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ampire went to Murim RAW novel - chapter (84)
84화
“히익!”
뒤늦게 뚫린 스켈레톤 사이로 빠져나왔던 또 다른 혈사단 대원은 머리 없는 듀라한의 모습에 기함했다.
그런 혈사단 대원의 머리 위로 대도가 떨어졌다.
카캉!
독살조가 듀라한의 대도의 도면을 후려치며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 새끼야, 정신 차…….”
동료에게 소리치던 독살조의 말문이 턱 막혔다.
듀라한의 옷, 그리고 그가 사용하는 대도.
너무나도 익숙한 옷차림과 병장기였기 때문이었다.
“……혈접(血蝶)?”
사도련은 무림맹처럼 연합체이다.
사사가(邪四家)로 불리는 사대가문을 필두로 수백 개의 사파문파가 무림맹에 맞서 만든 연합이다. 사람이나 무가나 모이면 자연스레 서열이 만들어졌고, 사도련은 그 백대문파(百大門派)를 기준으로 마교의 내단, 외단처럼 내문(內門)과 외문(外門)으로 갈린다.
혈사단처럼 련 직속 무력 단체도 존재하지만 각 무가의 무력 단체도 엄연히 존재한다.
혈사단이 사도련 최전선의 첨병 부대인 만큼 종종 내문의 문파와 합동 작전을 펼치고는 했다. 당연히 마음에 맞는 문파들이 존재할 것이고, 협력의 성과가 좋으면 굵직한 작전마다 함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혈사단 제오대와 함께 자주 작전을 펼쳤던 문파 중 거혈방이라는 곳이 있다. 서열 십이 위였던 혈웅인이 세운 방파로 사도련 내 상당한 지위에 비해 문파 서열은 육칠십쯤으로 중하위에 머물고 있던 곳이었다. 만약 혈웅인의 존재가 없었다면 백대문파에 최하위 언저리에 머물 것이라는 평이 대부분이었던 자그만 방파였다.
어찌 되었든 험악하고 별다른 이익이 없는 싸움터에 혈웅인이 나설 일은 없고, 대제자였던 혈접이 거혈방을 이끌었다.
자주 보았기에 그에 대해서 잘 안다.
혈웅인 못지않은 거구에, 그 몸집에 어울리는 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비처럼 가볍고 빠르며 현란하다 하여 붙여진 별호, 혈접.
그 별호를 자랑스럽게 여겨 손등에 문신을 새기고, 도병에도 각인한 붉은 나비.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내부 알력 다툼에 혈웅인과 혈접이 하오문으로 떠났고 사라졌다. 내부에서는 죽은 것으로 판단하지만.
그런 그가…….
살아 있다.
아니,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사각!
한순간 놀람 때문이었을까, 독살조의 행동은 기민함을 잃었고, 살아 있을 때 혈접이라 불렸던 듀라한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듀라한의 거도가 독살조의 가슴을 가르며 피가 튀었다.
“큭!”
그나마 다행이라면 재빠른 대처로 중상은 피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두두두두두!
말이 질주했고, 듀라한은 그 힘을 거도에 담아 독살조의 허리를 베어 왔다.
쾅!
독살조는 힘겹게 그의 거도를 막았지만, 말의 힘까지 담은 무지막지한 거력마저 이겨내지는 못했다. 독살조는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힌 후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쿨럭! 니미, 머리 없는 강시가 되면 힘도 강해지나. 카악! 퉤!”
독살조는 벽을 의지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 안에 고인 피를 내뱉었다. 그리고 듀라한을 흘깃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가 알던 혈접이 아니었다.
살아 있을 때에도 그의 힘은 놀라웠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설령 말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여도.
독살조는 자연스레 야현을 쳐다보았다.
‘젠장.’
잘못 건드렸다.
그가 알던 하오문이 아니었다.
아니, 천하가 속고 있었다.
하오문은 쥐새끼가 아닌,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귀(鬼)였다.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
듀라한의 마지막 일격이리라.
독살조는 잔혹귀와 광창서생을 쳐다보고 히죽 웃음을 지으며 피로 물든 이를 드러냈다.
“니미, 먼저 가우.”
누구 하나 살아서 이 사실을 알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죽을 터이고, 그 후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저승에서 술 한잔 할 수 있으면 합시다.”
그 말을 끝으로 독살조의 허리가 잘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쓰벌.”
잔혹귀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머리 없는 놈들이 한 놈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여덟이었다.
그리고 독살조가 죽었다.
후퇴하던 수하들도 모두 죽었다.
살아남은 이는 자신과 광창서생을 비롯해 목숨을 내놓은 열댓 명이 전부.
“허어―.”
광창서생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허탈한 음성을 내뱉었다.
“저승에서 술 한잔이라, 악담도 그런 악담이 없군.”
나긋한 광창서생의 목소리와 달리 창대를 잡은 손아귀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힘줄이 돋아났다.
“한잔하자는 데 안 마셔줄 수도 없고. 안 그렇습니까, 대장?”
“…….”
“그럼 먼저 한잔하러 갑니다.”
잠시 눈을 감았던 광창서생이 눈을 부릅떴다.
평온하던 그의 얼굴은 마치 가면을 쓴 듯 달라졌다.
붉게 핏발이 선 눈동자,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
왜 그의 별호에 미칠 광(狂)자가 들어가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크핫!”
광창서생은 광포한 일갈을 터트리며 야현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후우우웅!
곧은 창대가 한순간 시위가 당겨진 활처럼 휘어졌다. 그만큼 모든 힘을 일격에 담은 것이다.
야현은 팔을 들어 창대를 막았다.
상당한 힘이 담겼는지 야현의 몸이 허공에 살짝 뜨며 창과 함께 옆으로 밀려났다.
쐐애액!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잔혹귀가 야현의 다리를 노리고 거치도를 휘둘렀다. 그리고 거치도가 야현의 허벅지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려는 그때.
캉!
달빛을 가르며 한 자루의 검이 잔혹귀의 거치도를 막아섰다.
바로 야월이었다.
“좋은 한 수.”
광창서생의 창을 움켜잡고, 야월을 거치도와 엮으며 들어 올린 야현이 미소를 드러냈다.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담장을 넘어 골목길로 흘렀다.
혈사단 단주 혈풍검은 묵묵한 걸음으로 그다지 넓지 않은 주택가 골목길을 걸어 어느 사합원 앞에 섰다. 그는 바로 들어가지 않고 상단 경첩이 떨어져 나가 마치 폐가처럼 삐딱하게 틀어진 대문을 잠시 쳐다보았다. 더욱 진해진 비릿한 혈향이 그의 코를 찔렀다.
끼이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사합원 마당에는 여전히 마르지 않은 피가 흥건하게 뿌려져 있었다.
그다지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던 혈풍검이었지만 그런 그도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눈썹이 꿈틀거리며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 이유는 마당에 세워진 서른 개의 창대와 그 끝에 꽂혀 있는 혈사단 제오대 대원들의 수급 때문이었다.
“시신을 거두게.”
작지만 묵직한 어조.
“예.”
뒤를 따르던 제일대주 사풍도가 손짓으로 수하들을 시켜 동료들의 시신을 수습시켰다.
“요 앞에 반점이 하나 있더군. 먼저 가 있지.”
“제가 모시지요.”
사풍도의 이어진 말에 혈풍검이 내디디려던 걸음을 멈추고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를 옮긴 둘은 독한 화주에 소채 볶음과 야채 만두를 시켰다. 혈풍검이나 사풍도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잔혹귀가 항상 피비린내 나는 싸움 후 즐겨 먹던 술과 안주였다.
그렇다고 잔을 하나 더 내오지는 않았다.
그저 둘이 잔을 채우고 입을 적실 뿐이었다.
“제이대에 제오대까지. 혈사단 꼴이 말이 아니군.”
혈풍검의 씁쓸한 목소리.
자존심이 상해서가 아닌 제 팔이 잘려 나간 아픔 때문이었다.
“그토록 움직이지 말라고 당부를 했건만.”
혈풍검은 입술만 대었던 잔을 들어 바닥에 술을 뿌렸다.
“그럼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사풍도의 목소리는 혈풍검만큼이나 차분했지만 적의가 간간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당했는데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지.”
“…….”
“그렇다고 마냥 지켜볼 수도 없고.”
혈풍검의 목소리는 답답하기 그지없다는 어조였다.
“지금 우리가 쫓고 있는 놈들이 진짜 하오문인가 의구심이 생겨.”
혈풍검은 목이 탔던지 그답지 않게 화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사풍도도 어느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별반 놀란 눈치는 아니었다.
“사성각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사풍도가 혈풍검의 잔을 채우며 물었다.
“그놈들도 뭘 알아야 알려 주지. 아는 게 없어.”
사풍도의 안색이 변했다.
마치 초롱불 하나 없이 밤길을 걷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 싶지만 애써 꾹 눌러야 했다. 자신보다 혈풍검이 더 답답하면 답답했지 덜하지는 않을 상황이니까.
“뭘 그리 심각해지나?”
혈풍검이 사풍도를 향해 잔을 들었다.
“나 단주일세. 혈사단 단주.”
“…….”
“평생 싸움터를 전전하며 이골이 박힌 사람일세. 이대로 당하지 않는다는 말이지.”
“단주님.”
“최악의 경우 죽기밖에 더하겠나?”
혈풍검의 차가운 미소에 사풍도도 굳건한 눈으로 화답했다.
“대주님. 수습을 마쳤습니다.”
그때 제일대 대원이 반점으로 들어서며 보고했다.
“일어날까?”
혈풍검의 입가에 지어진 부드럽던 미소가 어느새 사라졌다.
‘일단 사성각부터 족쳐야겠군. 그리고 하오문, 아니 그 뒷그림자.’
혈풍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짧은 추모식이 끝이 났다.
그 시각.
뒷수습을 마친 월영이 야현과 마주 앉아 있었다.
그런데 월영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러니까 쓸 만한 정도도 아니고, 남궁세가의 무공 수준과 비슷한 문파 중 잡아먹기 좋은 문파를 선별해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본인이 경험을 해 보니, 무인들의 수준이야 지극히 개인적이니 열외로 치더라도 확실히 중원의 무공이 서방의 무공보다 수준이 높아.”
“…….”
“본인의 수하들도 중원 어디에 내놔도 강자라는 소리를 듣겠지.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상대해야 할 이들이 좀 강해야 말이지. 본인은 내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런 문파가 어디 뒷골목 왈패단도 아니고.”
“골라 오기만 해. 본인이 알아서 할 테니.”
“하아―. 알겠습니다, 주군.”
좋든 싫든 주군이다.
명을 내리면 따라야 한다.
월영의 복명에 한숨이 담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날 저녁.
월영이 작성한 얇은 보고서가 야현의 집무실 책상에 올라왔다.
“끙.”
야현은 얇은 보고서를 손으로 훑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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