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2
12화
윤판석 대표는 마른세수를 몇 번 하고 자신의 손을 주물렀다.
옆에 서 있던 재환이 싱긋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렇게 긴장할 거 없어요. 기자 회견이란 거 생각보다 별거 아니더라고요.”
“…….”
윤 대표가 이를 갈면서 재환을 노려봤지만 그뿐이다.
어떠한 불평불만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지 못했다.
자신의 목줄을 쥔 건 이제 재환이니까.
덕분에 차곡차곡 쌓인 분노로 인해 화병이 도지기 일보 직전이다.
재환이 그걸 모를 리 없다.
잘 알면서도 타오르는 속에 굳이 장작을 더 쪼개 넣었다.
“우리 윤 대표님 비서가 없으니까 넥타이가 구겨진 것도 모르시네. 정리해 드릴게요.”
잘 매여진 넥타이를 일부러 풀었다가 다시 묶어나갔다.
동시에 윤 대표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가서 하실 말은 다 아시죠?
“…그래.”
“아 다르고 어 다르니까 말할 때 조심해주세요. 아시겠죠?”
일부러 넥타이의 목 부분을 꽉 조여 올렸다.
교수형을 연상시키는 동작에 윤 대표는 살짝 몸을 떨었다.
넥타이를 고쳐준 뒤 재환은 그의 등을 떠밀었다.
이제 나갈 시간이다.
재환의 압박에 윤 대표는 문을 열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사내에 마련된 대회의실에 의자들을 배치해서 기자회견장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사람이라도 좀 적었다면 덜 긴장됐을 텐데 빈자리 하나 없이 기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윤 대표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플래쉬 세례를 지나쳐 단상으로 올라갔다.
먼저 물로 타는 목을 달랜 뒤 준비된 말을 꺼냈다.
“질문받기에 앞서 우선 저희 신문사에 실망하신 많은 국민들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
각본대로 윤 대표는 단상 옆으로 나와 한 번 절을 한 뒤 다음 말을 이어갔다.
“변명인 줄 압니다만 저는 저희 신문사에 편집국장과 편집장이 연예인 성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은 이번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무능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제 무능함의 대가로 대표직을 사퇴하려고 합니다.”
재환이 다음 대사를 중얼거렸고, 윤 대표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을 똑같이 뱉어냈다.
하이에나와 같은 기자들은 윤 대표의 말을 모조리 기사에 담았다.
“저희는 경찰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필요한 정보를 모두 공개하겠습니다. 이제 질문받겠습니다.”
이어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대표직을 사임하신다면 다음 대표로 거론되는 후보가 있나요?”
“이번 성매매 사건에 다른 편집장이나 기자분들이 연루된 건 아닌가요?”
“상장 폐지가 된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입니까?”
하나같이 자극적인 기사를 써내려는 기자들의 틈에서 윤 대표는 성실히 답해 나갔다.
그 답은 정해진 시나리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연극이 큰 변화를 보이진 않겠다고 생각하여 재환은 더 뒤를 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회견이 끝나고 10분도 지나지 않아 관련 기사가 포털 사이트에 올라왔다.
-대표가 몰랐다는 게 말이 됨? 같이 했는데 안 걸린 건 아님?
-몰랐다는 건 맞는 거 같은데 그것도 문제지.
-저 신문사는 그냥 망한 듯.
-한강에 가기 전에 저 대표부터 조지고 갑니다. 내가 당신들 주식을 얼마를 샀는데!
-지금 한강 물 온도 적당합니다. 먼저 가시죠.
기사의 댓글은 대부분 비슷한 의견이었다.
새로운 대표가 온다고 해도 오늘의 신문에 미래는 없다는 것.
하지만 어디든 간에 반대 의견을 내는 소수는 존재하는 법이다.
-위의 분 일단 존버하고 계세요. 주가 보니까 조금 올라갔던데.
-뭐지? 지금 맨틀 뚫고 내핵까지 가서 춤추고 있는 주식을 팔지 말고 들고 있으라는 개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제가 친구한테 들었는데 이번 특종 쓴 기자는 저 신문사에 계속 남아 있는다던데요.
-아, 그 기자가? 왜지?
강재환이란 이름 하나 덕분에 단합되던 댓글창이 다른 기사들의 댓글창처럼 투기장으로 변해갔다.
-다 망해가는 신문사가 기자 하나 때문에 살아나겠냐.
-근데 그 기자는 좀 다르지 않나? 3대 신문사에서도 모르던 정보를 팍 터트렸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영웅 하나 있다고 전쟁의 판도가 바뀌나.
-그 영웅이 여포라면?
전투민족의 피가 섞인 이들답게 각자의 논리를 펼치며 싸웠다.
구 회장의 전화를 받고 댓글들을 쭉 보던 재환이 피식 웃었다.
“이게 뭡니까.”
“뭐긴 이놈아. 중국집에 군만두 같은 거다. 서비스지.”
“서비스가 참 좋네요.”
재환의 이름을 이용해 지원 사격을 한 건 다름 아닌 구 회장이다.
혼세의 틈바구니에서 영웅은 나오는 법이니까.
작은 불씨가 활활 타오르고 나서 남는 건 재환의 행보에 대한 기대감일 것이다.
일개 기자로 남느냐, 망해가는 신문사를 살려내는 영웅이 되느냐.
제법 좋은 스토리다.
“주식은 어떻게 됐어요?”
“53프로 확보했다. 주식을 사는 건지 종이를 사는 건지 모르겠긴 했다만.”
“그 종이 쪼가리가 금덩어리로 변하는 마술을 보여드릴게요. 지켜보세요.”
“그럼 나한테 브리핑해 봐. 어떻게 이 종이 쪼가리를 변화시킬지.”
“큰 틀은 알려드렸잖아요.”
“인마, 지금 당장 방송국을 세우면 거기에 지원하려는 게 몇 명이나 될 거 같냐? 채널 편성은 받을 수 있을 거 같아? 광고는 또 어쩔 거야?”
이쪽 방향으로 제법 알아봤는지 구 회장의 입에서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사업가니 사업에 대한 기초조사를 하는 건 당연했다.
“일단 신문사 신뢰도부터 높여야겠죠. 제가 하는 말이 똥이라도 금인 줄 알게끔 만들어야 하니까요.”
“특종 터트리기 전에 미리 관련 정보 넘겨라. 그래야 우리도 대비를 하지.”
구 회장은 재환의 정보 수집 능력에 대해서는 일말의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저놈이라면 이번 것과 비슷한 수준의 특종을 터트리는 게 가능하다고 자연스럽게 믿게 됐다.
“같은 배를 탄 사이니까 그 정도야 당연하죠.”
“강재환, 지금이라도 대표직 포기하고 우리 계열사 홍보팀장으로 오지 않을래? 이번 손해 정도는 내가 감수할 수 있다.”
구 회장이 스리슬쩍 본심을 내비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놈을 망해가는 회사의 대표로 남겨두기엔 아까웠다.
저 정보망을 자신의 밑에 둘 수 있다면, 두 아들놈의 든든한 심복이 되어 KG그룹을 더 크게 성장시킬 것이다.
그리고 되면 자신도 안심하고 물러나는 것도 가능해진다.
“회장님, KG그룹을 저에게 양도한다고 유언장에 써주시는 게 아닌 이상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고얀 놈. 생각하는 시늉도 않고 아주 죽으라고 향을 피우는구먼?”
“회장님도 저 망하라고 잿밥 뿌렸잖아요. 쌤쌤으로 치죠.”
운이나 띄워봤지만 예상대로 재환은 철벽을 쳤다.
하기야 저 욕심 가득한 놈은 누구 밑에 있을 놈이 아니다.
아쉽고 아쉬웠지만 지금의 조력자 관계를 유지하는 게 최선이었다.
“내일 차기 대표로 발표할 테니까. 긴장은 해라.”
“떠먹여 주는 밥 먹는 데 긴장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하여간 저놈의 주둥아리는 물에 빠져도 둥둥 뜨겠다.”
구 회장과의 전화를 끊고 재환은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를 들이켜서 목을 축였다.
보고와 감사를 곁들인 전화였는데 생각보다 얘기가 길어졌다.
덕분에 중간에 도착한 유서진은 침묵만 지켜야 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이 오늘따라 수다스러우셨네요.”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회장님하고 얘기를 나누신 거니까요.”
재환은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고 앞에 앉아있는 유서진을 바라봤다.
구정혁 회장의 사생아란 꼬리표가 달려 있지만, KG그룹 내에서 구 회장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높은 사람이 유서진이다.
그의 행동과 감정 모두 구 회장을 위해 존재할 정도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회장님에게 말씀드릴 수 없는 중요한 정보라는 게 뭡니까.”
감정의 일편도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함에서 단 하나, 구정혁 회장에 대한 걱정이 느껴졌다.
‘이런 사람이 왜 KG그룹을 배신하고 한성에 붙었을까.’
회귀 전에는 단지 글로만 접한 정보다.
뒤통수를 수십 번 맞은 뒤였기에 당연한 일이라 여겼다.
그런데 지금 보니 묘했다.
어쩌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이 재환의 속에서 피어올랐다.
“기자님?”
“아, 죄송합니다. 살짝 피곤했나 봐요.”
재환은 다른 사람이 들을새라 목소리를 착 깔고 말을 꺼냈다.
“사실 구 회장님이 들어서는 안 되는 정보라기보다 구 회장님이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입니다.”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이라고요? 하, 기자님. 전 구 회장님을 바로 옆에서 보필하는 사람입니다. 구 회장님의 비밀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인데, 저도 모르는 게 있다고요?”
“장담하죠.”
이 정보를 유서진이 모른다는 확신이 있다.
유서진은 살짝 인상을 썼다.
그런 게 있을 리 없지만 있다면 자신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을 게 분명하다.
“그런 정보가 있을 리 없습니다.”
“구 회장님 지금 대장암 3기세요.”
“무슨 허무맹랑한….”
유서진은 반사적으로 부정적인 말을 뱉었지만 몇몇 장면이 머리를 세게 때렸다.
근래 들어 볼일을 보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고, 청소부에게서 피 묻은 휴지가 유독 많이 보인다는 말을 들렸다.
“설마….”
유서진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눈가를 문질렀다.
머릿속에서 이성과 본성이 치열하게 싸웠다.
재환의 말이 맞다는 이성 측과 자신에게 숨기는 게 있을 리 없다는 본성 측은 팽팽하게 부딪혔다.
이 대치를 끝내기 위해서는 보다 확실한 증거, 정보가 필요했다.
“그 정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증거가 있습니까?”
“최근에 구 회장님이 혼자 출타하신 적 있으시죠? 그 행선지입니다.”
재환은 수첩의 한 페이지를 찢어 유서진에게 건넸다.
유서진은 잠시 주저하다가 그 쪽지를 잡아챘다.
야간 근무를 서고 있는 비서들에게 전화해 조사해라 지시했다.
그 조사의 결과가 나오기 전 재환은 살살 약을 치기 시작했다.
“구 회장님은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아 하셨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졌을 때의 파장이 클 테니까요.”
“…그렇겠죠.”
“당장 회장직에서 물러나라는 말이 나올 것이고, 후계자 두 분의 전쟁이 시작될 겁니다. 그 와중에 KG그룹의 지분을 노리는 놈들이 KG그룹을 갉아먹겠죠.”
구 회장이 도박하는 심정으로 재환에게 투자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이것까지 재환은 계산하고 구 회장을 만난 것이지만 유서진은 그 사실을 알 리 없다.
“하아…. 아버지.”
비밀을 아는 재환의 앞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감출 수 없는 슬픔 때문인지 유서진의 입에서 자연스레 아버지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KG 그룹의 지분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는 두 아들보다 유서진이 더 구 회장의 아들 같았다.
잠깐의 탄식을 하고 나니 유서진의 전화가 울렸다.
비서실에서 온 전화였고, 재환이 건넨 정보의 진위는 밝혀졌다.
“그래, 내가 이걸 물어봤다는 거 회장님이나 사장님들 귀에는 안 들어가게 입 조심해라.”
“어떻습니까?”
“기자님 말이 맞군요. 회장님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잠깐 사이 유서진은 몇 년을 늙은 것만 같았다.
재환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말을 꺼냈다.
“괜찮아요. 아직 3기니까 치료를 받으면 나아지실 수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회장님이 치료를 받으실지가 문제군요.”
유서진의 눈치를 보면서 재환은 침을 삼켰다.
철벽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그를 휘어잡으려면 지금이 기회다.
“저하고 거래하지 않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