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74
176화
-우로보로스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누가 보낸 건지 알 수 없는 문자였다.
하지만 수첩이 없어진 것과 연관이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우로보로스는 수첩의 맨 뒤에 적혀 있던 거지. 굴레라고 하면 반복 된다는 건데…. 이제 죽어도 안 살아난다 그런 건가.’
수첩이 없으니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니 불안감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건 미래에 대한 정보와 한 번은 죽음을 경험했을 또 다른 자신덕분이었다.
그 모든 게 아니었다면 몇 번은 더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정보가 없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재환의 안색이 새파래졌기에 서진이 급히 물었다. 재환의 상태가 안 좋으면 이후의 일정을 조정해야했다.
재환은 문자를 몇 번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죄송하지만 TBS는 나중에 들려야겠네요.”
“알겠습니다. 곧바로 댁으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주치의를 부를까요?”
“아뇨, 그 정도는 아닙니다.”
서진의 호들갑에 재환은 냉정히 답하고 난 뒤 다시 차로 이동했다.
뒷좌석에 앉아 지금 일어난 일을 차분히 다시 되새겨봤다.
수첩이 사라지면서 앞으로 죽을 위기에 처해도 난 그걸 알지 못한다. 그 뿐 아니라 새로운 미래에 대한 지식도 얻을 수 없다.
‘이건 상당히 위험한데.’
지금 상황은 재환에게 마냥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미국은 기회를 봐서 위험요소를 없애려할 것이고, 다른 나라도 비슷한 조치를 취할 지도 모른다.
아까의 회의에서도 그렇듯 지금 투자자들 사이에 악의를 가진 이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들을 어떻게 구분해 내고 대처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후우….”
“약이라도 조금 사올까요?”
“……두통약이라도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서진은 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가까운 약국으로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니 다시 불안감이 도졌다.
이래서야 기자 시절이 훨씬 나았다 싶다.
“아냐, 좀 진정하자. 너무 우울한 생각만 했어.”
재환은 가볍게 뺨을 두드리고 머리를 식혔다.
이 상황은 언젠가 예상했던, 미래의 정보가 떨어지는 날이 온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은 충분히 준비해 놨다. 비서실을 통해 여러 정보들을 마련할 창구를 마련해뒀고,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해커팀도 구축해뒀다.
전처럼 굵직한 사안들을 알아내긴 힘들어졌지만, 그 또한 방법이 있을 거다.
“KG 그룹이란 힘이 있으니까. 지금까지 쌓아온 인맥도 있고.”
어지간한 위기는 헤쳐나갈 수 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대통령이 규제관련 법안을 내놓으라 했다고?”
“당 내부 결정사안으로 보이긴 합니다. 아마 KG 그룹을 저격한 일이겠죠.”
하루 푹 쉬면서 멘탈을 정비한 재환에게 곧바로 문제가 발생했다.
“정확히는 회장님을 견제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절 왜….”
“회장님의 인지도는 지금 국제적인 규모입니다. 대통령 인지도보다 더 높은 수준이죠.”
서진은 미리 조사한 자료를 재환에게 건넸다.
“비밀리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회장님이 정치 쪽에 나서길 원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전 정치는 잘 못하는데 말이죠.”
사업도 그리 잘하는 건 아닌데 정치까지 하려는 건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들의 인식은 다릅니다. 이번 중국 건으로 인해 여러 나라가 한국을 주목하게 되었고, 그로 인한 긍정적인 영향력이 퍼져나갔으니까요.”
반사 이익이 상당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서진이 말했다.
“만약 회장님이 대통령이 된다면 국가적인 규모로 이득을 보지 않을까,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반영된 거겠죠.”
“다시 말하지만 전 정치로 나갈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 KG 그룹과 TBS만으로도 벅찬데, 정치는 어떻게 합니까.”
심지어 정치로 진출하기 위해선 이 모든 걸 내버리고 가야한다.
될지 안 될지도 모를 일을 위해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내버린다는 건 욕심도 많아야 하고, 확신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재환은 그 둘 다 없다.
“회장님의 뜻은 그렇지만, 만에 하나를 걱정하는 거겠죠.”
여당이 다시 바뀔지도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재환을 견제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하여간 정치인들이란. 애초에 절 끌어들이는 걸 우선시하는 게 좋을 텐데요.”
“그건 안 될거라 생각하는 거겠죠.”
“맞는 말이긴 해요.”
재환이 정계로 진출한다고 하면 지금의 여당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
필요할 땐 계속 붙어 있다가 막상 일이 꼬이자 곧바로 돌아서는 인간들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아무튼 그 인식 때문에 견제하기 위한 법안을 마련하려는 걸로 보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어떻게 되나요.”
“그 부분에 대해선 지금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후우….”
가만 내버려두면 계속 귀찮게 굴 게 분명하다.
차라리 담판을 짓는 게 옳겠지.
문제는….
‘미래의 정보가 없다. 이미 보여준 패를 다시 보여줄 수는 없겠지.’
상대방도 머리가 있으면 지난 번 보여준 패에 대해선 대응책을 짜놨을 거다.
쓸 수 없도록 원천 봉쇄를 해놨지 않을까.
그렇다면 다른 정보를 구해야 한다.
“비서실에서 구한 정보들 좀 볼 수 있을까요.”
“있긴 하지만 유효한 패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서진이 잠시 비서실로 내려간 사이 재환은 깊은 숨을 토해냈다.
“하루 만에 이렇게 힘겹냐.”
지금 자신이 이 위치에 있는 건 오로지 남들이 구하지 못한 정보들 덕분이다. 하지만 앞으로 그런 정보들이 없는데도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대한 자신이 재환에겐 없었다.
“회장님, 가져 왔습니다.”
“네, 그거 이리 주세요.”
재환은 서류를 받아든 뒤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꼼꼼히 읽고 몇 가지의 그림을 그려나갔지만, 전에 할 때처럼 확신이 들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사안을 언제까지고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재환은 냉정히 생각하고 결정을 내렸다.
“대통령과 만나야겠네요.”
“시간을 내줄까요.”
“내주는 게 좋을 거라고 전달해주세요.”
‘지금 내가 정보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건 아무도 모른다.’
아직도 그들에게 난 위험한 대상이다. 그 인식을 이용해야 했다.
대통령은 재환의 말을 전해 듣고 곧바로 날짜를 잡았다.
청와대에서 만난 두 사람 사이에는 예전과 같은 호의적인 분위기는 없었다.
‘진보라도 권력을 잡으면 보수가 된다. 이거지.’
그는 어떻게 잡은 이 권력을 놓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동료의 등에 칼을 꽂는다 하더라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찾아오셨습니까.”
“제가 재미난 얘길 들어서요. 독점과 관련해서 대기업들의 횡포를 줄이겠다. 뭐 그런 말이 돌더군요.”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대통령은 씨익 웃고 차분히 말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들은 대기업들이 주도하고 있죠. 중소기업이나 중견 기업들은 거기에 빌 붙어 사는 처지고요. 이게 사실상 독점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독점이라고 해도 다른 기업들과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법안이 통과 되면 지금까지 돈 들여 한 사업들을 공짜로 세상에 내놓게 되는데, 그로 인해 입을 피해는 어떻게 보상하실 겁니까.”
“나라의 발전이 곧 보상이죠.”
대통령의 말은 궤변이다.
문제는 궤변을 해서라도 자신이 유리하게 판을 가져가겠다는 의지가 상당하단 거다.
재환은 다리를 꼬며 그를 내려다봤다.
“대통령님, 예전과 많이 바뀌셨네요.”
“세상이 바뀌면 그에 맞춰서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에 대한 은혜는 잊지 않겠느니 뭐니 하던 사람이 이제 와서 입 싹 닫고 제게 칼을 들이민다라…. 제가 이걸 어떻게 해석하면 좋겠습니까.”
“강재환 회장, 멀리 내다 보시죠. 나라가 잘 살아야 산업도 살아나는 법입니다. 그리고 나라가 잘 살기 위해선 산업 규모를 키워야죠.”
그럴 듯한 말을 내뱉고 있지만 재환은 한 마디로 일축했다.
“그 규모를 키우는 일을 제가 왜 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게 가장 큰 힘을 가진 이의 사회적 책임 아니겠습니까.”
“사회적 책임이라…. 전 이미 비리를 폭로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네요.”
재환은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최대한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 정권에 대해선 제가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네요. 이건 제 불찰이 맞습니다.”
“……강재환 회장, 무슨 소리를….”
“이번에 중국이 붕괴하면서 많은 일들이 일어났죠. 그 중 하나가 국책 사업들의 변화인데, 거기서 손을 많이 대셨더라고요.”
새롭게 추진하는 국책사업들은 분명 KG 그룹이 가져갈 수 있는 것들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한성의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조용히 처리해서 KG 그룹에서도 알기 힘들었던 일들이다.
“거기다 중국과의 외교에서 저희 KG 그룹의 이름을 파셨죠.”
“그거야 외교적인 이익을….”
“그 이익은 당신이 챙기고 왜 똥은 우리가 치워야 하냐 이 말입니다.”
재주는 곰이 구르고, 돈은 딴 놈이 챙긴다더니. 지금이 딱 그 짝이었다.
대통령은 헛기침을 하며 그에 대한 변명을 하려했다.
“그건 전부….”
“됐습니다. 구구절절한 변명을 듣자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니까요.”
재환이 딱 잘라 말한 뒤 냉정하게 말했다.
“대통령님,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 기억해두세요. 지금의 전 대통령님이 후보이던 시절의 저와 다릅니다.”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재환이 가진 패를 하나 더 깠다.
“지금 전 세계가 주목하는 건 한국이 아니라 저입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민을 간다면 어떨까요?”
“……그게 무슨….”
“이미 너도나도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저와 손을 잡길 원하더군요.”
미국뿐만이 아닌 러시아, EU 등 모든 나라가 재환을 가져가고 싶어 안달이 난 상황이다.
비록 재환이 어디로도 가지 않겠다고 말을 했지만, 상황은 바뀔 수 있는 법이다.
“제가 한국을 떠날 때 미련 없이 떠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협박하시는 겁니까?”
“네.”
재환은 잃을 게 없다.
잃을 게 없으면 무서울 게 없다.
“여당을 계속 유지하고 싶고, 대통령 임기도 무사히 끝내고 싶으시면 자꾸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시비 걸지 마세요. 아시겠습니까?”
재환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옷깃을 정돈하니 대통령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강재환 회장, 당신은 너무 위험합니다.”
“제가 뭐가 위험하다는 거죠?”
“사람들의 맹목적인 지지를 받기 시작하고 있죠. 어느 사이비 교주의 행보와 같다고 보일 정도로 말입니다.”
사람들이 재환에게 열광하고는 있다.
하지만 재환은 그게 언제까지고 지속될 거라고 보진 않았다.
자신의 실수 한 번이면 언제든 등 돌릴 사람들이다.
“전에 당신은 정경유착에 대해 까발리셨죠. 하지만 지금은 당신이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검찰 쪽에도 당신의 사람이 있고, 정계로도 당신의 사람이 있죠.”
카르텔과 동일한 일을 재환이 하고 있다.
대통령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럴싸하긴 했다.
검찰 쪽에는 김정연이 있고, 이제 출마 준비를 하고 있는 문체원이 있으니까.
하지만 재환이 생각하는 건 카르텔과 정 반대의 그림이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같은 세력이 나오지 않도록 견제하기 위해 만드는 이들이니까.
“그래서 제거하겠다는 겁니까?”
“필요하다면….”
“그래요. 한 번 해보세요.”
재환은 대통령을 내려다보며 한 마디를 더했다.
“대신 찢겨 죽을 각오는 하셔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