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1
※19금 회차는 없습니다..!
EP.1 마왕을 처치했다 – 1
[마왕 처치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거대한 뿔과 산더미같은 덩치.
우락부락한 근육에 수많은 촉수와 어둠의 기운을 뿌리던 마왕의 목에 용사의 검이 꽂힘과 동시에 눈 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내가 하던 게임에 빙의되고 3년.
이제 겨우 한시름 덜게 되었다.
모든 업적을 달성하면 현실로 귀환이 가능하다는 조건을 듣고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
물론 마왕 잡았다고 바로 돌아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큰 산 중 하나를 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어쨌든, 그간 날 힘들게 한 것들과 이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니.
“하아… 하아…”
마왕의 목을 딴 용사.
금을 녹여 부어 만든 듯한 섬세한 금발.
오랜 여행에 대한 고생이 느껴지는 갸름한 얼굴.
태양을 닮은 주홍빛 눈동자와 그 강력한 힘과 상반되게 가녀린 팔의 주인.
늘씬한 몸매가 인상적인 미녀, 용사 클레어는 날 보다가 힘겹게 말했다.
“저…기… 현자… 회, 회복을…”
“아. 그렇지.”
그녀의 외침에 정신이 들었고 난 다른 파티원들을 보았다.
청색 빛이 띄는 은발에 남자인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
갑옷 안쪽에 드러난 근육으로 자신의 힘을 증명하는 여기사. 레벤티아는 마왕의 공격으로 피를 토하며 헐떡거리고 있었다.
밤하늘처럼 윤기 넘치는 아름다운 흑발이 인상적인 녹안의 미녀.
축 늘어진 긴 귀 덕분에 현재 완전히 마음이 꺽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엘프 여궁수. 에반젤린은 시위가 끊어진 활만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그나마 서 있는 것은 공식적인 용사 파티의 리더인 용사 클레어.
그리고 비공식적 파티원인 나 현자 윤현우 뿐이었다.
“현…자…?”
간신히 날 부르는 목소리에 조금 고민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3년간 내 고생의 8할은 얘들 뒤치닥거리 하는 것 때문이었으니까.
여덟 별의 추구자.
내가 들어오게 된 이 게임은 난이도 더럽기로 유명한 로그라이크 게임이다.
죽으면 되살릴 수도 없고.
또 무슨 개복치도 아니고 스트레스 받는다고 돌연사한다거나, 파티를 탈퇴한다거나.
아니면 뒷통수를 치는 일도 빈번한.
참 더러운 게임이었다.
아무튼 이 게임에 진입했을 때는 이미 용사파티가 구성되어 있었고, 게임의 설정 때문인지 아니면 현자라는 직업 특성 때문인지 파티에 참가할 수 없었다.
결국 비공식적인 파티원으로서 그들을 졸졸 쫓아다니며 지원해줬는데 그 과정에서 겪은 일들이 참으로 버라이어티해서…
더 이상 크게 필요가 없어진 얘들을 치료할지 말지 솔직히 고민이 안될 수가 없었다.
“혀… 현자? 아니… 현우야…?”
겁먹은 듯한 목소리에 난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못 끝낸 업적들도 있고 자잘하게 쟤들이 해줄 일도 남았으니 여기서 죽게 내버려둘 필요는 없겠지.
“힐.”
지팡이에서 퍼져나가는 은은한 빛이 주변을 감쌌다. 그 순간 전투불능 상태가 된 둘이 큰 한숨을 토해내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는 것이 보인다.
“후우우… 이 머저리 인간이…!!”
힐을 늦게 써서일까? 엘프 궁수 에반젤린이 내게 다가와 으르렁거렸다.
그녀의 뒤를 이어 여기사 레벤티아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날 응시하다 경멸의 뜻을 보였다.
“…칫. 그대는 동료를 돕겠다는 의지조차 없는 것인가?”
회복되자마자 이들은 날 매도하면서 마왕과 싸우며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말려야 할 용사 클레어는 어두운 낯빛으로 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래. 이들의 의미없고 불합리한 매도로 자신들의 자존감을 세우는 모습을 파티장인 그녀는 보고만 있었다.
행여나 내가 반박할까봐.
행여나 내가 화를 낼까봐.
그럼으로써 아슬아슬하게 이어져오던 파티가 깨질까봐.
딱히 잘못된 일은 아니다.
애초에 나를 희생양으로 써서 파티를 유지하는 것은 내가 바란 것이기도 했고, 또 게임에서도 유효하게 쓰이는 전략이니까.
물론 나도 마음은 유리로 되어 있는터라 속이 쓰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일단은 나도 남자다.
셋 모두 아름다운 미인들인데다가 초, 중반 까지는 나름대로 사이가 좋았으니까.
용사의 검을 뽑아 용사로 선택받은 클레어는 용사 파티의 특권인 신의 가호를 받지도 못한 채 따라와준 나에게 항상 미안해하며 고마워했었다.
긍지높은 여기사인 레벤티아는 무뚝뚝하지만 업적작을 위해 도시 내 평판을 올려 업적 달성을 하려는 나와 함께 사람들을 돕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었다.
내 류트 연주와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하며 깔깔 웃던 엘프 궁수 에반젤린은 축제 이벤트를 함께 하고 난 이후 날 명예엘프로 삼아주겠다고까지 했었다.
그런 모두가 변할 정도로 메인 스토리의 여정은 힘들었고, 괴로웠다.
하지만 지난 일 떠올려봐야 뭐하겠나.
“하아아아… 어쨌든 마왕을 쓰러트렸으니 어서 왕도로 복귀하자.”
용사 파티의 의무는 마왕을 처치하는 것.
그것을 이뤘으니 저들 모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
용사는 왕국으로 복귀해 영웅이 될 것이고.
여기사는 기사단으로 돌아갈 것이며.
엘프는… 뭐 숲에 돌아가겠지?
아니면 왕국에 그냥 남을 수도 있겠고.
용사파티원으로서 마왕 처치라는 위대한 업적을 세운 그들인만큼 모두 크게 한자리 해먹을 수 있을거다.
물론 난 아니다.
난 원래 파티에 없는 비정규직인데다가 그딴 건 관심도 없으니까.
“그, 그래. 어서 가자. 어서.”
레벤티아와 에반젤린의 매도가 평소보다 빨리 끝나자 클레어는 나와 다른 파티원들의 눈치를 살피며 황급히 말했다.
용사만 쓸 수 있는 전용 마법인 포탈이 완성되었다. 왕도와 연결된 차원의 문 앞에서 클레어는 날 간절히 바라보았지만.
음…
“너는 정신상태가 썩어빠졌다. 기사단으로 돌아갔을 때 내 종자로 삼아 제대로 다시 훈련시켜주도록 하지. 따라오도록.”
“그게 아니라 숲을 관리하는 하급 숲지기라도 하는 것이 낫지 않나 싶군.”
“왕국의 병사가 어떨까? 아니면 내 저택의 하인도 괜찮겠지.”
“저, 저기. 그런 얘기는 나중에…하면 안될까?”
“용사가 그렇게 말한다면 받아들여야지.”
“후. 명예 엘프인 용사가 너 같은 머저리 인간도 보호해주려하는군.”
마왕 처치 이후의 내 처우에 대해 둘은 멋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기사단의 종자, 아니, 기사단의 하인이 나을 것이다.
아니다. 그래도 밥은 그럭저럭 하니 파티의 식순이로 데리고 다니는게 낫지 않느냐.
숲에서 나무나 기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
왕국의 병사로서 넣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둘이 열심히 떠들고, 클레어는 어쩔 줄 몰라만 하며 만류하지 않는 사이 난 웃었다.
“그래. 자. 얘들아. 일단 좀 모여봐.”
“호오. 그래. 정했나? 역시 기사단으로 가는 거겠지? 너의 그 썩어빠진 정신상태를 교정하려면…”
“숲이다. 숲. 멍청한 것아. 숲의 고귀함이 아니라면 저 머저리 인간이 제대로된 인간이 되지 못할테니까.”
아직 스트레스가 많이 남았는지 그녀들은 열심히 날 매도하며 내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렸다.
물론, 그 청사진은 내가 해야 할 일과는 꽤나 동떨어져 있었다.
하인이나 종자 그런 것들 한다고 업적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란 말이지.
난 남은 업적들을 확인했다. 마왕을 쓰러트리기 위해 지금까지 용사파티로 돌아다니며 메인 스토리를 진행해야만 얻을 수 있는 업적은 전부 얻었다.
남은 것은 메인 스토리 종료, 즉 마왕 처치 이후에 할 수 있는 어드벤쳐 모드를 통해 그동안 하지 않았거나, 마왕 처치 이후에 얻을 수 있는 업적들을 달성하는 것들 뿐.
굳이 지금처럼 용사파티에 달라붙어 졸졸 따라다닐 이유는 전혀 없다.
그렇기에.
이제 마왕을 쓰러트려 그녀들과 함께 할 이유가 없기에.
난 그녀들을 향해 웃었다.
아주 홀가분하게.
“그동안 함께해서 즐거웠고 앞으로 각자 알아서 잘 살아보자!”
딱히 즐겁지는 않았지만.
떠나는 마당에 뭔 말을 못해주겠나.
“…뭐? 혀, 현자. 현우야… 그게 무슨…?”
“헤어지기 전에 구호 한번 하자고!”
메인 스토리 5장.
우리 사이가 어색해지기 전까지는 힘들 때마다 항상 했던 구호를 위해 난 손을 내밀었다.
물론, 얘들은 그저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날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지만.
“자!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
“하나! 둘! 셋! 화이팅!”
나 혼자만 외치고 나 혼자만 손을 든 구호가 끝났다.
용사는 포탈을 열기 위한 검에서 손을 떼었고, 여기사는 이해가 안간다는 듯 눈쌀을 찌푸렸으며 엘프는 이를 악물었다.
“저기… 혀, 현우야? 아니. 혀, 현자. 왜 그래…?”
침음성을 흘리듯 용사가 말했다.
“어? 이제 마왕도 잡았고 서로 볼일 다 봤으니까 각자 갈길 가자는건데?”
“무슨. 무슨…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이제야 이해를 한건지 레벤티아는 빽 외쳤고 난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처음부터 난 마왕 처치까지만 함께 한다고 했었잖아?”
“아직 해야 할 일은 많다!”
“그렇겠지.”
마왕이 쓰러졌지만 마물들은 많았다.
그들을 모두 없애기 위해서는 용사파티의 힘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너희들은.”
하지만 거기까지 내가 같이 갈 이유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건 업적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모든 업적을 획득하는 것 외에 것은 큰 관심이 없었다.
“…거짓말이지?”
내게 내렸던 명예 엘프 직위를 다시 회수해간 이후로 항상 날 머저리 인간이라 불렀던 엘프 여궁수는 꽤나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언제나 기품 넘치고 오만한 눈은 꽤나 떨리고 있었다.
“거짓말. 머저리 인간. 넌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이 나오나? 후. 좋아. 너에게는 크나큰 영광이겠지만 너에게 다시 명예엘프를…”
“아냐. 아냐. 뭔 명예엘프야. 그딴거 관심없어.”
순간 클레어의 주홍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용사이지만 그 속은 겁쟁이인 그녀는 내가 떠난다는 말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저기, 혀, 현우야. 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은…”
“멋대로 파티를 따라다녀놓고서!! 이제와서 도망가겠다는 것이냐!!”
레벤티아가 외쳤다. 정신이 썩었다느니, 제대로 훈련을 받아야한다느니. 자기 종자로서 제대로 굴려주겠다느니. 귀족가의 하인으로 일해야한다느니.
그녀는 자신이 옳다는 아집.
용사파티의 일원으로서 겪은 수많은 고통과 괴로움, 스트레스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아집에 빠진 채 나에게 거칠게 외쳤고 에반젤린 역시 비슷하게 날 잡아두려는 건지 떠나보내고 싶은 건지 모를 매도를 시작했다.
“그렇게 말해봤자… 서로 원하던 것을 이뤘잖아?”
너희는 용사이고, 용사파티의 일원으로서 마왕을 쓰러트리길 바랐다.
그렇기에 힘든 여정으로 과도하게 쌓인 불만과 스트레스를 나로 해소했다.
나는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고 마왕을 쓰러트려 업적을 달성하길 바랐다.
그렇기에 너희의 안정적인 여정을 위해 3년간 희생해주었다.
참으로 깔끔한 거래고, 거래였다.
물건을 샀으면 집에 가야하듯, 서로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그럼 이제 끝 아닌가?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언급하자 클레어는 눈이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현우야. 내가 대신 사과를… 원래 티아와 에바가 저렇지 않은데…”
“오오. 아냐. 아냐. 괜찮아.”
게임 시스템상 파티원은 원래 세명이 한계다.
내가 이렇게 따라붙은 것도 결국은 꼼수를 쓴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나에 대한 호감도 하락과 스트레스 상승은 게임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던 일이라 지금까지 있었던 얘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내가 고생한게 있으니 5700자 꽉 채운 쌍욕과 부모님 안부라도 묻고 싶지만 아직 쟤들이 해줘야 할 일도 남아 있으니 그정도까진 하지말자.
“……”
정리를 끝낸 나와 달리 용사파티원들은 당혹스러워만하고 있었다.
그동안 온갖 성질을 내고, 괴롭히고, 잡일을 떠넘기고 성과를 인정하지 않아도 화내지 않고 어떻게든 따라붙던 나다.
그런데 그들 나름대로 제안하는 영광의 자리도 걷어차고 떠난다니 혼란스러운건가?
“아무튼 그동안 고생 많았고… 남은 마물 처치는 힘내라! 화이팅! 너희들이라면 잘 해낼 수 있을거야!”
그래. 잘 해낼 수 있을거다.
그동안 레벨도 많이 올렸고 경험도 쌓은데다가 군대도 도와줄테니까.
“자, 잠깐! 어떻게 가려고? 너 지금 흥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일단 이야기를… 어차피 포탈을 써야 돌아갈 수 있잖아! 여기서 걸어갈거야? 왕도에 가자. 응? 가서 얘기를….”
현재 위치는 마물들이 넘치는 검은 대룩의 중앙.
여기서 왕국까지 돌아가려면 포탈을 써야만 한다.
포탈은 용사만이 쓸 수 있는 마법이니 만약 그녀가 허락해주지 않는다면 난 여기서 꼼짝없이 고립될 수 밖에 없다.
“후우우… 그, 그래. 좀 침착해진 후에 다시 이야기를 하자! 종자가 마음에 안든다면 수련기사, 아니 기사를…”
“…그럴리 없다. 네가 왜 이제와서… 명예 엘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가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은 탓일까? 셋은 어쩔 줄 몰라하며 내겐 별 의미없는 대가들로 날 잡아두려 했다.
마치 호랑이에게 빵을 던져주고 배를 채우라는 듯이.
“나 포탈 안써도 돌아갈 수 있어.”
“…뭐? 그럴… 그럴리가.”
“난 신경쓰지 말고… 돌아가서 마왕 처치 보상 잘 받아. 그리고 앞으로 볼 일은 없겠지만 너희들의 앞길에 축복이 있기를 비마!”
난 손가락에 끼워둔 반지를 들었다.
순간이동 반지.
전에 업적 하나를 달성하고 얻은 마도구다.
효과는 말 그대로 텔레포트.
과거 내가 지나왔던 마을로 갈 수 있는 반지.
그걸 본 셋의 안색이 저 하늘처럼 파랗게 물들어간다.
“기다려!! 잠깐만! 잠깐! 우리 얘기 좀…!!”
기사, 궁수, 그리고 용사까지.
모두가 날 잡았고.
“어딜 만져.”
난 그들을 뿌리쳤다.
내밀어진 손에 맞은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거절당했다는 충격 때문인지.
그게 아니면.
지금까지 항상 웃으며 그들의 응석을 받아주었던 내가 웃음을 지운 채 자신들을 무가치한 것을 보는 듯 응시하는 것 때문인지.
세 여인들의 얼굴은 불안감으로 일그러져가고 있었다.
“자! 그럼 안녕이다!!”
마법이 발동된 순간 그들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다시 날 잡기 위해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이 이별로 그들은 상처입을 거라는 것을.
그런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우리가 그렇게까지 행복했던 사이도 아니었는데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