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00
101화
“우선 이런 심각한 사안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죄송하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지금 경찰 내부의 비리가 있는지 특별 감사팀을 꾸려 전면적인 조사에 나섰고, 이와 관련있는 과장 둘을 즉시 해임하였습니다. 또한 조금이라도 이번 일과 연루된 자들에게 중징계를 내려 일벌백계를 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이번 사태로 국민 여러분을 실망시켜드려 죄송합니다.”
재환은 대본을 술술 읊는 경찰청장을 보며 코웃음 쳤다. 사과문의 정석을 보는 듯 했지만, 사건의 전말을 아는 재환에게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꼬리 자르기를 하겠다는 거지. 머리가 나쁘진 않네.’
재환은 턱을 슬슬 쓸면서 이제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바로 데스크로 가서 사실 경찰청장이 이번 일을 주도한 배후 세력이라고 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다.
그럼 카르텔을 한 번 흔드는 게 가능해진다.
근데 딱 그 뿐일 터다.
‘YK그룹과 달리 경찰은 사라질 수가 없는 조직이지.’
국가가 존재하는 한 경찰이란 조직은 대체될 수가 없다. 그러니 지난번과 같이 윗대가리를 한 번 잘라내도 새로운 윗대가리가 생겨날 뿐이다.
물론 이를 반복할 경우 상당한 이익을 볼 수 있다. 카르텔에 속한 말단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손을 털려 할 것이고, 중간급 간부들은 금방 위로 올라갈 수 있단 생각에 서로를 견제할 터다.
그러다보면 결국 깨끗한 인간이 위에 오르긴 할 터다. 하지만 카르텔이 손 놓고 이를 가만 지켜볼까?
그럴 리 만무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지금 물리면 피곤해지지.”
카르텔의 한 부분인 경찰 조직을 깨끗하게 하는 건 아주 조금의 성공일 뿐이다. 재환이 바라는 건 완전무결한 성공이다.
그러니 여기서 멈춘다.
“기자들에게 전달해요. 만약 경찰 쪽에서 조사를 느슨하게 할 경우 바로 준비한 자료들 보도하라고요.”
“알겠습니다.”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환은 그를 가만 보다가 물었다.
“구 회장님은 잘 모셨죠?”
“네, 두 아드님도 같이 안전 가옥으로 모셨습니다. 다만, 구준열에게서 폭행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중상은 아니지만 치료가 필요하다 판단되어 회장님의 주치의를 불러 진료를 봤습니다.”
“잘하셨어요. 그 분들은 지금부터 최우선으로 보호해야합니다.”
또 한성의 손에 넘어가는 날, 한성과 KG 그룹 둘 중 하나는 사라지게 될 거다.
재환은 그런 아슬아슬한 도박판을 벌일 생각이 없다.
“불편함이 없도록 모셔주세요. 그래도 무리한 부탁을 하면 바로 저한테 말하고요.”
“회장님, 하나 제안 드려도 되겠습니까?”
서진이 이런 말을 꺼내는 건 꽤 드물었다. 재환은 묘한 눈으로 서진의 얼굴을 바라봤다.
“말해보세요.”
“차라리 구정혁 전 회장님에게 직책 하나를 주고 KG 그룹 내부에 모시는 게 어떻습니까?”
밖에 있는 튼튼한 금고보다 눈이 닿는 적당한 금고에 넣어두자는 얘기다. 어떻게 보면 그 편이 더 안전할 수도 있다.
카르텔이 부리는 깡패들의 힘은 상당히 약해졌다. 이전이라면 대로변에서 사람 하나 납치하고도 무마하는 게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렇다보니 제법 그럴싸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재환은 묵묵히 서진을 바라볼 뿐이다.
‘다른 속셈이 있나.’
재환은 전생에서 사람을 믿었다가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다. 그것도 한 명만 그런 게 아니라 여럿이 그랬고, 깊게 믿었던 이도 자신의 뒤통수를 쳤었다.
그렇다보니 배신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민감하게 반응 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든 서진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트릴 수 있는 약점을 만든 것도 그런 일의 연장선이었다.
그런 약점을 만들어 놨음에도 서진의 제안은 쉽게 듣고 받아들일 수 없게 됐다.
“일단 고민해 볼게요. 지금은 지시대로 이행하세요.”
“알겠습니다.”
서진이 답하고 회장실을 나갔다. 재환은 눈가를 문지르고 한숨을 내쉬었다.
서진 수준으로 일처리를 해주는 비서는 없다. 새로 뽑아서 그 수준으로 키우는 것도 일이다.
계륵이란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건가 싶다.
서진에 대한 생각을 털어내고 이번 일의 마지막 단계로 넘어갈 준비했다.
* * * * *
김정연은 책상에 한 가득 쌓인 일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언론사 소송 건으로 윗선에서 제대로 찍힌 탓에 자신의 몫도 아닌 일이 늘어났다. 다른 부서에서 급한 일이라 도와달라고 한 거지만, 실제로는 기간이 아주 널널하게 남은 건들이다.
전이었으면 이걸 왜 내가 하느냐며 들이박았을 터다. 하지만 자신의 몫도 아닌 언론사 건을 맡았기 때문에 그 말도 할 수가 없게 됐다.
“내가 집을 언제 갔더라.”
거실의 풍경이 가물가물했다. 이러려고 그 고생을 해가며 검사가 되었나 싶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재환에게 말해 검사를 때려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수십 번도 넘게 했다. 굳이 이 고생을 해가며 검사자리를 유지하고 있을 이유가 있나?
그런 고민이 밀려올 때면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검찰을 떠날 땐 떠나더라도 나한테 엿을 처먹인 놈들에게 한 방은 맥여야겠다는 그런 신념이었다. 그 신념 때문에 그는 오늘도 이 사무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침침한 눈을 비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에 몰두하느라 끼니도 제 때 챙기지 못했다. 허기나 좀 달래기 위해 컵라면을 까는 순간, 사무실의 전화기가 울렸다.
아주 지긋지긋한 소리에 전화선을 뽑고 싶었다. 그랬다간 자신을 내쫓는데 혈안이 된 사람들에게 먹잇감을 던져 주는 꼴 밖에 안 된다.
좀비를 닮은 걸음으로 수화기에 다가간 그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수화기를 들었다.
“네, 김정연입니다.”
“검사님, 잘 지내시죠?”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김정연은 반 박자 늦게 반응했다.
“강재환 회장님?”
“목소리에 영 힘이 없으시네요. 영양제는 챙겨 드시고 계십니까? 나이도 있으신데 건강 챙기셔야죠.”
건강은 이 검찰을 떠나면 전부 해결될 것 같습니다.
그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고, 뱉을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였다. 재환은 김정연을 상대로 폭탄을 드랍했다.
“이번에 YK 그룹 제가 터트린 건 잘 아시죠?”
“그걸 모르는 사람이 한국에 있습니까? 북한의 직파 간첩이라도 그 사실은 알겁니다.”
“그럼 제가 전화를 왜 드렸는지도 잘 아시겠네요.”
재환의 말에 김정연은 눈가를 문질렀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또 일이 들어온다. 그 사실만으로 김정연은 숨이 턱턱 막혔다.
“저 회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제가 지금 일이 너무 많습니다…. 새로운 일을 맡기에는 시간도 여력도 없어요.”
“일이 많다고요? 아직 언론사 건 붙잡고 있어요?”
재환의 목소리에서 짙은 실망감이 묻어 나왔기에 김정연은 수화기를 양손으로 잡고 다급히 말을 뱉었다.
자신의 유일한 동아줄이 끊기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그의 속사포와 같은 말에 드러났다.
“아뇨, 아뇨. 그 건은 전부 처리했습니다.”
“근데 왜 바쁘죠?”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된다는 말에 김정연은 옆에 쌓인 일감을 돌아봤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좋을지, 적당히 두루뭉술하게 설명하는 게 좋을 지 고민했다.
고민의 시간은 짧았지만 정직하게 고하기로 했다.
자신이 찍힐 대로 찍혔고, 짬처리를 당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일감은 터지지만 도와주는 인력은 없어서 고생하고 있다.
전부 말하자 재환은 가볍게 웃었다. 그 웃음을 비아냥으로 여긴 김정연은 인상을 썼다.
‘웃어?’
지금 자신이 이렇게까지 고생하는 이유가 누구 때문인데, 웃어? 진짜 KG 그룹 회장이고 나발이고 전부 엎어버릴까.
다 같이 죽자는 심성으로 자신과 강재환의 관계를 폭로하면 아주 떠들썩해질 것이다.
언론사의 대표이자 대기업 회장과 검사의 유착관계.
기자들의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으며 타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김정연이 극단적인 선택을 앞둔 때에 재환이 가볍게 해결책을 내놨다.
“무시해요.”
“……네?”
“왜 그걸 일일이 다하고 있어요. 무시해요.”
너무나도 심플한 해결책에 김정연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일을 안 하면….”
“문제가 생기나요? 어차피 다른 부서 일, 잡무를 떠넘기는 거지 않습니까. 부장이나 되는 검사가 그 일들을 직접 보고 처리해야 하나요? 그리고 안하면 자기네들이 어쩔 겁니까.”
듣고 보니 꽤 그럴싸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으니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그 사실을 외면하기 위해 애써 새로운 변명거리를 만들어 냈다.
“그래도 조직에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버티려면 적당히 지킬 건 지키면서….”
“아니, 그 조직 다 갈아엎을 건데. 뭘 지켜요. 거기 있는 사람들 다 적이고 부장 검사님 먹이에요.”
재환의 말에 김정연은 멍했다. 그리고 옆에 쌓인 일감들을 보고 허탈하게 웃었다.
내가 이때까지 한 고생은 뭔가.
그 생각이 들자마자 한 손으로 쌓인 서류를 전부 책상에서 쓸어버렸다.
와장창!
그 과정에서 뭐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지만 그저 막힌 속이 뻥 뚫렸다.
“뭐 부서지는 소리 났는데, 다친 건 아니죠?”
“아뇨,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뭐가 좀 부서졌어요.”
“다치시면 곤란합니다. 저희 큰 일 해야 하니까요.”
재환의 말에 김정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환이 보내는 묘한 믿음이 그는 마음에 들었다.
“그럼 맡으실 거죠?”
“근데 제가 안 바빠도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 YK 건이 큰 만큼 검사장들도 자기들이 하려고 할 텐데요?”
자기 밥상은 절대로 다른 이들에게 안 뺏기는 이들이다. 특히 이번 건은 누구라도 탐내는 물건이니 절대로 남에게, 특히 김정연에게 줄 생각은 없을 거다.
하지만 저들에게 카르텔이 있다면 김정연에게는 재환이 있다.
“제가 다른 이들은 모를 고급 정보 드릴게요. 그걸 이용해서 무세요.”
“그게 되겠습니까.”
“어차피 이번 건 커요. 혼자서 먹으려면 배탈나요. 그것도 모를 정도로 멍청하면 검사님하고 싸울 짭이 안 됩니다.”
재환이 자신을 꽤 높게 평가하니 뿌듯했다. 그 마음을 아는 재환은 김정연에게 적절한 대응 방안을 일러줬다.
“여럿이서 나눠 먹을 때, 한 자리 차지하세요. 남들보다 비슷하게만 먹어도 됩니다. 나중에 제가 드린 정보로 파이가 더 커질 거니까요. 나중에 TBS 통해서 검사님 얼굴 자주 띄우면 됩니다.”
저들이 자신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드는 거다.
만약 이렇게 하고도 그들이 김정연을 무시하고 깔아뭉갠다면 그 땐 재환이 나설 의향이 있다.
“그건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검사의 직통 번호로 전화하는 것도 꽤 부담스러우실 텐데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이런 사사로운 일에 신경 쓰지 마세요.”
자신의 목이 달아날 수도 있는 일을 사사롭다 말하는 재환의 호기에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대체 저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날 때부터 타고 나야 하는 건가.
당연하지만 김정연은 다시 태어나도 재환과 같은 이가 될 자신은 없었다.
“그러니까 일 처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우리 검사님 믿습니다.”
“믿음에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전화통화를 끝내고 김정연은 허리를 폈다. 그제야 거지꼴인 사무실이 눈에 들어왔지만, 알 바 아니었다.
“일단 집에 가자.”
오랜만의 하는 퇴근길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