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20
318화 세 배 더 안전합니다 (1)
흐릿한 시야 속에 내 쪽으로 몸을 돌린 채 잠든 동생이 보였다. 상체를 일으켜 머리맡의 벨라레를 어깨 위로 올리며 선생님 스킬을 썼다. 예림이는 이미 일어났는지 구겨진 이불만 남아 있었다.
어젯밤 성현제는 정말로 전 부치러 왔고, 구속감까진 아닌 약간의 소동이 있은 후 밤 10시가 되자마자 착한 어린아이처럼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한동안 잠이 많을 거라고 하더니 정말이었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곯아떨어진 걸 아무렇게나 내버려 둘 순 없어서 일단 우리 집에 데리고 갔다.
손님방이야 남아 있으니 침대 위에 던져 놓자, 이번에는 유현이가 내 침실로 왔다. 성현제가 또 저번처럼 발작이라도 하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어 예림이도 베개와 이불을 들고 나타났다.
덕분에 셋이 자게 되었는데 예림이는 괜찮았지만 유현이는 집안에 익숙지 않은 S급 각성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거슬려했다. 결국 달래다 못해 스킬을 써서 재워 주었다. 집 밖에서는 제대로 못 자고, 집에서도 타인이 있으면 신경 쓰이고. 예민하다니까.
‘예전에는 전혀 몰랐는데.’
나 없으면 잘 못 자긴 했지만 어릴 때 일이었고. 커서는 괜찮을 줄 알았지. 손을 뻗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유현이도 반쯤 깨어 있었는지 눈을 살짝 뜬다. 날 보자마자 얼굴 위로 웃음이 번져 나갔다.
“…형.”
“잘 잤어?”
“응.”
보는 나까지도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행복하게 미소 짓는다. 아직 졸음기가 남은 데다가 머리칼도 부스스해서 평소보다 더 어려 보였다. 옛날 생각도 났다. 아무 일도 없었더라면 계속 이랬을 텐데.
“좋은 꿈이라도 꿨냐.”
“그냥 지금이 좋은걸.”
“그러게. 요 며칠 평화로웠지.”
진짜 이대로 평온하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텐데,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마음 같아선 유현이라도 아무것도 몰랐으면 싶었다. 지금처럼 계속 행복한 얼굴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눈이 완전히 회복되면 흑룡의 심장 조각에 대해서도 말해야 했다. 싫어할 거 뻔하지만 어떻게든 설득시켜야만 하겠지. 채터박스에 대해 알게 되면 또 얼마나 걱정을 할까.
그리고 회귀 전 일은, 이것만큼은 정말로 모르기를 바랐다.
…누가 나 대신 싹 해결해 주고 이젠 걱정할 거 없습니다! 해줬으면 좋겠다. 어디 히어로 없냐. 하지만 세계를 구해 주실 영웅님 대신 온 건 문자 알림음이었다.
[조사 끝났습니다!]석하얀 연구실에서 온 문자였다. 던전 상태 변화 조사에 연구팀은 추석에도 쉬지 않고 매달렸다. 외국인이 다수라 추석 안 쇠는데, 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학구열에 휴가도 반납했다, 쪽이 더 커보였다. 석하얀 씨도 매년 있는 추석 하루 빼먹어도 된다며 집에 안 가겠다고 하다가 강제로 끌려갔었지.
아무튼 오늘 결과가 나온 모양이었다. 바로 전화를 걸자 강제 귀가 당한 하얀 씨 대신 다른 사람이 받았다. 그가 내게 조사 결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던전 리셋 속도는 그대로라는 거죠?”
던전의 가치는 다 다르다. 같은 등급과 난이도의 던전이라고 해도 수익은 천차만별이었다. 하지만 던전이 터지게 놓아둘 수는 없으니 들이는 시간과 노력 대비 수익이 적은 던전이라도 꼬박꼬박 돌아 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비인기 던전을 길드에 일정 비율 할당하는 법규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가치 낮은 던전에 시간을 덜 들일 수 있게 되었다.
[국내의 모든 던전을 확인해 본 것은 아닙니다만, 각 지역별로 조사해 본바 동일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반면에 국외 던전은 종전 그대로라고 하더군요. 일본은 아마테라스 길드의 협조를 받아 직접 확인했습니다.]시시오 씨, 추석 선물도 보내왔었지. 다시 만나고 싶진 않지만 유용하기는 했다. 그럼 우리나라만 바뀐 건가.
“알겠습니다. 발표를 위해 자료 정리는 부탁드리겠습니다만 아직은 비밀로 해주세요.”
[예.]전화를 끊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던전이 보다 안정적이게 되었다는 건 분명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만 그렇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세계 모든 나라의 관심이 일시에 쏠리게 될 것이었다.
‘이유를 궁금해하겠지만 밝힐 수도 없고.’
제가 마수를 하나 키워냈는데요, 걔가 우리나라에만 특별한 보호막을 쳐주었네요, 하하. 라는 소리를 미쳤다고 하겠냐.
‘그런데 보호막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 거더라.’
물어봤던가? 기억이 안 나네. 던전이 세 배 더 안전해지게 되었어요! 했다가 며칠 만에 짠, 원래대로 돌아가 버렸네요~ 할 순 없잖아.
“음, 체인질링아? 자는데 미안하지만 딱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형?”
“궁금한 게 있어서 그래. 착하지, 잠깐만 일어나자. 응?”
가슴의 상처 부분을 툭툭 건드리며 말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분홍빛 도는 은색 용이 나타났다.
– 하아아암, 우으으…….
졸려 죽겠다는 얼굴로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하품을 한다. 등의 날개도 축 늘어져 있었다.
“아이구, 졸려요. 미안해. 지금 한국 던전 포화속도가 느려졌는데, 이게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있을까? 이것만 말해 주고 푹 자자.”
– 으우, 손대지 않으면, 백 년? 누가 약화시키려고 해도 십 년은 갈 거야, 아빠.
십 년이면 뭐, 어떻게든 결판났겠지. 체인질링의 머리를 착하다며 쓰다듬어 주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낯선 목소리가─ 어?”
예림이가 체인질링을 보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귀여워! 얘가 그 요정용이에요? 진짜 예쁘게 생겼다! 안아 봐도 돼요? 말랑할 거 같은데!”
예림이가 다가오자 체인질링이 내 품을 파고들었다.
– 아빠, 나 다시 자. 이젠 불러도, 잘 못 일어…….
“그래, 그래. 얼른 자. 고마워.”
빨간 혓바닥과 조그만 이빨들이 드러나도록 크게 짜악 하품한 체인질링이 사라졌다. 예림이가 무척이나 아쉬워하며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역시 요정날개는 꼭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의 정령을 말하는 건가. 바니바니베어 회사에 미리 연락해 둬야겠다.
“유현아, 통화 내용 들었지? 아무래도 의논 좀 해봐야 할 거 같은데, 세성 길드장 일어났나.”
“지금 아침 차리고 있어요.”
재워 준 값은 하네. 일어나서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나가려는데.
“…유현이 너, 손.”
“으, 응?”
유현이가 당황하며 손을 등 뒤로 감췄다. 잠깐만, 야.
“제대로 안 씻었지! 설마 예림이 너도, 예림아!”
“물로는 씻었어요! 얼굴은 비누칠도 했고요. 손으로 말고 물만 가지고 요렇게, 비눗물 만들고.”
“안 돼! 제대로 씻어, 제대로. 설마 너희들 밤에도 손 제대로 안 씻은 거냐?”
어두워서 잘 못 봤더니! 문제의 손바닥에는 펜글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유현이는 해연길드장, 한유현. 예림이는 물의 지배자, 박예림. 어젯밤 성현제의 손바닥을 보고 둘이 무척이나 서운해하기에 써준 것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빼놓지 않았다. 명우에겐 황금대장장이, 유명우. 노아에겐 황금드래곤, 노아. 현아 씨에겐 브레이커 길드장, 문현아. 마지막으로 송 실장님은 사양했지만 성현제의 송태원 실장님만 따돌림당한다면 마음이 아파서 사고를 쳐버릴지도 모르겠어, 라는 헛소리에 실장님, 송태원을 손바닥에 달고 돌아가야만 했다.
아무튼 손바닥에 이름 적고 논 것까지야 좋은데, 왜 씻지를 않냐.
“얼른 욕실로 가, 한유현.”
“하지만 형, 아깝잖아.”
“아깝기는. 언제든지 다시 써줄 수 있으니까 씻어! 예림이 너도!”
하여간 애들도. 애들 제대로 씻는 거 확인한 뒤에 주방으로 나갔다. 피스가 주방 문 앞에서 감시하듯 앉아 있고 삐약이는 어째서인지 또 성현제 머리 위에 올라가 있었다. 역시 높아서일까. 그런 것치곤 유현이 머리엔 안 올라가던데, 성현제는 올라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지.
– 끼앙!
인사해 오는 피스를 쓰다듬어 주고 성현제에게 다가갔다.
“음, 좋은 아침입니다.”
“시력은 좀 더 회복된 듯하군. 다행이야.”
“덕분에 댁 눈도 무사할 수 있고 말이에요.”
“원한다면─”
“됐습니다.”
진짜 됐거든. 필요 없다. 그런 거 가졌다간 밤중에 초승달이 나타나서 내 작은달 눈 내놔 하고 발목 잡아올 거 같다고.
“유현이는 성현제 씨가 만든 거 손도 안 대려 할 테니 저도 도와드릴게요.”
“한유진 군을 부려먹었다고 바로 쫓겨나는 게 아닐지 모르겠군.”
“엄살은.”
태도만 보면 평소와 같았다. 그러니까 검은 소의 숲 던전 들어가기 이전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쩔 셈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고 계란을 톡톡 두드려 깼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까 완전히 안정되었다 싶으면 연락하세요.”
회귀 전 일에 대해 말해 주고, 그리고 초승달은. 어쩐다. 우리가 딱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다시 생각하니 또 살짝 열 받네. 지금쯤 우리 세상을 어떻게 해야 할지 회의 중이려나. 나는, 우리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는데 결과만 기다리는 입장이라니. 세상 불공평한 거 잘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싫다.
씻고 나온 유현이가 내가 할게, 하고 나섰지만 그냥 앉으라고 했다. 추석 때 일했으니 아침 정도는 받아먹어야지. 상이 차려지고 꺼림칙해하는 유현이에게 성현제가 만든 반찬을 알려 주었다. 역시나 손도 안 댄다.
“댁네 길드 돌아가시기 전에 잠깐 논의해 봐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아침을 거의 다 먹고 휴대폰을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문현아에게 영상통화를 걸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받는다.
“아뇨, 그보다 옆에 누가 있습니까?”
[막 길드에 도착했는데, 잠시만.]휴대폰 속의 풍경이 바뀌고 다시 문현아가 비춰졌다. 됐어, 아무도 못 들어 라는 말에 용건을 꺼냈다.
“던전이 변화했습니다. 한국에 한해서요.”
연구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었다. 성현제도 문현아도 진지하게 내 말을 경청했다.
“원인은 아마도 검은 소의 숲 던전에서 일어난 일 때문일 겁니다. 일본이 유독 피해가 컸고, 반면에 우리나라는 피해도 적었거니와 던전 자체도 훨씬 안전하게 변화된 거지요.”
원인이 체인질링이라는 사실은 감추었다.
“요정용이 느끼기로는 최소 10년에서 최대 백 년까지 유지될 거라고 합니다.”
[기간도 기네.]“그럼 우선 길드 소속 던전들 재분류가 필요하겠어. 공략팀도 재구성해야 하겠고.”
“알려지게 되면 반향이 상당하겠군.”
“그렇겠죠. 하지만 어차피 오래 숨기진 못할 겁니다.”
던전 포화상태는 게이트 색으로도 알 수 있으니 결국은 들키고 말 것이다. 그럴 바엔 대비를 한 뒤 발표하는 편이 낫다.
“이미 시간이 꽤 흘렀으니 빠르게 알리는 편이 좋겠지요. 오늘 오후에 협회로 가 논의해 보고 정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만.”
[주가 백 퍼센트 오를 텐데 사두면 걸리려나. 해외에서 말 많겠어. 가뜩이나 요즘 한국에 S급 헌터들 너무 몰려 있는 거 아니냔 말 나오던데.]“그래요? 우린 둘이나 죽었는데.”
[예림이와 김성한 헌터, 둘이 새로 S급이 되었잖아. 플마 제로인데 여기에 해외에서 셋이나 더 들어왔고. 리에트는 옮기진 않았지만 계속 머물러 있으니.]“S급 기승수가 둘에 곧 코메트도 성장이 끝나지. 말이 나올 만은 해. 여기에 던전까지 종전에 비해 안전해졌다 하면 압력이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네.”
…귀찮네. 왜 남의 나라 인재를 탐낸담. 인구수 대비 한국의 S급 헌터 수가 많은 건 사실이긴 했다. 그래도 말이야.
“하지만 더 미룰 순 없는 일이니까요. 발표하고 나면 조심은 해야겠네요.”
국가 대 국가로 압력 넣어 봤자 S급 헌터들에게 목줄 걸고 끌고 가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대놓고 시비 걸어오면 우리도 확 기승수 안 키워 주고 스태미너 포션 안 판다고 해버릴 테다.
문현아는 물론이고 성현제도 미리 대비해야 할 일이 많겠다며 세성길드로 돌아갔다. 유현이도 마찬가지였다. 오래 감출 수 있는 일도 아니기에 발표는 내일쯤 하기로 했기에 더더욱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물론 나는 예외였지만.
“어, 하민아. 선물은 잘 보냈냐?”
추석 선물을 내가 신세 졌던 사람들에게도 보냈다. 회귀 전에 내게 호의를 보여 준 이들에게도.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고 과거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정도로 편지를 넣었다. 맞는 말이기는 했다. 내게 있어선 과거고,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조사한 자료들도 보내줘.”
[민의가 가지고 갈 거야. 우리 금동이는 아직인가?]“이번에 난리 났으니까, 모르겠다. 연락 오면 바로 알려 주마.”
전화를 끊고 길게 숨을 내뱉었다. 연휴가 끝나면, 찾아가 봐야지. 명우나 예림이 때처럼 예전에 근처 살았는데요, 는 좀 그런가. 그보다는 익명의 추천을 받았다는 핑계가 낫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민의가 자료를 배달해 왔다. 그 속의 익숙하지만 한층 젊은 얼굴들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할 말을 입속으로 되뇌었다.
느지막한 오후, 헌터협회에서 회의가 진행되었다. 해연과 세성, 브레이커, 한신에 더해 협회와 정부 쪽 사람들까지 모인 자리였다. 물론 각성자관리실 실장도 빠지지 않았다.
여러 가지 말이 오가긴 했지만 오래 감출 수 없다는 점은 모두가 동의했다. 그리하여 예상대로 던전의 변화에 대한 발표는 다음 날 저녁에 이루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