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396)
누군가를 따라 하는 듯한 그의 행동에 노형진은 왠지 입안이 까슬거렸다.
‘이런 미친 새끼들을 봤나?’
사실 자신도 한국대를 나왔지만 그중에서 진짜 성공이라고 할 만한 것을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가령 노형진이 회귀 전에 다녔고 이번에 서세영이 들어간 법대를 기준으로 따지면, 확실히 한국대 법대 졸업자가 사법 고시에 합격하는 비율이 높다.
그러나 그마저도 20퍼센트 이내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소위 월급 변호사라고 하는 변호사를 하게 되거나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서 활동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변호사로서 이름을 날리는 비율은 아무리 높아 봐야 10퍼센트 이하다.
나머지는 그저 그런 인생을 보내거나 어떤 경우에는 제대로 변호사 사무실 임대료도 내지 못하고 산다.
“나 때는 그런 게 없었는데?”
“네?”
“아니…… 아니야…….”
노형진은 눈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그가 학교 다닐 때, 그러니까 회귀 전에는 그런 게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게 생기다니.
‘또 꼴에 전통이라고 깝치겠지.’
하지만 그 전통이라는 것도 채 5년도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뭐라고 안 해 봤어?”
“어쩔 수 없어. 어찌 되었건 과학고와 외고 비중이 높은걸.”
전체 100퍼센트 중에서 과학고와 외고 출신 비중이 75~80퍼센트 사이다. 그러니 일반고는 아무래도 무시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비중의 문제가 아니지.”
노형진이 학교에 급을 매기는 것을 안 좋아하기는 하지만 한국대학교는 한국 내에서 최고의 명문으로 통하며 여러 인맥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 중 상당수는 분명히 성공한 삶을 살아 간다.
즉, 어찌 되었건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미래라는 것이다.
‘그런 놈들이 선민의식에 찌들어 가지고 벌써부터 줄 세우기를 해?’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어떠한 형태의 신분제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핏줄도 아니고 학교를 기준으로 신분을 나누다니.
‘이건 뭐, 아파트 거지라는 소리도 들어 봤지만…….’
같은 학교에 다니는데 싼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거지라고 사람 취급도 하지 말고 놀지도 말라는 부모들의 잘못된 소리도 들어 봤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첨이다.
그건 부모가 미쳐서 그렇다고 쳐도, 이제는 성인이 된 녀석들이 정신 못 차리고 그런다니.
“오빠 또 학교 뒤집으려고 그러지?”
“응?”
“표정을 보니 불안한데?”
“그거야…….”
“이번에는 무시하고 넘어가자. 한국대보다 높은 곳은 한국에 없잖아.”
“끄응. 그래도 너, 낮춰서 간다는 소리는 안 한다?”
“호호호.”
서세영은 웃음으로 넘겼다.
노형진은 그걸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지.”
노형진은 씁쓸하게 말했다.
어차피 그런 녀석들은 사회에 나가 봐야 좋은 꼴은 못 본다.
그들이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사회에서 그들을 용서하지 않는 걸까?
아니다.
일단 사회에 나간 후 그들이 싸워야 하는 대상은 자신들보다 더 엄청난 선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선민의식을 가진 작자들은 남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을 무척이나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아니, 고개를 숙이면 죽는 줄 안다.
그래서 선민의식을 가진 놈들은 그에 뒷받침되는 실력이 없으면 대부분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밟혀 버린다.
‘그런 꼴은 여러 번 봤지.’
자기네 집안이 그런 것쯤 가뿐하게 씹어 주는 재력과 힘을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공부 좀 한다고 가지는 선민의식은 차라리 독이다.
“그래. 그냥 두자, 그냥 둬.”
“다행이네. 또 학교 뒤집어지는 줄 알았네.”
친구들은 묘한 표정으로 서세영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천하의 한국대학교를 뒤집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냅 두자.”
노형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불평등하더라도, 이번만큼은 무시하자고.
그러나 세상은 그런 노형진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 * *
“아야야…….”
“끄응…….”
다리가 부러진 서세영을 보면서 노형진은 눈을 찌푸렸다.
기마전을 한답시고 끌려 나가서는 다리가 부러져 올 줄이야.
“괜찮아?”
“아마도?”
“도대체 거기에 왜 나간 거야?”
“사람이 부족해서…….”
“뭐?”
“사람이 부족해서 말이지. 원래 다른 애가 나가야 하는데 자기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고 안 나왔어.”
노형진은 눈을 찌푸렸다.
그런 인간들이 있기는 하다.
자기 이득만을 위해 아싸, 즉 아웃사이더를 추구하는 인간이.
“재수가 없었구먼.”
“그렇지, 뭐.”
어깨를 으쓱하는 서세영.
이때까지만 해도 진짜로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재수 없는 일은 재수 없는 인간이 나타나면서 상황이 돌변하기 시작했다.
“어, 전화 왔다. 잠깐만. 회사 일인 것 같은데.”
“다녀와.”
“이거야 원.”
노형진은 일단 다급하게 병원으로 온 것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온 전화를 받으러 바깥으로 나갔다 왔다.
단순한 서류 처리에 관한 일이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어서 다시 돌아온 노형진은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움찔했다.
“쯧쯧, 꼬라지 봐라.”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노형진은 안으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친한 사이에 반쯤 장난삼아 건네는 말투가 아닌, 경멸의 기색이 가득 담긴 말투였기 때문이다.
“선배, 다친 사람한테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누가 다치래니?”
“이거 원래 다른 선배가 나갔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 애는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라니까.”
“아니, 그런 게 어디에 있어요?”
“여기 있지. 너는 공부도 못하는 게 운동이라도 잘해야지, 뭘 잘했다고 언성을 높여? 너 때문에 교수님한테 얼마나 깨졌는지 알아, 애들 관리 똑바로 안 한다고?”
‘뭐, 장난해?’
노형진이 아는 교수들은 그럴 사람들이 아니다.
아니, 다른 의미에서 혼을 내기는 했을 것이다.
최소한의 안전 대책도 없이 시합을 하느냐고 말이다.
그런데 자기들이 잘못해 놓고 다친 후배에게 모조리 독박을 씌우는 남자의 목소리.
“다른 애들은 멀쩡한데 너만 그렇잖아, 너만.”
“제가 대장기였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공격이 쏠리죠.”
“변명은. 하여간 이래서 일반고 애들은 안 된다니까.”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노형진은 어이가 없어서 안으로 들어가 한 소리 하려다가 멈칫했다.
그 남자 때문에? 아니다. 그 남자가 입고 있는 여름 점퍼 때문이다.
일단 푹푹 찌는 날씨에 점퍼를 입고 버티는 것도 미친 짓이기는 하지만…….
‘뭐야, 저건?’
점퍼의 등짝에 붙어 있는 문구.
그것은 ‘대아과학고등학교’라는, 영문으로 된 학교 이름이었다.
‘허?’
과잠이라는 걸 들어 본 적은 있어도 고등학교 점퍼는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약간 당황한 것이다.
그때 노형진을 알아챈 그는 뻔뻔하게도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안부를 전했다.
“그럼 난 이만 가 볼게. 빨리 나아지길 바라.”
“어어?”
자신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나가 버리는 그를 보고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있던 노형진은 서세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간 남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그걸 본 서세영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이세창이라고, 2학년 과대 선배예요.”
“과대? 저 새끼가?”
“네.”
“어이가 없네.”
과대라는 녀석이 와서 행패를 부리고 가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되는 노형진.
“아니, 저 새끼 왜 저래?”
“저 무시하는 거죠, 뭐.”
“뭐? 왜?”
“그게…….”
서세영이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노형진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저 새끼, 과학고냐 아니면 외고냐?”
“과학고요.”
“이런 썅놈의 새끼를 봤나.”
자기는 과학고를 나왔고 세영이는 일반고를 나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공부를 잘했으면 자기가 얼마나 잘했다고 저 지랄이야?”
사실 공부 실력이나 머리로 보면 서세영이 그 녀석보다 공부를 더 잘한다고 볼 수 있다.
서세영은 충분한 지원 없이 할머니 아래서 제대로 학원도 다니지 못하고 자라 왔다.
애초에 시골이라 학원도 없었고, 세영의 상황상 개인 과외는 꿈도 꾸지 못했다.
더군다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심적인 고생을 하면서도 한국대에 입학했다.
그러니 서울에서 학원 다니고 과외까지 받아 가면서 한국대에 입학한 사람과 어떻게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순수하게 머리만 따지면 서세영이 훨씬 뛰어난 셈이다.
“미안해요.”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저놈의 새끼가 개새끼지.”
노형진은 눈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하지만 가만둘 수는 없겠다.”
“오빠!”
“잠깐 욱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저런 새끼가 선배면 이후에도 너 가만두겠냐?”
“…….”
대학 생활 내내 계속 봐야 한다.
그리고 사회에 나가도, 한국대 인맥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 관계다.
“저런 새끼는 암이야. 주변을 썩어 가게 만들지.”
저런 작자가 세상에 나가면 주변을 썩게 만든다.
선후배 사이에서도 출신 고등학교 따져 가면서 신분을 나누고, 들어오는 후배도 그렇게 나눌 것이다.
자기만의 집단을 만들고 그들끼리 뭉쳐서 세상을 썩게 만들 것이다.
“아니, 그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어.”
당장 그가 있는 이상 서세영의 학교생활은 평탄하지 않을 것이다.
똑같이 공부해야 사법시험이든 로스쿨이든 가능한 건데, 일반고를 나왔다는 이유로 기회 자체를 박탈하려고 한다면 그건 명백한 횡포다.
“그리고 내가 걸어온 싸움 피하는 거 봤냐?”
“아아…….”
서세영은 입을 다물었다.
오래 알고 지낸 친오빠는 아니지만 노형진이 걸어온 싸움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힘이 없어도 그럴 사람이 아닌데, 힘까지 가지고 있으니 피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
“말로 해요. 말로…….”
“알았다, 알았어. 내가 말로 해 볼게, 최대한.”
노형진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 * *
노형진은 가장 먼저 교수님들을 찾아갔다.
다행히 회귀 전에 알고 지내던 분들이라 그들의 취향을 잘 알고 있어서 그들에게 맞는 선물을 사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아, 우리도 알고 있지.”
능숙하게 선물과 접대를 하고 나자 자연스럽게 교수들과 인맥이 생겼고, 노형진이 사정을 이야기하자 교수들은 한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알고 계신다고요?”
“그래.”
“그런데 가만두십니까?”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
“네? 하지만 교수님들이시잖아요?”
“그게 말이야, 요즘 애들은 너무 되바라졌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어. 다른 학과라면 모르지만 아무래도 법률 쪽은 오로지 실력순이니까. 좋다면 좋은데 이렇게 엇나갈 때는 대책이 없지.”
“음…….”
다른 학과는 교수들의 힘이 강해서 그들이 가지는 파괴력이 엄청나다.
막말로 음악이나 의학 쪽 관련 학과들은 교수가 마음먹으면 신세 망치는 것도 일도 아니다.
하지만 법률 쪽은 아니다.
“자네도 변호사이니 알고 있겠지만, 법률 쪽은 파벌 싸움이 아주 심한 건 아니잖나?”
“그렇지요.”
어찌 되었건 오로지 실력으로 시험을 봐서 판사든 검사든 변호사든 되어야 하기 때문에 교수들의 영향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데다가, 결국 이론이라는 것은 판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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