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60
거기서 잠깐.
라덴은 호흡을 잊었다. 삼키고 뱉는,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는 그 호흡을 망각했다. 라덴은 자신도 모르게 벌리고 있던 입을 닫고,
“뭐라고요?”
그렇게 되물었다. 졸코트 발레르. 발레르 패밀리의 주인이자, 카타레나 발레르의 아버지. 라덴은 꿀꺽 침을 삼켰다.
“..나보고 졸코트 발레르를 죽이라고?”
“응.”
카타레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에 라덴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앉고 있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서 머리를 젖혀 천장을 보았다.
‘과연. 루카스가 퀘스트를 포기할 만도 해.’
졸코트 발레르는 거물이다. 알제른의 어둠을 장악한 발레르 패밀리의 주인. 쉽게 말하자면 마피아 보스란 말이다. 그런 졸코트 발레르를 죽여라.
당시에 루카스가 퀘스트를 받았을 때의 레벨은 높아 봐야 30 즈음이었을 것이다. 그야, 불가능할 수밖에. 레벨이 30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물인 졸코트 발레르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라덴도 마찬가지다.
Name: 라덴
LV. 52
Title: 짐승의 마왕
백호의 호랑이
무도가
고독한 사냥꾼
아카이드 숲의 고독한 정복자
뱀파이어 헌터
신출내기 영웅
솔플러
Race: 인간
Sex: 남성
힘 168(+107) 민첩 80(+81) 지력 10(+41) 체력 82(+56) 마력 10(+53).
현재 라덴의 레벨은 52. 칭호와 아이템의 추가 스탯을 감안한다면 굉장히 높은 레벨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졸코트 발레르를 죽이는 것은 힘들다. 아니, 죽이는 것 자체는 어떻게든 될 지라도..
“뒷수습은?”
우선, 라덴은 그것을 물었다. 졸코트 발레르를 죽였을 때에 뒷수습. 발레르 패밀리의 주인인 졸코트 발레르를 죽이는 것에 성공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뒤는?
“내가 전부 뒤집어 쓰는 것 아닙니까? 발레르 패밀리의 추적이라도 받게 된다면..
“아버지가 죽는다면 발레르 패밀리의 주인은 내가 돼.”
카타레나가 곧바로 대답했다. 그녀는 시가를 입에 물고서 천천히 담배를 피웠다. 라덴은 말을 끄는 카타레나를 보면서 눈을 찡그렸다.
“계속하시죠.”
“이후의 일은 네가 생각할 필요는 없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좋아요. 카타레나 아가씨. 뒷수습은 맡겨도 된다 칩시다. 그런데, 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려 하는 겁니까?”
“죽이고 싶으니까 죽이는 것뿐이야. 내 아버지는 쓰레기고, 오물이거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 아버지가 나를 품은 것은 내가 8살 때였지.”
카타레나가 라덴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카타레나는 무덤덤한 얼굴로 그것을 말했고, 라덴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내 아버지는 부녀지간의 정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거든. 내가 8살이 되었을 때, 내가 아직 초경도 하지 않았을 때 말이야. 나는 아프다고 울었지만, 아버지는 우는 내 얼굴을 양 손으로 쓸어내리면서.. 자기가 선물해 준 인형이 보는 앞에서.”
귀가 썩는 것 같았다.
“이후로는 습관처럼 아버지는 나를 안았지. 나이를 먹는다는 것. 몸이 커진다는 것. 그것은 몸이 튼튼해진다는 것과 똑같잖아? 그만큼 아버지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강요했어. 그래, 흔히들 플레이라고 하지?”
카타레나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녀는 소매를 감싸고 있던 셔츠의 단추를 풀더니 소매를 걷어 올렸다.
“여덟 번이야.”
“..무슨..”
“내가 자살을 시도한 횟수 말이야. 모두 실패해버렸지만. 네 번은 손목을 그었고, 두 번은 목을 매달았고.. 두 번은 추락했지. 그런데, 나는 쓸데없이 운이 좋아서 말이야. 쭉 살아남았어. 회복 포션의 성능이 너무 좋기도 했고.”
계속해 볼까? 카타레나가 웃었다.
“이 별채는 나를 가두는 감옥이야.”
아버지가 자주 찾는 창녀촌이기도 하고. 라덴은 소리내어 웃는 카타레나를 보면서 입술을 잘근 씹었다. 한참을 웃던 카타레나는 시가를 들어 재떨이에 지져 꺼버렸다.
“이 정도면 친 아버지를 죽일 이유로 충분하지 않나?”
“몇 가지 묻죠.”
라덴은 가슴의 동요를 진정시켰다. 그는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카타레나를 노려보았다.
“당신 스스로 졸코트 발레를 죽이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은 겁니까?”
“무슨 뜻이지?”
“당신은 제법 사랑받는 것 같던데요. 이 별채에 있는 메이드들만 해도..”
“발레르 패밀리에 소속된 자는 내 아버지를 죽일 수 없어.”
“예?”
“간단한 마법이야. 충성을 얻어내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고. 별채의 메이드가 내 아버지를 죽이려 든다면, 내 아버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으로 그 메이드의 심장을 터트릴 수 있어. 메이드 뿐만이 아니라 발레르 패밀리에 소속된 모든 마피아들이 그렇지.”
결국 다른 사람을 끌고 올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발레르 패밀리의 일원이 아니면서, 카타레나의 말을 들어 움직일 수 있는 누군가를. 그리고 이 경우에서 카타레나의 비수가 되어 줄 누군가가 바로 라덴이었다.
“..정보가 필요해요.”
라덴은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포기할 것인가, 수행할 것인가. 그 둘 가운데에서 라덴은 일단 정보를 요구했다.
“졸코트 발레르에 대한 모든 정보. 졸코트는 어떤 인간입니까? 졸코트는 강합니까? 아, 이 경우에서 강함은 졸코트 개인이 가진 무력을 말하는 겁니다.”
“내 아버지는 마법사도 아니고 무투가도 아니고 검사도 아니야. 벨코브를 혼자서 잡았다면, 네 실력으로는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그렇다면 문제는 졸코트가 아닌 졸코트 주변에 있는 패밀리의 마피아들인데. 그들의 실력은?”
“아버지를 항상 따라다니며 보호하는 친위대는 열 명이야. 그들은 능숙한 싸움꾼들이지.”
카타레나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발레르 패밀리의 마피아들은 모두 육체 개조를 받았어.”
“육체 개조?”
“말 그대로 육체를 마법으로 개조한 거야. 발레르 패밀리의 후원자 중에서는 뛰어난 실력의 흑마법사가 있거든.”
“친위대의 강함은?”
“그건 나도 정확히 모르지.”
“그럼 정보가 너무 적은데요.”
라덴은 미간을 찡그리면서 중얼거렸다. 아니, 그보다 지금의 이 대화 자체가 위험하다. 이곳은 그 어디도 아닌 발레르 패밀리 저택의 내부다. 비록 별채라고는 해도, 라덴은 패밀리의 마피아에게 카타레나에게 볼 일이 있다고 말을 하고서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라덴의 질문을 듣고서 카타레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내 아버지는 이 저택에서 살고 있지 않아. 그야, 아버지는 적이 아주 많거든. 알제른의 사람들 중에서 아버지에게 원한을 가진 이들이 몇이나 될 것 같아?”
“저택에 살고 있지 않다고 해도 정보는 들을 수 있겠죠.”
“그에 대처해야 하는 것은 네 문제지.”
카타레나의 말에 라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책임한 여자 같으니. 카타레나는 꽉 쥔 주먹을 부르르 떠는 라덴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조금 이르지만, 보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할까.”
“..보상?”
“내 아버지를 죽인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런 이야기라면야. 라데는 크게 숨을 뱉으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카타레나느 빙긋 웃더니 서랍 안에서 시가를 하나 더 꺼내 끄트머리를 잘라냈다.
“아버지가 죽는다면 난 발레르 패밀리의 주인이 돼. 아버지가 갖고 누리던 모든 것들이 나에게 계승되지.”
“그래서?”
“그 말은 즉, 나는 이 도시 알제른의 밤, 그를 지배하는 주인이 된다는 뜻이야. 우선 오천만 골드를 주지.”
막힘없이 뱉은 말에 라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오천만 골드. 현금으로 오천만원.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오천만 골드는 어디까지나 ‘우선’이다.
“그리고 발레르 패밀리에서 관리하는 알제른 경매장의 수수료를 면제시켜 주겠어. 그리고 하나 더. 아버지의 반지를 너에게 주지.”
“반지? 무슨 반지?”
“텔레포트 링이야.”
텔레포트 링. 그 말에 라덴의 입이 쩍 벌어졌다. 텔레포트 링은 플레이어나 NPC가 제작할 수 없는 고유 아이템이다. 텔레포트 링은 도시의 좌표를 저장하여, 거리에 비례한 마력을 소모하여 텔레포트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준다. 예전에 텔레포트 링 하나가 경매장에 풀렸던 적이 있는데, 텔레포트 링의 최종 낙찰가는 무려 10억 골드였다.
‘이건 해야 된다.’
라덴은 꿀꺽 침을 삼켰다. 오천만 골드에 경매장 수수료 면제, 그리고 텔레포트 링. 사실 오천만 골드나 경매장 수수료를 떠나서 텔레포트 링 하나만으로도 이 퀘스트를 수행할 가치는 충분했다.
텔레포트 링 하나만 있으면 텔레포트 게이트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줄어든다. 물론 사냥터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쓸 수밖에 없지만, 귀환석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큰 메리트다.
“..혹시.. 좌표가 몇 개 지정되는지도 알고 있습니까?”
“그것까지는 나도 몰라.”
10억 골드에 낙찰되었던 텔레포트 게이트는 두 개 도시의 좌표를 저장할 수 있었다. 만약 라덴이 이 퀘스트를 클리어하고서 받게 되는 텔레포트 게이트가 세 개 이상의 좌표를 저장할 수 있다면, 예전에 10억 골드에 낙찰되었던 텔레포트 게이트보다 못해도 두 배에 가까운 금액에 팔아넘길 수 있을 것이다.
“하겠습니다.”
이런 기회를 발로 걷어 찰 수는 없다. 라덴은 일단 퀘스트를 수락했다.
[카타레나의 시험 퀘스트가 완료 되었습니다!] [새로운 퀘스트를 받았습니다!]-피의 복수.
-발레르 패밀리의 주인, 졸코트 발레르를 살해하십시오.
“좋아.”
카타레나의 미소가 진해졌다. 그녀는 시가에 불을 붙였고, 몽롱한 눈동자로 라덴을 보았다.
“마침 좋은 기회가 있어. 이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너에게 달려 있지만.”
“무슨 기회 말입니까?”
“다음 주 월요일에 아버지가 알제른의 경매장을 방문할 거야. 경매장 주인을 만나 이번 달의 관리비를 정산받기 위해서지.”
그것은 확실히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라덴으로서도 졸코트 발레르가 사는 집으로 처들어가, 그를 보호하는 마피아들을 모조리 쓰러트리고 졸코트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졸코트가 밖에 나와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물론 경호가 상당하기는 하겠지만, 밖이라면 라덴에게도 암살의 기회는 있다.
“그런데.. 괜찮겠어?”
카타레나가 빙그레 웃으면서 물었다.
“사람을 죽이는 거잖아.”
“NPC죠.”
라덴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NPC의 AI가 인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는 하지만, 발할라 안의 NPC는 결국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다.
“그런 마인드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괜히 인정을 가졌다가 실패하면 곤란할 테니 말이야.”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그야 NPC라고 해도, 기본적으로는 사람과 똑같으니까.. 아니, 이 세계에서는 사람 그 자체니까. 죽이는 것은 나도 조금 그렇지만..”
“그렇지만?”
“당신의 말만 들어보면, 당신의 아버지인 졸코트 발레르는 쓰레기잖습니까.”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라덴은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카타레나가 한 말이 사실일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졸코트 발레르는 자신의 친 딸을 강간했고, 몇 년 동안 그를 계속해 왔다.
“개새끼니까.”
졸코트와 라덴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하지만 으레 그런 법이다. 뉴스에서, 범죄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때. 어린 소녀를 강간한 남자에게 심신미약이니 뭐니 덧붙여져 터무니없이 짧은 형량이 떨어질 때.
눈 앞에 있으면 시원하게 패 버릴 텐데. 그런 생각이 드는 것처럼.
“다음주 월요일. 알제른의 경매장. 시간은 압니까?”
“보통은 정오 즈음이야.”
“그러면 월요일에 오겠습니다.”
그 말에 카타레나는 피식 웃었다. 라덴은 먼저 의자를 뒤로 빼고서 일어섰다. 카타레나는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라덴을 향해 손을 흔들지도 않았다. 그녀는 등 뒤에서 들어오는 차창의 빛을 받으면서 시가의 연기를 뿜었다.
“네가 성공했으면 좋겠어.”
카타레나는 시가를 내려 놓았다. 라덴이 몸을 돌리고, 닫힌 문의 문고리를 손으로 잡았을 때였다.
“진심으로.”
“성공할 겁니다.”
이만한 보상이 걸려 있다면 억지로라도 해야 한다. 라덴은 문고리를 돌렸다.
“반드시.”
철컥, 하고 문이 열렸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