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협회장은 (1)
치이익!
기름 두른 팬 위로 달걀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반숙? 완숙?”
“반숙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약간 얼이 빠진 채 대답했다. 세성 길드장이 나 먹을 달걀 프라이를 하는 꼴을 보게 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회귀 전에 점쟁이가 지금 광경을 예언해 줬더라면 돌팔이 헛소리도 정도껏 하라며 화냈을 거다.
이어 베이컨 굽는 냄새가 솔솔 코끝을 찔러왔다.
“커피 드실래요? 아니면 과일 주스요?”
노아가 망고와 바나나, 오렌지가 든 바구니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주스로 부탁하자 능숙한 손놀림으로 과일 껍질을 벗겨낸다. 믹서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주방을 울렸다.
노아야 두말할 것도 없고 성현제 저 인간도 생긴 건 과하게 멀쩡하니 잘생겨서 무슨 4D 주방 광고라도 보는 기분이었다. 둘이 카페 같은 거 하면 더럽게 맛없어도 장사 잘될 듯.
내 예상과 달리 이곳은 호텔이 아니라 별장이었다. 크라켄 건으로 난리가 나 눈에 띄지 않도록 개인 소유 별장으로 옮겨 왔다고 했다.
“…원하는 게 뭡니까?”
셔츠 목깃 사이로 드러난 화상에 어쩔 수 없이 눈길이 계속 갔다. 주문대로 덜 익은 노른자를 포크로 찔러 터뜨리며 성현제에게 물었다. 뭔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 예림이를 보호해 줬다고 대답해라.
“섭섭한 소리를 하는군.”
“단순히 절 생각해서 부상까지 각오하며 도와준 거다, 라고 결론 내리기엔 제 정신 건강에 좋지 않아서 말입니다. 신경 쓰이고 찝찝해서 일주일쯤은 잠 설칠 거 같거든요.”
“내가 선량한 사람, 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네만.”
“…방금 체할 뻔했습니다.”
내 옆에 앉은 노아도 떨떠름한 표정이다. 성현제가 웃음기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충분한 가치가 있는 소유물에 한해선 관대해지는 편이라. 게다가 자기 것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
“성현제 씨 거 아닙니다. 애초에 그냥 농이잖습니까.”
“나는 항상 진심이었네만.”
“무서운 소리 마시죠. 진심이면 도망갈 겁니다.”
“숨을 때까지 하루 정도는 기다려 주겠네.”
댁이랑 술래잡기할 생각 없습니다만. 당연히 농담조로 오간 말들이겠지만 진심 어쩌고 하니까 괜히 신경 쓰였다.
“아무튼, 예림이를 보호해 주신 것은 감사드리고, 부상에 대한 대가도 치르겠습니다.”
“뒤의 말은 못 들은 것으로 치지. 천만에. 한유진 군을 위해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어.”
“뭘 원하냐고요.”
“질리기 전까지 멀쩡했으면 좋겠군. 정신 쪽이 말이야.”
“몸뚱이는 상관없고요?”
“부피가 줄어들면 휴대하기 편해지겠지.”
순간 무슨 소린가 했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F급 몸뚱이라 별 쓸모없다는 건 인정하겠다만 그래도 너무하네.
“말이 심하십니다.”
노아가 나 대신 발끈했다. 하지만 성현제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저 인간 유독 노아를 무시하네.
“사람이 말을 하면 쳐다라도 보시죠?”
“주인을 앞에 두고 그럴 필요가 있나.”
…이건 또 뭔 개소리야. 노아 씨는 기승수도 아니고 주인도 없고 멀쩡하게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항의해 보았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부상 입어 가며 예림이 챙겨 준 것에 잠깐이나마 동요했다는 사실이 억울할 정도다. 역시 성격 안 좋아.
“노아 씨, 잠깐 자리 좀 피해 주시겠어요?”
* * *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노아에게 말했다.
“네, 후원 쪽에 가 있을게요.”
노아가 자리를 떠나고 어젯밤의 일에 대해 꺼내 들었다.
“챙길 건 다 챙기셨습니까?”
“덕분에. 상급 헌터 몇이 도망치려 들었지만 놓친 사람은 없어. 호텔을 완전히 수몰시켰으니 시체를 찾지 못하는 것도 이상하게 비치지 않겠지.”
성현제가 퍽 만족스럽게 말했다.
호텔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손에 들어갔다. 살아 있든 죽었든. 시체까지 전부 챙겨 간다는 걸로 보아 세성에도 예림이의 하얀 사체와 비슷한 스킬을 지닌 헌터가 있는 모양이었다.
“쓸 만한 정보는 공유하는 거 잊지 마세요.”
“해외엔 관심 없다 못해 끌어들일 생각도 하지 말라 못 박지 않았던가. 마음이 바뀌었다면 환영이네만.”
“전 당연히 눈길도 안 줄 거고요, 해연에 찔러주시면 됩니다.”
국내 일만으로도 피곤한데 뭔 해외야. 일본에서 스태미너 포션, 중국에서 헌터들 정도만 건지고 신경 끌 거다.
“착용 중인 아이템들도 모아다 보내 주시고요.”
인벤토리 속의 아이템은 빼앗기 힘들다. 심지어 사망하면 인벤토리와 함께 아이템도 모두 사라진다. 그래서 경매 때 부러 아이템들을 내놓게 만들었다. 그냥 사라지게 두긴 아깝잖아.
“살뜰도 하지. 기특하다니까.”
“시선에 붙은 소유격 좀 떼시죠.”
눈빛이 너무 노골적으로 내 거라고 말하고 있잖아. 제 아이템이라고 주장할 거면 스킬과 물물 교환이라도 해 주든가. 완전 날로 먹으려고 드네. 도둑놈 아냐, 이거.
그 밖의 후처리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는데,
“악! 한유현이잖아! 으아악!”
바퀴벌레라도 만진 것처럼 비명을 지르는 예림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는 잘생기고 능력 있는 오빠라고 하더니, 많이 변했구나.
“아저씨! 언제 일어났어요?”
예림이가 쾅쾅 요란한 발소리를 내며 침실을 뛰쳐나왔다.
“옆에서 F급짜리가 움직여도 까맣게 모르는 수준이면 문제 있는 거다, 너.”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거예요. 빵 있어요?”
“여기. 그 정도로 지치는 거 자체가 문제라는 거야. 몸에 부담이 갔다는 뜻이니까. 그거 쌓이면 S급이라도 탈난다.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야 어쩔 수 없지만 웬만하면 무리하지 마. 유현이 너도.”
아직 졸음기가 남은 얼굴로 주방에 들어서는 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S급 던전 둘이서 기어들어가는 짓 같은 거 하지 말라고.”
“응. 근데 무리하는 건 형이 제일 심하잖아.”
“맞아요. 툭하면 기절하고. 심지어 스탯 F면서.”
툭하면 이라니. 그렇게 많진 않았던 거 같은데. 한 세 번쯤 아니었나? 얼마 안 되네.
“집에 처박혀 있는 나랑 던전 도는 너희가 같냐.”
“최근에 형이 돈 던전이 몇 갠데. 진짜 집에만 있었으면 걱정도 안 해.”
음, 어쩌다 보니 말이야. 할 말 없군. 나도 이렇게까지 열심히 던전 들락거릴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세상사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나도 계란! 완전히 익혀서!”
달걀을 꺼내드는 유현이에게 예림이가 소리쳤다. 못마땅하게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유현이의 손에 달걀이 하나 더 들렸다.
“내가 해 줄게. 앉아 있어.”
“괜찮아.”
팬을 드는 유현이의 어깨 위로 이린이 나타났다. 손 인사를 해 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다. 말만 못 하는 게 아닌가? 지적 능력도 제한되는지 평범한 도마뱀같이 행동한다.
“세성 길드장님 코트는 고마웠어요. 그래도 챙겨 주기로 한 건 잊지 마세요!”
“물론이지.”
“…챙겨 주다니? 뭘?”
내 물음에 예림이가 빵을 길게 찢으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어제 시체랑 사람 옮기는 거 좀 도와줬거든요. 그 알바비요!”
“뭐? 아니 왜 애한테 그런 일을 시킵니까?!”
“단순한 운송 아르바이트였네만.”
“단순하긴 뭐가—!”
턱, 성현제의 손에 식칼의 날 부분이 붙잡혔다. 유현이가 계란 프라이 접시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둘 다 반숙이다.
“완숙이랬잖아요!”
“우리 집은 반숙만 취급해.”
싫으면 먹지 말란 차가운 말에 예림이가 투덜대며 계란 프라이를 입에 집어넣었다. 그래도 예전보다 좀 가까워진 거 같은 느낌이 드는데. 역시 애들은 싸우면서 친해지는 건가.
성현제가 자신을 향해 날아들었던 식칼을 다시 유현이에게로 가볍게 던졌다. 포크가 식칼을 툭 치고 공중에서 빙그르 돈 칼날이 식탁에 내리꽂힌다. 대리석 식탁인데 저게 절반 가까이 들어가 버리네.
“나이도 있으신 분이 밥상머리에서 장난치지 마시죠.”
“도련님이 먼저 시작했네만.”
“유현아, 거슬리는 건 잘 알겠지만, 부엌에서 칼 던지면 안 돼.”
“응, 미안.”
그리곤 잠시 머뭇거리더니 야단맞은 강아지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제는 내가 잘못했어. 형은 약속을 지켰는데 제멋대로 굴어서 정말 미안해.”
역시 내 동생은 착하다. 바로 사과하는 것 좀 봐라.
“괜찮아. 사람만 안 다쳤으면 됐지, 뭐.”
성현제가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어쩌라고요. 그래도 화상 자국이 눈에 들어오자 쪼오끔은 미안하고 양심이 따끔거리긴 했기에 다시 말했다.
“죽은 사람 없으니까 괜찮아. 좀 다치면 어때. 포션에 힐러 있는데.”
“와, 그게 뭐예요. 아저씨는 한유현 때문에 세상이 멸망해도 사과만 하면 괜찮아, 하고 말 게 틀림없다니까요.”
아니, 아무리 나라도 그렇게까진……. 세상이 멸망하면 유현이도 살기 불편해질 테니까 그 전에 막아야지.
“그리고 정령 때문이기도 해. 불의 정령이 원래 좀 그렇다더라. 힘을 쓰고 있을 땐 자제심이 약해지고 난폭도 해진다나. 아직 네가 익숙지 않아서 더 그렇고.”
으음, 그리고. 말을 해야 하나. 이린이 재촉하듯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냥 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뭐, 네가 사고 좀 친다 해도 말이야. 그래도 난 널 사랑한다, 유현아.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린아, 형 힘들다. 쪽팔리면 망하는 거다. 진정해. 아무렇지 않게, 태연하게 굴자. 다행히 유현이는 별다른 말 없이 배시시 웃었다.
“아저씨, 나는요!”
“물론 예림이 너도 사랑하지. 1순위는 내 동생이지만.”
“아, 그건 당연하고요. 아니라고 하면 더 놀랍죠.”
당연하기까지 하냐. 그때 성현제가 휴대폰 메시지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착했군. 잠깐 와 주시겠나, 애들 아빠.”
그러면서 현관문 쪽으로 나간다. 뭔가 싶어 따라가자 문이 열리고 강소영과,
– 끼아아앙!
“피스야?”
피스가 풀쩍 뛰어 내 품에 안겨 들었다.
– 끼우웅.
“그래, 그래. 여기까진 어떻게 왔어.”
“제가 데려왔죠.”
강소영이 지친 얼굴로 말했다.
“피스가… 한유진 님 안 계시니까, 조금… 까칠하더라고요. 그래도 한유진 님한테 간다는 말을 알아들은 건지 협조해 주긴 했지만……. 블루까진 데리고 올 수 없었어요.”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그녀가 힘없이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돌아가면 코메트부터 빨리 키워 줘야겠다. 미안하네.
“노아 씨도 여기 있다고 했죠? 저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아, 네. 아까 후원 쪽으로 갔어요.”
“감사합니다!”
단숨에 기운을 차린 강소영이 후원을 향해 달려갔다. 노아의 놀란 외침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진정하세요, 소영 씨. 내 품 안의 피스는 반갑다는 듯 쉴 새 없이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빨리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오래 걸려 버렸네. 미안해, 피스야.”
– 끄앙, 꺙!
피스를 달래 주며 성현제를 돌아보았다.
“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절이 과한 게 찝찝하긴 해도 피스 데리고 와 준 건 솔직하게 고마웠다.
“이제 별점 세 개 정도는 되었겠군.”
“그렇다고 해드리죠.”
“바닷물 알레르기도 사라졌길 바란다네. 알다시피 이 동네가 섬이라. 덧붙여서 이번 관광은 확실하게 노옵션 노팁입니다.”
“애들 셋에 애완동물 동행도 가능합니까?”
“물론이지요.”
그렇게까지 조건이 좋다면 거절할 수 없지. 안 그래도 애들이랑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긴 섭섭했는데.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과하게 잘난 관광 가이드니 어련히 알아서 해 줄 것이다.
“진짜요? 바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잠깐만요, 저 검색 좀 해 볼게요! 기념품도 사야지!”
안으로 들어가 홍콩 관광 가자고 하자 예림이가 잔뜩 신나서 폴짝폴짝 뛰어댔다. 유현이도 좋아하는 기색이었다. 아직 자고 있는 삐약이도 깨우고, 노아에 이어 강소영까지 합세해 밖으로 나섰다.
하루로는 부족해 그다음 날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중간중간 약간의 사고가 있긴 했지만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애들이 한둘도 아닌데 무사고는 무리지.
그리곤 귀국하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해연 길드장에 의해 내가 구출되었다는 소식이 한국에 알려졌고, 공항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내 예상보다 더 많이.
‘내가 자초한 일이긴 한데…….’
그래도 관심들이 너무 과하다. 절로 낯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한 달쯤은 맨얼굴로 밖에 안 나가든가 해야지, 쪽팔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