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91
689화 성현제 시장
이 세계에는 국가가 없었다. 천 년 전에는 대륙을 통합시킨 거대한 나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지막 왕이 마지막 사제에게 너희는 영원히 조각 날 것이다. 결코 한 나라로 합쳐지지는 못하리라는 저주를 받은 이후 나라는 사라졌다. 국가로 칭해도 될 만큼 크게 성장하더라도 도시라는 명칭을 그대로 유지했다.
국가가 되면 분열하고 만다.
사람들은 마지막 사제의 저주를 잊지 않았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미랑글룬 역사책 1권 참고.
라고 해도 다른 도시를 삼키고 몸집을 늘리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비슷비슷한 힘을 지닌 도시가 많다 보니 전쟁광 하나가 나타나도 연합해 비교적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덕분에 이 세계에서는 전쟁이 드문 편이었는데.
‘왜 하필 지금이냐.’
과거니까 이미 있었던 일일 테고, 일부러 이 시기로 보낸 건가?
“다행히 귄더들의 정리가 끝나 병력을 모두 국경선에 배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차이는 큽니다. 벨론드 시의 도시 방어 비용은 우리의 세 배라고 합니다.”
“인근 도시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심지어 우리와 활발한 교류를 해온 송브로등 시도 아무런 답변이 없습니다.”
상대 도시가 우리보다 세 배쯤 강한데 도와주려는 도시도 없어요! 라는 뜻이었다. 몇몇 의원들이 나를 빤히 쳐다봐왔다.
“1의원께서 당원들과 함께 선두에 나서 주시겠지요?”
“이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무장이 아닙니까.”
“아예 총사령관도 겸해서-.”
뭐라는 거야, 이 풍선들이. 조직폭력배 쓸어버리는 것과 전쟁이 같냐. 귄더들은 확실한 악당이지만 전쟁에 끌려가는 병사들은 적군이든 아군이든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애들한테 그딴 짓 절대 못 시켜. 아무리 풍선인형이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사람은 절대 죽이면 안 돼! 소리하기엔 현실이 너무 척박하지만 그거야 자의로 무기 들고 우리를 해치려는 놈들 상대일 때고. 제일 좋은 건 자기 목숨이든 남의 목숨이든 걱정할 필요 없는 환경이겠지만 아무튼.
“제가 벨론드 시를 방문하겠습니다.”
일단 대화부터 시도해 보자. 내 말에 시선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위험합니다!”
“전쟁터 선봉장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래도 홀로 방문한 사절을 막 대하지는 않겠지요. 설사 일이 잘못되어도 그 사실을 이용해먹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한창 인기 많은 젊은 시의원이다. 정식 사절로 갔다가 살해라도 당하면 도시민의 분노를 활활 불태우겠지. 다른 도시들에게 협력을 구할 명분으로도 좋고.
시장과 의원들이 머뭇거리면서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직업 게임이라더니 대체 어디까지 가는 겁니까, 정말.
“혼자는 안 돼.”
유현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맞아요, 아저씨 혼자는 위험해요. 전 어리니까 동행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예림이도 거들었다. 예림아, 이 동네에선 성인이란다.
“은신 스킬 정도는 사용해도 될 겁니다. 여긴 각성자가 없으니 들키지도 않을 거고요.”
노아 또한 반대했다. 노아의 가짜 날개에 반짝이 장식을 붙이던 리에트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노아 말대로 각성자 없는 곳이잖아. 근데 왜 걱정을 해? 얘 약하지만 안 약해. 여기 인간들보단 훨씬 강한걸.”
“리에트 말대로야. 은혜도 있고 살쾡이 템도 착용하고 가면 돼. 백만 대군이 몰려와도 쉽게 빠져나올 수 있어.”
내 스탯이 F라지만 일반인보다야 강하다. 아이템 등급도 높아서 더더욱 비각성자에게 질 일은 없었다. 포탄이 비처럼 쏟아져도 은혜 켜고 은신 스킬 써서 빠져나오면 그만이었다. 아이템과 스킬이 각성자가 없는 세상에서는 사기긴 사기였다. 불합리할 정도로.
“걱정하지 말고 푹 쉬고 있어. 전쟁만 막으면 시장직도 가능할걸.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이 도시 최고의 영향력을 지니게 되겠지.”
지금도 장난 아니게 인기 많지만. 유현이가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봐왔다. 윽.
“…형.”
“그렇게 봐도 안, 안 돼.”
동생 녀석 연기가 많이 늘었구나. 그 옆에서 예림이도 동참했다. 노아도 눈을 내리깔았다. 같이 있고 싶어 하는 애들 두고 억지로 일 나가는 가장이 된 기분이었다.
“…올 때 맛있는 거 사 오마.”
착하지. 위험할 일 없어요. 설사 성현제 팀에서 끼어든다더라도 여기서는 무력이 아닌 주사위 운으로 승부를 본다.
“과보호야~.”
강해져야 안전하다며 보호하겠답시고 애를 잡아 놓았던 리에트 씨가 말했다.
“또 주사위 뜨면 안 되니까 대비를 해야 하는데, 뭘 하지. 그림을 그릴까.”
“좀 아깝지 않아요? 잘 나오면 대박인데. 오늘도 좋은 거 떴었잖아요.”
잠깐 요리사가 되어서 희귀 식재료를 잔뜩 얻었다. 의원직 그대로였다면 정치자금이 쏟아졌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도 안 아까워. 사실 주사위 운이 나쁜 것까지는 괜찮아.”
줄줄이 바닥 쳐서 빌라에 킥보드에 트럭 나온 것도 분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퐁퐁이 얻은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어떻게 해결하면 돼. 되는데, 귄더가 나타났을 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잖아.”
당신의 트럭을 털려는 악당들이 나타났습니다! 뭐, 좋다. 거기까지는 말이다.
“충분히 해치울 수 있는 상대였는데 멍하니 짐 털리는 걸 보고만 있어야 했지. 사는데 어떻게 좋은 일만 있겠냐, 나쁜 일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인생이지만 이건 아니지.”
너에게 시련을 주마, 까지는 아 그래 덤벼 봐라 하겠다만 넌 도적들에게 털려야 한다, 는 열 받잖아. 성현제한테 져서 경찰 나타났을 때도 말이야, 변명을 하거나 뇌물을 찔러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끌려갔고.
“이젠 굳이 운에 맡길 필요도 없고~. 안 쓰는 게 나아.”
정치로 직업 바꿀 때야 잃을 게 없으니 썼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 없지. 내 인생길 장애물 던지는 것까진 넘어가겠지만 경로 자체를 틀어 버리진 말란 말이다.
“한유진 의원님!”
“부디 무사히 돌아오십시오!”
“사랑해요, 1의원님!”
나를 배웅 나온 시민들이 소리쳤다. 눈물을 보이는 사람마저 있었다.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시민들과 방송국 카메라를 향해 정중히 머리 숙였다.
“반드시 전쟁을 막고 무사히 귀환하겠습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몸을 돌려 가족사랑당 당원들과 시의원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행운을 기원하는 하얀 옷을 입고 베일을 쓰고 있었다. 이 동네 문화는 다르긴 하지만 다신 못 돌아올 사람 대하는 것 같았다.
“유현아, 나 없을 땐 네가 첫째다. 부탁한다.”
“응, 형. 걱정하지 말고 조심해서 다녀와.”
동생이 아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리에트가 제일 연장자긴 하지만.
“리에트 넌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 얌전히.”
믿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차라리 예림이가 배는 더 믿음직스럽다.
“제가 잘 지켜보고 있을게요.”
부탁드립니다, 노아 씨. 분위기에 휩쓸렸는지 예림이가 걱정 가득한 눈으로 나를 꽉 끌어안았다. 카메라 셔터가 반짝반짝 터졌다.
“퐁퐁이 잘 돌볼게요.”
아저씨 빠르면 오늘 밤에 돌아올 거야. 인사를 마치고 트럭에 올라탔다. 정식 1의원이 되고 나서 첫 임무가 전쟁을 막는 것이라니, 인생게임 난이도가 너무 높잖아.
도시 외벽의 문이 열리고 트럭을 출발시켰다. 훤하게 뚫린 도로를 달려가기를 한참, 간이 건물들이 세워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벨론드 시에 들어가는 건 우리 쪽도 찝찝하고 저쪽도 찝찝하기에 중간에서 만나기로 했다. 너른 평지에 군용 트럭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아직 전차 같은 건 보이지 않았지만 개인 무장은 당장 전쟁을 시작해도 좋을 만큼 완벽히 갖춘 모습이었다.
“멈춰라!”
총을 든 병사들이 바리케이드 너머에서 외쳤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무장을 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양손을 들어 보였다.
“미랑글룬 시 제1의원 한유진입니다.”
병사들 중 지위가 높아 보이는 풍선인형이 다가와 내 얼굴을 잡지 표지와 비교했다. 그 잡지 다른 도시까지 발행되는 거였냐.
“확실하군요. 따라오십시오.”
길을 막은 바리케이드가 치워지고 안쪽으로 안내되었다. 하지만 간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거절했다.
“비무장 상태로 혼자 여기까지 왔습니다. 실내에 갇힐지도 모르는 상황은 피하고 싶군요.”
“여기까지 와서 말입니까?”
“기분상의 문제지요. 이미 팔에 소름이 돋는데 사방이 막히기까지 하면 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렇지 않겠느냐며 싱긋 웃어 보였다. 내 얼굴이 여기선 손꼽히게 잘생겼다며. 이성은 물론 동성도 잘생긴 얼굴에 약하기 마련이다. 이왕 얻은 거 잘 써야지.
“…그럴 수도 있겠군요. 우리는 사절을 존중합니다. 평화적인 항복 또한 받아들입니다.”
그가 손짓하고 의자와 테이블이 옮겨져 왔다. 자리에 앉을까 하다가 기다렸다. 여기 예의를 대충 알아보긴 했는데 세세하게는 잘 모르니 괜한 행동은 최대한 줄이는 편이 나았다.
잠시간 기다리자 무장한 병사들이 주위를 포위했다. 드디어 나오시려나 보구만. 어떤 풍선인형인가 눈 똑바로 뜨고….
“…대.”
댁이 왜 여기 있어! 툭 튀어나오려는 말을 얼른 삼켰다. 군복차림의 성현제가 병사들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저기, 성 회장님 아니신가요. 설마 이 동네의 성현제인가? 하지만 풍선인형 모습이 아닌데?
“반갑습니다, 한유진 의원님.”
성현제의 입술이 미소를 그렸다. 뒤통수가 얼얼했지만 어떻게든 말문을 열었다.
“처, 음뵙겠습니다. 그러니까…….”
“벨론드 시의 시장, 성현제입니다.”
…네, 그러시군요. 레스토랑 사업 하시는 줄 알았는데 혹 쌍둥이가 있으신가. 이름까지 똑같이 짓다니 부모님께서 독특하신 편인 모양이네요. 이게 뭐야! 하고 테이블 뒤집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에 들어가겠다고 할걸.
“성현제, 시장님. 반갑습니다.”
억지로 웃었다. 어느새 다른 동네까지 진출해서 시장 노릇을 하고 있었던 거지. 너무한 거 아니냐. 왜 혼자 투 잡이야.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리본은 하지 않으셨군요.”
성현제가 병사로부터 패션 잡지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전쟁이… 코앞이니까요. 예의를 차리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보았다. 하지만 대체 무슨 짓을 하면 사업하면서 옆 도시 시장까지 할 수 있는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현아 씨 바가 귀한 정보를 잔뜩 낚았다고 해도 말이야. 주사위가 연속으로 대박 터뜨렸나? 그래도 너무 과하잖아.
“…일단, 정전을 제의드립니다. 굳이 전쟁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도시에 원하는 것이 있으시다면 가능한 들어드리겠습니다.”
“불필요한 피를 흘리는 건 저 역시 바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유진 의원님과 저는, 피를 흘릴 필요 또한 없지요.”
주사위가 나타났다. 이런 젠장. 어금니가 꽉 깨물어졌다. 역시 이런 식으로 결과를 정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지금껏 해온 노력과 아무 상관없는 결과물은 기분 나쁠 수밖에. 못 나오면 최악이고 잘 나와도 찝찝함은 남았다.
‘그냥 보드게임이라면 재밌겠다만.’
그거야 망해도 괜찮으니까. 성현제가 주사위를 들었다. 데구르, 주사위가 바닥을 구르고.
내 입꼬리가 실룩였다. 낮은 숫자다. 하지만 1이 나왔을 때도 졌으니 좋아하기는 일렀다. 나 또한 주사위를 던졌다.
[5!]이겼다. 숨을 삼키고 성현제를 바라보았다.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성현제가 나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저는 물러나겠습니다. 지휘관 자리를 넘기도록 하지요.”
“…예?”
“제 평판이 하락하겠군요.”
금색 눈이 휘어지며 미소를 머금었다. 잠깐만. 내가 당황하는 사이 제복 차림의 인형이 성현제에게 다가왔다. 성현제가 훈장 같은 패를 그에게 넘겨주었다.
“부탁하지.”
“맡겨 주십시오!”
“그런, 성현제 시장님!”
전쟁 멈추는 거 아니었어? 내 부름에 성현제가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진 것이야, 한유진 의원님. 벨론드 시가 아닌 내가.”
…그렇다. 시장이 전장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전쟁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머리를 잃으면 사기가 저하되거나 항복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당연히 있었다.
“한유진 의원.”
지휘권을 넘겨받은 풍선인형이 서늘한 시선을 보내왔다.
“우리는 무조건적인 항복 외에는 받지 않을 것이오.”
아, 그러냐. 그래, 애초에 말로 좋게 끝날 거란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성현제가 시장이라기에 혹시나 싶었던 거지. 주사위 따위에 의지할 마음도 없고.
“알겠습니다. 무사히 돌려는 보내 주시겠지요?”
“물론이오. 원한다면 개인적인 항복 또한 받아 줄 수 있소. 제대로 된 대우를 약속하지.”
항복하면 시장님 댁 청소부로 취업되는 건가요. 고개를 저으며 리모컨을 눌렀다.
“제 트럭 들어옵니다, 비켜 주세요.”
병사들이 길을 내어주었다. 트럭이 내 뒤에 멈춰 섰다.
“리모컨으로 자동 주행이라니, 신기하군. 미랑글룬 시의 기술이 생각보다 더 발전한 모양이야.”
“발전했죠. 그쪽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다시 리모컨을 조작했다. 덜컹거리며 차의 앞부분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 평범한 엔진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 복잡한 기계가 드러났다.
“사실 이 트럭은 핵에너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기름 값이 아까웠다. 아껴야 잘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