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11
509화 무기는 역시
텅 빈, 너른 방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한유현과 송태원은 침착하게 주위를 살폈다. 한쪽 벽에 준비하십시오, 라는 글자가 옅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일종의 대기실 같은 곳인 듯했다.
한유현은 곧장 예장을 걸치고 장비를 점검했다. 마치 등급 높은 던전 혹은 몬스터를 상대하기 직전처럼 신중하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한유현 헌터.”
“쉽지 않을 겁니다.”
한유현이 독저항 아이템을 꺼내 들며 말했다.
“형이 아무런 대비 없이 불리한 내기를 제안할 리 없으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조건으로는 한유진 씨가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송태원 또한 자신의 장비를 확인했다. 가장 쓸 만한 와이어와 수갑은, 둘 다 한유진이 반강제로 쥐어 준 것이었다. 이것들을 들고 가도 괜찮은 것일까. 떠나기 전에 돌려줘야 하는 게 아닐까.
“현재 한유진 씨는 F급 스탯을 지녔으며 성현제 헌터는 B급으로 떨어졌다 하였습니다. 공격 스킬 두 배를 공유한다더라도 저 하나 상대하기 버거운 능력치입니다.”
또한 한유진을 순간적으로 S급과 맞먹게 만들어 주는 체인질링도 없었다. 은혜와 그 밖의 아이템들, 독과 저주 저항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두 S급으로부터 승리를 빼앗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다만 이곳의 환경이 한유진 씨에게 유리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송태원은 보이지 않는 입구를 찾듯 방의 벽을 바라보았다.
“S급 이상의 독과 저주로 뒤덮인 지역이라면 몸을 숨기고 시간을 끄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집니다.”
“독은 태울 수 있습니다.”
상처를 입혀 몸 안에 직접 파고드는 독이라면 모를까, 단순한 독 지형은 한유현에게 피해를 입히기 힘들었다. 불길을 휘둘러, 전부 불태우면 된다. 대부분의 독은 불에 약하기도 하였기에 현재의 한유현의 능력이라면 SS급 혹은 그 이상 등급까지도 깨끗하게 태워 버릴 수 있었다.
송태원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화염 저항 아이템을 꺼내 착용했다. 성현제의 스킬 또한 B급 수준이라면 저항 아이템 없이도 버티는 게 가능했다. 그러니 한유현에 더해 한유진의 폭탄을 생각해서라도 화염 저항에 신경 쓰는 편이 나았다.
“형의 은신 스킬에 재킷과 신발이 더해지면 위치를 추적하기 힘들어집니다. 여기에 쿠키까지 사용한다면 S급이라 해도 접근을 눈치채기 어렵습니다.”
쿠키와 도플갱어 인형으로 눈속임 했던 것을 알려 주는 한유현을 송태원이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한유현 헌터는 보조 정도만 해 주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는 시선에 송태원이 설명했다.
“제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겠지만, 한유진 씨가 조금이라도 덜 상처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곁에 남을 한유현 헌터는 적극적으로 협조하진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우선 형은 강합니다. 당연히 이길 거라는 생각은 지워 두십시오.”
한유현이 냉정하게 말했다.
“동시에 형은 스스로를 낮춰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제가 소극적으로 참여한 채 진다면 오히려 더 힘들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봐준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 상태에서 진다면 더 심하게 자책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차라리 두 S급이 최선을 다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한유현은 판단했다.
“자신보다 훨씬 강한 상대와 정당하게 싸운 결과라면 패배라 하더라도 좀 더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까?”
유리알처럼 무감정한 눈이 송태원을 바라보았다. 한유진이 곁에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눈이었다. 한유진이 있어 한유현은 마치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차이로 인해 더더욱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한유진 씨라면 더더욱 그럴 겁니다.”
“그리고 형은 저를 받아주었으니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제가 인간 기준으로 거슬리는 행동을 하더라도 이해해 주려 하니까요. 물론 저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스스로를 무조건 억누르려 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한유진에게 맞추어 주기도 하였다. 특히 박예림은 좋은 관찰 대상이었다.
박예림이 한유현의 전투 습관이나 업무 태도를 따라 한다 하였지만 한유현 또한 자신과 달리 풍부한 감정을 지닌 박예림의 일상을 눈여겨보며 배우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한유진과 함께 사는 피보호자라는 동일한 위치가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다.
한유현의 입술이 부드러운 선을 그렸다. 생기 없는 인형과도 같던 얼굴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살짝 휘어진 눈은 이곳에 없는 형을 담고 있었다.
“…한유현 헌터는.”
송태원은 말을 다시 삼켰다. 성현제와는 다른 방향으로, 한유현은 이질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존재였다. 한유진이 없다면 단순하게 무감정한 S급 헌터일 뿐이다. 하지만 한유진의 존재가 그를 빛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성현제 또한 한유진에 의하여 송태원의 이가 무의식중에 꽉 다물어졌다. 그의 속 깊은 곳에서 작게 웅크리고 있는 마음을 억지로 외면했다.
“한유진 씨를 많이, 좋아하고 있군요.”
결국 상투적인 말로 얼버무렸다. 한유현이 웃는 얼굴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랑하고 있습니다.”
송태원은 버거운 듯 고개를 돌렸다.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그때 준비하라던 글자가 숫자로 바뀌었다. 초 단위로 바뀌는 것을 보니 10분 후 대기가 끝난다는 뜻인 듯했다.
“빠르게 끝내는 편이 좋을 겁니다.”
한유현이 짧게 숨을 들이키며 말했다.
“형이 먼저 걸어 온 내기지만 그래도 예정에 없던 갑작스러운 일입니다. 시간을 많이 줄수록 불리해지겠지요.”
“…예.”
송태원은 상념을 떨쳐 버리려 애쓰며 와이어를 팔에 휘감았다. 어차피 곧 끝이다. 그는 떠날 것이고, 한유진은 살아갈 것이다. 송태원 주위의 사람들 또한 잠깐의 추모 후 계속해서 살아갈 터였다.
크리스마스의 악몽 던전에서 마주친 익숙한 얼굴들이 떠올랐다. 이제는 그 사이에 까만 양이 한 마리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유진은 그가 남겨 둔 이들까지 살뜰히 챙겨 줄 사람이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 이상의 욕심은 내선 안 된다.
“송이는… 아닙니다.”
날이 쌀쌀해져서일까. 최근에는 침대 위로 올라가 자려고 들곤 했다. 소파 등받이 위로 올라가 걸어 다니는 걸 좋아했다. 털 색이 검어서일까, 검은색에 파묻혀 있으면 더 안심하는 듯했다. 목욕은 거부하지 않았지만 비가 내려 털이 젖는 건 싫어했다. 더러운 물웅덩이는 최대한 멀리 빙 돌아 피하거나 안아 달라고 매달려 왔다.
“새끼 양이, 한유진 씨의 손가락을 깨물려 들면 조심하라고 전해주십시오. 제 손가락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다치면 안 되고 다치게 해선 안 되니 그 말은 입 밖으로 꺼냈다. 5분, 3분, 그리고 1분. 둘 사이에 나직한 대화가 몇 번 오갔다. 새끼 양에 대한 것을 제외하곤 전부 전투전략에 대해서였다.
[00:00]깜박이던 타이머가 사라졌다. 이어 두 사람의 앞에 메시지창이 떴다.
[모든 각성자가 비각성자화 됩니다.]한유현과 송태원의 눈이 크게 떠졌다.
* * *
“이럴 계획이 아니었는데!”
눈앞의 풍경이 바뀌고 사방이 막힌 방이 나타났다. 대기실이다. 한숨을 푸욱 내쉬며 성현제를 돌아보았다.
“웃지 마.”
“너무하는군. 웃는 게 더 보기 좋지 않나.”
그래, 너 잘생겼다.
“등급이 떨어졌으면 얼굴도 좀 떨어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각성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네만. 키만 조금 더 컸지.”
…유현이도 이전부터 잘생기긴 했지만. 나이차가 있으니 좀 달라지긴 했어도.
“180대?”
“190은 넘었지.”
“잘났어 정말!”
그야 물론 다른 S급들도 스물 중반 넘어서 각성하면 10센티 이상씩 확 크지는 않았지만, 십 대나 스물 초반 어린애들은 쑥쑥 자라기도 했다. 유현이랑 예림이도 열심히 크고 있지. 노아 씨도 더 자라려나?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그 잘난 머리통 확 쪼개 보고 싶네요. 혼자 즐거워, 혼자! 그 꼬라지를 하고서!”
“진정하게.”
“내가 진정하게 생겼냐! 아이고 내 팔자야. 목 아프니까 앉아요! 뭘 멀뚱히 서 있어!”
성현제가 얌전히 바닥에 앉았다. 무릎을 모아 감싸 앉는 꼴이 더 속 터지게 느껴졌다. 왜 앉아도 저렇게 앉아.
“지금 불쌍한 척하는 겁니까?”
“바닥이 차갑군. 스탯이 B급이라 한기가 느껴지는데.”
“F급 얼어 죽겠다! 아니, 스탯이 그 꼴이면 에블린 씨라도 불러서 보호해 달라고 하든가. 왜 혼자 멀뚱히 앉아 있었습니까? 안 죽는다고 해도, 무슨 짓 당할 줄 알고? 섬에 S급들이 몇인데!”
“밀러 헌터가 상냥한 성격은 아니라.”
“그럼 소영 씨라도요!”
“소영이는 보기보다 더 뒷일을 생각지 않아서, 싸워 보자고 덤벼들겠지.”
“성현제 인생 참 자알~ 살았다!”
웃지 마! 왜 웃어! 웃음이 나오냐! 그래, 혼자 있는 편이 현실적으로 가장 안전하긴 하겠지. 성현제 상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접근할 엄두조차 내질 못할 테니까. 식당에서도 쭈뼛쭈뼛 다가가서 빵 껍데기나 받아들었는데, 객실까지 가서 노크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연신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 꼴이 되어 버린 거지.
“처음에는 잘나신 세성 길드장 덕이나 좀 보려고 했는데. 아니, 덕 꽤 보긴 했는데 말이죠. …그냥 내다 버릴까. B급이고.”
“유진아…….”
“불쌍한 척하지 말고. 입은 웃고 있잖아. 댁은 재밌지? 어? 남은 속이 뒤집어졌는데!”
“그건 사과하겠네.”
“시발, 내가 못 놓는 거 알면서!”
성현제 다리를 걷어찼다. 역시나 내 발이 더 아팠지만 지금은 저 인간도 건드리는 느낌이 조금쯤은 들겠지. 재차 걷어차자 성현제가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받아서 눈가를 대충 문질러 닦았다. 눈가도 따갑고 속도 따가웠다.
“저는 포기 못 한다고요. 미련하다고 욕을 처먹어도 못 합니다. 이러다 결국 다 망하고, 죽도록 후회하게 된대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그래.”
“그래는 무슨 그래야! 아는 놈이 그래? 송 실장님도 너무하지만 댁도 만만치 않아!”
유현이는… 회귀 전 생각하면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 동생만으로도 이미 속이 뒤집어질 대로 뒤집어졌는데 이 인간들이 진짜… 한 번 더 뒤집어서 원상복귀라도 해 줄 생각인 건가.
“나한테 떠넘길 거면 재산이나 넘기든가! 그거 말곤 필요 없어! 답 뻔히 알고 있으면서, 이 망할……!”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심호흡했다. 진정하자. 일 년 내내 소리쳐도 모자라니 일단 진정하자.
“송 실장님에게는 할 말 더 많지만, 지금은 안 계시니까요.”
“내 차례는-”
“안 끝났어요. 튈 생각 하지 마시고, 상대는 유현이와 송 실장님입니다.”
떠올리자마자 막막해졌다. 왜 하필 그 둘이야. 성현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를 바라봤다.
“현실적으로 길어야 1분이겠지.”
“그냥 붙으면 30초도 안 걸려요. 아니, 10초. 우리한테 접근하는데 10초.”
거리가 멀면 5초쯤 더 도망칠 수도 있겠지.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벽과 천장뿐이었다. 바깥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나도 몰랐다. 다만.
“인벤토리 탈탈 터십쇼.”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인벤토리에 든 물건들을 모조리 꺼내기 시작했다. 성현제 또한 이것저것 꺼내 들었다.
“뒤집개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그놈의 털실은 인벤토리에서 새끼라도 치나. 기념 수건 뭐야, 언제 챙겼어.”
“인벤토리에 들어가는 피스 인형도 있다네.”
“창고냐? 어? 창고야?”
“내가 준 자전거로군. 그 바구니는 뭔가.”
“빨래 바구닌데, 편해요.”
총기류를 우르르 쏟아내며 말했다. 총기는 살쾡이 총을 제외하곤 죄다 하급 장비였다.
“총 쏴 본 적 있습니까? 군필?”
“이래 봬도 해병대였다네.”
“…진짜요?”
“어떨까.”
믿기지 않았다. 웃는 거 보니 농담인 거 같은데, 그래서 군대 갔냐 안 갔냐. 물건이 바닥에 쌓이는 사이 벽에 10분 표시가 떴다. 무심코 마른침이 삼켜졌다.
“10분이 지나면, 우리는 비각성자화 될 겁니다.”
성현제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확히는 그런 몸으로 대체되는 겁니다. 일본의 던전처럼 임시 육체 같은 거죠. 그래서 안전하기도 하고요. 스킬 스탯 없이 순수한 전투 능력을 보는 게 어떻겠냐고 채터박스를 꼬드겼어요. 원래라면 제가 채터박스의 초대를 받은 S급들을 눌러 주려고 준비한 거였죠.”
스킬도 스탯도 없이, 순수한 인간 대 인간으로.
“물론 S급들 신체 조건은 각성 전에도 대체로 뛰어난 편입니다. 하지만 있던 게 사라진다는 게 생각보다 크거든요. 다들 보조 스킬 덕지덕지 붙어 있기도 하고요. 별 능력 없는 F급보다 비각성 상태에 적응하기 힘들어진다는 겁니다.”
스탯도 스탯이지만 스킬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평소의 전투와는 완전히 달라져 버리는 것이다.
“막 각성했을 때 자기 힘을 주체하기 힘들어지듯, 곧장 적응하진 못할 겁니다. 보통이라면요. 심지어 장비 또한 평범한 물건이 되며 인벤토리도 막힙니다.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우리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지요.”
문제라면.
“유현이와 송 실장님은… 좀 다르겠지요. 특히 송 실장님이요.”
“확실히 송태원은 장비나 스킬에 의지하는 편이 아니니.”
“적응도 빠를 겁니다. 유현이도 마찬가지고요.”
결국 우리가 확실하게 유리하다고 하긴 힘들었다. 그사이 시간이 점차 줄어들어갔다. 성현제에게 총을 던져 주었다.
“하지만 비각성자간의 싸움이라면.”
“역시 총이지.”
유현아, 형이 미안하다. 송 실장님, 오늘은 안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