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355)
영광은 없다 (3)
자신이 무슨 처벌을 받는 게 아니라고 해도, 만일 검사의 말이 맞다면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니까.
“그 말 사실입니까?”
“네, 사실입니다.”
“알겠습니다. 조만간 다시 부르지요.”
바깥으로 나가는 의사.
그런데 그는 검사실 바깥으로 나간 순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불안한 시선으로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그들 중 일부는 그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닥터 김? 닥터 김이 왜 거기서 나와?”
“같은 이유 아닐까요?”
모두의 시선이 묘하게 변했다.
같은 이유. 즉, 이들도 뭔가에 대한 조사를 위해 불려 온 게 분명했다.
“검사님이 뭐래?”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하던가요?”
그의 주변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아마 그가 모르는 사람들도 자신처럼 의사일 것이다.
그는 모여든 사람들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아주 크게.”
모두들 침을 꿀꺽 삼켰다.
***
그 시각 노형진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그 사람의 얼굴에는 충격이 가득했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노형진 변호사님?”
“그렇습니다, 박정수 추기경님.”
천주교 역시 계급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붉은 옷의 사제라 불리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추기경이다.
추기경은 교황의 바로 아래 직책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위치인 동시에 다음 세대의 교황을 뽑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박정수 추기경은 한국의 추기경으로서 한국의 천주교 교단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
설사 노형진이라고 할지라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본인 스스로가 교인으로서 정치권이나 재계 인사들과는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는 타입의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노형진이 말한 최악의 카드를 들었을 때 박정수 추기경은 노형진을 피할 수가 없었다.
“하느님께 이 죄를 어찌 고해야 할지…….”
대구 교구에서 벌어진 참혹한 사건. 그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박정수 추기경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잔뜩 서렸다.
“그래서 제가 그걸 해결하기 위해 뵙고자 한 겁니다.”
“대구를 담당하는 주교는 뭐라고 했습니까?”
노형진은 차분하게 말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그쪽과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해당 교구의 주교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천주교 시설에서 운영하는 곳입니다. 수십 명이 있는 작은 시설도 아니고, 천 단위가 넘는 규모를 가진 곳입니다. 그런 곳에 대해 해당 지역의 주교가 모른다면 그건 둘 중 하나지요. 심각하게 무능하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하거나.”
‘그리고 이 경우는 후자지.’ 그건 확실하다.
이번 사건의 일로 감옥에 갔다 온 신부를 승진시킨 것이 그 주교였으니까.
물론 신부라는 직업의 특성상 승진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애매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를 성당의 주임신부로 발령했는데, 현실적으로 주임신부는 그 교구의 신자들을 관리하고 영적인 미래를 책임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충분한 자숙의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닌데 출소하기 무섭게 주임신부라는 요직으로 발령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행동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위험부담을 감수할 수는 없지.’
진짜 그들이 파벌을 만들고 서로를 보호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노형진이 굳이 그러한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주교를 거쳐서 신고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더 위쪽에 신고해서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왜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하겠는가?
“저는 이 문제에 대해 확실하게 처리하고 싶습니다. 주교님이 무슨 생각을 할지는 모르지만 해당 교구를 책임지시는 분인 만큼 저희도 조심은 해야겠지요.”
그 말을 알아들은 박정수 추기경은 긴 탄식을 토했다.
“저희가 어쩌다 이 정도로 의심받게 되었을까요?”
“아, 종교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 문제지요.”
“노 변호사님의 문제라고요?”
“저는 변호사니까요. 누구도 필요 이상은 믿지 않습니다. 사건과 관련해서는 의뢰인도 믿지 않는 게 접니다.”
“당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노형진이 불쌍하다고 생각한 건지 박정수 추기경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 저라도 신께서는 사랑하실 겁니다.”
“신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그건 맞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가 과연 회귀했을까?
그럴 리 없다.
그렇기에 노형진은 모두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게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번에는 선을 넘었지요.”
물론 사건의 내용을 정확하게 본다면 성직자가 이러한 행동을 직접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
원장 신부는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귀찮다는 이유로 방치했고, 부원장이라는 작자가 전권을 쥐고 이 모든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변명이 될 수는 없지요.”
분명 원장이라는 직책은 관리와 책임을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귀찮다는 이유로 최소한의 업무조차도 하지 않았다면, 그가 과연 성직자로서 신에게 올리는 기도는 제대로 했을까?
노형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당시 증언에 따르면 수십 년 동안 원장이 단 한 번도 업무 현장에 온 적이 없다고 하니까.’
몇 달도, 몇 년도 아니고 수십 년이다.
그동안 원장 신부는 장애인들이 밥을 먹는 식당이나 그들이 자는 숙소에 단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이 사건 이후에 다른 성당으로 갔던 신부 하나는 숙소로 콜걸을 불렀다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들은 이미 정상적인 성직자가 아닙니다. 비록 파문은 당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스스로 신을 버린 자들입니다.”
천주교에서 파문은 아주 드물게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신부나 신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파문을 당하기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파문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단을 섬긴다거나 신을 부정한다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외국의 경우는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도 파문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파문이라는 처벌은 인간의 상식이나 사회적 법리를 기준으로 하는 처벌이 아니라 신적인 영역에서의 처벌이기에, 신에게 대항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파문은 없는 게 현실.
“하지만 이 인간들이 과연 신에게 기도하고 신을 갈구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자격이 있을까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거짓이고 그들의 행동은 위선일 텐데.”
박정수 추기경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신부이지만 신부로서 활동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주교보다 높은 사람을 불러 주십시오.”
“대주교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천주교 신자들일 테니까요.”
하지만 신부라는 신분에 속아서 내부에서 고발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역의 주교 이상의 신앙과 신심을 보여 줄 사람이 아니라면 아마도 그분들은 진실을 말하는 데 부담을 가지실 겁니다.”
회사와 마찬가지다.
부장이 범죄를 저지른다면, 아무리 그 아래에 말해 봐야 결국 부장 선에서 커트당하는 법.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사나 사장급 이상의 상위급에 제보하는 것 말고는 해결책이 없다.
“대주교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박정수 추기경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세속과 거리를 두고 싶지만 이번 사건은 그러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다.
사망자가 노형진의 말대로 10% 이상이라면 비정상을 넘어서 살인도 의심해야 한다.
“감사합니다.”
노형진은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남은 것은 이제 오광훈이 해야 할 일이었다.
***
새영광복지원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평소처럼 굴러가고 있었다.
수사를 시작한 오광훈이 의사들에게 만일 정보를 흘리면 공범으로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형진과 오광훈은 새영광복지원의 앞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세고 있었다.
딱 6시가 되자 하나둘 나오는 사람들.
카운터로 그들 하나하나를 세는 사이 7시쯤 되자 더 이상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 숫자를 확인하고 오광훈은 눈을 찡그렸다.
“뭐여? 저 새끼들 미친 거야?”
퇴근 시간이 지난 후 나온 사람의 숫자는 총 이백스물한 명.
그런데 기록상 여기에서 근무하는 사람의 숫자는 총 이백마흔 명이다.
즉, 저 복지원에서 남은 사람의 숫자는 고작 열아홉 명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원장 신부나 아예 여기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숫자인 만큼, 실질적으로 남아서 직원들을 보호하는 실무직은 고작해야 열 명 정도?
“고작 열 명으로 천 명이 넘는 장애인들을 보호한다고?”
장애인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해 본 사람은 안다.
한 명 한 명이 움직이기 힘든 사람들이기에, 그들을 돕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좀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아무리 장애인들이 자는 밤이라고 해도 남아 있는 직원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더군다나 퇴근 시간은 6시. 일반적으로 취침 시간이 10시정도인 걸 감안하면 네 시간은 사실상 방치 상태가 되어 버리는 거다.
“원래 이러냐?”
오광훈은 혹시나 해서 노형진에게 물었다.
일단 퇴근 시간인 만큼 그게 정상일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너 복지 쪽 근로자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르는구나? 원래 이러냐고?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복지라는 건 기본적으로 희생을 기반으로 하는 거라고.”
다른 장애인 센터에서는 이런 칼퇴근은 꿈도 못 꾼다.
최소한 근로자의 3분의 1은 남아서 그들을 관리해야 하고, 10시가 넘어 장애인들이 잠들고 나서야 그중 일부라도 퇴근한다.
“그런데 6시 칼퇴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복지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한테 복지가 필요하다고 하소연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노형진은 멀어지는 직원들을 보면서 말했다.
“아마도 일종의 거래 같은 거겠지.”
“거래?”
“내부에 더러운 일이 많잖아. 그렇다면 그걸 외부에 감추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겠어? 조폭 출신이니 너도 잘 알 거 아냐?”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줘야지.”
그러지 않으면 내부의 직원이 외부에 이 모든 걸 까발릴 테니까.
“칼퇴근이 그 뭔가라고? 고작?”
“말이 고작이지, 내부에 뭔가 더 있을지도 모르지.”
실제로 새영광복지원은 업계에서도 직원에 대한 혜택과 복지가 좋기로 소문나 있었다.
칼퇴근 보장에 높은 임금에 정해진 휴가까지 다 주는 그런 것은, 사실 웬만한 복지 단체에서는 보장받기 힘든 것이었다.
“충분한 인원을 바탕으로 순환 근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거였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저들의 행동은 단순히 방치에 지나지 않았다.
“저거 봐.”
“어?”
어둠이 내려앉은 새영광복지원의 커다란 건물에서 불이 켜져 있는 곳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 소문이 사실인가 보네.”
“무슨 소문?”
“돈을 아끼려고 원생들을 한곳에 몰아넣는다고.”
“뭐어?”
사람이 사는 데에는 상당한 돈이 든다.
겨울에는 난방을 해야 하고 여름에는 냉방을 해야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 비용은 많이 든다.
새영광복지원은 그 비용을 아껴서 돈을 빼돌리기 위해 잔혹한 방법을 썼다.
많아 봐야 다섯 명이나 쓸 만한 방에 수십 명씩 몰아넣었던 것.
아무리 누워서 잠만 자는 방이라고 하지만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