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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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모여줘서 고마워. 긴히 논의할 게 있어서, 너희들의 의견을 구하고 싶어.”
그날 저녁에 우리는 임시 숙소로 빌린 집의 식탁에 모였다.
레안드로스, 아멜리아, 베르데, 그리고 눈사람까지.
다 같이 모여있는 걸 보니까 왠지 긴장된다.
베르데는 여전히 피곤한 기색으로 손을 들었다.
“뭐든 저는 찬성입니다. 잠 좀 자게 해주세요. 이거 의원 학대예요.”
“우선 좀 듣고 나서 말해!”
갑자기 긴장이 사라지네.
몇 번 헛기침을 하고 침착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다들 알다시피, 왕실 직할령의 대리인이 갤로의 복구를 위해서는 발렌타인으로 찾아오라고 했어.”
“대, 대리인이 초, 촌장을 지명한 상황에서 이, 이후 후임자가 없어서. 초, 촌장은 실종 상태이, 이고.”
“아멜리아 양의 말이 맞아. 그래서 우리가 발렌타인으로 직접 방문할까 해.”
식탁 위로 잠시 침묵이 깔렸다.
아멜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저, 저는 반대입니다. 지, 지금, 저희는 갤로를 대, 대표하지 않아요. 갤로 주민들의 지, 지지만 얻으면 끝날 일입니다. 이,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갤로 주민들을 위해서라면 그렇다는 건가요, 아멜리아 양?”
“저, 저희에게 이득이 될 게 없는, 행동이니까요.”
아멜리아의 말이 맞았다.
철저히 하르트만 공작가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한시라도 빨리 과거 공작령에 속했던 마을과 도시를 돌아야 했다.
지금 굳이 발렌타인으로 가는 건 시간 낭비라는 뜻이었다.
“그렇죠. 아마 겉으로만 보면 득이 될 게 없겠죠. 하지만 저는 대리인이 이 사태와 깊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 대리인이라면…… 왕실에서 보, 보낸 대리인이요?”
“글리코에서 일어난 일은 그저 나태한 대리인과 게으른 용병단이 일으킨 비극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축 쳐져 있던 베르데가 고개를 들었다.
“글리코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럽니까?”
“마을에서 돼지 인간을 숨겨두고 여행자들을 먹이로 던지고 있었지. 공작님께서 그 피해를 보셨고.”
“우와. 돼지 인간? 시체 가져왔습니까?”
“가져왔을 것 같나?”
레안드로스의 싸늘한 대답에 베르데는 다시 식탁 위로 늘어졌다.
나는 베르데에게 시선을 둔 채 말을 이어나갔다.
“따져보면 이상한 일이지. 대리인과 계약했다던 용병 말이야, 갤로에도 글리코에도 문지기 외에는 딱히 없었잖아요. 이번 사건이 너무 빠르게 휘몰아쳐서 눈치채지 못했지만, 용병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요.”
“그, 그건.”
“의도적인 방치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어요. 제 의견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것 역시 부패한 대리인과 용병단 사이의 리베이트 계약일 뿐일까?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의심되는 점이 이것만은 아니었다.
“게다가 슈브-니구라스의 자식이라 불리던 마수가 여기에 출현한 데에는 대리인의 책임도 있고요.”
“그, 그러고 보니, 그 회색 알……. 꼬투리라고 불렸던, 그거. 대리인의 취임을 추, 축하하는 연회에서 나왔다고.”
“맞아. 대리인이 이전 마을에서 받았다던 그 알이었어요. 하지만 이전 마을, 대체 어디서? 왜 그런 걸 받아왔을까요? 설령 모르고 가져왔다고 해도 여전히 석연찮은 점은 남아있습니다.”
“그럼 공작님께서는 대리인이 이 사건의 원흉을 만들고 다녔다는 말씀을 하시고 싶은 것입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레안드로스가 불쑥 말했다.
모습을 보이지 않는 대리인.
꼬투리를 갤로 마을 주민에게 나누어준 대리인.
돼지 인간이 글리코에 나타났을 때 그저 방관하던 대리인.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꼬리를 자른다고 해도 머리가 남아있어서야 안 될 일이지. 그 뒤에 누가 있을까? 고작 자리를 보전할 뿐인 현왕이 목적도 없이 이런 일을 꾸밀 리는 없겠고.”
“……유릭 왕세자.”
레안드로스의 중얼거림에 아멜리아의 표정이 굳었다.
갑자기 긴장감이 감돌자 베르데도 슬쩍 일어나서 앉았다.
“유릭 왕세자의 의도가 뭔지 파헤쳐야 한다고 말씀하고 싶으신 것입니까?”
“아니, 그러지는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그 목적을 안다고 해도 세간 사람들이 믿어주진 않을 거야.”
게다가 그 목적은 내가 이미 알고 있으니 상관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좀 더 다른 방향이었다.
“왕세자에게는 소문이 많지. 그중 하나는 마수를 다루는 거고. 동부 황무지 사업을 괜히 벌인 게 아니라면? 만일 그가 직할령에서 어떤…… ‘실험’을 하고 있었다면?”
“마수와 관련된 실험이란 말씀이십니까? 그게 진짜입니까?”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지만 분명한 건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고, 그걸 사람들 앞에서 폭로할 수 있다면.”
나는 정치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센스가 없었다.
평소에는 이런 계략 따위는 꾸며내지도 못하겠지만.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거야. 아주 큰 지지를.”
유릭이 꾸며둔 장치를 조금 이용하는 건 누워서 떡 먹기였다.
다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저마다 머릿속이 복잡한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베르데가 물었다.
“지금 제 귀가 이상한 건지 모르겠는데, 왠지 공작님이 왕실에 굉장히 적대적으로 보입니다만? 이게 맞아요?”
“하르트만 가문이 멸문 직전까지 갔다는 소문 못 들었어?”
“아니, 듣긴 했지만. 불만을 가지고 있는 거랑 지금 이…… 뭐라고 해야 할까. 꼭 왕세자 전하를 치겠다는 말로 들리는 발언을 하는 건 좀 다른 문제 아닙니까?”
“칠 건데.”
“하하. 제 귀가 이상한 게 확실한 것 같은데요.”
“칠 거라니까.”
베르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거 반역이에요, 미친 공작님아!”
“맞아. 반역이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고.”
“그런 일에 휘말리기 싫어요! 싫다고! 난 간다! 잘 있어라!”
“하지만 지금 너도 레안드로스의 일행으로 취급받고 있는데.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를 목격한 사람은 많아.”
“아니아니아니, 산에 들어가겠습니다. 산에 처박혀서 살래. 제 목숨 귀한 줄은 알고 있어서요. 누구 사형시킬 일 있나.”
베르데가 금방이라도 나갈 것처럼 굴자 레안드로스와 아멜리아가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여차하면 무력으로라도 막겠다는 태도였다.
아니, 그러면 안 되지!
“베르데, 들어봐.”
“뭘 들어요? 왕실 전복 계획을요? 제 귀를 더럽히려고?”
“아냐. 전혀 관계없는 너를 여기까지 휘말리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이건 하나만은 알아줬으면 해.”
“어떤 걸?”
“그가 어떤 식으로 평범한 사람들을 대하는지. 네가 직접 보고 판단하면 안 될까?”
“그걸 제가 알아야합니까? 위험을 감수하면서?”
베르데가 기가 차서 막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만은 전혀 웃고 있지 않은 그에게 나는 진지하게 답했다.
“우리는 아직 대외적으로 왕실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고 있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의심될 게 없지. 발렌타인 도시에서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래서요?”
“헤어질 거라면 발렌타인에서. 그때 우리 사이의 거래도 정산하고.”
“…….”
베르데는 한참이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박박 쥐어뜯다가, ‘아씨 진짜’ 같은 말을 중얼거리더니 미치겠다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한참이나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던 그는 겨우 의자에 앉았다.
“정산은 확실히 해주시는 겁니다.”
“그럼. 물론이지.”
한 번 더 죽는 게 무슨 대수라고.
레안드로스나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이걸 위해서 다들 발렌타인으로 가는 거, 어떻게 생각해?”
발렌타인이 유릭에게 반기를 들기 전 본격적인 빌드업을 진행하는 구간이 될 것이다.
레안드로스와 아멜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우리의 발렌타인 행이 결정되었다.
* * *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갤로를 떠나는 걸 못내 아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멜리아가 대리인이 어떤 용무로 발렌타인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마을의 누군가는 발렌타인으로 가야 한다는 소식을 공유해준 덕분에 우리를 잡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사님, 꼭 돌아오셔야 합니다. 꼭이요.”
“오실 때가 되면 저희가 멋지게 대접해드리겠습니다.”
“발렌타인에서 오기 전에 꼭 연락 주세요!”
레안드로스는 본인도 놀랄 만큼 호의적인 배웅을 받게 되었다.
아무래도 우리의 주인공은 무뚝뚝한 태도와는 상관없이 호감도를 팍팍 올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다.
마을 사람들이 겨우 모아준 식량과, 어설프게 수리를 마친 환자 운반용 수레, 그리고 우리가 데려온 말 두 필을 가지고 갤로를 떠났다.
아, 환자 운반용 수레는 당연히 내가 차지했다. 아직까지 뼈가 붙지 않았으니까.
마을을 빠져나와 언덕에 올랐을 때 뒤돌아보니 새까맣게 탄 구획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지 않았는데 일 년은 족히 지내던 기분이야.”
“그게 다-아 착각이라는 겁니다.”
“베르데, 초 치지 마. 내가 감상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잖아.”
덜컹덜컹.
수레가 움직였고, 레안드로스는 수레를 끄는 말 옆에서 걸었다.
아멜리아는 연약한 베르데에게 남은 말을 양보하고 내가 누워있는 수레 끝에 걸터앉아있었다.
눈사람의 형체를 취한 아품 자는 내 망토 모자 안에 들어있었고.
평화로운 여행길이었다.
앞으로도 발렌타인에게 도착하기 전까지 이런 길만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갤로에서 발렌타인으로 출발한 지 나흘째.
밤에 신세를 지러 들린 작은 농가에서 놀랄만한 소식을 들었다.
“발렌타인이 봉쇄되었다고요?”
“그렇다니까! 거기서 사는 친척도 연락이 뚝 끊겼지 뭔가. 듣기로는 발렌타인에 큰일이 일어났다고 하더군.”
“그 큰일이 대체 무슨 일입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그러니까, 내가 아주 최근에 들은 일인데.”
농부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속삭였다.
“이단들이 발렌타인에서 들고 일어났다더군. 도시를 점령했다고, 아주 소문이 돌아!”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순탄한 여행은 개뿔.
내 이럴 줄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