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출장 전 준비 (2)
카이루스로부터 장미정원의 의뢰에 대한 설명을 들은 봄달래가 으음, 하는 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골디바 시의 주교라. 조사를 좀 해봐야 할 텐데.”
“오래 걸리나?”
카이루스의 말에 봄달래가 고개를 저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주워들은 소문은 당장도 몇 개 말할 수 있지.”
봄달래의 말에 노라가 오오, 하는 소리를 냈다.
“헌금으로 직접 운영하는 고아원이 하나. 그리고 5개의 고아원에는 주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고 있지.”
카이루스는 이야,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런 훈훈한 이야기를 기대한 건 아닌데.”
불법배틀기어를 유통시켜 사용자의 신경을 튀겨버리는 범죄자가 한편으로는 고아원을 운영하고 후원하는 자비로운 봉사자라.
“나쁜 놈이 모두에게 나쁜 놈인 건 아닌 법이니까.”
혹시 모른다. 카이루스가 그렇게나 죽여버리고 싶어 하는 발로른 제국의 황제도 누군가에게는 선하고 정의로운 사람일지도.
마찬가지로, 불량배틀기어를 유통하는 범죄자인 갈리아 주교 또한 부모를 잃거나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에게는 자상한 할아버지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가 그 일을 해결하는 걸로 보수를 받을 예정이라는 점이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도대체 어떤 보수가 약속되어 있는 거야.”
카이루스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섭운 해례본.”
이제 카이루스는 당당히 섭운 해례본을 입에 담아도 문제없는 상황이다. 어차피 카이루스가 페더윙 직계였다는 모든 기록은 제국에서 지워졌으니까. 누군가 카이루스를 페더윙 직계가 아닐까 의심해도, 증거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필립 4세는 내 개인정보를 심심풀이로 말소시킨 게 아니겠지.’
한 개인의 삶을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정도로 공을 들여 카이루스를 노동교화소에서 출소시켰다면, 물론 필립 4세도 자신만의 명확한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필립 4세에게 카이루스가 필요한 것이 분명하다. 그 사실을 알아낸 게, 카이루스에게는 이번 세실리아와 술을 나누면서 알게 된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협조할 리는 없지만.’
당연히 황제 또한 카이루스가 협조하게 만들거나, 협조를 강제할 만한 방법을 준비하고 있겠지만.
“잠깐만, 섭운 해례본?!”
카이루스가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이, 섭운 해례본이라는 말을 들은 노라가 다리에 스프링이라도 달린 것처럼 자리에서 팍 하고 튀어올랐다.
“갈리아 주교는 불법배틀기어를 유통하는 과정에서 창고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그리고 그 창고에 섭운 해례본이 있다.”
노라의 반응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루나시커가 페더윙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되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하니까.
방금 전에는 카이루스가 잠시 딴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노라 갈라테아가 딴생각에 빠질 타이밍이었다.
‘그걸 왜 찾지? 어디에 쓰려고 그걸 보수로 약속받고 의뢰를 진행하는 거야?’
노라의 머릿속에 의문이 빠르게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카이루스와 페더윙 사이의 관계를 조사하라는 아이란 공화국의 의뢰에 노라가 보고 할 만한 사항이 생긴 셈이다.
“그거 돈이 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일레나는 어차피 금전적인 보수를 목적으로 협조하는 중이 아니고, 노라 또한 그녀 나름의 목적이 있어서 협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지금 새로 참가하게 된 봄달래는 섭운 해례본이라는 보수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물론 그걸 확보한 다음 팔아치울 생각이라면 나도 상관없지만.”
봄달래가 보기에 카이루스는 돈을 벌고 싶어서 섭운 해례본을 찾으려는 게 아닌 것 같다.
카이루스가 제풍을 쓴다는 사실은 이미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까.
“팔 생각은 아니야. 한번 살펴보고 싶어서.”
“왜? 어차피 페더윙 직계가 아니면 섭운은 쓸 수 없다고 들었는데.”
노라가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 모르지.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애초에 너도 도시 지하에서 구름에 당했잖아.”
“그건… 그렇네.”
노라가 카이루스의 말에 순순히 동의했다. 구름 속에서 벼락을 맞지 않았다면 그 당시의 대결은 노라의 승리로 끝났을 테니까.
님부스를 활용한 진동칼날과 힙플라스크를 가지게 된 지금의 카이루스와 그때의 카이루스는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될 정도의 실력 차이가 있다.
“섭운을 익힐 수 없더라도 그걸 통해서 뭔가 의미 있는 실력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야.”
카이루스는 너무나도 태연한 표정으로 거짓말을 했고, 일단 노라도 그 거짓말에 속기는 한 모양이다. 애초에 카이루스가 페더윙 직계라는 확신은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봄달래 같은 경우는 일을 마치고 나면 내가 사비를 털어서 보수를 챙겨주지.”
“좋아. 그럼 나도 문제없어.”
카이루스의 제안에 봄달래도 순순히 동의했다. 결국 자신 앞으로 떨어지는 이득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 봄달래의 불만이었으니까.
“일단 서로 간단하게 인사는 끝냈으니.”
“혹시 타냐는?”
일레나가 카이루스를 향해 질문했다.
“너 같으면 이번 일에 끼우고 싶겠냐.”
의료지원을 생각한다면 물론 타냐도 한 자리 차지할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문제는 이번에 우리가 노리는 목표가 골디바 교구를 총괄하는 주교라는 점과, 타냐가 평상시에 주장하는 자신의 정체다.
“아, 맞다. 그래도 이 도시에서 보기 드문 좋은 사람이긴 한데.”
미쳤지만 착한 사람. 어쨌든, 카이루스는 이번 일에 타냐를 끼울 생각은 없다.
“아, 설계도 그릴 때 인원 추가는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자제해라.”
카이루스의 말에 봄달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 일레나에, 루나시커 요원까지 더해졌잖냐. 나도 증원계획은 없었다.”
사람이 더 필요 없기도 하고, 이 세 명의 수준에 맞춰서 사람을 뽑는 건 힘들다.
“요즘 같은 시기는 더더욱 그렇지.”
“요즘 같은 시기라니.”
봄달래의 말에 카이루스가 잠깐 관심을 보였다.
“도시 돌아가는 꼴에 조금 더 신경을 쓰는 편이 좋아.”
봄달래의 말에 카이루스가 턱짓한다.
“그래서 지금 신경 쓰고 있잖아. 말해봐.”
“장미정원은 폰투스를 손에 넣은 다음, 아름드리 전당포를 제외한 나머지 조직들에게도 폰투스를 갈라줬어.”
세실리아는 혼자서 다 차지하느니, 적당히 갈라먹으며 다른 조직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이익을 챙기겠다는 판단을 한 거다.
“문제는 그로 인해 지하가 더 이상 아름드리 전당포만의 영역이 아니게 되었다는 거지.”
그로 인해 크고 작은 불화가 발생하는 중이다. 지하로 세력권을 넓히려는 다른 조직들과, 이를 막으려는 아름드리 전당포 사이의 갈등.
“덕분에 인력사무소들이 죄다 인력난이라고.”
직접적인 조직 간의 충돌이 아니다 보니, 아름드리 전당포를 위시로 한 운하운영위원회의 조직들도 자신들이 직접 나서는 대신 인력사무소를 통해 사람을 고용하는 형태로 일을 진행하고 있다.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이네.”
“지하가 안정되기 전까지는 인력사무소에서 제대로 된 실력자 구하기는 힘들 거라는 게 건축사나 시행사들의 중론이지.”
시공업자들이 없으면 건축사와 시행사도 일을 할 수 없다.
“나도 당분간 일이 없겠거니 하며 허리띠를 졸라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갑자기 카이루스가 일거리를 물어다 준 셈이다.
“좋군. 내 의뢰의 설계도 그리는 데 집중할 수 있다는 뜻으로 알겠다. 설계도 완성되면 연락해.”
“그러지.”
더 세부적인 논의는 봄달래가 설계도를 완성한 다음에 진행해야 한다.
“그럼 나는….”
“잠깐만.”
봄달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사무실을 나가려고 하자, 카이루스가 이를 제지했다. 아직 하나를 더 말해둬야 한다.
“베넷 시 근교에 넓은 공터가 있나? 가능하면 가장 큰 규모로.”
카이루스의 말에 봄달래가 으음, 하는 소리를 내고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한 20년 전에 뭘 지으려고 하다가 무산되고 버려진 건설부지가 있을 거다.”
아예 첫 삽을 뜨기도 전에 흐지부지된 사업이라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이 잡초만 무성한 공터다.
“딱 좋구만.”
카이루스는 봄달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레나를 바라봤다.
“봄달래가 설계도를 다 그리기 전까지 너는 나랑 거기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서?”
“필요한 일이야.”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제풍과 관련된 일이라는 걸 눈치채고 더 이상 의문을 표시하지 않았다.
“나도 구경하고 싶은데.”
상황을 짐작한 노라가 곧바로 동참 의사를 밝힌다.
“상관없어. 어차피 너한테 생필품 전달을 부탁할 생각이었으니까. 그 일만 꾸준히 해준다면 머물러도 좋아.”
“좋아!”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계도 완성되면 노라를 통해서 소식을 전달해.”
“알았다.”
봄달래가 먼저 자리를 뜨고, 카이루스를 포함한 나머지는 곧바로 필요한 짐을 챙겨 봄달래가 말해준 도시 교외의 건설부지로 향했다.
“진짜 휑하네.”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존재하는 것은 추운 날씨로 인해 누렇게 변한 온갖 잡초와 썰렁한 공터를 쓰다듬는 외로운 바람.
카이루스가 원하던 이상적인 풍경이다. 게다가 이 공터는 봄달래가 말해준 것처럼 충분히 넓었다.
“축구 경기장 두 개는 들어가겠는데.”
“그래서, 여기서 뭘 하면 되는 건데?”
삭막한 광경을 구경하던 일레나가 질문을 던졌다.
“당연히 제풍 연습이지.”
“그렇겠지?”
일레나와 노라 모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 되었다.
“꼭 여기여야 하는 이유는….”
“제풍의 특징.”
카이루스 대신 노라가 대답했다. 페더윙은 사라졌지만 제풍을 쓰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루나시커에서는 여전히 제풍에 대한 교육을 철저하게 수행하는 중이다.
“오, 뭔가 아는 모양인데. 그럼 루나시커가 제풍을 쓰는 사람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점이 뭔지도 알겠네.”
카이루스의 말에 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면전. 아군보다 적군이 많을수록 좋아.”
“그 반대가 아니라?”
일레나가 노라의 말에 반박하자, 노라가 고개를 저었다.
“제풍을 제대로 쓰는 검사가 있다면, 내 말이 맞아.”
“…?”
일레나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카이루스가 명멸을 뽑아들었다.
“보면 알 거다. 일단, 지금 이 환경은 제풍을 쓰기에 최적이야.”
노라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레나,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이런 상황에서 제풍이 어디까지 사태를 키울 수 있는지다.”
그냥 막연히 바람을 다루는 검술, 이라는 식의 이해로는 부족하다.
카이루스가 살짝 검을 고쳐잡자, 칼날을 스치는 바람이 스산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칼날에 닿은 바람이 카이루스가 원하는 방향을 따라 실타래처럼 흐른다. 카이루스는 계속해서 이리저리 검의 위치와 칼날의 각도를 바꾸며 배틀기어의 출력을 올린다.
카이루스가 만들어내는 바람의 흐름이 주변의 공기를 장악하고, 그 권역을 차츰차츰 넓혀나간다.
“검을 뽑고, 내가 만들어낸 제풍의 흐름에 맞춰.”
지금의 일레나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함께 춤을 추는 것처럼, 일레나는 색유리를 손에 쥐고 카이루스가 만들어내는 바람에 맞춰 움직인다.
“제풍의 제는 옷감을 짓는다는 뜻이다.”
바람을 옷감의 실타래처럼 사용한다. 한 가닥 한 가닥, 바람을 실처럼 사용해 서로 겹쳐나가며 하나의 목적을 완성시킨다.
“….”
일레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카이루스에게 보조를 맞춘다. 바람이 점점 더 강해진다. 카이루스가 만들어낸 제풍의 움직임이 어느 순간, 이 공터를 흘러가는 모든 흐름을 손에 넣는다.
“이건.”
“이곳의 공기는 모두 우리 손에 넣었다.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카이루스가 검을 움직이자, 이 공터를 채운 바람 전체가 그 움직임에 맞춰 넘실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