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72
670화 다시 세 번째 팀
뉴욕 케네디 국제공항에 검게 도배된 차량이 들어섰다. 매끄럽게 턴을 도는 차가 향하는 곳은 세성 길드의 전용기가 대기 중인 장소였다. 비행기 탑승구와 연결된 계단 앞에는 강소영이 서 있었다. 다가오는 차를 발견한 강소영이 눈썹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멈추었다. 강소영은 재빨리 하늘을 살폈다. 드론 없음, 헬기도 없음. A급 헌터이면서 드래곤 라이더 스킬을 지닌 그녀의 시력은 S급 못지않게 뛰어났다. 원거리에서 촬영 중인 카메라 또한 잡히는 것이 없었다. S급 은신 특화 헌터가 작정하고 숨어들지 않는 한 안전했다.
강소영은 차로 다가가 뒷좌석 문을 열었다. 안에서 연분홍 머리칼의 소년이 가방을 멘 채 내려섰다.
“안녕하세요.”
한결이 꾸벅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강소영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맺혔으나 그것은 얼마 가지 못했다.
“안녕, 언-.”
콱! 둥글게 휘어진 칼날이 공기를 가르며 차 지붕 위에 내리꽂혔다. 정확히는 운전석 끝, 차에서 내린 황림의 바로 앞이었다. 강소영이 눈꼬리를 치켜 올리며 황림을 쳐다보았다.
“한 소장님이 여기 계셨으면 그쪽 대가리에 총알이 박혔을 거예요. 남의 집 애를 데리고 어딜 돌아다닌 거죠?”
“대장은 우리 도련님인데.”
황림이 두 손을 살짝 들어 보이며 웃었다.
“데리고 다녀진 건 내 쪽이라고.”
“맞아요, 소영 이모.”
한결이 야무지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운전기사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것보라구. 운전수 겸 보디가드 겸 안내원이었답니다. 심지어 무보수로!”
봉사정신이 너무도 투철하지 않느냐며 황림이 너스레를 떨었다. 강소영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않은 채 차에 박힌 칼을 뽑아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녀를 보는 황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세성 길드원을 건드릴 생각은 없지만 대담도 하지. 이래 봬도 S급인데.”
“말씀하신 대로 세성 길드원이라서요. 길드장님보다 약한 S급은 취급 안 해요. 송 실장님 빼고. 올해는 작년보다 벌점 커트라인도 낮아져서 몸 사려야 하거든요.”
게다가 길드장을 떠맡아 주는 두 사람 중 한 명이다. 세성 소속으로서는 당연히 머리 숙여 감사해야 하는 상대였다. 다른 한 명인 한유진이야 그게 아니더라도 강소영에게는 받들어 모셔야 할 드래곤들의 아버지였고.
강소영의 말에 황림이 고개 대신 손을 까닥거렸다.
“세성 길드장이 자기 소속 잘 챙기긴 하지. 괜히 빌미 잡혀서 좋을 것도 없고. 이 년 전쯤인가, 러시아에서 세성 길드원 잘못 건드렸다가 박살 나고 먹혀 버린 대형 길드도 있었잖아. 일부러 미끼 쓴 거 아니냔 말도 들려왔었는데.”
“어머, 아니거든요? 길드장님이 미끼를 왜 써요. 민간인도 아니고 헌터야 거슬리면 그냥 밟으면 되는 건데. 심지어 한국도 아니고. 송 실장님 눈만 피하면 되거든요. 걸렸지만.”
“역시 길드원이라 길드장편.”
“편까진 아니고 그냥 사실이죠. 저희 길드장님이 성격은 더러워도 쪼잔한 짓은 안 하셔서.”
“칭찬 고맙군.”
“악!”
돌연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강소영이 기겁하며 뒤로 풀쩍 뛰었다. 귀신이라도 본 듯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두리번거리던 강소영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아아악!”
재차 비명이 울렸다. 강소영이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전 아무것도 못 봤어요! 없었던 일로 칠래요!”
“그동안 열심히 벌금 내준 보람이 있어.”
“그게 얼마나 된다고요! 쪼잔한 거 보니 길드장님 아닌 게 확실해!”
“물론 우리 강소영 양에게 몇천만 달러 정도는 아깝지 않다네.”
“…얼마 안 되잖아요.”
그렇게 대꾸는 했지만 강소영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쌓인 벌금만 저 정도에 배상금은 따로였다. 물론 후자의 금액이 훨씬 컸다.
“한결이 때문에 보안 지켜야 하는 줄 알았는데…….”
강소영이 슬그머니 손을 내리고 눈을 떴다. 한결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조그만 길드장의 모습이 뚜렷하게 들어왔다. 눈을 비벼 봐도 그대로였다. 작아진 것까진 그렇다 쳐도.
“…에블린 언니가 보면 바로 활 쏴버릴걸요.”
저 요정날개는 뭐란 말인가. 잘 어울려서 더욱 어이가 없었다. 강소영이 팔에 돋은 소름을 슥슥 문질렀다. 성현제가 보란 듯이 날개를 움직여보였다.
“비행 스킬이 편하긴 편하더군.”
“…커져서도 그러고 다니실 건 아니죠? 저 진지하게 퇴직 고민할 거예요.”
“결이가 붙여 준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이모.”
한결이 눈을 내리뜨며 성현제를 바라보았다. 이내 성현제의 등에 있던 날개가 스르르 사라진다. 강소영이 그나마 낫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결아? 갑자기 미국에서 전용기를 요청하다니.”
원래라면 한결과 박예림은 프랑스에서 해연 전용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박예림은 한유진이 부른다면서 사라지고 한결은 프랑스에서 좀 더 관광을 하겠다더니 소식이 끊겨 버린 것이었다.
“아빠 심부름을 했어요.”
“아빠? 한 소장님? 한 소장님은 어디 계셔? 리에트 언니도 한 소장님이 부른다면서 사라졌는데.”
“채터박스 파티랑 비슷한 곳에.”
강소영이 눈을 깜박였다. 한유진은 물론 그가 모은 헌터들도 함께 사라졌다. 테러범 일당을 조용히 처리하겠다고 했으니 며칠 소식이 없는 것까지는 이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조용했다.
“던전 같은 곳에 들어가서 싸우는 거야? 그게 안전하긴 하겠지만.”
“비슷해요. 테러범도 다 거기 있댔어.”
“그럼 비공식적으로라도 알려야 할 거 같은데. 프랑스 헌협 쪽에라도?”
“그래서 손님을 청하였다네.”
성현제가 한결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한결이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날개를 달아 줬다. 포르르 날아 다가오는 길드장의 모습에 강소영이 기겁하며 팔을 내저었다.
“오지 마세요! 기분 나빠요!”
“너무하는군. 보통은 귀-.”
“꺄악! 그래서 싫다고요!”
강소영이 귀 막고 눈 감으며 소리쳤다. 상사가 잘생긴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귀엽게 느껴지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심지어 지금은 위압감도 없고 결이랑 같은 기색이라! 아아악! 두 번은 안 돼, 한 번으로 충분해!”
“나를 대뜸 찾아와서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드래곤이시죠를 외치며 사-.”
“꺄아아아악!”
“진정해, 소영 이모.”
“세성 길드 생각보다 재미있는 곳인데?”
“좋은 생각 하자, 좋은 생각. 우리 예쁜 코메트, 멋진 리에트 언니, 사랑스러운 노아 씨, 귀여운 마르…….”
강소영이 크게 심호흡하는 사이 한결이 성현제를 잡아다 날개를 없애고 다시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그, 그래서 어디로 모실까요?”
진정한 강소영이 최대한 사무적으로 말했다.
“영국으로.”
“앗, 집에 잠깐 갔다 오면 되겠다.”
“비행기에서 손님을 맞이한 후 한국으로 출발할 예정이라네. 한결 군이 피곤할 테니 잠시 휴식은 취할 테지만.”
“난 괜찮아.”
단호하게 말한 한결이 계단 위로 올라갔다. 강소영과 황림도 그 뒤를 따랐다.
“…아빠는 괜찮을까.”
비행기가 출발하고 푹신한 소파에 앉은 한결이 쿠션을 끌어다 안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결이가 너무 빨리 독립한 것 같아.”
“덕분에 한유진 군에게 장비를 전달해 줄 수 있었지.”
테이블에 고정된 꽃병 가장자리에 걸터앉으며 성현제가 말했다. 한결의 입술이 삐죽였다.
“그치만.”
“한결 군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금색 동그란 눈이 조금 빠르게 깜박거렸다. 티 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칭찬받은 건 기쁜 모양이었다.
“무알콜 음료도 있나. 뭔가 마시겠어? 세성 도련님.”
황림이 한쪽에 위치한 바로 다가가며 물었다.
“결이는 도담에서 살아.”
“그래. 하지만 나라면 세성 줄을 놓지 않겠어. 어린애에게는 빠른 이야기긴 하지만.”
“어린애 아니거든?”
“어른은 자기 입으로 자기 이름을 부르진 않아요.”
“바보야, 결이는 이름을 받아 따로 떨어져 나온 지 얼마 안 되었다고. 내 독립된 개체의 확실성을 위해서 계속 스스로 불러 주는 거야. 물론 아빠가 준 이름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럼 더더욱 어린애 맞네. 우유? 핫초코?”
“저거 짜증 나.”
한결이 볼을 잔뜩 부풀렸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핫초코.”
“예에, 분부대로 드립죠, 도련님.”
“말은 잘 듣지만.”
근엄하게 팔짱을 낀 한결이 성현제를 바라보았다.
“아빠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어?”
“말했듯이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몇 없다네. 우리는 동일한 존재이나 동시에 타인이기에. 다만 육신은 본디 내 것이라 약간의 정보를 잡아낼 수 있을 뿐이지.”
반대로 회귀 전의 성현제는 현재의 성현제가 직접 알려 준 것 외의 정보는 캐낼 수 없었다. 성현제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곳의 시간은 이곳보다 빠르군. 해가 저물고 있어.”
“아빠랑 만났을 땐 새벽이 되기 전이었는데.”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일출 전 서브 팀과 함께, 성에서 전투를 준비 중이었으니. 곧 끝나겠군.”
“일몰에?”
“아마도 그럴 거라네.”
한결이 쿠션을 꽉 틀어쥐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방해가 없다면 한유진 군의 승리일 것이고”
“미리 축배라도 드릴까?”
황림이 한결의 앞에 핫초코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성현제가 짧게 고개를 저었다.
비행기는 대서양을 가로지르며 영국을 향해 날아갔다. 버티려 하던 한결이 꾸벅꾸벅 졸다가 결국 잠이 들었다. 황림 또한 눈을 붙이러 들어가고 성현제는 쿠션에 기대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것이었던 육신이 희미하리만치 멀게 느껴졌다. 어찌 되었든 빼앗긴 것이니 불쾌감이 느껴져야만 했지만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다. 원래의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힘을 지닌 조그마한 조각이 되어 버렸지만 마치 짧은 휴가를 나온 것과 비슷했다.
최소한 이 조각만큼은 길고 긴 시간 겹겹이 휘감긴 계약에서 벗어난 상태이기에.
물론 휴가는 결국 끝이 나고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
그때 감겨 있던 성현제의 눈이 떠졌다. 그의 미간이 희미하게 좁혀졌다.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가 이내 다시 조용해졌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강소영이 단숨에 비행기 밖으로 뛰어내렸다. 한결은 씻고 이도 닦고 옷도 갈아입었다. 손에 비해 큰 빗을 들고 머리도 깔끔하게 빗었다.
“오시는군.”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성현제가 말했다. 세 대의 차가 비행기로 다가오고 있었다. 황림 또한 옆의 창을 들여다보았다. 차가 멈추고 사람들이 내려선다.
“오, S급만 해도 두 명. 역시 대단한데.”
상급 헌터가 정중하게 차 문을 열었다. 안에서 하얀 모자를 쓴 노부인이 내려섰다. 두 명의 S급 헌터 중 하나가 먼저 비행기 탑승구로 올라왔다.
“미스터 황. 그쪽은 내려 주시죠.”
“리처드라니까.”
“그 밖의 중급 이상 헌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이 스탯은 F예요.”
한결이 손을 들며 말했다. S급 헌터의 눈길이 소년의 위아래를 예리하게 훑었다. 하지만 한결과 동화된 성현제의 기척은 눈치채지 못했다.
“엔진은 완전히 꺼야 합니다.”
“그거면 되는 건가? 전통적인 무기도 있잖아. 스탯 F급이면 일반인과 별 차이 없을 텐데.”
“너무 쉽게 보는군.”
황림의 말에 S급 헌터가 코웃음을 쳤다.
“총화기 정도는 중급 방어막 스킬 아이템으로도 막을 수 있다.”
“하긴 그렇지. 그럼 도련님, 나가 있을게.”
황림과 세성 소속 헌터들이 전부 비행기 밖으로 나갔다. 비행기에 남은 한결이 조금 긴장하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오는 노부인의 모습에 한결이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도담 기승수 사육소 소장 한유진의 양자인 한결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노부인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A급 헌터, 에밀리 스펜서입니다.”
SS급 치유 스킬을 가진, 성녀라는 호칭으로 알려진 헌터였다. 에밀리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소파에 앉았다. 모자를 벗자 연두색으로 물들인 머리카락이 나타났다. 둥글게 올려 묶은 뒤쪽으로 갈수록 짙은 녹색이었다.
“아이템이랍니다. 짠.”
귀에 한 귀걸이를 가볍게 건드리자 에밀리의 머리색이 파랗게 변했다. 그리고 붉어졌다가 다시 연두색으로 돌아간다. 한결이 조금 당황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군요.”
그때 성현제가 한결의 어깨 위로 나타났다. 에밀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깜짝이야. 못 본 사이에 무척 귀여워졌군요.”
성현제가 한결에게 부탁해 날개를 달자 에밀리가 짝짝짝 박수를 치며 웃었다.
“세성 길드장만 아니라면 슬쩍 주머니에 넣어 데리고 가고 싶네요.”
“이런, 제 평가가 그렇게나 낮을 줄은 몰랐습니다만.”
“나이 먹으면 겁이 없어진다고들 하지만 짊어진 게 많으면 그렇지도 않지요. 최소한 내게 주어진 것을 허무히 흩어 버리지 않도록 조심은 해야 하니까요.”
에밀리가 부드러운 눈길로 한결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요.”
“어, 에밀리 헌터님.”
“할머니라고 해도 된답니다.”
“…할머니께서는 아빠, 한유진 소장의 일을 기억하고 계세요?”
주름진 눈가가 살짝 휘어졌다.
“약간은요. 상급 헌터 이상만이 기억을 지니는 모양이지만 SS급 스킬 덕분일까요.”
“당신이 젊어서 각성했더라면 최소 중급 스탯은 지녔을 겁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에밀리가 말을 하다가 멈추었다. 이미 한 번 돌아왔다. 한유진의 기억이 사실이라면. 한결이 에밀리를 향해 말을 이었다.
“도와주셔야 하는 일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