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39
039/ 카할-2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카할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아카이드 숲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는 이 괴물은, 상대하기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다.
게다가 이 몬스터는 굉장히 호전적이다. 준비 없이 마주친다면 사형선고를 당한 꼴이다. 명예의 전당에 올라 온 카할 토벌의 최고 기록이 55레벨 플레이어 4인 파티였고, 그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크륵!”
카할의 입에서 짐승의 울음이 새어나왔다. 긴 팔을 아래로 늘어트린 카할은, 방금 전의 ‘인사’가 노렸던 인간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았다.
반응이 좋다. 빠르다. 그것을 알아차린 카할의 주둥이에서 낮은 울음이 연신 튀어나왔다. 크륵거리는 그 소리는 웃음이었다.
“까득!”
라덴은 이를 갈면서 몸을 일으켰다. 흙먼지 속에서 두 개의 붉은 눈이 번뜩거리는 것이 보였다. 괴물새끼! 라덴은 몸을 일으킨 즉시 자세를 잡았다.
‘아니, 괴물 맞잖아.’
그런 실없는 생각을 즐기는 것도 잠깐이다. 화악! 피어오른 흙먼지가 카할의 손짓에 날아갔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마냥 움푹 파인 땅 뒤에 선 카할은, 붉은 눈을 번뜩거리면서 라덴을 보았다.
‘못 이길 것 같은데..’
피부가 저릿거릴 정도의 강한 살기가 다가온다. 라덴은 꿀꺽 침을 삼키면서 호령환의 손톱과 발톱을 꺼냈다. 광란중첩은? 3, 아직 초기화되지 않았다.
‘지금 내 스펙은 40 정도. 광란중첩을 5까지 올리고, 허허실실에 기공술을 쓰면서 공격력 버프를 걸어도.. 높아 봐야 50인가.’
라덴은 뿌득 이를 갈았다. 레벨이 턱없이 부족하다. 카할. 아카이드 숲의 최상위 포식자. 호전적인 보스 몬스터.
상황은 절망적이다. 놈은 라덴보다 압도적으로 빠르고, 압도적으로 힘이 세고, 압도적으로 체력이 높다. 그나마 긍정적인 생각을 해 볼까. 라덴의 발이 바닥을 끌었다.
‘인간형.’
키는 3미터 정도. 늑대에 원숭이를 섞은 모습이고, 팔이 길다. 손발도 큼직한데 길쭉한 손톱과 발톱이 구부러져 갈고리 같다.
‘팔이 길다. 손이 크다. 발이 크다. 손톱과 발톱도 길다.. 나보다 리치는 못해도 3배. 어쩌면 4배까지.’
거리를 벌리면 안 된다.
‘그렇다면 바짝 붙어서? 내 공격이 놈에게 유효할까. 유효한다고 쳐도, 체력이 너무 많아. 내 공격력이 아무리 높아봤자 카할의 체력을 0으로 만들려면.. 못해도 한 시간은 두들겨 패야 돼.’
공격력의 차이가 너무 크다. 카할에게 제대로 한 대 맞는다면 라덴의 체력은 일격으로 빈사에 빠질 것이다.
‘히트 앤 런? 안 돼. 속도 차이가 너무 나. 그렇다면 반격 위주로.. 실수 한 번 하면 죽는데? 그냥 튈까.. 아니, 잡힌다. 로그아웃은? 전투 중에 로그아웃은 불가능 해. 그러면 어떻게 하지?’
쿠웅. 카할의 발이 바닥을 찍었다. 라덴은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어느새 카할은 라덴의 바로 앞으로 다가 와 있었다. 놈은 눈을 크게 뜨고서 라덴을 노려 보았고, 그 붉은 눈에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서 라덴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
유의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했던 말이다. 과연, 그 말대로야. 실제로 생각에 빠져 있다가 카할의 움직임에 대응도 하지 못했잖아. 놈이 발소리 내는 대신에 덤벼들었다면..
“이거 기분 엿같네.”
라덴은 눈썹을 잔뜩 일그러트리면서 중얼거렸다. 뚜둑. 옆으로 꺾은 목에서 소리가 났다.
“나 봐준 거냐?”
속이 부글거리며 끓었다. 라덴이 생각에 빠졌을 때, 카할은 라덴을 공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놈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쪽을 보란 듯이 크게 발을 굴려 소리를 냈다.
봐준 것이다. 라덴의 양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잡생각 치워. 나는 생각이 많으니까. 라덴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저 늑대 원숭이 새끼를 패는 거야. 그래, 그게 전부라고. 철컥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호령환의 손톱이 굽혀졌다.
“까짓, 뒈지면 뒈지는 거지.”
그러니까 쫄지 말고,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라덴의 발이 땅을 박찼다. 라덴의 장기는 근접전이다. 주먹과 발이 오가는 거리, 그 거리에서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이 판타지아 투기장에 군림하던 투왕, 라덴이었다.
‘리즈 시절이었지.’
지금은? 라덴의 접근에 카할이 크륵거리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튀어나간 라덴은 활짝 열린 카할의 가슴에 주먹을 뻗었다.
준비동작 없이 뻗어낼 수 있는 주먹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은 대호격타다. 호왕진산이나 철산포는 위력이 큰 만큼 동작이 크다.
대호격타에서 파생된 스킬은 파쇄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이 아주 똑같은 스킬은 아니다. 대호격타는 크게 밀어서 때리고, 파쇄권은 바짝 붙어서 끊어 때린다. 마찬가지로 철산포와 호왕진산도 다르다. 호왕진산은 기본적으로는 땅을 발로 찍어 구르는 스킬이지만, 주먹으로도쓸 수 있다.
철산포와 호왕진산의 차이는 준비 시간이다. 철산포는 호왕진산보다 동작이 작다. 하지만 호왕진산은 준비동작도 크고, 힘을 모으는 시간도 필요하다.
‘이 경우에선 대호격타가 맞아.’
스킬에 대한 이해는 확실히 하고 있다. 지금 순간, 이런 접근에서 쓰기 좋은 것은 대호격타다. 꽈아앙! 내지른 주먹이 카할의 가슴을 갈겼다. 카할의 발이 붕 떠올랐다.
‘들어갔어!’
거기서 몸을 더 바짝 붙인다. 허리에 붙인 주먹이 초근접에서 뻗어진다. 파쇄권이 들어갔다. 다시 한 번, 라덴은 공격이 들어갔다는 감촉을 느꼈다.
붕 떠올랐던 카할의 발이 땅에 닿는다. 데미지는? 라덴의 눈이 카할을 올려 보았다. 동그랗게 뜬 카할의 눈이 아래로 내려지고, 라덴과 눈이 마주쳤다.
“니미.”
카할의 무릎이 들린다. 근접에서 갈기는 니킥. 피할 수 있나? 아니, 막아야 해. 라덴은 발 뒤꿈치를 들었다. 상체를 아래로 굽히고, 충격에 쿠션으로 쓰기 위해 양 팔을 거리를 두고서 포개고..
ㅡ콰아앙! 몸에 구멍이 뚫리는 것 같았다. 들어올린 발이 붕 떠오르고, 무릎에 그대로 얻어 맞은 양 팔이 박살난다. 무슨 데미지가..! 공중으로 날아가면서, 라덴은 자신의 체력 게이지를 확인했다.
최대한 데미지를 줄이기 위해 자세를 취했고, 방어에도 성공했는데. 체력의 절반이 날아가 있었다. 붕 떠오른 라덴은 발을 허우적거리면서 땅으로 떨어지려 했지만,
카할이 쫓는 것이 더 빨랐다. 공중으로 도약한 카할이 허공에서 허리를 비틀었다. 발! 라덴은 최대한 허리를 뒤로 젖혔다. 쐐액! 포탄처럼 쏘아진 킥이 허공을 꿰뚫었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고, 그 풍압에 라덴의 몸이 빙글 돌았다.
“이..!”
공중에서 반격은 힘들다. 라덴에게 날개는 없으니까. 콰당탕! 땅으로 떨어진 라덴은 바닥을 구르면서 바로 몸을 일으켰다. 날개가 없는 것은 카할도 똑같다. 가볍게 땅에 내려서는 카할을 향해 라덴이 달렸다.
대호격타와 파쇄권은 제대로 들어갔지만, 그렇다 싶은 데미지를 주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지? 무겁지 않고, 가볍게. 그런 연타로 노선을 바꾼다. 호령환의 손톱이 쏘아졌다.
카가각! 크게 휘두른 손톱이 카할의 등을 긁는다. 손톱으로 긁기는 했는데, 제대로 박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첫 타격에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라덴의 허리가 옆으로 돌았다.
맹호박투가 시작되었다. 호흡을 삼킨다. 연타의 시작은 무호흡.
아니, 호흡을 끊는다. 툭, 툭 끊어 뱉는 호흡이 곧 연타가 된다. 주먹이, 손등이, 손톱이. 연타라고 해서 주먹으로만 때리는 것은 아니다.
틈이 보인다면, 그 틈을 비집을 수 있는 공격을 넣는다. 속도가 오르고 타격은 무겁게, 연타를 거듭할수록 그렇게 변한다. 카할이 몸을 돌리기까지 들어간 연타는 10, 부족하다. 때린다는 느낌은 있는데 데미지를 준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실제로 그랬다. 빙글 몸을 돌린 카할은 라덴의 연타 속에서도 비명 하나 지르지 않았다. 고통이 제한되는 플레이어도 아닌데.
‘얕아?’
이게? 이렇게 때리고 있는데? 중첩이 부족하나? 머릿속에서 알림이 울린다. 광란 중첩이 4가 되었다. 그만큼 타격의 데미지와 속도가 오른다. 맹호박투도 멈추지 않고 이어 때리고 있으니, 그만큼 중첩되어 데미지와 속도가 오른다.
그럼에도 데미지를 줄 수 없다. 아니, 데미지는 때리는 만큼 들어가겠지만..
‘체력이 너무 높다 보니까 표도 안 나.’
연타를 맞으면서 카할의 주먹이 들린다. 막는 건 안 돼. 유혈 특성으로도 체력 수급이 잘 되지 않는다. 피도 흐르지 않고, 타격으로 체력을 수급하고는 있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막아봤자 방어를 뚫고 데미지가 들어오는 것을 확인했으니,
‘여기서 해야 될 건.’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카할의 허리가 뒤로 젖혀졌다. 놈의 공격은 동작이 커. 몸이 큰 만큼. 어떻게 때릴까? 일직선으로? 아니면 꺾어서? 그도 아니면..
‘찍기!’
파리를 잡는 것처럼. 활짝 펼친 카할의 손이 라덴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파악했다. 그 다음은? 타이밍, 라덴의 발이 뒤로 끌렸다.
공격을 피하고서, 그 즉시 때린다. 라덴이 가지고 있는 스킬인 ‘반격’은 성공했을 때 추가 데미지를 주는 스킬이다.
라덴의 주먹이 카할의 턱을 올려 쳤다.
‘들어갔다.’
확실히 감촉이 왔다. 반격도 들어갔고, 맹호격타를 이어서 때린 것이라 중첩 데미지도 들어갔다. 게다가 공격이 들어간 각도도 좋았고, 타이밍도 좋았다.
완벽하다고 싶을 정도로.
확신은 유효했다. 카할의 발이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거구가 휘청거렸다. 틈. 라덴의 상체가 크게 뒤로 젖혀졌다. 꽉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호왕진산. 내지른 주먹이 카할의 복부에 꽂혔다.
“커헝!”
카할의 입에서 울음이 튀어나왔다. 때린 주먹이 박살날 것처럼 욱신거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대쪽 주먹을 들고,
이번에는 철산포. 호왕진산이 들어간 위치에 정확하게 철산포가 꽂혔다. 카할의 몸이 휘청거리며 뒤로 넘어갔다.
쿠웅. 엉덩방아를 찧은 카할이 켁켁거리는 숨을 토했다. 다시 호흡을 삼킨다. 휘두른 주먹이 카할의 머리를 갈겼다. 놈의 머리가 옆으로 돌아가고, 반대쪽에서 휘두른 주먹이 다시 카할의 머리를 갈긴다.
연타, 연타. 정신이 하얗게 물든다. 때린다는 행위만 미친 듯이 반복한다. 얼마나 때렸을까?
“커허어엉!”
카할이 울음을 토했다. 콰득! 크게 벌린 입이 라덴의 팔을 물어뜯는다. 아니, 물어뜯지 못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손을 빼는 것에 성공했다. 카할의 흰색 털이 바늘처럼 빳빳하게 곤두선다.
튕기듯 몸을 일으킨 카할의 손이 크게 휘둘러졌다. 눈을 부릅 뜬 라덴은 놈이 팔을 휘두른 궤적 아래로 파고 들었다. 여기서 옆구리를..
“읍!”
카할의 반대쪽 손이 라덴의 배를 때렸다. 라덴은 피를 토하면서 뒤로 날아갔다. 머릿속에서 시끄러운 알람이 울렸다. 라덴은 신음을 흘리면서 상체를 일으키려 했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상체가 들리지 않았다.
“제기랄.”
그럴 수밖에. 옆구리부터 해서 배가 아예 날아가 있었으니까. 모자이크가 덮힌 배를 보면서 라덴은 자조섞인 웃음을 흘렸다.
“역시 안 되네.”
될 줄 알았는데. 라덴은 투덜거리면서 상처를 손으로 감쌌다. 체력이 쭉쭉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카할이 거친 숨을 토하면서 라덴에게 다가왔다.
“..아, 나 진짜.. 재수가 없어서.”
여기서 끝이군. 이 정도면 꽤 분전했지. 라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다음에 보자.”
라덴의 앞에 다가 온 카할이 크게 입을 벌렸다. 라덴은 가까이 다가오는 카할의 입과, 그 안에 있는 날카로운 이빨과, 역한 짐승의 냄새를 맡으며 미간을 찡그렸다.
“이 개새끼야.”
발할라를 시작하고서 첫 번째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