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104)
죽음의 카운트다운 (2)
처음부터 기증 거부를 했다면 당연히 환자의 면역 시스템을 붕괴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기증한다고 했기에 그 면역 시스템을 붕괴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더 이상 환자가 살아날 수 없을 때, 갑자기 기증을 철회했지요?”
“그렇습니다만…….”
“그렇게 할 경우 상대방이 죽는다는 것도 이미 고지받았고요?”
“그, 그건 그렇습니다.”
필수 과정이니까.
그건 무조건 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면 상대방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거네요?”
만일 처음부터 거절했다면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시간이 바뀌고 환자의 상황이 바뀌면 그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하지만 법적으로…….”
“그러니까 그게 법적으로 살인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아니면 그 관련 판례가 있습니까?”
“그건…….”
‘없겠지.’
현 상황을 법적으로 본다면 일종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다.
자신은 골수를 기증하기로 계약했고 그걸 거부한다면 환자가 100% 죽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에 관한 판례가…….”
“없지요. 그러니 그 판례를 만들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실적으로 골수 기증 단체에서 그런 자들을 고발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 소문이 나면 기증 등록자들이 줄어들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래서 환자의 가족들에게도 방법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그쪽 사정이고.’
법적으로 말하면 이건 분명 살인의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중간에 거절할 사람이라면 애초에 등록하지도 않는다.
“저기,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발…….”
“제발이고 나발이고. 야! 다 털어! 싹 끌고 간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직원들이 몰려나왔지만 영장이 나온 이상 그걸 막을 수는 없었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기증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나마 있던 기증자들까지 줄어듭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문제가 생긴단 말입니다!”
기증받고자 하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기증자가 줄어든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가 된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
노형진은 그런 직원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제가 언제 기증자에게 손댄다고 했습니까?”
“그러면 살인 어쩌고는…….”
“살인이 이루어졌나요?”
“그건…….”
아직 살인이 이루어진 건 아니다.
아직 환자는 살아 있다.
즉, 지금이라도 기증이 이루어진다면 사람은 살 수 있고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가 노리는 건 다른 놈들입니다.”
“다른 놈들요?”
“네, ‘다른 놈들’요.”
***
조혈 모세포를 기증한다는 것. 그것은 아주 중대한 문제다.
그래서 몇 번이나 확인한다.
“그리고 최종 확인, 그러니까 환자의 면역 시스템을 붕괴시키기 전에 고지하지. 그때까지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할 결심이 선 사람들이야.”
노형진은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인터넷에 글을 찾아봤거든. 그런데 의외더라고.”
“의외라니?”
“기증 철회의 첫 번째 이유는 회사고, 두 번째 이유는 가족이야.”
“가족?”
“그래. 너도 가족들한테 동의받아야 한다고 하지 않던?”
“아, 그랬지. 엄마가 동의해 줬어.”
“그래. 그게 문제인 거야.”
기증자들이 막판에 갑자기 기증을 철회하는 것은 심적인 부담 때문이다.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육체적인 피해는 없다는 게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전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금전적 피해?”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노형진은 손채림을 데리고 첫 번째 사람을 만나러 갔다.
그와 약속한 시간은 무려 새벽 2시였다.
스물네 시간 운영되는 커피숍에서 기다리자, 30대의 남자가 변호사에게서 연락을 받은 탓에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노형진입니다.”
“박성인입니다.”
“시간이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왜 기증을 철회하신 겁니까?”
“그게…….”
박성인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회사에서 기증할 거면 사표를 쓰고 가라고 하더군요.”
“사표요?”
“네. 바빠 죽겠는데 어딜 가느냐며…….”
손채림은 노형진이 왜 금전 문제를 이야기했는지 알 것 같았다.
기증자가 입는 피해가 아니었다.
기증자를 사용하는 회사에서 입는 피해였다.
‘이래서…….’
노형진이 기증자를 노리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저도 많이 고민했지요. 하지만 사람 살리는 일 아닙니까?”
그래서 기증하려고 했다.
결심을 하고, 모든 준비를 다 했다.
“그런데 사장이 부르더라고요. 너는 지금 이 시국에 뻔뻔하게 휴가 내고 놀러 다니려고 하냐고요.”
“휴가요? 말씀 안 하셨어요?”
“했지요. 병원에 이야기해서 협조 공문까지 보냈죠.”
그런데 사장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고급 1인실에서 탱자탱자 노느라 동료들이 피똥 싸게 하는 게 좋으냐고, 남의 인생이 그렇게 중요하면 사표를 던지고 가라고 하더라구요.”
박성인은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그게 틀린 말은 아니거든요. 회사가 워낙 작아서…….”
고작 직원 열다섯 명짜리 광고 회사다. 그렇다 보니 늘 사람은 부족하고 할 일은 많다.
“아니, 그게 말이 돼?”
“남의 목숨에 신경 쓰는 사람, 생각보다 많지 않아. 우리나라가 중국 욕할 거 아니야.”
노형진은 화를 버럭 내는 손채림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더군다나 이런 회사들은 직원을 한계까지 몰아붙이거든.”
충분한 인원을 보충해서 회사를 돌리는 게 아니라, 있는 직원을 한계까지 몰아붙여서 쥐어짜는 것이 많은 중소기업들의 방식이다.
“사장은 돈이 썩어 문드러져서 매년 수입 차를 바꿔도, 직원은 절대 안 늘리지.”
“잘 아시네요.”
박성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뭐, 사람 목숨을 개털로 아는 인간들이라면 뻔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죽는다.
그런데 고작 사흘의 시간도 내주지 못한다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려 주는 것이다.
“저도 미안하지요. 하지만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것도 쉽지 않고…….”
박성인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지만 사람 목숨이 달려 있는데……!”
손채림은 버럭 화를 내려 했다.
그런 손채림을, 노형진이 말렸다.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야. 이쪽 입장에서는 남의 목숨이 아니라 자기 가족의 목숨이 달려 있는 거라고.”
“끄응…….”
“미안합니다.”
박성인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한 모습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이라도 어떻게, 기증하시겠습니까?”
“저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사장이…….”
지금 시간은 새벽 2시다. 이제야 퇴근을 하고, 다시 아침 8시까지 출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굴리는 회사에서 사흘을 쉰다고 하면 진짜 해직당할 가능성이 크다.
“진지하게 말씀드리지요. 이직하셔야 할 겁니다.”
“네?”
“저는 여기서 대충 기증만 받고 끝낼 생각은 없습니다.”
노형진의 폭탄선언.
이 문제는 단순히 이 건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십 년간 계속 이어진 문제이기도 하고, 또 앞으로도 이어질 문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놈들 때문에 죽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당장 지금은 화학요법이 끝난 후라 더 큰 문제가 되어 버렸지만, 화학요법까지는 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해도 이런 이유로 기증을 받지 못해서 죽은 사람들은 어마어마하게 많을 것이다.
“그 회사, 시범적으로 날릴 겁니다.”
박성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회사가 날아가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이직해야 할 거고요.”
“하지만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요?”
“그 회사 사장이 남의 목숨을 개털만도 못하게 보는데 직원이라고 뭐 잘 대해 줬겠습니까? 안 봐도 뻔합니다. 박성인 씨가 다니는 회사도 이직률이 어마어마하겠죠. 안 그런가요?”
“확실히 다들 이직한다고 입에 달고 살기는 하죠.”
“결국 다 떠날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 기회를 줄 뿐이고요.”
“…….”
맞는 말이다.
그가 하던 그대로, 노형진은 돌려주는 것뿐이다.
“거절하시면 어쩔 수 없이 같이 처벌받으시는 거구요.”
“처…… 처벌요?”
“지금까지 고발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을 뿐, 이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화학요법 이전에 거절하는 건 문제가 안 된다.
그건 처벌하려야 처벌할 수가 없다.
“하지만 화학요법 이후는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명백하게 상대방이 죽는다는 걸 고지받았고 계약도 맺어졌다.
“사람들은 기증이라고 하면 그냥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아무리 기증이라고 하지만 이건 상대방의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살인이 성립되지 않을까요?”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 성립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판례가 없었을 뿐.
“아마 이번에 여럿 죽어 나갈 겁니다.”
노형진은 이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고 넘어갈 테고, 한번 지적당한 문제를 검찰에서 그냥 넘어갈 리가 없으니 화학요법 이후에 기증을 거부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기소가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처벌을 받느냐, 아니면 기증하고 모든 책임을 회사에 넘기느냐.”
“…….”
“박성인 씨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박성인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각오하고 나오기는 했지만 노형진의 말은 너무 차갑게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증은 강제하는 게 아니라고…….”
“물론 그렇지요. 단, ‘화학요법에 들어가지 전까지만’ 말입니다.”
그 전에 기증을 거부하면 그 환자를 죽이는 것은 병이지 기증자가 아니다.
“실제 판례가 있었지요.”
어떤 암 환자가 있었고, 완전 말기라 죽음까지 의사 소견으로 한 달도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그를 죽였다.
재판에서 가해자 쪽은 어차피 죽을 사람이라고 주장했지만, 판사의 결정은 살인 인정이었다.
어느 정도 감형은 되었지만 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대로 외면하시면 그 환자는 죽는다는 거, 아시잖습니까?”
손을 덜덜 떠는 박성인.
“남을 죽이려면 자기 인생 조질 것도 각오하셔야지요.”
“하지만 직장이…….”
“미안하지만 그건 제가 알 바 아닙니다.”
노형진의 차가운 말.
“제 고용인은 지금 병원에 있는 환자의 가족이지 당신이 아닙니다. 당신이 한 말처럼 안타깝고 불쌍하기는 하지만 죽든 말든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죠. 아니, 도리어 저희 쪽으로서는 정당한 복수인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환자는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 말에 박성인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책임을 모두 다른 이에게 넘기면 되는 거지요.”
“회사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런 일이 벌어지게 한 자를 살려 둘 생각이 없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시든 말입니다.”
박성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
“너무 몰아붙이는 거 아냐? 그래도 좋은 일을 하려고 하다가 그런 건데.”
“좋은 일은 개뿔. 물론 처음에는 그랬겠지. 하지만 책임을 지지 못할 선을 넘어서면 어떻게 해서든 지켰어야지.”
노형진은 운전석에서 차갑게 말했다.
동이 터 오는 새벽. 두 번째 기증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아무리 자기가 급해도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야. 그걸 그렇게 쉽게 판단해?”
“하지만 그렇게 강제하면 다른 기증자들도…….”
“그런 거에 겁먹고 기증을 거부하는 놈들이 애초에 기증했을 것 같아?”
“하긴 그러네.”
손채림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책임을 질 영역과 지지 않을 영역을 확실하게 구분해야 한다.
화학요법이 시작되면 그건 책임질 영역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