가하게 만들고 있어.”
“…왜?”
“어머니의 신성이 깃든 성물을 내가 자력으로 찾아낼 수가 없거든. 아쉽게도 나는 성물 찾아내는 레이더가 아니라서. 리베라티오가 몇 개 가지고 있는 건 확실한데, 그놈들은 요 몇 년 사이에 아주 콕 들어박혀서 몰래몰래 움직이는 통에 찾아내기도 쉽지 않아. 물론, 이건 내가 수련에만 집중하느라 틀어박혔던 탓도 있지만.”
나는 손가락을 하나 더 펼쳤다.
“둘, 근데 사실 지금 나한테는 성물보다 사도들 대가리 속에 들어있는 사리가 가장 우선이야. 어머니의 성물을 찾아봤자 나 혼자서는 성물 가지고 아무것도 못 해. 반면, 사리를 쓰는 방법은 운 좋게도 내 기계 덩어리 친구가 알고 있었거든. 그래서 당장 나는 사리를 모으기 위해 사도들 머리통을 캔 따개처럼 따고 다니는 게 목적이야.”
마지막으로 손가락을 하나 더 펴서 세 번째 손가락을 솜니아에게 내보였다.
“셋, 근데 이 사도란 게 신이 그러고 싶으면 신이 찍은 사제가 어느 날 갑자기 진화해서 되는 거라 사도가 직접 제 권능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누가 언제 사도가 됐는지 나로선 알 수가 없어. 신들이 사도들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최근이라 사도 자체가 몇 없기도 하고. 그러니까 이렇게 대충 사도에 관한 정보가 얻어걸릴 때까지 소일거리나 하면서 시간 죽이면서 지내는 거지. 이해했어?”
솜니아는 입을 가린 손수건을 툭툭 두드리며 조용히 고민하더니 짧게 답했다.
“…반쯤?”
“그거면 됐다. 알아먹었으면 이제 귀찮게 더 캐묻지 마.”
“…중요한 건 대답 안 해줬는데. 레페랑 페르카랑 다니는 이유 말이야.”
“대리만족.”
“…무슨 뜻이야?”
“그냥 무척이나 음습한 취미생활이라는 뜻이지.”
***
“다 왔다.”
도시 외곽에 도착하자 저 멀리 무장한 용병들이 멀쩡한 창고 주변을 순찰하는 게 보였다. 이 주변은 원래 이런저런 창고들이 가득한 거리인지 주변도 창고로 보이는 건물들이 잔뜩 있었다.
이래서 물자가 부족하지는 않다 한 거구만.
솜니아가 말한 악덕 상인의 창고를 찾는 건 매우 쉬웠는데 나머지 창고들은 재난 상황에 맞춰 난민들을 위해 개방한 터라 최소한의 경비 인원만이 상주하고 있었다. 반면, 악덕 상인의 창고는 혹시 모를 강도들을 대비하는 건지는 몰라도 창고 주변에 용병들이 잔뜩 깔려 있어 모르고 지나칠래야 지나칠 수 없었다.
우리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악덕 상인의 창고 주변을 훑어보기 위해 거리를 걸었다. 다만, 인적 드문 거리를 우리 둘만 지나가는 게 어지간히 수상했는지, 창고를 지키던 용병들 중 하나가 우리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너희 뭐야? 왜 여기를 지나쳐?”
“그냥 지나가던 중인데.”
내 의도한 반말에도 다가온 험상궂은 용병은 별 반응이 없었다.
그냥 서로 말 트는 게 편한 타입인가?
“이 길은 덴티스 상단의 사유지야. 저기 앞에 표지판에도 표시되어 있잖아.”
그가 가리킨 방향에는 ‘사유지 출입금지’라고 적힌 푯말이 꽂혀있었다.
“길이 어떻게 사유지야.”
“길까지 돈 주고 샀으니까 사유지지. 여튼 이곳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니까 돌아서 가.”
슬슬 강도로 전직할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차에 수염이 덥수룩한 용병이 솜니아를 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너는 손수건을 왜 그렇게 쓰고 있어?”
“…미세먼지 때문에.”
“미세먼지? 그게 뭔데?”
“…그런 게 있어.”
솜니아와 용병이 대화하는 사이, 나는 주변 창고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대충 견적 계산이 끝난 나는 솜니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가자. 길 찾았어.”
“…응.”
일단 물러난 우리는 몇 건물을 지나쳐 몸을 숨겼다. 솜니아가 품속을 주섬주섬 뒤지더니 자그마한 봉투를 꺼내 들었다.
“그거 뭐야?”
“…미리 써온 예고장. 괴도는 원래 예고하고 훔쳐야 하는 거니까.”
“넣어.”
“…그럼 그냥 좀도둑인데.”
“나 돌아간다?”
“…칫.”
“업히기나 해.”
내가 등을 보이자 솜니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올라탔다. 나는 솜니아를 업고서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시야를 가리던 거대한 창고의 벽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훤히 뚫린 도시의 풍경이 나를 반겼다.
툭.
가볍게 창고 지붕 위에 착지한 나는 대충 악덕 상인의 창고가 있던 방향을 가늠하고 아래를 살피며 건물을 하나씩 조용히 뛰어넘어갔다.
역시나 거대한 창고들의 지붕을 타고 넘어 침입할 거로 생각하지는 않은 것인지 지붕 쪽에는 별다른 경비가 없었다.
악덕 상인의 창고 위에 선 나는 솜니아를 내려주고 절망을 꺼내 대충 몇 번 지붕을 베었다. 절망을 다시 집어넣고 손으로 절망으로 그은 선대로 최대한 조용히 지붕을 뜯어내자 뚫린 구멍 너머로 쌓아둔 물건들이 보였다.
다들 단단한 상자나 포대에 담겨 있어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잔뜩 있기는 했다.
나는 뜯어낸 지붕 조각을 조심스럽게 옆에 놔두고 솜니아에게 손짓했다. 솜니아는 말없이 내 등에 다시 올라탔고 나는 만들어낸 구멍으로 뛰어내렸다.
탁.
부드러운 착지.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고 솜니아에게 물었다.
“근데 여기 과일 있는 거 맞아?”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럼 대체 왜 털자고 한 건데?”
“…여기 주인 주거래 품목이 식료품이래. 그래서 과일도 있을 거 같다 생각한 거야.”
합리적인 추론이긴 했다. 일단 대충 하나 뜯어보는 수밖에 없나. 주변에 있는 동그란 오크통 하나의 뚜껑을 열어보자 새빨간 사과들이 수줍게 우리를 반겼다.
솜니아는 잽싸게 사과를 하나 꺼내더니 품속에서 아까 예의 그 예고장을 사과들 위에 올려두었다. 나도 솜니아를 따라 사과 하나를 빼서 껍질 째로 아삭 씹어먹었다.
맛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특유의 생생한 아삭함이 내 입을 즐겁게 했다.
“예고장인데 훔치고 나서 넣어도 되는 거야?”
솜니아는 사과를 양손으로 잡고 아삭아삭 베어먹으며 대답했다.
“…나는 미리 보냈는데 악덕 상인이 미처 발견 못했다는 설정.”
“거 괴도하기 되게 편하…”
인기척에 나는 잽싸게 몸을 숙이고 솜니아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솜니아는 일단 베어 물었던 사과를 우물우물 씹어서 꼴깍 삼켰다.
슬쩍 오크통의 뚜껑을 밀어서 닫아두고 주저앉았다.
발소리와 함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특이사항은 없었나?”
“따로 없었습니다.”
“그래. 너도 나가봐.”
“예.”
살짝 고개를 내밀어 목소리의 주인을 살피자 수수한 옷을 입은 중년 사내가 보였다.
용병들에게 명령하는 모습으로 보건대 아마 저 남자가 이 창고의 주인이겠지.
그는 아무도 없는 거대한 창고 한가운데서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가만히 서 있었다. 조용히 주변을 살피던 그의 시선이 한곳에 꽂혔다.
“음?”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정확히 바로 나와 솜니아가 있는 방향. 그는 딱히 감각이 날카롭거나 한 게 아니었다.
그저 선명한 햇빛이 우리가 있는 곳을 내리쬐고 있었을 뿐.
“아.”
천장을 올려다보자 내가 낸 구멍을 통해 밝은 햇빛이 우리 주변을 내리쬐고 있었다. 마치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처럼.
그가 무어라 입을 열기 직전.
선명한 악신의 신성이 일렁이며 그림자 속에서 새카만 로브를 푹 눌러쓴 세 명의 사람이 솟아올랐다. 가장 앞에 선 자가 푹 눌러썼던 모자를 벗자, 새카만 로브와는 전혀 안 어울리는 환히 빛나는 금발이 드러났다.
금발 머리 사내는 상인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저희 그림자운송상단의 서비스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곧장 짐을 옮겨드리면 될까요?”
악신의 숭배자가 셋.
하멜 놈은 전문해수구제업자를 자칭하고 다니더니, 이번에 새로 나타난 놈들은 운송업자네.
설마 리베라티오가 별일 안 벌이고 조용한 게 선신의 사제놈들이 모두 철수한 틈을 이용해 권능으로 돈 벌러 다니기 위해서라든지 같은 진심으로 쓸데없는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
상인은 천장에 뚫린 구멍을 보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지금 도둑이 든 거 같은데.”
“아, 좀도둑이라면 저희가 겸사겸사 처리해드리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지.”
더 이상 숨을 수는 없겠네.
재빨리 오크통의 뚜껑을 열고 솜니아가 넣어둔 예고장을 꺼내서 그대로 불쑥 튀어나와 상인을 향해 날렸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그림자가 쏜살같이 날아가던 새하얀 봉투를 잡아챘다. 금발 사내는 봉투 겉면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예고장…?”
나는 자리를 박차고 튀어나와 멋들어지게 오크통들 위에 착지하며 외쳤다.
“강도 등장! 빠밤!”
나를 따라 고개를 빼꼼 내민 솜니아가 작게 말했다.
“…강도 아냐. 괴도야.”
“들켰으면 이제 강도지. 무슨 괴도야.”
“…”
나는 악신의 숭배자들과 상인을 보며 손에 들고 있던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아삭.
역시나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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