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13)
병실에 있을 때부터 유연서는 계속 생각했다.
‘왜 아들이라고 불렀을까.’
그는 기억 동기화 속 음습하고 기분 나쁜 목소리를 잊지 못했다.
‘망상에 사로잡힌 것일 수도 있지. 그렇다면 류혜경이 말한 스토커 중 한 명일 수도······.’
애초에 누군가를 스토킹한다는 것이야말로 정신 나간 행동이다. 여기에 망상증이 보태어진다고 놀랄 일은 아니다. 만약 그 사람이 이희서를 쫓다가 점점 미쳤다면, 그래서 유연서를 정말 제 아들로 생각했다면······.
‘음침한 새끼.’
하필 그때 그림자가 가려버릴 줄이야. 하지만 기억 다시 보기 특전을 얻었으니, 계속 돌려본다면 정확한 얼굴을 알 수 있을 거 같은데······.
그 생각을 읽은 베타가 단호하게 말했다.
‘······알았어.’
몸이 회복되면 바로 해야지. 베타가 뭐라 경고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유연서는 허공을 바라보며 그 말을 무시했다.
“스토커라······ 의심 가는 사람 있어?”
“조사한 거부터 먼저.”
“너네 진짜 형제 맞구나.”
먼저 패를 안 보이는 것이 똑같네 똑같아. 겉모습뿐만 아니라 성격도 닮았네. 백서준은 두 형제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뭐, 새삼. 유연서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는 그 당시 수사 기록을 살펴봤었어.”
“뭐야, 나 빼고 할 거 다 했네?”
“미리 말하는데, 나는 너한테 빨리 말하라고 했다.”
“그래요?”
두 사람의 시선이 유은호에게로 향했다. 그 무언의 압박에 유은호는 두 손을 들어 항복의 행동을 취했다. 유연서와 백서준은 처음 만난 사람치고 죽이 잘 맞았다.
“아무튼, 수사 기록 중 일부가 없어졌어.”
“진짜로?”
“그래. 누가 일부러 없앤 것처럼 아주 깔끔하게.”
수사 기록을 없앨 수 있는 사람, 그렇다면······ 유연서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점점 의심이 피어올랐다. 백서준이 그 생각에 확신을 줬다.
“게다가 청와대 다음으로 경비가 살벌한 저택에서 한 사람을 살해하고 빠져나왔다······ 이건 내부에 협력자가 있을 가능성이 커.”
“그래, 그건 생각 못 했네.”
유연서가 중얼거리듯 혼잣말을 했다. 백서준의 말 대로라면, 협력자는 가까운 가족 친지 중에 있을 거라는 소리다. 그는 몸에 힘이 쭉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이걸 왜 생각 못 했지?
“너는 뭐 조사한 거 없어?”
“우선 큰 할아버지 쪽을 조사했는데, 깨끗해. 의심할 만한 건 없어.”
큰할아버지라······ 유연서는 주성 그룹의 가계도를 떠올렸다. 가능성이 있지만, 유은호의 말대로라면 그쪽은 아니라는 소리다.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백서준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혹시 최 부회장은 아니겠지? 고인과 친했기도 하고, 너희 고모들과도 친했다며.”
“아닐 거야.”
유은호와 유연서가 동시에 대답했다. 최유진이 그들에게 했던 진심이 거짓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 가능성도 없을 거로 짐작했다.
단호한 말에 백서준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도저히 파고들 구석이 없다. 자료가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스토커에 대해서 얘기해 봐.”
“내가 엄마의 옛 동료분이랑 같이 작품을 찍었었어.”
그는 류혜경과 있었던 일을 간략히 설명했다. 백서준과 유은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경청했다. 공교롭게도 유연서는 직접 살해한 사람을, 두 사람은 협력자를 조사하면서 딱 맞물렸다.
“우선, 경호원으로 위장해서 들어왔든 대타를 뛰었든 간에 신원 조회는 해봤을 거로 추측하거든?”
“맞아. 아무나 통과시키지는 않았을 거야. 네가 그때 누굴 보고 처음 보는 아저씨라고 했었지?”
게다가 어린 유연서는 당시 사용인의 얼굴과 이름을 전부 기억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사용인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저택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거다. 혹은 정말 당당하게 누군가를 대신했거나, 아니면 경호원 중 한 명을 사주했거나.
“그거 기억하면서 왜 내 말은 안 믿어줬어.”
“야, 은호야. 네가 잘못했다. 알아서 기어라.”
다소 뒤끝 있는 말에 유은호가 고개를 숙였고, 건수 잡은 백서준은 낄낄 웃었다.
“그러려면 일단 그 당시 사용인의 명단이 필요한데······.”
“근데, 진짜 보면 이 사람이다라고 확신할 수 있어? 잘 생각해야 해. 사진과 실물이 다르기도 할 거고, 충격으로 기억이 혼동된 것일 수도 있잖아.”
백서준의 질문에 유연서가 피식 웃었다. 그에게는 기억 다시 보기가 있었다.
“잊지 못하지.”
“······.”
“절대.”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대답에 유은호와 백서준이 입을 다물었다. 이후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짧은 침묵 끝에, 백서준은 분위기를 환기하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나저나, 그때 일했던 사람의 명단을 어떻게 얻지? 야, 유은호. 무슨 생각 없어?”
“글쎄······ 일단 혼자서 조사하고 있는데, 진척은 없었어.”
“그래, 너는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겠지.”
섣불리 조사했다가 만약 범인의 귀에 들어간다면 증거 인멸의 가능성이 있었다. 유연서는 잠시 생각 끝에 고개를 들었다.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 거 같아.”
“어떻게?”
그는 고개를 돌려 제 형을 바라봤다.
“할머니 어디 계셔?”
***
땅만 파면 문화재가 쏟아진다는 경주, 박금주는 곧 개장할 경주 주성 미술관 준공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열었다.
“이렇게 우리나라 문화 발전에 이바지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뭘요.”
“하하! 관장님, 겸손도 과하면 안 좋은 거 아시죠? 문화 인프라가 서울에 몰려있는 와중에, 여기서 이렇게 큰 미술관이라니······ 국민들도 좋아할 겁니다.”
“너무 칭찬하시는 것도 안 좋아요.”
정재계 인사들이 한달음에 달려와 미술관 개장을 축하하고, 박금주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박금주는 그들을 웃음으로 반기고 개인 소장품 경매 행사 등을 진행했다.
행사도 중반부가 지나고 있을 때,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어머.”
“세상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유은호와 유연서가 박금주에게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너희들이, 웬일이니?”
“친척들 다 바빠서 못 오셨다면서요. 저희라도 자리를 빛내야죠.”
유연서는 활짝 웃고는 박금주의 손에 꽃다발을 안겼다. 주변에서 작은 비명과 함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박 관장님, 좋으시겠다. 저렇게 장성한 손자들이 할머니 생각해서 여기까지 오고.”
“그러게요,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는 게 좀 쉽나요? 생각하는 게 남다르네요.”
“참 훤칠하네······ 얼굴도 잘생겼고.”
박금주는 그들의 칭찬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가 빠르게 유연서의 안색을 살폈다. 살이 좀 빠진 것 같았다. 혈색도 안 좋은 거 같고······ 게다가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유은호의 행동도 마음에 걸렸다.
“그······ 입원했다고 들었다. 몸은 괜찮니?”
“네, 그냥 좀 피곤했어요.”
두 형제는 인사를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묵례했다. 그러면서 유연서는 박금주의 귓가에 속삭였다.
“자세한 얘기는 끝나고 할까요?”
“······그래.”
박금주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넓은 홀에는 세 사람만 남았다.
“형, 잠깐 나가 있어 줘.”
“나도 갈게.”
“둘이서 진지하게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본 유은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유연서는 홀 중앙에 서 있는 박금주에게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갔다.
“여긴 아무것도 없네요.”
“그야······ 이제 시작이니까.”
“오픈은 언제예요?”
박금주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연서는 주변을 훑어보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걸었다.
“저한테 미안하시죠?”
“그건······.”
“저도 알아요.”
유연서는 근처에 있던 의자를 드르륵 끌고 와 박금주의 앞에 앉았다.
“할머니도 힘드셨다는 거.”
유은호에게 듣기로 할머니는 아끼던 며느리를 잃은 데다가 주변에서 질타하는 소리를 못 견디다 못해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에서 오랫동안 치료에 전념했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그래도 박금주가 그에게 남긴 상처는 기억 속에서 영원했다.
“그래. 미안하다.”
박금주가 눈을 질끈 감고 토해내듯 말했다. 유연서가 작게 미소 지었다.
“미안하면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
“뭐가 필요하니?”
박금주의 눈에는 그 미소가 너무도 불안했다.
한계까지 밀어붙인 동기화의 후유증은 일주일이 넘게 지났는데도 아직 몸에 남아있었다. 그에 피곤함을 느낀 유연서가 나른하게 말했다.
“사람 좀 빌려주세요.”
“사람?”
“정확히는, 1999년 5월 12일의 일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건······.”
그날은 이희서가 죽은 날이었다. 박금주는 손을 떨었다. 불길함이 엄습해왔다.
“그······ 왜 필요하니?”
“그냥, 한 번만 들어주세요.”
“연서야.”
박금주가 간절하게 말했다. 그녀도 이희서와 관련된 일에서 벗어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손자까지 자신과 똑같은 전철을 밟을까 봐 불안했다.
“과거에 얽매이는 건 좋지 않다.”
“과거라뇨, 할머니. 저는 현실이에요.”
“하지만!”
“제가 기억을 찾았다는 건 비밀로 해 주세요.”
더는 이런 일로 말하기 싫다고 명백하게 선을 그었다. 박금주는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달싹였다. 이거는 손자의 입으로 확인해야 했다.
“······하나만 물어보자, 그때 네가 엄마가 어떻게 보이냐고 말했었지? 그게 대체······ 무슨 소리니?”
“아, 그게 궁금하세요? 우리 할머니 많이 놀라실 텐데.”
궁금하다는데 풀어 드려야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털었다. 그냥 알 수 없는 화가 치솟았다. 아, 이래서 과거의 유연서가 갑자기 급발진하고 난리를 쳤구나. 저런 것을 계속 보면 평소에도 짜증이 날 만하지.
“지금도 보여요. 할머니 위에.”
“뭐?”
“하얀 치마 아래에 핏기없는 하얀 두 다리가······.”
“연서야.”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웃기죠? 22년 전 일인데 그게 지금까지 보인다는 게.”
유연서는 기가 찼다는 듯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하지만 시선은 계속 위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설마.’
우려했던 생각이 사실이었다. 박금주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혼자서······ 삭이지 말고 병원에 가지 그랬니. 내가, 내가 좋은 주치의를 소개해 주마.”
“병원, 그래 병원······ 그게 싫었어요.”
환영을 계속 응시하는 건 그에게도 안 좋아서, 고개를 뒤로 젖혀 천장을 바라봤다. 눈이 순식간에 충혈되면서 열이 몰렸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미친 건데 다들 엄마 탓을 하더라고. 이미 안타깝게 죽은 사람인데.”
“연서야.”
“할머니, 재밌는 게 뭔 줄 아세요?”
유연서는 고개를 홱 돌려 제 할머니를 응시했다. 박금주는 손자의 눈동자에 번들거리는 광기가 섬뜩하게 다가왔다. 그가 숨을 크게 몰아쉬더니 제 귀를 톡톡 건드렸다.
“이젠 엄마가 나한테 말까지 걸어요.”
“그만······.”
“연서야, 우리 아들. 너 때문에······.”
“이제 충분히 알았다.”
“너 때문에 내가 죽었잖아.”
“그만!”
유연서가 이희서의 음성을 따라 하며 히죽 웃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웃음이 나왔다.
박금주는 그 모습에 결국 등을 홱 돌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 등을 보고 소리 내 웃었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이제 가거라.”
“또 도망치시게요?”
“······사람은, 내일 중으로 보내주마.”
“감사해요.”
박금주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지만, 유연서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
입구 쪽으로 향하는 기둥 뒤에서 유은호가 나왔다. 유연서는 잠시 몸을 움찔거렸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틱 내뱉었다.
“뭐야, 안 나가고 있었어?”
“······가자.”
유은호는 다른 말 없이 출입문을 열었다.
경주에서 서울로 가는 길, 운전대를 잡은 유은호는 조수석에 멍하니 앉아 있는 동생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지금도 보여?”
창문에 기대고 있던 유연서가 고개를 돌려 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좀체 알 수 없던 얼굴이 꽤 무너져 있었다.
“어.”
그 건조한 대답에 유은호가 핸들을 꽉 잡았다.
“······꼭 잡자.”
감정이 널을 뛰고 눈앞에 보이는 것 때문에 애써 피를 삼켰지만, 적어도 혼자는 아니었다. 한참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연서는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래, 잡자.”
우리 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