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67
“…이길 수 있는 거지?”
루블라가 백작가와의 연락을 위해 레스토랑을 나가고. 잠자코 입을 닫고 있던 루아노스가 라덴을 노려보면서 물었다. 식전으로 나온 빵을 스프에 적시고 있던 라덴이 루아노스를 올려 보았다.
“이길 수 있으니까 하자고 했죠.”
“너무 무리한 조건인 것 아니야?”
루아노스가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물었다. 아직 그녀는 식전 빵에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날 위해서 그런 무리한 조건을 건 것이라면. 나는 상관없으니까…”
“누님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날 위해서죠. 나도 사람이라서, 면전에서 내 여자친구가 욕을 먹으면 화가 난다고요.”
라덴이 루아노스를 향해 빵을 내밀었다. 루아노스는 입술 앞으로 다가 온 빵을 보고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안 먹고 있어요? 맛있는데.”
“…너 같으면 먹고 싶겠어? 그 계집애, 하는 말 좀 봐. 결투에서 지면 자기랑 교제하자잖아!”
“그런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그래서, 이거 안 먹을 거예요?”
라덴이 히죽 웃으며 묻자, 루아노스는 삐죽 내밀고 있던 입술을 열어 빵을 받아먹었다. 입술을 오물거리면서 빵을 씹어 넘긴 루아노스가 내뱉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내 앞에서 폼 잡고 싶어서 그러는 거면…”
“아니라니까. 그냥 내가 기분 나빠서 그런 거라고요.”
“…차라리 내가 결투할까? 나, 그래도 한국 랭킹 3위인데. 어지간한 녀석이면 나도 잡을 수 있단 말이야.”
“이미 제가 결투하기로 했잖아요. 누님은 그냥 구경이나 하고 있어요.”
루아노스는 입술을 뻐끔거리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불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자신의 남자친구가, 자신을 위해서 나서주는 것 아닌가.
“…믿어도 돼?”
“그럼. 안 믿을 거에요?”
웃으면서 되묻는 얼굴은 영 미덥지 못하게 보였다.
코스의 마지막으로 나온 샤벳을 다 먹었을 때에 루블라가 돌아왔다. 3층으로 올라 온 루블라의 등 뒤에는 갑옷을 입은 중년의 기사가 서있었다. 라덴의 테이블로 다가 온 루블라가 라덴을 향해 웃으며 물었다.
“식사는 다 끝내셨나요?”
“네.”
라덴은 스푼을 내려놓으면서 대답했다. 루블라는 미소를 지으면서 루아노스를 힐긋 보았다.
“더 기다려 드릴까요?”
“아뇨, 지금 바로 하죠.”
라덴은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루아노스는 뚱한 얼굴로 루블라를 노려보다가 라덴을 따라 일어섰다.
“레스토랑의 오너에게 뒤뜰을 빌리겠다고 이미 이야기를 해 두었어요. 자, 가시죠.”
루블라는 자신이 넘쳐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눈을 감고, 양 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 상태에서 3분 동안 공격까지 하지 않는다. 이런 조건이니 자신감이 넘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루블라가 데리고 온 기사는, 그녀의 아버지인 제페르 백작이 데리고 있는 기사들 중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기사다. 어느 귀족가의 기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단 말이다.
“…아가씨.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먼저 계단을 내려가던 중에, 제페르 백작가의 기사인 코브가 루블라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제페르 백작은 이번 일을 알지 못한다. 저택으로 돌아 온 루블라가 멋대로 코브를 데리고 나온 것 뿐이다.
“설마 자신이 없어서 그래? 양 손도 쓰지 않고, 눈을 감는다고 하잖아. 3분 동안 공격도 하지 않는다고 했고. 설마 그런 상대에게 공격 한 번 성공하지 못한다는 거야?”
루블라가 앞을 보면서 물었다. 코브는 입술을 다물었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이다. 코브 본인도 생각은 그렇게 했다. 로얄 나이트의 단장을 쓰러트렸다고는 하나… 이번 조건은 말이 안 된다. 라덴 백작의 자신감이 너무 과했다.
“…자신이 없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저런 조건이라면 제 종자가 검을 들어도 승리할 겁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없잖아. 코브 경. 나는 경을 믿고 있어.”
“하지만 백작님이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런 일에 일일이 아버님의 허락을 구할 필요는 없잖아?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아버님도 기뻐하실 거야. 그 라덴 백작과 정식으로 교제 관계가 되는 것이니까.”
루블라는 들뜬 목소리로 말하면서 뒤를 힐긋 돌아보았다. 긴장 없는 얼굴을 하고서 내려오는 라덴의 눈과 루블라의 눈이 마주쳤다. 외모는 저 정도면 합격이다. 사실 저 정도의 배경이라면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 알크레토 후작과 드루고라 공작과 연결되어 있고, 제국 제일의 기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플레이어라는 점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흠.”
뒤뜰로 나온 라덴은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한쪽에는 미리 나와 있던 프로메토 남작과 다른 귀족들이 보였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위를 올려보니, 레스토랑의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 보는 귀족들이 보였다. 그들도 이번 일에 큰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눈을 가려야 하는데. 혹시 붕대 가지고 계신 분?”
“제가 준비했어요.”
루블라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녀는 코브에게 눈짓을 보냈다. 코브가 두꺼운 붕대를 라덴에게 건네주었다.
“양 팔은 묶지 않겠습니다. 뭐, 어차피 안 쓸거니까요. 눈은 가리고, 3분 동안 공격하지 않는 것. 이것이 조건이었죠?”
라덴은 그렇게 말하면서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는 장비 아이템으로 갈아입고서 양 손을 들어 눈가에 붕대를 감았다.
판테온이 말을 걸었다.
‘아까는 조용하더니. 뭐야?’
[나라고 해서 항상 깨있는 것은 아닐세. 만약 그랬다면… 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란 말인가! 항상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나는 지루함에 미쳐버렸을 거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나는 내 스스로 의식을 봉인할 수 있다네. 쉽게 말하자면 잠을 자는 것이지.]
판테온이 으스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라덴은 눈가에 붕대를 단단히 감았다.
[그런데 자네. 지금 도대체 무슨 촌극을 벌이려는 것인가?] ‘저쪽 귀족 영애께서 내 여자친구를 모욕했거든.’[…여자친구…? 어디? 자네의 여자 친구가 어디에 있나?]
역시나. 판테온이 관심을 보였다.
‘내 뒤쪽에. 보여? 목에 문신이 있는.’
[흠, 흐으음… 오오오… 자네의 상판과는 어울리지 않는, 참으로 아리따운 아가씨 아닌가! 특히나 저 흉부의 흉측한 두 개의 덩어리가 몹시나 파렴치하군. 옷 위로도 알 수 있는 저 파렴치함이라니…]
‘이 개새끼가 남의 여자친구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허, 흑심이 있어 하는 말이 아닌 엄격한 평가일 뿐일세. 그래서. 눈 가리고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가?]
라덴은 굳이 설명해주지 않았다.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아도, 어차피 알게 될 테니까.
붕대로 눈을 가린 라덴은 양 손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준비 됐습니다.”
“…흐흠.”
코브가 헛기침을 하면서 앞으로 나섰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의 결투. 코브는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는 기사였기에, 저런 과한 패널티를 안은 상대와 결투한다는 것은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제국 제일의 기사.’
코브는 검을 뽑았다. 저런 상태라고 해도, 상대를 얕잡아 볼 생각은 없다. 상대는 그 로얄 나이트의 단장을 쓰러트린 장본인 아닌가. 그러니 신중하게, 최선을 다한다.
결투가 시작되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당연히 코브였다. 그는 라덴을 향해 달려들면서 검을 크게 휘둘렀다. 진검이다. 저런 무방비의 상대를 향해 휘두르기에는 너무한 공격이었지만, 상대는 플레이어다. 죽여도 문제는 없다.
맞는다면, 의 이야기다.
사실 이 조건은 라덴에게는 크게 어려운 조건이 아니다. 라덴에게는 사역마의 보호 스킬이 붙어 있는 흑익 무르시엘라고가 있다. 만약에 코브가 라덴보다 레벨이 높다고 하여도, 만신전 스킬로 무르시엘라고를 강화한다면 코브의 공격을 가만히 서서 막아낼 수 있다.
하지만 라덴은 무르시엘라고를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착용조차 하지 않았다. 현재 무르시엘라고는 라덴의 인벤토리 안에 얌전히 박혀 있다.
무르시엘라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살기에 포착되었습니다!]라덴에게는 살기를 읽어내는 포식감지 스킬이 있다. 이 스킬을 통해서, 라덴은 눈을 감고도 상대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다. 포식감지 뿐만이 아니다. 라덴은 감각을 활짝 열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느낀다. 소리가 들린다.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 잘려진 바람이 날아와 피부를 때린다. 코브의 발소리가 들린다. 라덴의 발이 슬쩍 뒤로 밀려났다.
쌔애액! 코브가 크게 휘두른 검이 라덴의 바로 앞을 베어냈다. 코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피했다? 눈은 확실히 가렸는데? 아니, 너무 뻔하게 휘둘렀나. 진지하게,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저런 상태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얕잡아 본 모양이다.
코브는 양 손으로 검을 잡았다. 뻔하게 휘둘렀으니 간파된 것이다. 그렇다면 변칙을 섞는다. 코브의 손목이 움직였다. 파바바박! 수십 개로 분영한 참격이 라덴의 몸을 덮쳤다. 라덴은 호흡을 멈추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숫자를 셌다.
라덴의 몸이 갈대처럼 흔들렸다. 중심이 자유자재로 바뀐다. 발의 위치가 바뀐다. 발뒤꿈치를 들고, 혹은 내리고. 끌거나 밀고. 발목을 기울이고. 허리를 비틀거나 꺾어, 옆으로 눕히고, 젖히고, 바로 서고. 어깨의 위치. 올리거나 내린다. 척추의 방향 역시.
스치지도 않는다. 닿지도 않는다. 코브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면적을 넓게 하여 베어내는 것이 닿지 않는다. 왜? 속도가 부족해? 검을 잡은 손의 모양이 바뀐다. 번개 같은 찌르기가 터진다.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몇 십 번의 찌르기가 라덴을 꿰뚫으려 들었다.
하지만 닿지 않는다. 그것은 기묘한 광경이었다. 양 팔을 축 늘어트리고, 두 눈은 붕대로 감은 남자가… 살벌한 칼부림을 모조리 피해내고 있다. ‘종이 한 장 차이.’ 그 말이 딱 맞았다. 코브의 검은 정말로 종이 한 장 차이로 라덴의 몸에 닿지 못하고 있었다.
[멋지군!]라덴의 머릿속에서 판테온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는 라덴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듀랜드와의 싸움 때에도 그랬지만, 자신의 주인은… 싸움에 있어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공격을 간파하고 대처하는 것. 방어, 회피, 반격. 나무랄 곳이 없다. 2년도 안 되는 시간에 이 정도의 강함을 만들어 내다니.
천재. 판테온은 라덴을 그렇게 평가했다.
시간은 흐른다. 루블라의 표정은 하얗게 질려갔고, 프로메토나 다른 귀족들의 얼굴에는 감탄이 어렸다. 창가를 통해 결투를 내려 보던 귀족들도 탄성을 내뱉었다. 그럴수록 코브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그는 이미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아니, 전력 이상의 실력을 내보이고 있다. 당연한 것이다. 공격하지 않는 상대를 마음껏 공격하는 것이다. 평소보다 더한 힘을 내고 있단 말이다.
“…120.”
라덴이 중얼거렸다. 코브가 휘두른 검이 라덴의 가슴을 아슬하게 비껴간 순간이었다.
“60초 남았어요.”
“크윽!”
라덴의 중얼거림에 코브가 입술을 씹었다. 그는 양 손으로 검을 잡고서 막무가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변칙도 안 되고 정공도 안 된다. 그렇다면 그냥 마구잡이로 휘둘러본다. 딱히 방향은 의식하지 않는다.
“으아아아아!”
상대를 동요시키기 위해 커다란 고함도 질렀다. 하지만 무의미했다. 코브의 검은… 라덴의 몸에 닿지 않았다.
“180.”
정확히 일분이 지났을 때. 라덴이 중얼거렸다. 코브의 얼굴이 굳었다. 이미 그 순간에 코브의 검은 라덴의 허리로 날아가고 있었다. 타악! 라덴의 발이 땅을 찍었다. 그것을 축으로 삼아 라덴의 몸이 빙글 돌았고, 코브의 검이 라덴의 허리에 닿으려는 순간.
라덴의 발이 코브의 가슴을 걷어 찼다. 꽈아아앙! 커다란 소리와 함께 코브의 몸이 땅을 뒹굴었다. 철제 갑옷은 가슴덮개가 박살났고, 코브는 컥컥거리며 피를 토했다. 호신강기를 꺼낼 틈도 없이 펼쳐진 공격이었다. 라덴은 뻗은 발을 아래로 내리면서 손을 들어 붕대를 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라덴은 뒤로 넘어가 쓰러져 있는 코브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머뭇거림없이 루블라를 돌아 보았다. 입을 반쯤 벌리고 있던 루블라는,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제가 이겼네요.”
“아… 으… 그… 그게…”
루블라가 더듬거리며 무어라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라덴은 루블라의 말을 듣지 않았다. 라덴은 루아노스를 힐긋 보았다.
“누님. 어쩌실래요?”
“…어, 응…”
루아노스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설마 이렇게, 아무런 위기감없이 결투에서 승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괴물 아니야…?’
뭔가 속임수를 펼친 것일까? 어쌔신인 루아노스는 눈썰미가 좋은 편이다. 하지만 루아노스는 라덴이 속임수를 썼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냥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으로.”
루아노스는 루블라를 힐긋 보면서 말했다. 더한 것을 요구해볼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루아노는 그런 마음을 접었다. 자신이 여기서 괜히 저 여자 귀족의 자존심을 강하게 짓밟았다가, 라덴에게 피해가 가는 것이 아닐까 걱정한 것이다.
“들으셨죠?”
라덴은 루블라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제 여자친구에게 사과하세요. 머리숙여서, 미안하다고.”
루블라가 울상을 지었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