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2
EP.2 마왕을 처치했다 – 2
누가 그랬던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은 함께 온다고.
새벽에 들어 온 좋은 소식에 기뻐하며 난 노트북을 열었다.
할 만큼 했고, 이제 물릴때도 되지 않았냐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은 게임인 여덟 별의 추구자를 시작하려고 할 때.
갑작스러운 스팀 채팅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여덟 별의 추구자의 개발사에서 보낸 채팅이었다.
[저기…]
갑자기 개발사에서 왜 일개 유저에게 채팅을?
의문은 곧 의심이 되었고, 순식간에 기지개를 펴 모습을 변화시켰다.
끔찍한 공포로.
그 한마디 채팅창의 글귀에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손발이 덜덜 떨렸다.
[…아시죠?]
“…씨발.”
그것을 끝으로 난 게임 속으로 빙의했다.
[모든 업적을 달성시 현실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니 깊은 밤의 도시였다.
하늘은 어둡지만 도시는 붉은 달 하나만 덩그러니 떠있는 이 밤에도 마치 대낮처럼 환했다.
남자들을 위한 조금은 응큼한 술집에서는 조용히 붉은 등을 걸고, 목숨이 아닌, 금화를 얻기 위한 싸움이 벌리는 투전판에서는 녹색의 등을 건다.
당장 내일이면 먹지 못할지도 모를 음식을 팔기 위한 주점은 노란 등을, 마물들과 싸우는 모험가나 군인을 위해 장비를 파는 곳은 청색 등을.
그렇게 도시의 수많은 가게에서 장식한 형형색색의 등불들로 이 도시는 활기차 보였다.
내 축 늘어진 기분과 다르게.
아니 원래 이런 건 불만을 품고 욕이라도 쏟아부어야 들어가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런 것도 안한 선량한 나한테 왜 이런 시련이?!
하필이면 이런 로그라이크, 그것도 난이도 더럽기로 소문난 이 게임에 떨어지게 될 줄이야.
“하… 씨발.”
도시의, 아니, 세계의 이방인인 나는 입술을 깨물 수 밖에 없었다.
하늘은 검고, 달은 붉다.
달이 붉다.
난이도마저 파티원이 세명 이하로만 고정되는데다가 스트레스 수치나 적들의 공격력 방어력이 상승하는 하드코어라는 얘기다.
그나마 다행이라 할 만한 것은 내 직업이 하드코어에서만 고를 수 있는 ‘현자’ 라는 것이었다.
여덟 별의 추구자는 제목답게 플레이어는 용사를 포함해 총 여덟개의 직업을 가진 이들 중 선택해 파티에 넣을 수 있다.
용사, 기사, 궁수, 전사, 마법사, 사제, 도적, 주술사.
하지만 유일하게 하드코어에서만 한가지가 더 추가되는데 그게 바로 현자다.
존재할 수 없는 아홉번째 추구자라는, 남심을 덜덜 떨리게 하는 설정의 직업.
또한 ‘Jack of all trades and master of none’, ‘박이부정’, ‘현명한 자’, ‘사기캐릭터’ 라는 컨셉에 따아 여덟 메인 직업뿐만 아니라 서브직업까지.
그들 고유의 직업 궁극기를 제외한 모든 스킬을 쓸 수 있다.
파티원이 한정되는 더러운 난도를 위한 개발사의 티끌같은 양심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직업 궁극기를 쓰지 못하고, 스킬의 위력이 해당직업보다 효과가 약하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스킬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많은 곳에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하드코어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파티에 현자를 끼워넣곤 했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제일 좋은 건 용사가 되어 상황 자체를 내가 컨트롤 하는 거지만…
아무리 매사 긍정적인 나라도 ts되어 암컷타락의 위협에 덜덜 떠는 것만큼은 사양이니 진짜 그나마 다행이다.
“하…”
더 이상의 욕설은 의미없었다.
씨발로만 팔만대장경을 만들어 현실로 복귀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하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잖은가.
거기에 이 게임의 특성상 과도한 스트레스는 곧 죽음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자.
아무리 현실이 시궁창이더라도.
거기에 아예 답이 없는 것도 아니잖은가.
[모든 업적을 달성시 현실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유일한 단서이자 희망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러니.
하는 수 밖에.
늦은 밤이었다. 새벽 별이 붉은 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간힘을 쓰며 자신을 드러내려는 시간대였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다가 퇴근하는 사람들.
혹은 내일 전투를 위해 낡은 숙소나 여관으로 돌아가려는 자들.
또는 한잔의 술을 더 마시기 위해 돌아다니는 이들.
다양한 이유로 거리를 채우는 이들을 지나쳐 내가 도착한 곳은 테일 주점.
게임의 1장에서 용사가 동료들과 만나는 곳이다.
플레이어는 이곳에서 동료들과 마주하게되고 메인 스토리가 시작된다.
부디 아직 파티원 모집이 끝나지 않았기를.
두 손을 모아 신께 빈 나는 바로 문을 열었다.
“자! 그럼 마왕 처치를 위하여!”
황금빛 머리칼의 아름다운 미녀.
청빛이 어우러지는 짧은 은발에 낡은 갑옷을 입은 굳은 표정의 여기사.
그리고 칠흑같은 흑발에 가벼운 차림을 한 엘프 여궁수까지.
세 미녀들이 밝은 미래를 꿈꾸며 잔을 부딪히고 있었다.
용사.
기사.
궁수.
파티 구성을 본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얘들아…
너희 스트레스 관리랑 회복은 어떻게 하려고 힐러를 안받았니…?
“…저기.”
“예?”
“혹시 용사 클레어님 아니신가요? 파티원 모집하신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어, 어머. 어떻게 하죠?”
당황한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사과했다.
“이미 파티원 모집이 끝나서…”
혹시 몰라 찔러봤는데 씨알도 안먹혔다.
모든 업적 달성을 위해 오면서 짜둔 청사진이 순식간에 쓰레기가 되었다.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주륵주륵 흘러내리고 목 뒤가 뻐근해진다.
하드코어 모드에서 현자도 없는데다가 힐러도 없다?
이래서는 마왕처치는 커녕 메인 스토리를 3장도 못 깨고 파티는 전멸할거다.
마왕을 쓰러트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용사 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대로는 안된다.
난 당황하면서도, 날 파티에 끼워 줄 생각을 하지 않는 클레어를 향해 간신히 웃었다.
나보다 먼저 파티원이 된 레벤티아와 에반젤린이 뭐라고 떠들며 날 위로하는 사이, 난 그들에게 대충 답하며 머리를 굴렸다.
이 게임에 일만시간을 태운 게이머로서의 경력이 모든 업적 달성을 위한 새로운 청사진을 빠르게 그리고 있었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네… 죄송해요.”
난 아쉬워하는 그녀에게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물러난다.
자리에 홀로 앉은 채 맥주를 홀짝거리며 셋을 보았다.
셋 모두, 희망찬 내일을 꿈꾸고 있지만, 그들의 눈에는 불안감이 담겨 있었고, 난도가 하드코어라는 것을 증명하듯 벌써부터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안해하지 말거라.
너희들이 좋든 싫든.
너희가 마왕을 쓰러트리게 해줄테니까.
그걸 위해서라면.
너희들을 위한 아가페 따위, 얼마든지 줄 수 있다.
====
…잠깐 정신이 나가서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난 순간적이나마 내 정신을 나가게 한 이들을 보았다.
지적인 미모의 여사제.
그리고 생글생글 웃는 낯이 잘 어울리는 늑대인간 소년 주술사.
이번 의뢰를 위해 함께 하기로 한 저 둘은 놀랍게도 퀘스트를 시작한 몇시간만에 내 정신을 나가게 만들었다.
정말 굉장한 작자들이다.
“와! 현자님! 이제 우리 와이번 잡는거에요?! 와이번! 와이번! 와! 나 와이번 한번도 본 적 없는데! 잘 잡을 수 있으려나? 잡을 수 있겠죠? 그죠? 그죠?”
대책없이 밝은 늑대인간 주술사가 히죽히죽거리며 떠들고 있었다.
“와! 와이번 아시는구나! 혹시 모르실까봐 설명해드리는 건데 와이번은 한쌍의 날개를 가졌고 그 끝이 다이아몬드 형상을 한 긴 꼬리를 지녔습니다. 그리고 이빨은 종에 따라 다르지만 수십개를 기본으로 하며 저희가 이번에 잡아야 할 와이번은 독을 지닌 것입니다!”
여사제가 하얀 콧등에 걸쳐져 있는 안경을 쓱 밀어올려 고쳐쓰며 설명했다.
일반적인 설명보다 좀 더 길게.
“근데 현자님께서 해독마법도 쓰실 수 있으시잖아요!”
“예. 해독마법은 기본적으로 물과 관련된 일종의 치유술로 두종류로 구분됩니다. 그 기원은 마법과 성력으로 따지는데 현자님께서 쓰시는 해독마법은 마법계열, 특히 물 쪽으로 볼 수 있죠. 그렇기에 생물독 해독에 크게 효과가 깊으니 독에 대한 위협은 크게 줄 수 있습니다!”
“아. 그렇구나! 그래도 와이번은 위험한 몬스터잖아요! 사제님의 힐링도 믿고 있어요!”
“너무 힐링만 믿으시면 안됩니다. 힐링에 대해 잘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힐링은 신체의 회복력을 앞당기는 계열과 신성력에 의해 회복을 시켜주는 것으로…”
용사 파티에서 탈퇴한 이후로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업적 중에 ‘이제부터 나도 S급 모험가.’를 달성하기 위해 모험가 길드에 가입해 퀘스트란 퀘스트는 파티원 안가리고 싹 다 받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런 애들과 파티원이 되어도 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아니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하나는 설명충에 하나는 꽃밭이라니…
모험가라는 작자들은 정상이 이렇게 없단 말인가!
요 몇달간 이 마을에서 같이 퀘스트한 작자들 중에 정상인이 손에 꼽을만하더니 마지막 퀘스트에서도 지랄이네.
“그런데 현자님.”
“왜.”
“모험가 길드에 퀘스트 들어왔는데요. 현자님 찾는 퀘스트에요! 용사님 파티에서 현자님을 엄청 찾고 있다던데! 안가봐도 되나요?!”
용사파티에서 탈퇴하고 한달 째 되었을 때부터 모험가 길드 뿐만 아니라 몇몇 마을에서 날 찾는 일이 늘었다. 궁금해서 확인해보니 용사를 비롯한 여기사, 엘프가 날 계속 찾고 있다더라.
몇몇 마을에는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던데 실제로 마주친 일은 없었다.
딱히 피한 건 아니다. 피했으면 오히려 걔들이 피해야겠지.
그런데도 그들과 만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걔들 만나서 구구절절 하소연 듣는 일 따위보다 업적 하나라도 더 따는게 중요했을 뿐.
“냅둬.”
“와! 용사파티…”
“오. 제발 사제님. 아가리 좀 쌉쳐. 이제 슬슬 와이번 잡을 때 됐으니까.”
“와이번이다!! 와이번씨! 안녕하세요오!”
“너도 좀 닥쳐…”
진짜 정신 나갈 것 같다.
차라리 용사파티 애들이 양반이지…
아니. 그게 나은건가?
아무튼 빨리 잡고 돌아가자. 할 일 많다.
여기 와이번만 잡으면 이 마을에서의 퀘스트는 끝이니까.
다른 마을에서 할 퀘스트는 좀 정상인과 다닐 수 있기를…
-끼에에에에엑!!
거친 비명소리와 함께 하늘이 어두워진다. 몸 여기저기에 검은 얼룩이 가득한 흉측한 마물.
와이번이 눈에 독기를 품은 채 우리를 향해 강하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늑대인간 주술사는 지팡이를 들었다. 그리고 사제는 바로 성서를 꺼내 기도를 시작한다.
그럼 현자인 나는…
“바인드.”
준비한 사슬을 던진 후 날개가 묶여 바닥에 추락하고 정신 못차리는 놈을 향해.
“으쌰!!”
해머를 휘둘러주었다.
전사의 초급기술인 크래쉬에 맞은 놈이 헤롱거리는 사이 주술사는 단검을 들고 크게 웃으며 활기차게 뛰었다.
“와아아! 근데 와이번 되게 크다!”
“와이번이 이렇게 큰 이유는 마왕 이전 혼돈에 의한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죠. 그로 인해서 많은 마물들이 변했지만 와이번은 특히 심하게 변했습니다. 그에 대한 학설로는…”
귀터지겠다.
제발 입 좀 다물고 싸우면 안될까?
…진짜.
전이나 지금이나 파티에 사람새끼가 없네.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정신병 하나씩은 갖고 다닌다지만 이 게임은 주역 캐릭터들 외에도 스트레스에 치여살고 있었다.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모험가든 용사파티든 다른 생명을 죽여가며 연명하는 삶이다.
평범한 삶에 비하면 그에 다가오는 부담은 클 수 밖에 없고, 그것은 육체 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우오오옷! 잡았다! 잡았다! 와이번 이거 별거 아니네! 아하하! 현자님 고생하셨어요! 진짜 현자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냥하니까 되게 쉽네! 다른 녀석들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엔 트윈 오거 어때요? 아니다! 아니다! 머드 드래곤도 괜찮을거에요!! 그게 아니면…”
“와! 트윈오거 아시는구나! 정말 겁.나.셉 니.다. 트윈오거는 두개의 머리를 가진 오거로…”
무릇, 신은 사람에게 견뎌낼 수 있는 시련만 준다지만.
이미 힘든 와중인데 좀 쉬운 시련을 주면 안되나?
저번에는 색정증 환자가 있질 않나. 그 전에는 도벽이 있는 놈이 붙질 않나.
이번에는 조증이라도 걸린 듯 한시도 쉬지않고 웃고 떠드는 꼬마에 지독한 설명충이라니…
왜 난 정상적인 작자들과는 파티를 할 수 없는 걸까.
아무튼 의뢰는 끝났고 의뢰 품목인 와이번의 머리를 들고 우리는 마을로 복귀했다.
“자. 그럼 해산하고 다음에는 보지 말자.”
“에에에에~! 전 현자님이랑 계속 같이 다니고 싶은데! 저희 고정파티하는 거 어떨까요?! 신청할까요? 아니다! 제가 신청할테니까 현자님은 그냥 얌전히 계세요!”
“고정파티는 길드에 신청하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으로 대부분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온 모험가들이 구성할 수 있는 파티입니다. 그로 인하여….”
“됐거든? 신청하지마라. 진짜 혼난다.”
난 그들의 제안을 깔끔히 무시했다. 찾아보면 그래도 멀쩡한 모험가들이 많은만큼 얘들이랑 계속 같이 다닐 생각은 없다.
어쩐지 실적이 좋은데도 평가 랭크가 낮더라.
“여기요.”
난 둘 대신 와이번의 머리를 모험가 길드 사무소에 올렸다. 그걸 받은 직원은 밝게 웃었다.
“고생하셨어요. 와이번 퇴치는 쉽지 않은 것인데…”
“그럼 이 마을에 있는 묵은 퀘스트는 끝이죠?”
“어… 그렇긴 한데. 저기 현자님. 왕실에서 현자님께 보낸 편지가…”
“용사 파티가 찾는 거면 그냥 버려요.”
“아뇨. 왕실에서 직접 보낸 편지에요.”
설마? 아직 s급 모험가가 된 것도 아닌데 벌써 왕실 퀘스트가 떴나?
난 직원이 내민 편지를 받아 펼쳐 읽어보고 웃었다.
“뭔데요?”
“공주님의 스승으로 절 추천한다는군요.”
“와! 굉장하잖아요!! 왕족의 스승이 되는 건!”
그녀는 온 몸으로 호들갑을 떨었지만 내게 그런 영광은 알바가 아니다.
원래라면 몇단계를 거쳐야 도전 할 수 있는 ‘S랭크 스승님’ 업적을 한번에 깰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뿐이니까.
아무튼 거절할 이유는 없다.
비록 용사파티 애들과 마주칠 수 있다 하더라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신작 시작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