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일레나의 경우 (2)
세상에는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라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거, 진짜냐?”
“이 씨발, 진짜라고 말했잖아 이 개새끼야. 뭘 어떻게 해야 믿을 건데!”
멱살이 잡힌 채, 발버둥 치는 남자는 목이 붙잡혀 숨통이 막혀가는 상황에서 힘겹게 대답했다.
“재무청장의 딸이! 너를 추격하는 중이라고! 너 이제 뒈졌어 병신 새끼야. 네가 지하에 머무르는 것도 알고 있단 말이야.”
일전에 이루어진 정기자격심사를 통해 카이루스와 일레나, 노라의 실력은 측정이 끝났다.
실제로 일레나가 콜비 데번디시를 생포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지금 목이 잡힌 녀석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내가, 내가 도와줄게. 너 어차피 소문 같은 거 수집할 수 없잖아. 그러니까 씨바랄, 좀 살려주라!”
죽음을 목전에 두고 꿈틀거리는 모습이 살충제를 맞고 죽어가는 벌레 같다고 생각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우득, 하는 소리와 함께 상대의 목이 꺾이고,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던 몸이 축 늘어졌다. 콜비는 녀석을 휙 바닥에 집어 던진 다음 히죽거렸다.
“그렇단 말이지.”
콜비 데번디시 또한 자신의 앞에 놓인 거절할 수 없는 유혹에 넘어가버렸다.
‘재무청장의 딸. 캘로그 가문.’
이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사냥감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남자를 납치했을 때보다 여자를 납치했을 때 훨씬 재미있는 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
심지어 그 대상이 제국의 주역 중 하나인 캘로그 가문의 재무청장이다. 어차피 지옥으로 가는 티켓을 끊어놓은 콜비의 입장에서는 거절할 수 없는, 거절하고 싶지 않은 유혹이었다.
“준비를… 준비를 해야지.”
훌륭한 식재료를 앞에 둔 요리사처럼 섬세하고 철저하게 움직여야 한다. 여태 동안 쌓아놓은 노하우를 총동원할 가치가 있는 목표다.
콜비는 자신의 오른손에 끼워진 건틀릿을 절그럭거리며 악의로 그려낸 미소를 얼굴에 발랐다.
그의 모습이 흔들리더니 서서히 지워진다. 왜곡된 빛이 남긴 아지랑이 같은 일렁임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콜비가 목표를 정하고 움직이는 사이, 일레나 또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으으….”
투툭, 하고 천장에 맺힌 채 썩어가던 오물 덩어리가 일레나의 코앞에 떨어진다. 질퍽거리는 잔해물 안에 구더기 몇 마리와, 꿈틀거리는 새빨간 실지렁이들이 보인다.
하수도가 더러운 건 당연하다. 어차피 이럴 줄 몰랐던 게 아니다. 잠깐 그 더러운 오물에 시선을 던지던 일레나는 빛을 내는 구슬을 들고 주변을 살폈다.
‘어차피.’
도시 지하, 하수도를 오가는 사람은 많다. 이 도시의 지하 또한 오가는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있다.
일레나는 이 안에서 콜비 데번디시를 직접 찾을 생각은 없었다. 녀석이 직접 일레나를 찾아오게 할 생각이다.
카이루스는 미끼를 던져놓고 끌린 상대를 사냥했지만, 일레나는 직접 미끼를 자청해 목표를 끌어내고 있었다.
“…뭘 봐?”
지하를 오가는 사람들이 이미 몇 번이나 일레나와 마주쳤다. 일레나가 지하를 배회한다는 걸 알게 되면 콜비가 찾아오겠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려면 며칠 정도 지하에서 생활할 필요가 있다.
‘으….’
일레나의 그러한 결정에 의해 괴로워하는 건 일레나 자신뿐이 아니었다. 그녀의 뒤에 따라붙어 수호천사 역할을 하는 노라 또한 일레나의 결정에 의해 상당히 짜증 나는 상황을 견디는 중이었다.
“♬♪”
그래도 일단 일레나는 이 상황을 나름대로 즐기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숯과 그릴을 꺼낸 다음, 고기 몇 덩이와 베이컨을 올리더니 그대로 굽는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기의 기름이 숯에 떨어지고, 다시금 기름이 숯의 열을 받으며 강렬한 냄새를 풍긴다.
이건 먹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제아무리 고기와 베이컨이 맛있어도 이런 환경에서까지 환장하고 먹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구워진 고기의 냄새는 강렬하고, 또한 그 장소에 제법 오래 남는 편이다.
“빨리 오라고.”
일레나는 그렇게 중얼거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일부러 흔적과 냄새를 남기는 짓을 하며 일레나는 무려 4일의 시간을 지하에서 보냈다.
“크으, 냄새 좋다.”
4일째 아침, 일레나는 지상에서 챙겨온 것들을 활용해 강렬한 냄새를 풍기는 볶음밥을 만드는 중이었다.
프라이팬을 휙휙 움직이는 일레나의 뒤편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맛있어 보이는데. 나도 좀 나눠주지 않겠나?”
일레나는 주걱으로 팬 안의 내용물을 섞은 다음 내려놓으며 말했다.
“참 오래도 걸렸다. 내가 찾아달라고 이렇게 애원했는데. 여자 기다리게 하는 남자는 매력이 없단 말이야.”
“나 말고 에스코트하는 양반들이 있나 싶어서.”
사가사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허리가 약간 굽은 남자의 오른팔에서 나는 소리다.
‘건틀릿, 다섯 개의 칼날.’
일레나의 목표인 콜비 데번디시가 맞다. 자신 말고 다른 에스코트가 있느냐고 물어보는 건, 루카스의 아이들이 따라붙었나 확인하느라 늦었다는 뜻이다.
“뭐, 지금이라도 찾아왔으니 다행이네.”
일레나는 검을 뽑아들자, 콜비가 프라이팬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밥은 먹고 하지?”
“아, 그럴까?”
일레나는 콜비의 말에 웃으며 대답한 다음, 프라이팬을 발로 차 음식물을 바닥에 쏟아버렸다.
“자, 먹어.”
“저 음식이 없어서 굶어죽는 불쌍한 사람들이 참 많을 텐데 말이야. 아깝게.”
“너 같은 인간 쓰레기 주둥아리에 처넣는 것보다 더 아까운 일이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죽여버리고 싶지만, 목표는 생포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일레나는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다시 한번, 칼날이 서로 비벼지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일레나는 상대가 자세를 낮춘 채 그녀를 향해 질주하며, 그게 손을 휘두르는 모습을 봤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이다.
“…!”
검과 건틀릿이 격돌하고, 순간 일레나는 숨을 들이켜며 살짝 뒤로 밀려났다.
“가끔은 말이지, 늑대를 사냥하려고 양의 탈을 쓰는 사자들이 있거든.”
연달아 건틀릿을 휘두르며 말하는 콜비 데번디시의 눈은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일레나는 그의 공격을 빠르게 피한 다음, 녀석의 다리를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검과 건틀릿이 격돌하며 불똥이 튀고, 어둑한 지하가 잠깐 밝아졌다 다시금 어두워지기를 반복한다.
“근데 너는 아니었군.”
콜비 데번디시는 방금 전의 합을 나누면서 자신의 우세를 확인했다.
“좆까는 소리 하지 마.”
일레나는 차갑게 대답한 다음, 빠르게 옆으로 빠졌다. 휘둘러진 건틀릿이 허공을 후려치는 순간 일레나의 반격이 콜비를 노린다.
“보호막?”
일레나의 반격은 콜비의 몸에 닿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검 끝을 막아내는 강력한 척력이 느껴진다.
단검 중 하나의 힘이다. 일레나는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다리를 움직였다. 갑작스럽게 지하에 맹렬한 돌풍이 분다.
“네년 수작은 알고 있어. 그리고 문제점도 알고 있지.”
제풍을 쓰는 자들은 호신수단으로 보호막을 선호하지 않는다.
보호막의 원리는 기본적으로 외부와의 차단이다.
제풍은 자신의 몸을 움직여 바람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이를 활용해 주변의 공기를 장악하고 통제한다.
역장을 통해 자신을 외부와 격리하는 보호막은, 제풍과 잘 어우러지기 힘들다.
“크흐흐. 머리털을 빡빡 밀어서 가발을 만든 다음, 재무청장에게 보내면 재미있겠어.”
콜비의 머리에는 온갖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네년의 늙은 애비가 네년 머리털로 만든 가발을 쓰고 여장을 한 다음,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거야.”
상상만 해도 웃겨서 배를 잡고 꼬꾸라지고 싶은 기분이다. 당연히, 콜비의 이야기를 듣는 일레나의 표정은 점점 차가워진다.
돈 같은 걸 받기 위해서 저 지랄을 떠는 게 아니다. 그냥 자기 지시에 사람들이 저항하지 못하는 꼴을 즐기고 싶을 뿐이다.
“미친 새끼.”
“네 애비도 춤을 다 추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소리를 들을 거다! 생각만 해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콜비 데번디시의 공세는 약해지기는커녕 점점 힘이 더해지고 있다.
‘할 수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레나는 아직까지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콜비 데번디시의 실력은 일레나보다 위에 있지만, 일레나의 예측에서 벗어날 정도는 아니다.
대처도 가능하다.
“하, 또 이러는군.”
콜비가 움직이려는 순간, 매서운 바람이 콜비가 나아갈 예정이었던 경로를 난도질한다. 피해를 감수하지 않으면 돌격할 수 없다. 결국 콜비는 돌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건 굳이 일레나의 몸이 움직일 필요가 없다.
‘벌써 일곱 번이란 말이지. 미래를 짧게나마 볼 수 있는 건가?’
돌진을 멈춘 콜비는 여전히 날 선 눈빛으로 일레나를 살폈다. 일곱 번이나 콜비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병신이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일단, 콜비가 생각할 수 있는 건 한눈에 봐도 보통 물건이 아닌 것 같은 배틀기어, 색유리다.
‘할 수 있어.’
그리고 일레나는 조금 더 적극적인 움직임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실력 차이가 있는 건 인정해야 한다. 카이루스나 루카스의 말처럼 상대를 생포하기 위해서는 일레나의 실력이 다소 부족한 감이 있다.
하지만,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할 수 있다.
‘아슬아슬하게.’
일레나는 맞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 상황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방법은 카운터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상대의 피하는 동시에, 빈틈을 노려 일격을 때려박아야 한다.
‘플라스크는….’
쓰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면 예측할 수도 없다. 지금 상황에서는 필요 없다.
다시 한번 콜비가 달려든다. 일레나는 이번만큼은 상대의 공격을 미리 차단하지 않았다.
‘한순간… 한순간만! 온다. 지금이야.’
상대의 공격은 위에서 아래로, 사선을 그릴 것이다. 극도로 아슬아슬한 회피를 성공하면, 승리로 향하는 길이 열린다.
“지금!”
공격이 일레나를 스쳤다. 아주 약간만 일레나가 더 앞으로 나와 있었다면 칼날은 일레나의 코를 베었을 거다.
“어?!”
회피에 성공한 일레나가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콜비의 몸이 투명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일레나가 주춤하는 사이, 투명해졌던 콜비의 몸이 다시 나타났다.
“미래를 보는 게 아니군.”
“이… 자식이!”
다시 나타난 콜비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콜비의 몸에서 청백색의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전깃불에 직격당한 일레나가 비명을 내질렀다. 스파크는 일레나의 몸에 엉겨붙어 쉬지 않고 그녀의 몸을 지진다. 전신의 근육이 통제를 벗어난 채 멋대로 펄떡거리고, 눈앞이 번쩍거린다.
미래를 보는 것과 예측은 다르다.
예측은 정보에 기반한다. 상대의 공격과 방어를 예상하는 건 어느 정도 칼밥을 먹은 녀석들이라면 충분히 해낸다.
단지 일레나는 이를 본능적으로, 매우 정확하게 행하는 것뿐이다. 모르는 수단에는 당할 수밖에 없다.
“씨팔, 애먹이긴.”
일레나는 무력화되었다. 콜비 또한 사람을 생포해서 일을 벌이는 놈이다. 상대를 무력화하기 위한 수단 정도는 당연히 가지고 있다.
콜비의 건틀릿에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칼날 중 하나에서 검은색 리본 한 가닥이 흘러나오더니, 뱀처럼 꿈틀거리며 일레나의 몸을 휘감는다.
“크흐…!”
전기충격의 마비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레나에게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머리털 밀면 아무리 예뻐도 웃긴 꼴이 된다고. 너는 어떨지 궁금해지네.”
구속당한 일레나를 향해 콜비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방심했어.’
지금 와서야 일레나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의 문제점을 알아차렸다. 사실,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문제점이었다.
제풍이 방어막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일레나의 예측은 정확하지만 알지 못하는 수단에는 당할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과신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싸움을 이어가며 녀석이 가진 카드를 다 내놓게 하고. 그때부터.’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움직여 상대를 제압했어야 한다.
결론. 상대는 침착했고, 일레나는 자신의 능력을 너무 믿었다. 눈물이 흐른다. 잡혀서 억울한 게 아니라, 스스로가 너무 등신 같아서 흐르는 눈물이다.
새로 얻은 장난감에 신나서 날뛰던 애 같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그녀의 가문과 아버지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다.
“아버지에게 보낼 편지 내용이나 생각하라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을 텐데.”
콜비의 웃음소리와 함께 건틀릿의 칼날이 일레나의 머리카락으로 다가온다.
딱.
비참한 최후를 각오한 일레나의 귀에 막대기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둑한 지하에 빈틈없는 칠흑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