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811
810화 새끼 양 (1)
‘닮긴 한 것도 같은데…….’
눈썹이라거나 눈매라거나 송 실장님의 모습이 보이긴 했다. 다만 아직 어려서인가 그 건장한 느낌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오히려 작고 여리고 동글동글하게 느껴졌다. 그보다 이 아이가 진짜 송 실장님이라면,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 거지.
‘성현제가 송 실장님을 보호하고 있다고 했었지.’
무슨 가사 상태로 쓰는 방어 스킬을 사용했댔던가. 그러니까.
‘…세계수에게 먹히기라도 했던 건가.’
둘이 함께 세계수 속에, 마석 부근에 갇혀 있는데 내가 그 둘의, 송실장님의 의식 속으로 들어와 버린 모양이었다. 밖은 괜찮은 건가? 송 실장님은 왜 어린애 모습을 하고 있지?
“그, 송실, 아니, 태원…아.”
지금은 어린애지만 이렇게 부르려니 어색했다. 송 실장님이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음, 혹시 다른 사람은 없니? 키가 한 이만하고 바랜 머리색에 눈은 금색이고 얼굴만큼은 더럽게 잘생긴 남자 말이야. 겉은 많이 쳐줘야 삼십댄데 말하는 건 환갑쯤 된 거 같고.”
송 실장님이 눈을 깜박였다. 귀엽구나. 바싹 깎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졌다.
“모르겠어요.”
“그래? 그럼 태원아, 너는 왜 여기 혼자 있어?”
몸을 낮추어 시선을 맞추며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송 실장님이 무의식 속에서 어린아이가 되었다.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게 틀림없었다. 바깥의 상황이 걱정되었지만 지금 노아 씨의 능력이라면 방어는 어렵지 않겠지. 송 실장님과 성현제를 무사히 깨우면 세계수를 안에서부터 박살 낼 수도 있을 것이고.
“형이 선물 줄까. 자아.”
머뭇거리는 송 실장님에게 까만 새끼 양 인형을 내밀었다. 한국 헌터 협회의 의뢰로 만든 송이 인형 시제품이었다. 특히 털의 부드러움과 폭신함을 잘 살려 촉감이 무척이나 뛰어나지. 송 실장님이 나를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모르는 어른이 주는 것은 함부로 받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어려도 송 실장님이구나. 말도 참 똑 부러지게 하네.
“우리 태원이 똑똑하네. 하지만 형은 태원이를 잘 아는걸. 이 새끼 양도 익숙하지 않아? 분명 본 적 있을 거야.”
메엥, 하며 인형을 까딱까딱 움직여 보였다.
“이건 사실 원래부터 태원이 거거든.”
폴짝 뛰어드는 새끼 양에 작은 두 손이 반사적으로 내밀어졌다. 어린 송태원이 새끼 양을 품에 안았다. 미심쩍은 표정이었지만 인형의 감촉은 맘에 드는 모양이었다. 굳은 얼굴이 슬쩍 풀린다.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을 조심하렴, 하는 건 나쁜 일을 당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 하지만 형은 여기서 움직이지 않을 거야. 태원이를 건드리지도 않고 어디 같이 가자고 하지도 않고. 그럼 괜찮지?”
“…네.”
동그란 머리가 작게 끄덕였다. 물론 이런 식으로 친분을 쌓은 뒤에 못된 짓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특히나 어린 각성자가 돈이 되는 요즘 세상에는 낯선 어른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아무튼 송 실장님은 경계를 약간 푼 모양이었다. 다시금 사근사근 물었다.
“태원이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요?”
“…아무것도요.”
송 실장님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하면 안 됩니다.”
“네? 아니-.”
무심코 높아진 목소리를 다시 낮췄다.
“왜 그렇게 생각한 걸까. 왜 아무것도 하면 안 돼요?”
송 실장님이 새끼 양 인형을 만지작거렸다.
“나빠요.”
“나쁘다니, 누가.”
“송태원은 태어나선 안 되었습니다.”
말문이 탁 막혔다. 그래도 최근의 송 실장님은 전보다 좀 더 스스로에게 느슨해지셨었는데, 그런데 왜 갑자기. 절대 아니라고 목소리가 커지려는 것을 겨우 삼켰다. 흥분하지 말고 침착하게. 차분하게.
“태원아, 태어나선 안 되는 존재는 없어. 그 누구라 해도.”
새카만 눈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이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망설임 하나 없는 단호한 발걸음이었다.
“아니요.”
“태원아.”
“아니요.”
다시 한 걸음 더 물러섰다. 내가 손을 뻗으려하기 직전, 어디선가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아야!”
송태원이 몸을 홱 돌렸다.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달려간다. 쫓아가려고 일어나는 순간 다른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동시에 머리가 지끈거리며 신입의 말이 떠올랐다.
‘허니는 기억을 되찾고 싶죠?’
‘다시 삼키세요.’
‘본래 허니의 것이에요. 빈 공간이 아물고 빼앗긴 것이 녹아들기 전에 다시 가져오세요.’
…그래, 기억. 신입이 암시를 걸어 놓았었다. 기회가 생긴다면 성현제로부터 내 기억을 되찾을 수 있도록. 그래서 잠든 성현제 가까이 간 순간 그의 의식 안으로 파고드는 힘을 무심코 쓰게 된 것이었다.
“…성현제!”
금안이 나를 마주 바라보았다. 나는 그와 아는 사이였다. 생각보다 더 가까웠던 듯도… 잠깐만.
“한유진 군?”
목덜미가 조금 붉어진 나에게 성현제가 의아한 시선을 보내왔다. 그, 그래도 별일은 없었겠지. 리에트의 기억이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 아닌 듯했으니까. …아니겠지? 하지만 리에트와 성현제는 분명 잘 어울리긴 했다. 리에트가 그런 쪽으로 서슴없기도 하고, 나이 차이가 걸리긴 하지만.
“나를 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뇨! 그게 아니라요, 리에트가… 성현제 씨와 잘 어울리는 거 같다고, 외모는요. 물론 전 나이 때문에라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리에트가 먼저…….”
아무리 리에트의 기억이라고 해도 이건 확실히 무례했다.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 숙였다. 성현제가 아, 그때 말인가 하고 중얼거렸다. 그때라니, 뭔데. 뭐였는데.
“말해 두자면 태생 S급 중에선 내 취향이 없다네. 이 세계는 물론,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다른 세계에서도 아마도. 태생부터 타고난 존재여서일까, 끌리지가 않아.”
씨앗부터 시작하는 편이 마음에 든다며 성현제가 말했다.
“유일하게 취향인 원맥자라면 나 자신 정도겠군.”
“…거 정말 대단한 나르시시즘이시네요.”
성현제쯤 된다면 자기애가 없는 게 더 이상하겠지만. 짧게 숨을 내뱉었다. 내 기억을 되찾아야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급한 게 있었다.
“일단 어떻게 된 겁니까. 자신만만하게 체왕을 상대하겠다더니 결국 두 나무가 합쳐졌어요.”
“그림자가 나비에게 홀렸다네.”
나비라면, 또 정원사? 정원사 이 새끼 진짜 내가 가만히 두나 봐라. 유현이에 이어 송 실장님까지 건드리다니.
“우선 밖의 시간은 여기보다 훨씬 느려. 의식의 흐름이 실제보다 빠르듯이.”
“그건 다행이네요. 정원사 놈이 송 실장님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성현제가 검지로 자신의 입술을 가볍게 눌렀다.
“내가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송 실장님에게 직접 들어야 하는 종류입니까.”
성현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송 실장님의 태도만 봐도 그럴 것 같았다. 송태원, 월식을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을 준 존재가 다름 아닌 정원사였다. 그러니 더욱 쉽게 송 실장님의 속을 파고들 수 있었던 거겠지. 나도 아직 다 모르는 사람의 가장 깊은 곳을.
“정원사는 송태원 실장을 뒤흔들고 조종하여 세계수의 마석을 삼키게 하려 했다네. 그것을 막기 위해 송태원을 감싸고 함께 세계수 속에 갇히게 되었지.”
“…황림 일도 있었으니 조심했어야 했는데.”
“원래는 조종당할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성현제가 나를 바라보았다.
“꼬마 아가씨의 스킬에 휘말려 한유진 군의 기억 속에 들어가면서, 송태원의 기억 또한 들춰진 모양이더군. 그로 인해 약해진 틈을 나비가 파고들었다고 할까.”
하긴 쉽게 송 실장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면 그 전에도 기회는 얼마든지 많았다.
“내 스킬로 육신은 물론 정신까지 보호해 나비를 떼어놓기는 했지만.”
“송 실장님의 충격이 컸던 모양이로군요.”
“포기했어.”
성현제의 목소리에 씁쓸한 것이 맺혀있었다.
“지금의 송태원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의 나이라네.”
그 일? 궁금했지만 성현제에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대답해 주지도 않을 테고. 제멋대로긴 해도 그런 부분에서는 확실한 사람이었으니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성현제에 대한 기억이 없을 텐데도. 그의 의식 속에 직접 들어와서 영향을 받는 건가.
짧게 한숨을 내쉬곤 성현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돌려주십쇼.”
성현제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과장되게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제 기억 내놓으라고요.”
송 실장님은 성현제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니 나도 기억을 되찾아야만 송 실장님의 문제에 대해 제대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성현제가 눈매를 휘며 미소 지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내 것이라.”
“무슨 개소리를-.”
“그렇지 않나.”
성현제 옆으로 내가 나타났다. 단순한 환상이 아닌, 내 기억으로 구성된 나였다. 매끈한 정장 차림이었다. 저게, 언제였더라. 클로이 헌터와 호텔에서 만날 때였던가. 그때도 성현제가… 그러니까…….
“네, 주인님.”
“…야!”
한유진의 기억이 미친 소리를 했다. 무슨 짓이야!
“남의 기억 가지고 무슨 헛짓거리야!”
“저런, 한유진 군은 기억을 하지 못하니-.”
내 손에 군림자의 검이 쥐어졌다. 여긴 내가 겪은 힘을 끌어낼 수 있는 의식 속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 지금 리에트 힘의 두 배의 두 배라고, 성현제! 카라락, 휘어져 날아드는 흑검을 성현제가 미끄러지듯 피했다.
“내가 댁한테 그딴 소리 했을 리가 없잖아!”
“억울하군.”
훌쩍 뒤로 뛰어 거리를 벌리는 성현제 옆으로 다시금 내가 나타났다. 그리곤 대뜸 소리친다.
“성현제! 너랑 나 사이에 애가 있다!”
쿨럭, 사레가 들렸다. 입도 코도 귀도 다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야 이 미친놈아!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약을 팔아!”
“한결 군이 울겠군.”
“우리 결이는 또 왜-.”
끌어들이냐고 소리치려다가 멈칫했다. 유현이와의 사이에도 애가 있다는 뜬금없는 소리를, 했던 것도 같은데. 설이가 둘째였지. 그럼 결이는. 한결이… 은빛, 또는 분홍빛 머리칼에 금색 눈. 한결이 얼굴이, 분명히.
“…내 기억 내놔!”
“싫어.”
카가강! 단절의 힘을 머금은 흑검이 금빛 사슬을 잘라낸다. 전류가 휘몰아치는 가운데로 파고들었다. 검이 빗겨나가고 그대로 땅을 찔러 디뎌 몸을 홱 돌렸다. 굵고 검은 용의 꼬리가 성현제의 허리를 두들긴다. 직격은 아니었으나 코트의 허리부분이 길게 찢어졌다.
“한유진 군을 부른 것은.”
성현제의 손가락마다 검은색 실 같은 것이 휘감겼다. 그것이 나를 향해 길게 휘둘러온다. 잘라내도 거미줄처럼 전신에 내려앉았다.
“송태원을 깨우기 위해서라네.”
화악, 불길이 일어났다. 실을 단숨에 태우고 성현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성현제의 순간이동. 나 또한 순간이동 해 쫓았다. 노아의 날개를 펼쳤다. 깃털은 아닌 피막이었다. 깃털은 아직 완전히 구현하기 힘들었다.
“나도 꺼내 볼까.”
성현제의 등 뒤로도 검은 날개가 펼쳐졌다. 타 종족화 스킬도 얻었던 건가. 하긴 뭔들 없었겠어. 타고난 전(電) 속성 때문에 타 속성 정도나 없었을까.
“아래를 보게.”
덤비려는 내게 성현제가 손짓했다. 어느새 발아래로 마을이 나타나 있었다. 단독 주택이 대부분인 시골이었다. 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그리 넓지 않은 개천이 길을 따라 흐른다. 그 옆으로 어린 송 실장님과 또 다른 아이 하나가 보였다.
“저 애는…….”
얼굴은 어려 보였지만 송 실장님보다 덩치가 컸다. 아직 아이인데도 골격부터가 타고났구나 싶을 정도였다. 송 실장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면, 딱 저런 모습이었다.
“한 살 더 먹으면 내도 서울서 형아랑 같은 학교 간다카더라.”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형제인가? 몸집을 제외하고는 분명 닮긴 했다. 어릴 때 사고로 죽은 동생이 있다고 했었지.
“…송 실장님 동생이 더 컸었네요.”
유현이도 또래에 비해 큰 편이긴 했지만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저만했을 때는 나보다 더 작았다. 금방 쑥쑥 자라서 고등학생 때는 더 커졌지만.
“그리고…….”
무심코 마른침을 삼켰다. 어릴 때 죽은 동생. 마치 송 실장님 어릴 적 모습처럼 느껴지는 덩치의 동생. 작고 약한 송 실장님. 그 일이 있기 전의 나이. 자신이 나쁘다고, 태어나선 안 되었다고 말하는 송 실장님.
월식. 약탈. 타인의 것을 빼앗는 힘.
성현제를 돌아보았다. 그의 표정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니죠.”
아무리 그래도 설마.
“어떻게 할지 생각 중이야.”
성현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송태원은 스스로를 존재해선 안 되는 것이라고 인정했다네. 우선은 저렇게 붙잡아 놓았지만 오래가지는 못하겠지.”
“설득은 해보셨어요?”
“월식과 달이지 않나.”
성현제의 손에 검은 그림자가 어렸다.
“평소의 송태원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그의 의식 안으로 이 이상 접근했다간 본능적으로 나를 삼키려 들 거야.”
그래서 방어막으로 버티며 나를 부른 거였나. 나라고 해서 송 실장님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는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부딪쳐는 봐야지. 무엇보다도, 송 실장님은 새끼 양을 받아가셨다. 지금의 송 실장님 역시.
“다 끝나면 제 기억 내놓으십쇼.”
성현제를 한번 째려보고는 날개를 접었다. 은신 스킬을 사용하여 아래로 내려섰다. 풀이 무성한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형제가 보였다. 은신 스킬을 풀자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봐온다. 송 실장님의 동생이 형을 지키듯 앞으로 나선다.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안녕, 태원아. 다시 만나는구나.”
어린 송태원은 아직 새끼 양 인형을 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