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33
(132)
“기사님, 다시 당부드리지만 영 만나기 좋은 녀석은 아닙니다.”
“괜찮네. 알아서 하지.”
“아가씨, 정말 다시 말씀드리지만 만나서 기분 좋은 녀석이 아닙니다! 굉장히 무례하다고요!”
“나, 나도 괜찮네.”
두 사람의 한결같은 대답에 막스는 진짜 미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공작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런 놈을 찾고 있는 거라면 어지간한 작은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막스는 두 사람을 저렴한 싸구려 여관으로 안내했다.
“용병단이 자주 지내는 여관입니다. 겉보기엔 이래도 주인이 재빠르고 안은 깨끗해요. 게다가 값도 저렴해서 저희 같은 단체 손님이 묵기엔 최적이고요.”
두 사람은 막스를 따라 좁고 바글바글한 식당을 지나 상층으로 올라갔다.
삐걱거리는 바닥, 그리고 흙으로 세운 벽에는 손때가 묻다 못해 아예 밝게 닳아버린 청동 문고리가 걸린 문이 빽빽하게 있었다.
가장 안쪽에 외따로 떨어진 방 앞으로 간 막스는 다시 두 사람에게 거듭 요청했다.
“정말이십니까? 영 기사님과 아가씨에게 보여드릴 사람이 아닌데.”
“상관없네. 기별 좀 해주겠나.”
막스는 ‘이건 영 아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결국 문을 쿵쿵 두드렸다.
“베르너! 시간 있으면 잠시 나와봐. 손님 오셨으니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레안드로스는 문 너머로 살아있는 사람의 인기척을 느꼈지만,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막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욕설을 하지 않는 걸 보니 오늘은 기분이 괜찮은 모양입니다. 들어가셔도 될 것 같은데, 정말이지 용병단의 추태를 기사님과 아가씨 앞에 보여드려도 될지.”
“괘, 괜찮대도.”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나오셔야 합니다. 무례하게 굴었다면 제게 말씀 주십쇼. 제가 꼭 두들겨 패놓겠습니다!”
아멜리아가 살포시 미소를 지었고, 레안드로스는 거침없이 문고리를 밀어젖혔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
한참이 지난 후 아멜리아가 겨우 뱉었다.
“가, 강도가 열 명은 드, 든 것 같은데…….”
방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였다.
침대 시트는 알 수 없는 약물로 얼룩덜룩하게 물들어 있었고, 이불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뭔가 형체를 잃어버린 고깃덩이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달걀 썩는 냄새를 풍겼고,
바닥에는 말라 바스러진 약초며 알 수 없는 검은 가루가 지저분하게 범벅되어 있었다.
게다가 폭발이라도 있었는지, 벽에는 시커먼 그을음까지.
한 마디로 시궁창의 생쥐보다 더 더러운 환경이었다.
두 사람이 방을 멀거니 보고 있을 때 한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 뒤의 벽에서 나는 소리였다.
“어우 씨, 뭡니까……. 내가 올 때 문을 두드리라고 혓바닥이 닳도록 말한 것 같은데. 귀가 없어요? 예? 이참에 없애 드려요?”
누런 이불이 스르륵 아래로 내려가자 벽에 기대앉은 남자가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암녹색 머리카락은 한참이나 빗지 않아 헝클어져 있었고,
금이 간 안경은 비뚜름하게 귀에 걸쳐져 있었다.
의원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더러운 흰색 앞치마에,
구깃구깃한 바지와 검댕이 묻은 채 씻지도 않은 손이 눈에 띄었다.
베르너라고 불린 남자는 하품을 쩌억 하더니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돌렸다가 낯선 이들을 보고 대뜸 찡그렸다.
“뉘쇼?”
“……그 전에 묻지. 용병단 소속 의원이 맞나?”
“맞는데. 그쪽은 왜 싸가지 없게 이름을 안 대?”
“이, 이 버르장머리 말아먹은 놈아! 이분이 누구신 줄 알고 지금 그따위 추잡한 언사를 지껄여!”
레안드로스 뒤에서 막스가 광분했다.
요나스는 그런 아버지를 말없이 쭉쭉 잡아당기면서 진정시키는 중이었다.
예의라고는 한 점도 찾아볼 수 없는 의원은 비척비척 일어나서 기지개를 쭉 켰다.
“아니, 그럼 나만 이름을 모르는 게 말이 되나? 당연한 걸 물었는데 왜 지랄인지.”
“레안드로스다. 이쪽은 아멜리아. 하르트만 공작가에 귀속되어 있다.”
“공작가?”
안경을 밀어 올려 눈을 문지르던 남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오, 하고 감탄을 흘렸다.
“그 멸문 당했다가 이번에 왕세자 전하의 자비로 기사회생에 성공했다던 그 공작? 이야, 역시 부자는 망해도 삼 대는 먹고 산다더니 그 말이 맞나봐.”
“이 싸가지 없는 놈!”
“어유, 시끄러워. 내가 귀청이 떨어지겠네.”
남자는 펄펄 날뛰며 분개하는 막스의 코앞에서 문을 쾅 닫아버렸다.
세 명만이 방 안에 남자, 그는 스스럼없이 의자에 앉아서 더러운 옷자락으로 제 안경을 뽀득뽀득 닦기 시작했다.
“그래서, 귀족 나리의 수하가 왜 나를 찾아왔는데? 참고로 지금 내가 잠을 못 자서 피곤하거든. 서로 용건만 말하고 헤어지자고.”
“다, 당신이 웬만한 일에는 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고, 들었어.”
“맞는 말씀. 의원 짓거리를 하면서 겁쟁이가 될 수는 없거든. 그런데 그거 물어보려고 왔나?”
“이, 일을 의뢰하고 싶어서. 마, 막스에게서 소개를…….”
“안 받아.”
“뭐, 뭐라고?”
아멜리아는 비딱하게 앉은 남자를 쳐다봤다.
말을 꺼낸 지 1초도 안 되었는데,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바로 거절한다고?
“이, 이유라도 말해준다면.”
“첫 번째, 나는 귀족이 싫어. 두 번째, 나는 용병단 놈들을 치료하고 내 연구하기도 바빠. 마지막, 그냥 대뜸 쳐들어온 두 사람이 마음에 안 들어. 이상. 이제 질문 없지? 나가, 나가.”
“보, 보수는 원하는 대로 주, 줄 수 있는,”
“그런 거 필요 없거든? 그거참 귀찮게 구네. 여름날 초파리보다 더해.”
아멜리아는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이렇게 무례한 사람은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차라리 목숨을 위협받았으면 받았지, 어쩜 대놓고 이렇게 막 나가는 사람이 다 있담?
아멜리아가 당황해서 입을 다물자 레안드로스가 거들고 나섰다.
“그쪽은 상처나 사람의 신체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
“의원으로서 당연한 거 아닌가? 아하, 물론 나 외의 다른 의원들은 이런 짓은 안 하긴 하지.”
남자는 천장에 매달아 둔 고기를 가리켰다.
대여섯 개 정도 되는 고기는 저마다 따로 부패하고 있었다.
“사체가 사망 이후로 며칠이나 지났는지, 어떤 곤충과 벌레가 모여드는지 그런 거 말이야. 요새는 대부분 맥 좀 짚어보고 죽었수다하고 말해주면 끝인 줄 안단 말이야. 사람이 대가리가 안 비었으면 좀 수사적인 생각을 알 줄도 알아야 하는데.”
“역시 그쪽은 우리가 의뢰하려는 일에 대해 흥미가 깊을 것 같군.”
“흥미? 장담할 수 있나?”
“듣는 건 비용이 들지 않지. 손해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의원의 날카로운 눈과 레안드로스의 무심한 시선이 팽팽하게 대치했다.
잠깐 시간이 지난 후 의원이 거만하게 턱을 들어 올렸다.
“해봐.”
“얼마 전, 공작님께서 부상을 당하셨다. 심각한 부상이라 제대로 나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고, 주변에는 제대로 된 의원도 없었지.”
“그런데?”
“그래서 아티팩트를 사용해 그분을…… 얼렸다.”
“뭐?”
대번에 반응이 나타났다.
의원은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몸을 앞으로 숙이며 바로 흥미를 드러냈다.
“그걸 어떻게 한 거지? 그런 용도로 아티팩트를 사용할 수 있나? 그보다,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있나?”
“출혈이 심했고, 의식이 없어지고 계셨으니까. 말 그대로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건 일반적인 가사 상태에 빠진 것과는 다를 텐데. 가사나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는 신체의 자율신경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우지. 하지만 얼리는 건……. 심장이 뛰지도 않으시나?”
“그런 것 같더군.”
“이런 사례는 또 처음인데. 재미있네.”
아멜리아는 남자를 한 대 치고 싶은 걸 꾹 눌러 참았다.
아멜리아와 레안드로스에게는 전혀 재미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멜리아가 작게 심호흡하며 분노를 가라앉히는 사이에도 레안드로스는 무뚝뚝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동결 상태는 언제든 해제할 수 있다. 하지만 해동 과정을 거치는 순간.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할 때부터 신속하게 상처를 치료해야겠지.”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왜 나를 찾아온 거지?”
“다들 공작님이 시신인 줄 알았으니까.”
“그걸 남들에게 들고 가서 보여줬다고? 그쪽도 어지간히 제정신은 아닌 것 같은데?”
남자는 정말로 재미있어 죽겠다는 말투였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손을 내밀었다.
“정식으로 통성명할까? 내 이름은 베르너. 당장 공작님을 보러 가자고. 시간은 금이니까!”
멋대로 레안드로스의 손을 잡고 훌훌 흔들던 그는 꼬질꼬질한 가방에다가 먼지가 낀 병과 약초 다발, 붕대를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다.
베르너가 콧노래를 부르며 나가려고 할 때 아멜리아가 그 앞으로 끼어들었다.
“뭐야? 비켜, 시간이 금이라고 말한 거 못 들었어? 귀한 공작님 좀 보자고.”
“그, 그 전에.”
아멜리아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빽 외쳤다.
“더러운 몸, 당장 씻고 와!”
“뭐라고?”
“그쪽 더, 더럽다고! 더러워! 냄새나! 끄, 끔찍한 꼴로 환자를 보는 건 마, 말도 안 돼!”
세상에.
베르너는 예상외의 지적에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자신의 앞을 막아선 아멜리아를 노려봤다.
레안드로스는 큭 하는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 * *
당연하겠지만, 탑에는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같은 시설이 없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계단을 사용했다.
내 뒤로는 눈사람이 살랑살랑 가벼운 발걸음으로 따라오고 있었고, 나는 끝도 없는 계단을 오르며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마도서는 이 탑의 어디에 있는 건데?”
“이 탑이 한 175층쯤 되거든. 96층쯤에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미친……. 시그니엘 호텔도 101층이 최상층이야.”
“시그니엘? 그게 뭔가? 신자만 아는 소리를 하는군.”
“레안드로스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까 내 속만 더 터지는 것 같다.”
여기를 오르느니 차라리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바랏두르를 오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심지어 여기는 몇 층인지 안내해주는 표지판도 없어서 순전히 눈사람의 안내에 의지해야만 했다.
나는 57층 정도에서 세는 걸 까먹었거든.
그나마 드림랜드에서는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이 훨씬 덜해서 다행이었다.
현실이었으면 30층 정도에서 땀 줄줄 흘리면서 후들후들하는 다리로 난간에 매달려 있었겠지.
벽에 촘촘히 뚫린 창문으로 보이던 구름이 어느새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을 때,
뒤따라오던 눈사람이 중얼거렸다.
“거의 다 온 것 같다. 신자, 3층만 더 올라가서 안으로 들어가라.”
드디어!
눈사람이 말해주는 대로 3층을 더 올라가자 이제까지는 보던 것과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다른 층은 대부분이 훤히 뚫려 있었고, 꽃과 상아로 장식된 제단이나 용도를 알 수 없는 가구들만 가득했었다.
하지만 이 층은 둥그런 바닥의 절반 정도가 벽으로 막혀있었다.
벽은 마찬가지로 상아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가운데에 딱 한 사람만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청동 문이 박혀 있었다.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았다.
고요한 홀을 가로질러 문을 밀어젖히자, 문은 삐걱거리는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방은 작고 둥그렜다.
벽에는 연료 없이 붉게 타오르는 광원이 빛을 발하고 있어서 대낮같이 밝았다.
방의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독서대.
그리고 그 위에 놓인 붉은 표지의 책 한 권.
이 모든 구조가 눈에 친숙했다.
“이건…….”
공작부인의 서재에 있는 비밀의 방.
독서대 위에 놓인 책도, 이 구조도, 전부 비슷했다.
나는 홀린 듯이 다가가서 붉은 책 위에 손을 얹었다.
금으로 장식된 빨간 표지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었다.
하지만 이 책과, 내가 현실 세계에 가지고 있던 공작부인이 가지고 있던 책이 같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런 확신이 들었다.
“이게 프나코틱?”
“현실계에서는 마도서의 여러 사본이 있다고 하지. 인간의 언어로 재편찬한 마도서를 ‘프나코틱 사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이 별에는 프나코틱 사본이 없어. 그러니 그게 바로 모든 사본의 원전이자, 이 행성의 유일한 마도서인 셈이지.”
“잠시만, 인간의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고? 그럼 나한테도 쓸모없는 거 아니야?”
나라고 외계 언어를 알고 있는 건 아닌데.
내가 책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와중에 눈사람은 방을 빙 돌아서 독서대를 가운데 두고 나와 마주 섰다.
“그냥 인간과 위대한 이 몸의 축복을 받은 신자가 같나? 신자는 나를 과소평가하고 있군.”
“하지만.”
“신자, 경건한 마음으로 나를 숭배하도록. 극권의 군주이자, 무한히 타오르는 차가운 불이 유일한 신자에게 지금 이 자리에서 축복을 내리나니.”
눈앞으로 손이 다가왔다.
내 얼굴을 움켜쥔 손 너머로 하얀 눈이 웃고 있었다.
동시에 멋대로 붉은 책이 펼쳐지며 페이지가 거칠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눈사람의 입에서 나온 알 수 없는 언어, 들리지 않는 선명한 음률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활자가 허공으로 솟구치며 살아있는 생명체마냥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방이 천천히 기울었지만 내 발은 바닥에서 미끄러지지도, 떨어지지도 않았다.
광폭하게 휘몰아치는 글자가 내 눈에 하얗게 박혔다.
그 순간 세상이 완전히 뒤집혔고,
내가 알고 있던 우주가 아닌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인간의 머리로는 느낄 수 없었던 모든 것.
내 몸에 도는 피의 흐름이,
이 순간에도 살아서 맥동하는 심장과 장기가,
그것들을 구성하는 근육과 점막과 그 세포 하나하나가,
세포를 이루는 원자와 원자 속에서 움직이는 더 작은 단위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동시에 그보다 더 먼 우주가 나를 목격했다.
이 별의 너머, 천체를 이탈해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먼 곳에서 잠들어있는 것들.
감고 있던 눈이 강제로 뜨인 것처럼, 그 언어들이 주는 감각이 밀어닥쳤다.
온몸에 과부하가 걸리며 전신이 삐걱거렸다.
완전한 오버클럭.
뇌수가 불타고, 뇌가 녹아 흘러내렸다.
이게 미지를 탐한 인간의 말로.
알 수 없는 세계를 이해하려고 한 마법사들이 도달하는 결말.
완전히 압도된 몸은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눈사람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