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118
ⓒ 목마
도전-5
1월 14일에는 서울 전역에 폭설이 쏟아졌다. 크리스마스에도 오지 않았던 눈이 펑펑 내리면서 거리를 하얗게 물들였다.
눈이 오던 말던, 김현성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는 오늘 외출 계획을 전혀 잡아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오늘 뿐만이 아니라 최근 들어서 외출을 전혀 하지 않았다.
좋은 세상이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주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외출한 것이 언제더라 12월 24일, 이현지와 현실에서 만났을 때가 집 밖으로 나간 마지막 외출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김현성은 투덜거리면서 거울을 보고 섰다. 발할라를 시작하기 전의 김현성은 건실한 청년이었다. 학자금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하고, 친구들도 자주 만나러 다니고. 하지만 발할라를 시작하고서는…
학자금은 갚았고 계좌는 빵빵해졌지만, 친구들과의 연락은 대부분 끊어졌다. 김현성 쪽에서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것이다. 그나마 자주 연락이 되는 것은 박지석과, 서아인과, 얼마 전에 번호를 알게 된 이현지 정도.
“이쯤 되니 어느 쪽이 현실이고 가상현실인지 모르겠군.”
김현성은 투덜거리면서 앞머리를 손으로 털었다. 그러고 보니 미용실을 가지 않은지도 한참 되었다. 김현성은 덥수룩한 앞머리를 옆으로 넘기면서 화장실을 나왔다.
“…좋아.”
현실의 육체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방 청소도 깔끔하게 했고, 밥도 잘 먹었고, 목욕도 했다. 화장실도 다녀왔다.
‘중요한 날이니까.’
김현성은 가볍게 심호흡을 하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을 풀어줄 생각이었다. 현실의 몸을 푸는 것과 아바타의 상관관계는 그리 없지만, 단순히 기분 때문이었다.
외출도 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치고 김현성의 몸은 잘 단련되어 있었다. 스트레칭이나 가벼운 근력 운동은 매일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김현성의 몸은 캡슐 속에 누워 가상현실게임만 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하다.
‘이상할 정도로 말이지.’
날이 추운 겨울이 되면 김현성은 곧잘 감기에 걸리곤 했다. 앓아누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콧물이나 기침 감기 정도는 겨울마다 앓았었다. 하지만 이번 겨울에는 한 번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생활패턴은 규칙적으로 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렇다 쳐도 자고 일어나면 몸이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로 개운했다.
‘팔굽혀펴기 횟수도 늘었고.’
예전에는 한계숫자까지 하고나면 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한계숫자를 훌쩍 넘겨 해도 땀이 거의 흐르지 않는다. 몸을 일으킨 김현성은 자신의 팔을 내려 보았다. 근육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우락부락할 정도로 굵지는 않다.
“…이상하네. 약 같은 것 잘못 먹은 것도 아닌데…”
챙겨 먹는 약은 비타민 정도. 틈 날따마다 운동을 해둔 덕분일까. 김현성은 머리를 갸웃거리면서 시계를 확인했다. 슬슬 캡슐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었다.
토요일 오후 6시.
앞으로 한 시간 뒤에, 김현성은 일본의 랭커인 류가미와 싸우게 된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의 유저들이 이 일을 주목하고 있었다. 참관인으로 나선 것은 한국의 랭킹 1위인 루벡과 세계 랭킹 1위인 레이크. 루벡은 그렇다 쳐도, 레이크가 직접 참관인으로 나서기로 한 이상 류가미 쪽은 아무런 불만도 낼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랭킹 1위의 이름은 그만한 무게와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주 잘나셨어. 루벡이랑 언제 그렇게 친해지셨나 몰라] [많이 친해졌죠. 형 동생 하는 사이인 걸요.]라덴은 루아노스의 투덜거림을 받아 주면서 아바타를 체크했다. 상태는 만전이다. 레벨을 더 올리지는 못했지만, 라덴은 나흘 동안 레벨을 올리는 것보다 더 귀중한 경험을 겪었다.
[형 동생 이거 좀 불쾌한데요. 따지고 보면 루벡보다 나랑 더 먼저 알고 지냈잖아요. 그런데 나는 루아노스님이고 루벡은 형인가요] [어… 그러면 루아노스님도 저랑 누나 동생 할래요 루아노스 누나라고 부를 까요] […으으… 막상 그렇게 하는 것도 이상한데…] [그럼 누님으로 하죠. 루아노스 누님.]라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고, 그 말에 루아노스가 헛웃음을 흘렸다.
[차라리 누님이 낫네. 그래, 동생. 그냥 투덜대고 싶었을 뿐이야. 이번에는 내가 끼기에는 판이 너무 크기도 하고.]한국 랭커 3위가 끼어들기에는 스케일이 너무 커져 버렸다. 참관인으로 꼈다면 많은 주목을 받았겠지만… 루아노스는 입맛을 다시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시즌 던전 찾느라 바쁘기도 하고. 루벡 저 녀석은 시즌 던전 탐색 안 해도 관심수급이 쉽게 되지만, 나는 아니거든.] [누님도 고생이 많네요.] [나야 전 시즌에 성과를 거두었으니 이번 시즌은 쉬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우리 동맹께서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으시거든. 덕분에 끌려 다니느라 나만 고생이야. 넌 어때 이제 곧이잖아. 류가미랑 싸우는 것, 자신 있어] [누님은 나 누군지 알잖아요.] [잘 알지. 네가 6년 전에 스펙 차이 나는 레이크랑 싸워서 어떻게 발렸는지도 알고. 이번에도 그때랑 똑같이 되는 것 아니야] […농담도 참. 캐삭빵 하는 것도 아니니 지면 뭐 지는 것이고. 누님은 어떻게 생각해요 내가 질 것 같아요] [동생이 이긴다면 로망이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로망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 루벡 그 녀석은 로망이라면 환장해서 6년 전에도 네 승리를 지지했지만. 나는 6년 전에도 네가 패배할 것이라고 말했었지. 실제로 그렇게 되었고.] […누님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정신이 확 깨네. 누님 덕분에라도 이겨야겠는데요.] [해 봐. 이기면… 흐흥. 현실에서 데이트라도 한 번 해 줄 테니까.] [아니, 데이트는 필요 없는데…]빠득. 라덴의 중얼거림에 루아노스가 이를 갈았다.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속에서 끓는 울화를 식혔다.
[…이봐, 동생. 나 루아노스야. 연민서라고. 현실에서 나 만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아, 알았어요. 이기면 데이트, 어… 좋아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진즉에 그렇게 나와야지. 슬슬 끊을게. 너도 바쁠 것 아냐 곧 있으면 시작이니까.]루아노스의 말대로였다. 시간은 6시 20분. 30분부터 루벡이 만든 커스텀매치 방으로 들어가서 대기하기로 했으니, 지금부터 들어가 놔야 한다.
[아, 라덴님]루아노스와의 귓속말을 끄자마자 알케나에게서 귓속말이 도착했다. 투기장에 막 입장하려던 라덴은 멈칫하고 서서 알케나의 귓속말을 받았다.
[네.] [아… 연결됐구나. 혹시 제가 방해했나요] [아니, 괜찮아요. 아직 투기장 입장도 안했거든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미안해요. 짧게 말할게요.]중요한 일을 앞두고서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알케나는 잠깐 숨을 삼키더니, 진심을 담아 말했다.
[힘내세요.] […감사합니다.]라덴은 히죽 웃으면서 알케나의 격려에 답장했다. 나흘 동안 유성의 집에 머무르면서, 라덴은 정말… 복 날 개처럼 얻어맞았다. 창을 쥐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 싸움은 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지. 용사 일행이라더니… 강해도 너무 강했어.’
그런 유성조차도 악희를 상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움찔. 라덴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알라베스 산의 지하 봉인지에서 악희와 처음 마주했을 때의 공포가 다시 떠올랐다. 라덴은 떨리는 자신의 주먹을 내려 보았다.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했다.
‘…덕분에 신경은 굵어졌군.’
라덴은 주먹에 힘을 주어 떨림을 멈췄다. 그런 압도적인 공포를 한 번 겪어 보았기에, 지금 같은 상황에도 그리 긴장은 되지 않는다.
“…좋아.”
라덴은 쥐었던 주먹을 털면서 앞으로 발을 뻗었다. 투기장 입장. 한 달 넘게 틀어박혔던 투기장의 로비가 라덴의 눈에 담겼다. 라덴은 머뭇거림 없이 커스텀 매치에 접속, 친구 목록에 있는 루벡의 아이디를 통해 그가 개설해 놓은 매치 룸에 접속했다.
“왔군.”
커스텀 매치 룸의 로비에는 루벡과 레이크가 앉아 있었다. 둘은 평소 입는 갑옷이 아닌 깔끔한 슈트를 입고 있었다. 직접 PVP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참관인으로서 PVP를 지켜보기 때문이다. 라덴은 앉아 있는 루벡과 레이크를 향해 살짝 머리를 숙였다.
“지각한 것은 아니겠죠”
“아직 류가미는 오지도 않았어. 시간도 여유는 조금 있고. 덕분에 네가 오기 전까지 랭킹 1위님과 유익한 대화를 나누었지.”
“여태까지는 기회와 인연이 없어서 마주치지 못했으니까요.”
레이크가 빙그레 웃으면서 루벡의 말을 받았다. 한국 랭킹 1위와 세계 랭킹 1위. 같은 1위라고는 해도 루벡과 레이크 사이에는 까마득한 차이가 존재한다. 루벡은 레이크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판타지아 때도 그랬죠. 설마 이런 기회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은 몰랐지만.”
“라덴 덕분이죠. 이런 무대에 오르게 된 것도 라덴 덕분이고.”
레이크는 그렇게 말하면서 라덴을 바라보았다. 라덴은 여전히 레이크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제대로 가늠할 수가 없었다. 참관인을 자처했을 때, 레이크가 붙였던 이유는 단순히 ‘재미’ 뿐이었다.
“…레이크님이 참관인을 자처해주신 덕분에 판이 화려해졌어요. 덕분에 내 어깨의 무게도 무거워졌고요.”
라덴은 어깨를 손으로 주무르면서 말했다. 라덴과 류가미의 PVP는 6년 전에 있었던 레이크와 라덴의 PVP만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상황도 그때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이 싸움은 라덴에게 불리하다.
“레이크님에게 물어보죠. 내가 이길 것 같습니까”
“…보통의 경우라면 지는 것이 당연하죠. 레벨의 차이도 있고 장비의 차이도 있으니까. 하지만…”
레이크는 잠깐 말을 멈췄다. 그는 가늘게 뜬 눈으로 라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6년 전의 나는 라덴과 비교해서 많은 것에서 우위에 서있었습니다. 장비와 직업이죠. 6년 전에 나는 성기사였고, 라덴은 무투가였습니다. 그 직업 차이와 더불어 장비 차이까지 심했으니, 라덴은 나를 쓰러트릴만한 데미지를 줄 수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직업이 똑같죠.”
루벡이 말을 받았다.
“네. 장비의 차이, 레벨의 차이. 하지만 직업은 똑같습니다. 똑같은 무투가. 스킬의 차이는 있겠지만, ‘고유 특성’이라는 변수도 존재하죠. 초 근접거리에서 공방과 회피를 주고받는 무투가의 싸움. 솔직히 말해서 나는… 류가미가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유 특성만이 변수가 아니잖아요”
레이크의 말을 들은 라덴이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그는 양 손을 활짝 펼쳐서 레이크의 앞에 펼쳐 보였다.
“초 근접거리에서 공방과 회피를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 무투가의 싸움. 그 상황에서 변수는 고유 특성만이 아니에요. 그 거리에서의 싸움은 결국 ‘손싸움’이 됩니다. 누구의 컨트롤이 더 좋은가, 누구의 반응이 더 늦은가.”
“…아바타의 반응 속도는 레벨과 민첩 스탯에 비례합니다. 라덴. 당신은… 당신보다 레벨이 30은 높고, 그만큼 좋은 장비를 착용해서… 당연히 그만큼의 민첩 스탯을 가진 류가미를 반응 속도로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예스.”
라덴이 대답했다.
“후달렸으면 노 패널티로 싸우자고 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나는 자신이 있고, 자신이 있으니까 싸우자고 한 겁니다. 이만큼 판을 벌렸는데 질 것이 뻔한 싸움을 왜 하려 들겠어요 쪽팔리게. 많은 관객 앞에서 져서 쪽팔림을 당하는 것은 6년 전 한 번으로 족해요.”
[류가미님이 입장했습니다!]시스템 알림이 울렸다. 라덴은 매치 룸의 입구 쪽을 보았다. 날렵한 경갑을 입은 류가미가 걸어오고 있었다. 라덴은 얼굴에 쓴 가면을 손으로 꾹 누르면서 낮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이길 수 있겠다 싶어서 싸우자고 한 거라고요.”
도전-5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