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staurant where the fox waits RAW novel - Chapter 38
제38화
38화
재근의 아버지는 유명한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 몇 개를 운영하시는 높으신 분이었다.
열심히 일하셨고, 그래서 돈도 많이 벌어 오신다고 하셨다.
그러니 재근은 그런 높은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해야만 했다. 엄마가, 아빠가 그렇게 가르쳤으니까.
하지만 이 애는 이상한 말을 했다.
“재근이 압빠는 요리 만드는 사람이자나.”
“그렇지……?”
“그럼 공부 열씨미 하면 요리 잘 만드는 고야?”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꺄아아! 그러면 우리 압빠는 공부 엄청 잘하고 머리 조은 사람이게따!”
“……왜?”
“그야, 미호 압빠는 요리를 어엄청 잘하거든. 되게, 되게 마시써!”
“뭐야, 그게.”
그저 아침 햇살처럼 해맑기만 한 미호의 대답에, 재근은 왜인지 모르게 피식 웃어 버리고야 말았다.
하지만 단순히 웃기만 할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그 자신이 힘들다는 건 본인이 가장 잘 알았으니까.
사교육으로 유명한 대한민국이었지만 그 열풍은 상류층으로 올라갈수록 더 심해졌다.
유치원이 끝나자마자 바로 기사님 차를 타고 학원으로 간다. 수학, 국어, 선행학습, 피아노 반에서 뺑뺑이를 돌다가 7시쯤에 주린 배를 안고 집에 들어가 30분 만에 빠르게 저녁을 먹는다.
그다음에는 바로 종합 과외를 받는다. 과외가 끝나면 9시에서 10시 사이.
너무나도 졸려서 천근인 눈을 애써 뜨며 숙제를 해 보지만 다 끝날 리가 없다. 그렇기에 이렇게 유치원에서도 하고 있는 것이고.
물론 힘들었다. 정말 더럽게 힘들었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놀고 싶은데. 놀이터에서 지옥 탈출도 하고, 미끄럼틀도 타고, 역할 놀이도 하고 싶은데.
아빠는 참아야 한다고 했다. 너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니까. 내 일을 이어받을 머리 좋은 아이여야만 하니까, 지금 참아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엄하게 말씀하셨다.
“아무튼! 나는 공부 잘해야 되거든? 반에서 1등 하고, 좋은 대학교 들어갈 거야.”
“우웅…… 그렇구나. 근데, 힘들지는 않아? 나눈 밤 8시만 되면 어엄청 졸리던데. 재근이는 엄청 힘들 거 가태.”
그렇기에 미호에게는 그냥 강한 척 대답했다.
힘들지 않다고. 난 머리 좋아져야 하니까 그냥 하는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되돌아와 버린 미호의 대답에는, 조금 머리가 멍해져 버렸다.
“힘들지는…… 않지.”
“그러쿠나! 재근이 되게 머시따. 그러면 그게 재미써?”
“재밌다니, 뭐가.”
“공부하는 거! 그렇게 오래 공부하구 하려면 재미써야 할 거 가타서.”
“그건…….”
반쯤 거짓말을 섞는 건 어렵지 않았다. 부모님과 대화할 때에도 계속 그렇게 했었고, 심지어는 재근의 부모님 또한 그런 화법을 가르쳤으니까.
그들이 의도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재근의 눈에서, 부모님들이 하는 말들의 절반 이상은 거짓말이었기에 따라 배웠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그냥 거짓말을 반쯤 섞어서 대답하면 되는 일이었다.
공부하는 거 재미있다고. 난 재밌어서 하는 거라고.
그런데 이게 뭐라고. 참, 쉽지가 않았다. 입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안 했다.
“그거는…… 잘 모르겠네.”
“재미없는 거를 이러케 오래 하려면 되게 힘들 텐데. 재근이 너 갠차나?”
“나야, 뭐. 그냥 괜찮지.”
“그래도 안 대! 너무 힘들며는 압빠한테 부탁해 바.”
“아빠한테……?”
“웅! 나두 힘들면 압빠한테 말하거든. 압빠니까 잘 드러주실 거야. 그리구, 중요한 게 이짜나.”
미호는 말했다.
그렇게나 어른스러워지려고 이를 악물고 발악하던 재근 본인보다, 정말 너무나도 더 어른스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압빠는 어른이자나. 재근이를 사랑하는 어른. 그러니까 들어주실 거야. 공부하고 하는 거는, 재근이 압빠가 원하시는 거지 네가 하고 시픈 게 아니잖아. 그치?”
“……그, 그렇지.”
그 말 한마디에 담긴 것들이 너무 무거워 버려서.
재근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끄덕해 버렸다.
이걸 아빠한테 들키면 혼날 텐데. 아빠한테 이런 말 했다가는 엄청 큰일이 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차마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었어서.
“할 만해. 그냥.”
“그러쿠나!”
거짓말을 해 버린 것이다. 바로 지금, 이렇게.
“그래두 힘들면 이야기해. 들어주실 거야. 엄마랑 압빠니까.”
“그래. 그럴게.”
“마따! 나 그거 보여 주라. 그거!”
“그거……? 그거 뭐?”
“그거 이짜나. 막 이러케 이러케 하면 띵띵띵 하구 소리 나고.”
“피아노?”
“웅! 나 재근이 피아노 치는 거 볼래. 구거 너무 재미써!”
결국 오늘도 이렇게 되어 버렸다.
다른 건 몰라도, 이상하게 피아노 치는 걸 보여 달라는 미호의 말에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아니, 어쩌면 거절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몰랐지만.
결국 그날은 숙제하는 것을 잠시 미뤄 두고, 미호와 함께 피아노가 있는 교실에 가서 같이 피아노를 쳤다.
젓가락 행진곡.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참 쉬운 곡이었지만. 미호는 이상하리만큼 빠르게 배워 버렸다. 난 이거 치는 데 거의 2주나 걸렸는데. 미호가 일주일도 안 되어서 배워 버리니 조금 심술이 나긴 했지만, 애초에 이 곡은 두 명이서 치라고 나온 곡이니까.
그러니까 괜찮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누군가와 같이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건, 선생님에게 이제 됐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억지로 이를 악물고 치던 피아노보다도 훨씬 더 재미있던 것이었다.
“어머어머, 장 쌤, 쟤들 봐 봐요.”
“무슨 드라마 속 한 장면 같네. 우리 유치원에서 이런 건 처음인데.”
“멋지다. 참, 좋을 때죠. 그쵸? 안 그래요?”
딱 붙어 앉아서. 재미있게 피아노를 치면서 노는 두 아이들을 바라보던 샛별 유치원 선생님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을 미호와 재근이 깨닫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재미있게 놀던 와중, 미호가 스쳐 지나가듯 말했다.
“마따! 재근아.”
“응?”
“이번 주 일요일 저녁에. 나랑 민규랑 가치 놀러 가기로 했어. 뭐지? 어린이 대공원? 아무튼 너도 올래?”
“나랑 같이 놀러 가자고?”
“웅! 일요일에!”
“난 아마 힘들 것 같은데. 그때 학원도 있고, 과외도 있고…….”
“그치마안.”
“……알았어. 아빠한테 그냥, 한번 여쭤볼게.”
“쪼아!!”
그리고 미호는 꿈에도 몰랐다.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재근이는 내 친구니까.
같이 놀러 가자고 꺼내 보았던 이 한마디가 나중에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지.
미호는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 * *
“끄으으응…….”
학원을 무려 3개나 갔다가 겨우 돌아온 시간은 오후 8시.
저녁까지 먹었음에도 아직 집에 돌아오시지 않은 아버지를, 재근은 똥 마려운 표정을 하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벌써 몇 번이나 집의 사용인 아주머니에게 아빠가 언제 돌아오시냐고 여쭤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기다려 봐야 안다’는 것뿐.
단순히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아버지였지만, 재근은 오늘 하루 특별히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용기를 내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 아이의 염원이 결국 통해 버린 것일까. 밤 9시가 다 되어 갈 즈음, 집 현관문이 삐비빅거리더니 기다리던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내셨다.
“다, 다녀오셨어요.”
“그래.”
“넵…….”
힐끔. 그런 말이 딱 어울리듯 재근을 바라보고는 그대로 방에 들어가 버리시는 아버지.
재근의 집은 넓었다. 모험 놀이를 해도 될 정도로 아주 넓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만 쓰시는 방도 상당히 많았는데, 집에 오시자마자 외투를 대충 던져 버리신 아버지는 바로 서재를 향해 들어가 버리셨다.
똑, 똑, 똑.
재근이 조심스럽게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 후 녀석이 문을 열자, 와이셔츠 차림으로 자신을 무뚝뚝하게 바라보는 아버지가 있었다.
꿀꺽, 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항상 긴장되는 일이었다. 아버지를 마주하거나 대화를 한다는 것을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무슨 일이냐.”
하고, 재근의 떨리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가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재근은 생각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네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가 원하는 것을 가져오라고.
그렇기에 재근이는 한참 동안이나 아껴 놓았던 것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보았다.
“그, 아빠. 저 저번에 학원에서 시험을 봤는데요.”
“근데.”
“제가 저희 반에서 일등 했어요. 선생님도 엄청 칭찬해 주셨고요.”
“그렇구나. 잘했다. ……그래서?”
하지만 아버지의 반응은 무뚝뚝하기 그지없었다.
일등을 했다고? 그래, 잘했구나. 그래서 나보고 뭐 어쩌라고. 왜 당연한 걸 구태여 말로 하냐.
이런 말이 딱 어울리는 표정과 말투였다.
하지만 재근은 기죽지 않았다. 이럴 거라고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에. 정말, 정말로 어렵사리 준비했던 말을 꺼내 보았다.
“저, 그. 그래서 말인데요, 아버지. 혹시 괜찮으면. 저 이번 주 주말, 일요일에요. 저희 반에 미호라는 여자애가 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 그, 그러니까. 일요일에 혹시 괜찮으시면 미호랑 같이 어린이 대공원에 놀러 갔다 와도 될지 여쭤보고 싶어서…….”
“그래라, 그럼.”
와아아아! 해냈다! 하고.
순간 재근은 자신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지를 뻔했다.
아빠에게 말을 건 걸로도 모자라서, 주말에 놀다가 와도 된다는 허락까지 받아 내었다.
적어도 재근에게 있어서 이건 정말로 크고 중요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런 티를 내서는 안 됐다. 아빠랑 엄마는 집 안이나 집 밖에서 절대로 다른 어른들에게 만만하게 보일 만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으니까.
최대한 표정을 절제시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감사하다 말했다.
아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수행원과 전화를 했다. 매일 재근을 유치원에 태워다 주시는 기사님이었다.
“일요일에 재근이가 친구들이랑 놀러 가겠다네. 학원에 연락해서 못 간다 하고, 일요일에 애 잘 데려다줘.”
–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별일 없도록 케어 잘하고. 내가 우리 김 기사 믿는 거 알지? 나 없는 동안 재근이 잘 챙겨 줘야 되는 거야.”
– 심려 끼쳐 드리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염려 마시죠.
“그래, 내가 믿고 있을게.”
순식간에 끝나 버린 전화.
그게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