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41
제241화
“난리가 났군요.”
비량이 뭍에 나와 바위 위에 앉아서 멀리서 일어나는 소동을 바라봤다.
산과 언덕 하나를 넘어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는 하늘 위로 치솟는 불꽃과 먼지만으로도 얼마나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지 알 법했다.
그 뒤로는 파도를 얕게 일으키며 빅 톤트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사람이 빠지고도 남을 깊이였지만, 빅 톤트에겐 발목보다도 낮았다.
“자네가 가보지 않아도 되겠나?”
“빅 톤트님.”
“도와주겠다고 해놓고 방관해도 되나.”
“방관이 아니라 부탁했습니다.”
“부탁?”
“전 여기서 가만히 지켜보라는군요. 소녀에게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요.”
“꿍꿍이가 있겠지. 이 항구도 그렇고 말이야.”
인어와 톤트가 항구 건설을 돕고 있다지만, 사실 이곳은 항구를 짓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물론, 서쪽으로 가기에도 좋고 내륙으로부터 혹여 들어올 공격을 막기에도 좋은 천혜의 요새였지만.
결국 아군이 항구로 오가는 교통도 썩 좋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유리가 설계한 항구는 기존의 항구와 많이 달랐다.
“그보다는 공성용 전지기지 같단 말이지.”
“글쎄요, 소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네놈은 뭐라고 생각하는데?”
“공성기지보다…… 포획하는 그물망 같아서요.”
항구 외곽으로는 거대한 성벽이 둘러쳐질 계획이었다. 지금까지 공정율은 대략 90퍼센트.
톤트들이 무거운 돌들을 운반해준 덕에 금방 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성벽의 형태가 거의 원형에 가까웠다. 무언가를 벽 안에 가두려는 듯이 말이다.
뿐만 아니라 성벽 위에 올린 대포나 수성용 캐터펄트들은 항구만이 아니라 내륙 쪽으로도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 되었다.
“만타티스가 쳐들어올 걸 대비할 수도 있지.”
“그런가요.”
“사사로운 잡념은 버려. 우리가 아무리 그 놈한테 생각을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을 거다. 악마 놈들의 정신 공격을 위해서 혼자만 알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좀 섭섭하네요.”
“애도 아니고. 그딴 걸로 섭섭해 하지 마.”
빅 톤트는 그 길로 바다로 돌아가 해저 깊이 있는 돌을 가지러 갔다.
끝까지 남아있던 비량도 멀리서 일어나는 전투를 바라보다가 지그시 눈을 감고 용으로 변해 공사를 도우러 움직였다.
* * *
폭발의 여파는 예상보다 커서 한참 동안 흙먼지를 일으켰다. 좀처럼 가라앉지 못하고 있어서 기사들이 섣불리 접근하지도 못했다.
“유리 님!!!”
블레이크가 힘껏 가주의 이름을 불러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불안했다.
이대로 유리가 패배한 건 아닐까. 비록 대단한 실력을 가졌다고 해도 상대는 비밀스레 정체를 숨겨운 자다.
어떤 실력을 숨기고 지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유리 님!”
“불길하게 부르지 마.”
그때, 유리의 목소리가 들린 건 다름 아닌 블레이크의 뒤편이었다.
부하들을 뒤로 물리고 홀로 앞에 나와있던 블레이크는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멀쩡한 얼굴로 유리가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는 중이었다.
“가주님!”
“내가 설마 죽은 줄 알았던 건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그랬으면서.”
제 가주가 패배했다는 오만한 발상을 했다는 사실에 블레이크가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런 블레이크를 보며 웃던 유리는 아스칼론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가주님, 어떻게 된 겁니까?”
“폭풍이 가라앉질 않아서 먼저 나왔어.”
“그럼 비쥴레 가주는……?”
“죽었다.”
“……!”
푸확!
잠시 후 먼지 폭풍이 갑자기 가라앉으면서 시야가 트였다.
그리고 폭풍의 중심에 있던 비쥴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검에 몸을 의지하고 겨우 상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입에선 피를 울컥 토했다.
“내, 가…… 졌군.”
“안타깝군요, 비쥴레 가주.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유리는 그 말을 하며 다시금 비쥴레에게 다가갔다.
상대 기사들은 나서지 않았다. 유리가 보여준 무용을 보고 감히 나설 수 있는 용기는 누구에게도 없었다.
너무나 쉬운 듯이 끝나버린 전투였다. 그래서 이 결과가 충격적이다 못해 공포스러웠다.
정작 유리는 태연한 얼굴로 비쥴레 무릎 앞에서 멈췄다.
“왜 이런 선택을 했습니까.”
“이것 밖에, 없으니까. 내, 가문, 내 가족, 을 살리려면, 이거, 밖에 없, 어.”
분명 비쥴레는 미래를 보았다고 했다.
어떤 미래였는지 몰라도, 비쥴레는 절망했고 악마의 편에 서기로 결심했다.
힘든 결정이었으리라.
하지만 유리로선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여전했다.
얼마든지 도움을 청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미래를 봤으니 잘 해내보자고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허나, 이 모든 건 착각이었다.
마지막 일격을 나누고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비쥴레가 쓰러졌을 때.
그는 말했다.
“우리 가문은 오래 전부터 악마의 편이었다.”
“왜 그걸 떨쳐내지 못했습니까. 적어도 다른 가문에, 주변에 도움을 청해달라고 했으면 됐을 텐데요.”
“그댄 가족이 죽는 걸 보고 참을 수 있나?”
비쥴레가 본 미래에는 가문과 가족이 멸하는 모습이 있었다.
무기력하게 악마에게 당해가며 사지가 잘리고 내장을 내보이던 가문의 광경에 비쥴레는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그때 내린 비쥴레의 결론은 절망 그 자체였다.
“모든 용가에는 고대 드래곤으로부터 내려오는 예언이 있다. 빈 퀴네님이 우리 가문에 주신 예언은 미래를 보는 눈이었지.”
“나이트워커와 솔리드녹스에도 있습니다.”
“난 그 예언을 보고 느꼈지. 나로는 가문을 못 지킨다고.”
“…….”
“그래서 나 ‘혼자’ 악마와 만났다.”
“혼자라는 사실이 중요합니까?”
“우리 가문이 중간계를 배신했다면 그대는 우리 가문을 없애려 들겠지.”
당연하다. 만타티스 가문이 약하긴 해도 용가는 용가다. 그들을 살려둬서 좋을 건 없었다.
“하지만 나 혼자 배신했다면 나만 죽으면 된다.”
“저보고 그걸 믿으라는 겁니까. 만타티스에 또 다른 악마추종자가 있는지 어떻게 알고요.”
“내가 다이올드를 데리고 있으면서 아무한테도 넘기지 않은 사실을 알았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겠지.”
유리가 본 비쥴레는 좋게 말하면 때에 맞게 알맞은 선택을 하는 중립적인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상황에 맞게 눈치만 살피는 기회주의자였다.
다이올드를 아무한테도 넘기지 않았던 건 자신에게 이익이 발생하는 순간을 위해서였다. 결국 빼앗기고 말았지만.
“뭐가 되었든 난 가문을 위해서 옳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가문이 살 수 있게. 비열하고 치졸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난 그대와 악마 사이에서 잴 수밖에 없었어.”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가 옳은 결정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비쥴레의 마지막을 위해 유리는 다시 한 번 그의 앞에 섰다.
“비쥴레 가주를 정말로 믿어도 되겠습니까.”
“빈 퀴네님의 이름을 걸지.”
“…….”
“크읍, 추악한가. 흐, 흐. 그렇, 겠지. 정 그렇다면 가문을 해산, 시켜도 돼. 아니면, 가둬, 놓던가.”
“이왕 폭군이 되었으니 더 나쁜 짓을 하라는 겁니까. 잔인하시군요.”
“그대라면, 맡길만 하니까. 싸워보면서 알았, 어.”
치졸하고 추악하고, 더러우면서 용인답지 못하다는 건 비쥴레가 스스로도 잘 알았다.
어딜 가나 약자였던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이것뿐이었다.
이도저도 아닌, 중간에 서서 모두 고르고 어느 것도 고르지 않는 멍청한 가주.
“어리석은 걸 알지만, 부탁한다.”
* * *
비쥴레가 사망한 직후, 만타티스 가문을 어찌할지 두고 여러 말들이 오고갔다.
일단 조사를 해본 결과 만타티스의 사람들은 바다에 갇혀 있던 사람이 다이올드인 건 알아도 그가 왜 갇혀 있는지는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만타티스의 사람들은 그저 다이올드를 가둬놓고 나이트워커가 언젠가는 인계 받으러 온다는 막연한 추측만 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습니다.”
막사에 모인 동료들, 그들 사이에서 블레이크가 먼저 의견을 내놨다.
“비쥴레 가주의 죽음 자체는 끝끝내 우리를 골랐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가문에 소속된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들 사이에 악마추종자가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단장님. 조사를 철저히 해봤지만 누구도 악마에 대해 몰랐고 다이올드가 누군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이자벨 양의 말처럼 악마와 다이올드에 대해서 모른다고 말할 수는 있어요.”
“그것도 그렇지만…….”
결국 모두의 시선이 유리에게 쏠렸다.
결정권자는 그였다. 어떤 논리든 간에 유리의 결정이 가장 중요했다.
잠시 후, 한참의 침묵이 흐른 뒤에 그의 입이 열렸다.
“정복으로 하지. 비쥴레 가주를 내가 죽였고, 이로서 만타티스 가문은 나이트워커 가에 정복당했다고 선언하겠어.”
“가주님! 그건!”
“오라버니! 정복으로 선언했다간 반발이 일어날 거예요! 안 그래도 세간에서 오라버니를 폭군으로 보고 있는데!”
채럿이 비명을 지르듯 따졌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뭘 걱정하는지 알아. 하지만 만타티스 가문 사람들을 믿을 수도 없지. 결국 그들을 통제하려면 정복이라는 명분 밖에 없어. 명령을 내리고 복종하도록 해야 하니까.”
“만타티스 내부에서 반발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요.”
“블레이크 경, 내가 저들을 내버려둔다고 해서 반발이 일어나지 않을까? 혹은 악마추종자가 있을지 모르니 모두 쳐낸다면? 그건 안 봐도 알겠지.”
유리가 비쥴레를 죽인 순간부터 만타티스로부터 원망을 샀다. 이는 돌이킬 수 없다.
그러니 차라리 정복을 선언하면서 만타티스를 흡수해 통제를 하겠다는 것이 유리의 계획이었다.
악마추종자가 숨어있든 아니든, 정복해서 통제한다면 그걸로 해결이 되니까.
“그리고 당분간 만타티스는 내가 직접 지휘하지 않을 거야. 다른 이한테 맡겨야지.”
“누구 말입니까?”
“비량 님.”
“아……!”
외부적인 유리의 평가는 폭군으로 남겠지만, 만타티스 내부의 평가는 비량이 개입하면서 달라진다.
엄연히 비량은 드래곤과 버금가는 용(龍)이다.
고대의 존재가 통솔하게 되면 단순히 위압적인 느낌을 넘어서 숭상을 하게 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아무래도 용가이기 때문에 더더욱 비량을 숭상할 터.
“비량 님에게 맡기면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막을 수 있겠지. 어차피 만타티스는 날 매도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빠질 거야.”
“뭘 시키실 요량입니까?”
“시키는 건 아니고.”
비량에겐 감시자 겸 수비자로서의 역할만 맡길 셈이었다.
비량이 전투에 나서주는 건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데카라비아의 죽음으로 인해 비량이 용이 됐다는 걸 악마들도 알고 있을 테니 대비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예상 가능한 전력은 배제하려 했다.
“비량님, 가능하시겠죠?”
마침 벽에 기대서 회의를 지켜보고만 있던 비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와 연락을 주고받지 못하게만 하면 되는 건가요.”
“그 정도면 됩니다. 만에 하나 탈출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살해도 좋고요.”
“알겠어요.”
“항구 건설은? 어느 정도 진행 됐지, 블레이크 경?”
“9할 이상 완성됐고 안전 점검 및 보수만 하면 끝납니다.”
확실히 돈과 인력이 대거 투자되니 거대한 항구쯤은 금방 건설되었다.
미다스의 도움을 받아 만든 설계도가 한몫하기도 했고.
쿵!
“가주님! 큰일 났습니다!”
그때, 회의장을 박차고 한 기사가 들어왔다.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까지 더듬어가며 말했다.
“아, 악마가! 악마가 나타났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