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incarnated Assassin is a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782
제782화
화아아아아!
모닥불을 피운 듯한 작은 불씨와 함께 갈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떠올랐다.
신기하게도 소녀는 낡아 보이는 목검을 보물이라도 된 듯 꼭 끌어안고 있었다.
라온은 구름처럼 떠 있는 어린아이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저 아이가 시아인가….’
시아가 녹색의 왕 투구를 쓴 나이는 지금보다 한참 어린 시절일 테니, 그녀의 영혼이 어린 소녀의 모습인 건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이네.’
무르카가 잘 보호해주었는지 시아의 영혼에는 자그마한 생채기도 보이지 않았다.
후우우욱!
라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시아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 무르카의 영혼이 남긴 검은 재가 그녀와 자신을 휘감았다.
‘이건….’
막아야 하나 고민을 하는데, 검은 재에서 무르카가 보여주었던 따스함이 느껴졌다. 그의 행동에는 분명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손을 내렸다.
화아아아.
무르카의 검은 재가 조심스럽게 시야에게 스며들자, 그녀에게서 투기처럼 선명하면서도 진한 붉은빛이 솟구쳤다.
“아….”
라온은 무르카와 시아의 영혼이 교차하는 빛 속에서 두 사람의 만남을 보았다.
[엄마! 아빠!]어린 시아는 홀로 존재하는 심상의 세계 속에서 실비아와 에드가를 찾았다.
뒤에 보이는 자그마한 오두막과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음식들, 푸르른 수풀과 나무는 그녀가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음을 알려주었다.
시아는 본인이 현실에 있다고 생각한 듯 주저앉은 채 실비아와 에드가를 불렀다. 당연하게도 두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새 요리는 차갑게 식었고, 수풀과 나무는 말라붙은 채 쓰러졌으며, 오두막에는 회색 눈이 쌓였다. 시아의 절망스러운 감정이 심상의 세계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흐윽….]시아는 울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눈물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요리를 먹지도 않았고, 오두막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시아가 손을 뻗은 건 장작 사이에 끼어 있는 낡은 목검이다. 그녀는 에드가가 사용했던 것 같은 목검을 쥔 채 허공을 내리쳤다.
[아빠….]힘은 없고, 속도도 느렸으며, 투로 역시 어긋나 있었지만, 그건 분명 에드가의 마정검이었다.
시아는 에드가의 검술을 따라하며 두려움을 이겨내려고 한 것 같았다. 평범한 어린 소녀로서는 생각도 하기 어려운 일. 이제야 그녀가 실비아와 에드가의 딸이라는 게 느껴졌다.
쿠우우우웅!
시아의 정신이 성장하며 다시 숲이 푸르름을 되찾으려고 할 때였다.
그녀의 심상의 세계에 거대한 균열이 벌어지며 다른 심상의 세계가 침입했다. 무르카의 검게 죽은 숲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
두 심상의 세계가 부딪치며 생겨난 강대한 파동에 의해 시아의 심상에 세워져 있던 오두막집과 숲이 마른 나뭇잎처럼 바스러졌다.
무르카가 가진 영혼의 격이 압도적으로 크기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빠지지지직!
코끼리와 개미. 아니, 그 이상으로 벌어진 힘의 차이에 의해서 시아의 심상이 무르카의 심상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무르카가 시뻘건 안광을 번뜩이며 시아에게 다가갔다. 그는 인간에게 배신당해 죽었을 때의 절망과 분노를 그대로 드러낸 채 피내음이 섞인 숨결을 내쉬었다.
[아아….]시아는 무르카의 살의에 질린 듯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인간!]무르카는 시아를 통해서 에시안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 듯 석검을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서 슬픔과 절망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쿠구구구구!
무르카가 머리 위로 석검을 들어 올렸다. 가볍게 내리치기만 해도 시아는 한 줌 핏물이 되어버리겠지만, 그는 이를 꽉 깨문 채로 시아를 바라보기만 했다.
[끄으윽….]어느새 무르카의 눈빛에 비치는 건 에시안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마지막에 떠나보낸 부족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결국 무르카는 분노에 몸을 맡기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석검을 내렸다.
그가 선택한 건 인간에 대한 처절한 복수가 아니라, 관용이었다.
무르카는 피나도록 입술을 깨문 채 뇌리를 지배하려는 절망과 분노를 밀어냈다.
[내가 너를 죽인다면 그 짐승들과 다를 바가 없으리라.]그는 인간의 악의를 용서하고, 어린 부족들이 잘 살아남기를 바라며 자연의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허어억….]시아는 무르카의 살기가 사라진 것을 알고 가슴을 움켜쥔 채 탁한 숨을 내쉬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무르카는 무릎을 꿇은 채 시아와 눈높이를 맞췄다.
[시, 시아에요.]시아는 무르카의 눈빛이 따스해진 것을 느끼고서 이름을 밝혔다.
그녀는 그 이후의 기억이 없다고 말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는 어디죠? 우리 아빠와 엄마는 어디에 있어요?] [지옥이다.] [그, 그러면 이제 엄마와 아빠를 못 보는 거예요?]시아는 지옥에 대해 알고 있는 듯 두 손을 모은 채 눈물을 글썽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무르카는 시아의 눈물에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제대로 말해주마. 이곳은….]그가 다시 시아에게 설명을 해주려고 할 때였다.
콰드드득!
시아의 심상의 세계가 봄을 맞은 눈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저 공간이 모두 무너진다면 그녀 역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걸 노렸나.]무르카가 무너지는 시아의 심상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 투구를 쓴 괴인들은 자신이 이 아이를 죽이지 않을 것을 알고, 두 심상이 부딪치며 자연스럽게 아이가 죽도록 설계한 게 분명했다.
[네놈들의 계략에는 넘어가지 않는다.]무르카가 본인의 가슴을 거세게 두드렸다. 자신의 악의를 아무 죄도 없는 아이에게 풀지 않기로 다짐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시아. 네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 무엇이냐.]무르카는 점점 흐려지는 시아의 손을 잡은 채 낮은 숨을 내쉬었다.
시아가 손에 쥐고 있던 낡은 목검을 들어 올렸다.
[아빠의 검이에요.] [좋은 검이구나.]무르카는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오거라.]그는 시아를 데리고 본인의 심상의 세계로 돌아갔다.
쿠우웅!
무르카가 석검을 내리쳐서 심상의 세계에 강한 충격을 일으켰다.
그는 영혼이 뜯겨나갈 정도로 지독한 고통을 참으며 계속해서 본인의 심상의 세계를 무너뜨렸다.
콰아아앙!
쉴새 없이 석검을 내린 친 덕분에 결국 무르카의 심상에는 작은 아이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뚫렸다.
[이 안으로 들어가거라.]무르카는 시아에게 구멍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하며 검은 피를 토했다. 영혼에 큰 상처를 입은 듯한 모습이었다.
[아, 아저씨. 괜찮아요?] [멀쩡하다.]무르카는 입가에서 흘러내린 핏물을 가볍게 털어내며 웃었다.
[엄마와 아빠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 내가 꼭 만나게 해주마.]그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저씨. 이름은요?]시아는 구멍으로 들어가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무르카를 같은 사람이라 여기는 순수함만이 담겨 있었다.
[무르카.]무르카는 시아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이름을 밝혔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능하고, 멍청한 왕이다.] [와, 왕이요?] [그만 자거라.]무르카가 시아의 이마를 쓸어내리자, 그녀가 잠에 빠진 듯 축 늘어졌다.
[시간이 없군.]무르카가 무너지는 시아의 세계를 보며 손끝을 떨었다.
저 세계가 다 깨져나가기 전에 주술을 걸어야 이 아이가 살아남을 수 있기에 가만히 있을 틈이 없었다.
퍼어어어억!
무르카는 시아가 들어간 구멍을 메워준 후 석검을 거꾸로 들어 거침없이 본인의 배를 찔렀다.
고오오오오!
무르카가 영혼의 피를 쏟으며 세운 맹약은 본인이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동안 시아의 영혼이 보호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인정이 없다면 시아가 평생 잠에서 깨지 않는 것이다.
무르카는 에시안에 대한 복수도, 도망친 부족에 대한 걱정도 떠올리지 않았다. 그리는 건 오직 눈앞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일념. 그의 영혼이 한층 더 높은 곳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후우.]무르카는 시아의 영혼이 자신의 심상 속에 자리 잡은 것을 확인하고서야 석검을 내렸다. 그는 시아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땅을 다지며 힘없이 웃었다.
[아마도 긴 시간이 되겠군….]* * *
라온이 시아의 영혼을 휘도는 무르카의 영혼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무르카….’
직접 보았음에도 인간에게 배신당해서 부족을 잃은 오크가 다시 인간을 믿고, 보호해준다는 게 믿어 지지가 않았다.
환생한 자신에게 있어서도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누이를 지켜줘서 고맙다.”
무르카의 영혼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이건 사람이 사람에게 보내는 찬사이자, 존경의 인사였다.
우우우웅!
무르카는 그 감사 인사를 받아들이겠다는 듯 작은 울림을 일으키고서 시아를 휘감았다.
화아아아아!
시아에게 무르카가 남긴 검은 재가 스며들며 그녀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한다. 어린아이에서 찬란한 생기를 지닌 소녀의 시간을 지나, 지금 시아의 모습으로 변했다.
무르카는 시아를 지켜준다는 말을 지키겠다는 듯 본인의 영혼으로 시아의 영혼을 성장시켜준 것 같았다.
“무르카.”
라온은 사라질 것처럼 희미해진 무르카의 영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기회가 된다면 네 후손이 잘살고 있는지 찾아보마.”
후우욱.
무르카의 마지막 영혼 조각은 부탁한다는 듯 자신에게 스며들었다.
보고 느꼈던 대로 누구보다도 다정한 기운이었다.
화아아아아!
무르카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자, 검게 죽은 숲이 무너지고, 붉은빛 속에서 보았던 시아의 심상이 되살아난다. 작은 오두막집과 푸르른 숲이 회백색 공간을 채웠다.
라온은 시아가 오두막집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보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 *
라온이 다시 눈을 뜨자, 글렌과 멀린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할아버님! 이번에는 제 차례잖아요!”
멀린이 글렌을 향해 턱을 치켜들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어제도 네가 업지 않았느냐! 그리고 할아버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글렌이 멀린을 굽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할아버님을 할아버님이라 부르지 뭐라고 불러요!”
멀린 역시 지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
“너하고는 말이 통하지를 않는….”
“저기….”
라온이 멀린과 글렌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왜 싸우시는 거죠?”
“어? 라온? 왜 일어났어?”
멀린은 더 자라고 말하며 부드럽게 배를 두드려주었다.
“크흠….”
글렌도 아쉽다는 듯 길게 헛기침을 흘렸다.
-저 둘. 네놈을 누가 업고 가냐는 것으로 싸우고 있었느니라.
라스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매일 저러고 있어서 귀찮아 죽겠느니라!
녀석은 인간들은 참으로 피곤하게 산다며 혀를 찼다.
‘아….’
라온이 피식 웃었다. 이제야 두 사람이 다퉜던 게 이해가 갔다.
“이상한 일로 싸우지 마시고… 음?”
둘을 말리면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뭐지?’
라스의 강림 이후 잠을 자도 피곤하고 몸이 무거웠는데, 그 피로들이 한순간에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네놈….
라스가 라온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혼자 뭘 처먹고 온 것이냐!
‘무슨 소리야. 내가 먹기는 뭘 먹어.’
-영혼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느냐! 뭘 먹지 않고선 그럴 수가 있겠냐고!
녀석은 또 혼자서 맛난 걸 먹었냐며 멱살을 쥐었다.
“라온. 심상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글렌도 자신이 회복한 것을 알아차린 듯 눈을 부릅떴다.
‘잠깐. 내가 변했다는 건….’
라온이 침대에 누워 있는 시아를 보았다.
그녀 역시 무르카의 영혼을 제대로 받아들인 듯 정심한 기파를 피워냈다.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녹색의 왕의 절망과 분노가 아닌, 무르카가 지켜주었던 어린 시아의 순수함이 느껴졌다.
“아, 아가씨의 영혼이 성장하고 있어요!”
멀린도 시아의 영혼이 성장하는 것을 느끼고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대체….”
글렌이 답을 원하는 듯 빠르게 라온을 돌아보았다.
“말씀드릴게요.”
라온이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한 왕 무르카에 대해서….”
* * *
라온은 별관 호수 뒤편에서 검술 수련을 하며 스스로의 변화를 느꼈다.
‘더 강해졌군.’
라스를 받아들이며 육체 능력이 크게 성장했고, 마나 회로도 넓어져서 오러의 운용 속도가 빨라졌다.
그랜드 마스터 극에 이르러서 한동안 정체를 겪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방식의 성장을 이룰 줄은 몰랐다.
-끄응, 짜증이 나느니라.
라스가 라온을 노려보며 미간을 구겼다.
-본왕의 강림이 어중간하게 끊어지면서 네놈에게 이득이 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냐!
녀석은 왜 맨날 운이 좋냐며 이를 갈았다.
‘나도 모르지.’
라온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전생이 최악이었기에 현생에서 운이 따라주는 것 같았다.
-후우, 네놈 말고 운이 더럽게 없는 무르카를 보고 싶군. 그런 놈인 줄 알았다면 본왕의 수하로 삼아주었을 텐데….
라스는 무르카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게 아쉽다며 혀를 찼다.
‘나도 마찬가지야.’
무르가와 조금 더 대화할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로 태어날 놈이 아니었어. 아니, 그 말은 그 녀석에게 실례가 되겠군.
라스는 마왕답지 않게 존중을 보이며 고개를 까딱였다.
‘그렇지.’
라온이 무르카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다시 수련을 하려고 할 때였다.
“도, 도련님!”
헬렌이 치마에 흙을 잔뜩 묻힌 채 달려왔다. 얼마나 급한지 항상 지나다니는 길임에도 넘어질 것처럼 휘청거렸다.
“뭐가 그렇게 급해. 천천히 말을 해도….”
“그럴 수가 없어요!”
라온이 천천히 오라고 손을 저을 때 헬렌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마님이 깨어나셨어요! 다른 분들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