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106
일본, 도쿄, 긴자. 긴자의 바는 다른 곳보다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곳은 보통보다 비싼 긴자의 바보다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다. 술 한 잔에 몇 만 원에 달하는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겠지만, 이 바는 지갑이 두껍다고 해서 마음대로 들어 올 수는 없다.
철저하게 회원제로 운영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바 테이블 건너편에서는 생긴 것부터 노련미가 넘치는 바텐더가 흰 셔츠에 나비 넥타이, 검은 조끼라는 그럴 듯한 바텐더 패션을 하고서 셰이커를 흔든다. 늘 먹던 것으로, 라는 오더대로 한 잔. 바텐더가 밀어 준 블랙 러시안을 들어 올리는 도중,
“영상 봤어?”
목소리가 들렸다. 류이치는 옆을 돌아보았다. 볼륨있는 갈색 머리를 옆으로 넘긴 여자가 류이치를 향해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무슨 영상?”
모르는 척 물었다. 자연스럽게 류이치의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손으로 턱을 받치면서 류이치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스카이 워커. 관심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야?”
“봤어.”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기는 했지만, 류이치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능숙하게 표정을 관리하면서 잔을 입술로 가져갔다.
“봤어? 어떻게 생각해?”
“잘 하던 걸. 크림슨 데몬을 혼자서 잡은 거잖아. 그것도 놀랍기는 하지만… 그 레벨에서 허공답보 스킬을 그렇게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지.”
아스가르드에 올라 온 HS1123의 영상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파란을 일으켰다. 스카이 워커. 류이치도 그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 보았다.
HS1123의 레벨이 높았더라면 이만큼 파란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HS1123은 영상을 올리기 열흘 전에 80레벨을 달성했다. 허공답보는 무투가가 레벨 80에 익히는 스킬이다.
열흘 전에 허공답보 스킬을 익히고, 열흘 뒤에 스카이 워커 영상을 찍은 것이다. 허공답보는 난이도가 높은 스킬이다. 익숙해진다고 해도 전투에 응용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열흘 만에 저 정도 수준으로 허공답보에 익숙해지고, 전투에서 저렇게 완벽하게 펼치는 것이 가능할까?
“감상은 그것이 전부야?”
여자가 묻는다. 류이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삐딱하니 기울이고서 여자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여자는 생글거리며 웃기만 할 뿐 류이치의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결국 류이치 쪽에서 먼저 시선을 거두었다.
“무슨 말을 기대하는 건데?”
“떠드는 사람들이 많아. 현재 발할라에서 무투가로 가장 랭킹이 높은 것은 너니까.”
야가미 류이치. 발할라에서 사용하는 아이디는 ‘류가미.’ 레벨 115이자 발할라 세계 랭킹 6위다. 동시에 발할라 내에서 무투가 직업으로 가장 레벨이 높기도 하고, ‘스사노오’의 길드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그 멋모르고 떠들어대는 얼간이들을 위해서 HS1123이랑 한 번 붙기라도 해야 한다는 거야?”
류이치는 통째로 비운 잔을 내려 놓고서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다시 노려보는 시선에 여자는 쿡쿡 웃기만 할 뿐 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가상현실게임이 개발되고 나서, 가장 먼저 그에 열광했던 것은 일본이다. 본래부터 애니메이션 따위의 오타쿠 문화가 크게 발달했던 나라고, 가상현실이나 이세계 관련 애니메이션이나 소설, 만화 등이 크게 부흥했던 나라다. 덕분에 일본은 가상현실게임 관련으로 많은 사회적 문제를 겪기도 했다. 가상현실게임에 푹 빠져 방에 틀어박히고, 취직도 하지 않고서 게임만 해대는 V-히키코모리들 때문이다.
물론 그런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상현실게임은 전 세계에서 각광 받게 되었고, 그 관련으로 돈을 벌어들일 수단은 넘치게 되었다. 일본 정부는 넘치는 V-히키코모리를 위한 수단으로서 여러 가지 정책을 만들었고, 그와 관련된 일자리도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만들었다.
키도 쿠레하 역시 그런 정책의 덕을 본 수혜자 중 하나였다. 그녀는 가상현실게임 관련 정보를 전문으로 다루는 기자였다. 발할라의 최상위 랭커들은 막대한 부를 얻고 호화로운 생활을 누린다. 몇몇 랭커들은 단순히 게임의 랭커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스타’가 되는 것에 성공하기도 했다.
키도 쿠레하는 그런 스타들의 정보를 취급한다. 흔히 말하는 연예 기자인 것이다. 류이치는 쿠레하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는 키도 쿠레하라는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잘 알고 있었다.
“기삿거리라도 필요해?”
“어떻게 알았어?”
쿠레하는 뻔뻔하다. 류이치는 정면에서 긍정하는 쿠레하의 얼굴을 노려보면서 담배를 찾았다.
“나는 네가 HS1123과 한 번 싸워줬으면 좋겠어.”
“네 기삿거리를 위해서?”
“멋진 일이잖아. 현 발할라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무투가. 랭킹 6위. 일본에서 가장 강한 발할라 플레이어. 스사노오의 길드장. 그 류가미와 HS1123이 싸우는 거야. 전 세계가 주목할 걸?”
“고작해야 게임이야.”
고작해야 게임. 류가미는 스스로 그렇게 뱉었으면서도 그 자신이 그 말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가상현실게임이 대중화 된지는 고작해야 십 년 밖에 안 된다. 하지만 그 십 년 만에 가상현실게임은 전 세계에 아주 깊이 침투해 있었다. 당장 일본만 해도 가상현실게임 때문에 정책을 몇 개나 더하고 바꿨을 정도다. 류가미가 십대였을 때만 해도 게임을 잘한다는 것을 대단한 자랑거리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작해야 게임. 그야 그렇지. 하지만 전 세계의 몇억명이 이 게임을 하고 있어.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발할라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알아? 80살이 넘은 우리 할머니도 발할라를 하고 있어. 발할라의 아바타는 현실의 외형을 따라가기는 하지만, 현실의 관절 질환까지는 구현하지 않으니까.”
제 2의 세계. 가상현실게임은 이제는 단순한 게임의 영역을 넘어섰다.
“너는 류가미고, 강하잖아. 랭킹 6위니까 강한 것이 당연하지. HS1123과 싸운다고 해서 네가 지지는 않을 것 아냐?”
“싸울 이유가 없어.”
“대중들이 그를 원하고 있어. 너한테 나쁠 것을 없을 텐데? 너는 이길 테고, 편하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거야. 많은 돈, 많은 명예, 많은 관심.”
“돈은 지금도 많아. 많이 벌고 있어. 명예도 많지. 관심도 많이 받고 있어.”
“그보다 더 받을 수 있는 거야.”
“필요없어.”
“그리고 난 좋은 기사를 쓸 수 있겠지. 네 덕분에 가장 먼저 류가미, HS1123에게 도전하다. 이런 기사를 낼 수 있을 테니까.”
“…특종은 충분히 냈을 텐데.”
“더 많은 특종을 바라는 것이 기자야. …정말로 안 할 거야?”
쿠레하가 머리를 살짝 숙이면서 류이치를 올려봤다. 류이치는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결국 이렇게 되어 버린다. 류이치는 의자를 뒤로 빼고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 긴자에 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런 후회가 들었다. 아니, 어디를 가도 똑같았을 것이다. 긴자가 아닌 다른 곳에 갔어도 쿠레하가 찾아왔을 테니까.
“그냥 가는 거야?”
쿠레하는 일어선 류이치를 향해 물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어깨를 살짝 기울였다. 봉긋 솟은 가슴이 유혹하듯이 앞으로 나왔다.
“나,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은데.”
“…네 기삿거리가 되고 싶지 않아. 이런 문제로는 더더욱.”
“그래? 나는 네가 그걸 바라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식으로는 아니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연락해 줘. 설마 당장 HS1123과 싸우겠다는 것은 아닐테니.”
류이치는 그 말이 끝나기 전에 몸을 돌렸다. 문까지 걸어가는 도중에 등 뒤에서 쿠레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
투데이 베스트 1위.
아스가르드에 여태까지 영상은 쭉 투고해왔지만, 투데이 베스트 1위에 오른 것은 처음이었다.
“…의외로 별 감흥은 없네.”
김현성은 모니터를 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조회수와 구독자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언제나 있었던 일이다. 1위라는 감투를 떡하니 쓰기는 했지만 의외로 좋아 죽겠거나 그런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래봤자 사이트 1위일 뿐이야. 여기서 좋아 죽겠다는 만족을 얻으면 안 돼.’
레벨 80. 이제야 간신히 ‘상위 플레이어’에 턱을 걸쳤을 뿐이다. 현재 랭킹 1위인 레이크의 레벨은 125. 한국 랭킹 1위인 루벡의 레벨은 107이다. 한국 1위와 세계 1위 사이에 거의 20이나 레벨의 차이가 난다.
그리고 라덴은 루벡보다 레벨이 27이나 낮다. 레벨 90이 넘는다면 그제야 한국 내에서 ‘랭커’라고 불릴 수 있게 된다. 그래봤자 세계 랭킹 100위 안에도 못 드는 레벨이지만.
‘레벨 80을 찍은 것은 좋지만, 여기서부터는 레벨을 올리는 것도 문제야.’
PK 관련 칭호 덕에 레벨 65부터 80까지 초고속으로 레벨을 올릴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다. 레벨업이 가능하기는 했지만 투기장에 투자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
‘그런 식으로 해 봐야 판타지아 때랑 똑같이 될 뿐이야.’
VP로 살 수 있는 무기는 뛰어난 편이지만, 언제까지고 VP 무기에 의존할 수는 없다. 아이템 파밍의 중요성은 판타지아 때에도 절감했다.
결국 레이드를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솔로 플레이로 해 볼까. 아니, 그것도 한계가 있다. 레벨 75의 인스턴트 던전 보스 몬스터인 크림슨 데몬을 쓰러트리면서 확실히 알았다.
‘레벨이 낮았을 때에는 레벨이 높은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도 어떻게든 싸울 수 있었어. 하지만 앞으로는… 힘들지.’
김현성이 여태까지 쓰러트렸던 보스 몬스터들은 몇 시즌 전의 보스들이다. 그때 활동하던 플레이어들에게는 끔찍하리만큼 강한 보스들이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당시 최상위 랭커라고 할 수 있던 레벨은 지금에 와서는 발할라 평균 레벨도 안 된다. 많은 아이템이 풀렸고, 만들어졌고, 타이틀이 공개되었다.
발할라 최상위 랭커였던 50 레벨. 그리고 지금 평균도 안 되는 50 레벨. 비교하자면 지금의 50 레벨이 훨씬 강한 것이다. 낮은 레벨 대를 위한 많은 아이템과 타이틀이 만들어졌으니까.
김현성 역시 그 덕을 보았다. 레벨을 아득히 뛰어넘은 추가 스탯과, 그를 완벽하게 움직이는 컨트롤. 그를 바탕으로 김현성은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보스 몬스터들을 쓰러트려왔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이야기가 다르다.
현재 김현성의 레벨은 80. 이 레벨 대의 보스들은 아직까지 현역이라 하기에 충분한 스펙을 가진 괴물들이다. 앞으로 한 반 년… 아니, 일 년이 흐른다면 또 모를 이야기지만. 지금 현역인 괴물을 솔로 플레이로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김현성의 아바타, 라덴의 스펙은 확실히 뛰어난 편이다. 장비 파밍을 제대로 하지도 않았는데 그의 아바타 스펙은 동 레벨의 다른 아바타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편이다. 거기에 김현성의 컨트롤 능력이라면 지금으로서도 상위 랭커들과 싸움이 가능하다.
사실 그것은 아바타 스펙을 떠나서, 김현성의 아바타인 ‘라덴’이 가진 고유특성인 양자택일 탓이 컸다. 무투가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주요 스탯인 힘과 민첩. 두 스탯 중 하나를 극단적으로 부풀리는 양자택일은, 김현성이 아니라면 컨트롤 할 수 없을 정도로 사용 난이도가 높은 특성이다.
‘레이드를 해야 돼.’
결국 그런 결론에 닿는다. 결국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했던 개고생들은 80레벨이라는 스타트 라인에 도달하기 위한 고생이었을 뿐이다. 아스가르드 투데이 베스트 1위? 의미 없다. 김현성은 의자를 뒤로 빼고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방 한 쪽에 놓인 캡슐을 바라보았다.
“기왕 하려면.”
김현성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캡슐로 다가갔다.
“랭킹 1위는 해야지.”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