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18
316화. 명절입니다 (3)
“어서 오세요, 노아 씨!”
얼굴은 괜찮아 보이네.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일단은 눌러두었다. 명절이잖아. 이왕이면 마음 편하게 보내야지. 노아 씨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면 당연히 들어주겠지만, 그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약간 불안해하는 기색이 보였다.
아직은 말하고 싶지 않은 거구만.
“이제 송편 빚을 건데 딱 맞춰 잘 왔어요. 노아 씨도 한복 입으면 좋을 텐데, 한 벌 보내 달라고 할까요?”
이왕이면 내일 한복 입고 오라는 말에 노아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하는 색 있어요? 노아 씨 도포 같은 거 잘 어울릴 듯한데.”
뭘 입어도 외모가 다 받쳐 주겠지만. 노아를 끌어다 한쪽에 있는 테이블 의자에 앉혔다. 테이블 위에는 송편 반죽과 소가 놓여 있었다. 송편 만들기 세트를 사서 색색별로 반죽 덩어리를 만들고 소도 넣기만 하면 되었다.
“나물만 무치면 끝나나?”
명우가 손을 씻으려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걸 눈치챈 예림이가 물덩이를 만들어 주었다.
“물 필요하면 말만 하세요~”
전 부치는 유현이 옆에서 명우가 나물을 다듬기 시작했다. 나물이 담긴 그릇을 들고 잠깐 사라졌다 돌아오니 나물이 데쳐져 있었다. 자꾸 음식 만드는데 쓰려니 이스무아르에게 미안해지네.
얼마 지나지 않아 완성된 전과 나물을 플라스틱 통에 차곡차곡 담아 뚜껑을 덮었다. 그러곤 다 같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송편을 빚기 시작했다.
명우 손재주야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들도 조물조물 예쁘게 송편을 만들었다. 그러다 예림이가 질렸는지 슬금슬금 반죽 크기를 키워 갔다.
“이거 봐요, 토끼.”
동그랗게 웅크린 분홍 토끼를 내밀며 예림이가 웃었다.
“귀엽네. 먹기 아깝겠다.”
“아저씨 줄게요.”
그러곤 삐약이 만들겠다며 송편을 둥글게 뭉치기 시작했다. 너무 크게 만들면 잘 안 익을 텐데.
“형.”
그때 유현이도 송편을 내밀어 왔다. 하얀색, 음.
“강아지?”
“응. 형 줄게.”
“고마워. 잘 만들었다, 귀여워.”
내 동생 손재주도 좋지. 토끼 옆에 강아지를 놓아두는데 이번에는 노란색 반죽으로 만든 송편이 쑥 내밀어졌다.
“저도, 이거.”
“와, 용이네요? 노아 씨예요?”
“저라고 생각하고 만든 건 아닌데, 유진 씨 주고 싶어서요.”
“고마워요. 멋진데요.”
토끼 옆에 나란히 용을 놓아두었다. 이제는 명우 차롄가, 했는데 명우는 평범한 모양의 송편을 빚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 시선을 눈치채곤 미소 짓는다.
“어차피 내가 만든 것만 먹고 싶어질걸.”
모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자신감을 내보이며 명우가 송편을 내려놓았다. 아직 찌기 전인데도 무심코 군침이 돌았다. 그냥 송편인데, 재료도 평범한데, 그래도 보통 맛이 아니겠지.
다 빚어진 송편들을 솔잎을 깐 찜기에 넣었다. 명우가 대장간에서 쪄 오겠다며 찜통째로 사라졌다. 그사이 옥상정원을 정리했다.
“참, 아저씨. 현아 언니가 내일 피신 와도 되냐고 묻던데요.”
“피신?”
“네. 사육소에 볼일 있다며 튈 거랬어요.”
잔소리 피하려는 거구나.
“물론 와도 되지.”
음식 모자라진 않을까. 선물로 들어온 고기 좀 꺼내야겠다.
“알은 아직 깨어나려면 멀었을까요?”
“응? 글쎄다.”
“어떤 정령이 태어날지 궁금해요. 설마 린이처럼 도마뱀은 아니겠죠.”
-당연히 아냐!
어느새 내 손등 위로 기어 올라온 이린이 말했다.
-린이가 도마뱀 모습으로 나온 건 이 세계에선 불의 정령의 형태가 도마뱀이 제일 유명해서 그래!
제일 유명하다면, 샐러맨더?
“그럼 물의 정령은 운디네로 태어나는 건가. 운디네가 어떻게 생겼더라.”
“여자 모습이요.”
예림이가 물의 정령에 대해 검색해 봤다면서 말했다.
“말처럼 생긴 켈피도 유명하대요. 켈피는 귀여울 것도 같지만…….”
예림이의 표정이 살짝 흐려졌다. 아무래도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린아, 무조건 그 세계에서 유명한 정령 모습으로 태어나는 거야?”
-린이는 유현이가 원하는 모습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형. 린이가 태어나는 줄도 몰랐고. 알았으면 형이랑 똑같이 생겼을걸요! 유현이는 형 말곤 생각 안 하니까.
나랑 똑같은 불의 정령이라니. 그건 조금, 그런데.
“그럼 물의 정령은 예림이가 원하는 모습대로 태어날까?”
린이가 불만스럽게 양 볼을 부풀리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응. 흥. 마음에 안 들어.
그러곤 유현이한테 쪼르르 가 버린다. 이린의 말에 예림이가 활짝 웃었다.
“원하는 모습이라니! 아저씨, 뭐가 좋을까요? 곰? 토끼? 정령이니까 합칠 수도 있겠죠?”
“뭐든지 예림이 네가 바라는 대로, 지.”
“바로 태어나진 않겠죠? 고민해 봐야겠어요. 요정 날개를 다는 건 어떨까요? 소영이 언니가 아저씨 새 용 엄청 귀엽다고 하던데.”
예림이가 잔뜩 들떠 하며 온갖 동물들을 다 꺼냈다. 물의 정령 바니바니베어… 저작권 침해되는 건 아니겠지. 그러는 사이 명우가 돌아왔다. 찜통 속에서 반지르르하게 익은 송편들이 테이블 위에 놓여졌다.
“내 토끼 귀가!”
“강아지 꼬리가…….”
“용꼬리도요…….”
분홍 하양 노랑 세 마리가 제각각 부상을 입고 말했다. 어차피 먹을 거라며 세 마리 다 꺼내 접시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가위바위보로 하자.”
얼른 막듯이 말했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들이 내가 어느 걸 먼저 먹을지 경쟁하는 티가 팍팍 났다. 그대로 뒀다간 정원이 반파쯤은 될 기세였다. 가위바위보라는 말에 예림이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정정당당하게 가자, 한유현. 삼세판이다.”
“한 번에 끝내. 송편 식어.”
“저도 끼워 주세요!”
셋이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옮겨갔다. 제각기 주먹을 쥐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한판 거하게 붙을 듯했다. 옥상 바닥 부수는 건 아니겠지.
“먹으면서 구경해, 유진아.”
명우가 평범한 송편 접시를 내밀었다. 이걸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윤기 도는 거 봐라. 맛있겠지. 하지만 안 돼. …하나만 살짝 먹을까.
“늦게 내면 무조건 꼴찌야!”
다들 열 올라 있어서 모를 거 같은데. 으, 으.
“…일단 저 송편들부터 먹고.”
“그래. 하긴 내 거 먼저 먹으면 맛없을 거야.”
그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쿵, 하고 바닥이 살짝 꺼졌다. 가위바위보의 여파로.
“현아 언니랑 연습 많이 했는데!”
가위를 낸 예림이가 소리쳤다. 유현이와 노아는 주먹이었다. 이긴 둘이 다시 가위바위보를 하고 최종 승리자는 유현이였다. 가위바위보도 스탯이 높으면 더 유리하겠지.
“자, 형.”
유현이가 당당하게 강아지 송편을 내밀었다. 맛있네. 이어 드래곤과 토끼도 차례로 먹었다. 마지막으로 명우가 만든 송편은, 음, 뭐라 말할 수 없이 최고였다. 송편이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네.
“아저씨, 곧 방송 시간이에요.”
예림이의 말에 다 같이 집으로 들어갔다. 노아 씨는 좀 머뭇거리긴 했지만 얼른 오라는 손짓을 거부하진 않았다. 음식을 주방에 가져다 놓고 소파에 앉았다. 무릎 위로 폴짝 올라오는 피스를 안아 주며 TV를 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각성자 관리실 실장 송태원입니다.]와… 딱딱하다. 굳었어. 평소에도 좀 딱딱한 편이셨지만 지금은 뻣뻣함까지 더한 나무토막 같았다. 어두운 색의 낙낙한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었지만 가슴 부분은 전혀 느슨해 보이지 않았다. 그냥 딱 맞다.
“송 실장님 방송 진짜 안 맞나 봐요.”
“그러게. 카메라 너무 노려보신다.”
[…차량에 던전브레이크 대비 안전 용품을 갖추시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던전브레이크 발생 시 대피소 위치를 미리 확인하시고 대피소와의 거리가 멀 시 문과 창문을…….]책 읽는 것 같았다. 눈동자의 움직임이 전혀 없는 거 보면 전부 외워서 말하는 모양이었지만. 열심히 추석 연휴 주의 사항을 말한 송 실장님이 마지막으로 인사를 했다. 어쩐지 박수라도 쳐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현아 씨는 방송 안 된대?”
“음, 네. 안 나오나 봐요. 와, 난리 났다. 녹화한 거 소문 퍼져서 왜 안 해 주냐고 사람들이 방송국 욕하고 있어요.”
예림이가 폰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러게 왜 방송 안 하냐. 뭐 어때서. 도포 입은 거 보니 멋지기만 하던데.
얼마쯤 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나와 예림이가 앞에 서고 유현이와 명우는 비스듬하게 뒤에 서 있었다.
“아저씨, 긴장한 티 나요.”
“저 정도면 멀쩡하잖아. 예림이 넌 너무 웃어서 지적받았으면서.”
긴장했다기보단 어색한 쪽에 가까웠는데. 피스를 안아 들고 있는 내 모습이 TV화면 너머로 비춰졌다. 내가 입고 있는 한복은 반팔의 답호였다. 어차피 상체만 주로 나올 거라 어깨가 좀 넓어 보이는 답호가 좋을 거라고 추천받았다며 유현이가 말했었다. 그에 더해 일반 한복과 자기 것과 같은 쾌자까지 안겨 줬었지.
확실히 평소보다 덩치가 좀 더 커 보이긴 하지만… 그래 봤자 양옆의 둘이, 너무, 음.
[안녕하세요.]내가 말했다. 다른 셋도 차례로 인사했다.
[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갑작스러운 몬스터 출몰 사태에 많이들 놀라셨겠지만 다행히 예년과 다름없는 풍성한 한가위가…….]인사말은 대부분 나 혼자만 했다. 예림이가 서너 마디 끼어드는 정도에 명우가 한마디 하고, 유현이는 조용했다. 마지막으로 피스 앞발 하나를 들어 흔들어 주며 명절 인사 방송이 끝났다.
“뭐, 잘 찍었네.”
조오금 쪽팔렸다. 그래도 애들 예쁘게 나왔으니 녹화본 잘 보관해 둬야지.
추석 날 아침, 차례상이 두 개 차려졌다. 하나는 예림이가 직접, 다른 하나는 유현이가 날 앉혀 놓고 도맡았다. 유현이의 손끝에서 불이 탁 튀며 네 개의 초에 불이 차라락 켜졌다.
“음식 놓는 순서 맞는지 모르겠어요.”
“괜찮아, 괜찮아. 정성이야. 잘 지내고 있어요, 하고 절 올리자.”
셋이 나란히 서서 절을 올렸다. 피스와 삐약이가 뭐하나, 하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이다음에, 향 피우고 술 올리던가?”
나도 제대로 차려 보는 건 처음이라. 그렇게 차례를 지내고 상을 치웠다. 할 일 하나 끝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뭐.
“아니, 왜 죄다 모야!”
윷가락 네 개가 전부 뒷면이었다. 문현아가 손으로 윷짝을 쓸어 쥐며 웃었다.
“한 번 더!”
“이거 완전 선 잡으면 승리 아닙니까. 봐, 또 모야!”
예림이와 노아는 몇 번 다른 게 나오기도 했지만 그것도 초반 잠깐이었다. 익숙해지자마자 나와 명우를 제외하곤 죄다 모였다.
“모 나와도 다시 던지기 없기 해요! 아니, S급들은 눈 감고 안 쓰는 손으로 던지기!”
“눈 감았다, 형님. 어이차!”
“아 왜 또!”
사기다. 이래서야 어쩔 수가 없었다.
“화투도 있긴 합니다만.”
“애들 빠지면 딱이겠네. 네 명도 괜찮은데, 송 실장님 부를까?”
“에이, 바쁘실 텐데요.”
“여기 오는 게 휴가야. 보나마나 높으신 분들 경호원 노릇이나 하고 있을걸.”
그런가. 망설이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송 실장님, 저희 집에 모여서 화투 치는데 오시지 않을래요?]그냥은 안 올 테니까.
[점 오백인데. 단위는 만 원. S급 네 명. 어쩌면 세성 길드장도 끼어들지도 몰라요. 그럼 싸움 날 확률 한 88퍼?]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확인만 하겠습니다.]일단 오면 끝이지 뭐. 문현아가 인벤토리에서 담요를 꺼내 바닥에 접어 깔았다. 나도 화투 패를 꺼내 착착 섞었다.
“명우 너 화투 칠 줄 알아?”
“패는 볼 줄 아는데 점수 계산은 잘 못 해.”
“송 실장님 오기 전에 도련님, 낄래?”
“언니! 저도 화투 칠 줄 아는데!”
“뭐? 예림이 네가 왜 화투를 칠 줄 알아?”
“작년에 교실에서 잠깐 유행했어요.”
세상에, 중학교에서 화투라니.
“아님 우리끼리 치게 화투 더 있어요?”
…있긴 한데 줘도 되나. 유현이와 노아야 성인이지만 예림이는 너무 어린데.
“노아 씨, 혹시 화투 칠 줄 알아요?”
“처음 들어봐요, 그거.”
역시 모르는구나.
“유현이 넌.”
“몰라.”
그럴 줄 알았다. 이럴 수가, 예림이 혼자 알다니. 요즘 애들이란. 예림이가 새 화투 패를 꺼내 들곤 으스대며 유현이와 노아를 바라보았다.
“자자, 그림을 잘 봐요. 이게 다 짝이 있어.”
…화투 패 내려놓는 손놀림도 예사롭지 않았다. 예림이가 둘에게 규칙을 가르쳐 주고 내가 명우에게 점수 계산법을 가르쳐 주는 사이 벨이 울렸다. 송 실장님이었다. 정말로 일하다 왔는지 답답한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송 실장님! 딱 한 판만!”
묵직한 시선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어 다른 사람들을 차례로 살펴보곤 입을 열었다.
“…안 됩니다.”
“가실 때 선물세트 잊지 마시고요. 깜박하시면 댁까지 직접 배달해 드릴 겁니다. 싼 거예요.”
“한유진 씨.”
짧은 부름에 복잡한 심경이 녹아든 듯했다. 여러모로 생각이 많으시겠지. 하지만 오늘은 명절이잖아.
“아, 송 실장 뭐하나, 얼른 와서 안 앉고. 송 실장님 있으면 점 오백 원! 없으면 점 오천만 원!”
문현아가 소리쳤다. 오천은 나도 부담입니다만. 화투판에서 집 날아가겠다. 결국 송태원은 돈을 걸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의 손에 들린 패가 미니어처 장난감 같다.
파멸의 원 턴 킬 윷놀이와 달리 화투는 S급이라 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특히 송 실장님은.
“쌌다! 또 쌌다!”
문현아가 껄껄 웃었다. 연속으로 싸 버린 송태원이 무심하게 자신의 패를 바라보았다. 운이 너무 없으셨다. 그리고 옆에서는.
“아, 길드장님 쪼잔하게 굴지 말고 마석 걸자, 마석! A급 이상!”
예림이가 한 재산 마련하려 들고 있었다. 얘들아, 바로 뒤에 송 실장님 계신다.
규칙을 바꿔서 윷놀이를 다시 시도해 보고, 열심히 먹기도 하고, 가려는 송 실장님 발목 잡기도 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졌다. 달 보고 소원 빌자며 우르르 옥상정원으로 나갔다. 커다랗고 둥근 달이 보였다.
소원이야 별 거 있나. 그냥. 늘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잃은 사람도 없고, 돌아올 사람은 모두 돌아오고.
그때 문자가 들어왔다.
[전 가져다준다더니.]소식이 없단 소리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깼네.
[애들이 다 먹었습니다. 재료 남았으니 직접 부치러 오시죠. 식빵 정도는 구워 줄게요.]테두리는 직접 떼시고.
그리고 얼마 후, 약간의 소동이 일었지만 송 실장님에게 잡혀 간 사람은 다행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