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준비완료 (1)
기차가 경적음과 함께 달리고, 기찻길 위를 미끄러지고.
그렇게 달리던 기차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제대로 된 역도 없어서 간이역 형식으로 유지되는 허름한 공간이다.
이 역에 멈추는 기차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있다. 그것조차도 돈이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국가의 명령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잠깐 멈춰주는 정도다.
시미드 캘로그는 곰팡이 슨 벤치에 앉아 시가에 불을 붙인 채 봄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차에서 내린 카이루스는 그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같이 도착한 일레나와 노라는 카이루스와 시미드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오랜만이군.”
“간이역 말일세.”
툭, 하고 시가 끝에 맺혀있던 담뱃재가 잿빛 눈물처럼 바닥을 때린다.
“단어가 참 슬프지 않나? 모든 것들이 간이, 라는 단어를 붙이면 어설퍼지는 법이지.”
간이역, 간이식, 간이애인….
“나이 먹으면 사람이 감상적이 된다더니.”
카이루스는 시미드 캘로그의 옆에 앉은 다음 말했다.
“근처에 사람은 없어. 늙탱이 개소리 들어줄 이유 없으니, 본론으로 넘어가지.”
“꽤 오랜 세월 준비했네.”
카이루스에게 시가가 한 대 내밀어졌지만, 그는 고개를 저어 거절했다.
시미드 캘로그는 이 일을 약 6년 정도 준비했다.
“그런 거치고는 병력을 그렇게 많이 모은 것 같지 않던데.”
“3만이야. 그중에서 함께 제국의 수도로 향하는 건 2만이고.”
카이루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까놓고 말해서, 택도 없는 숫자다.
“그걸로 황궁을 두들길 생각은 아닐 테고.”
하지만, 카이루스는 계속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시미드 캘로그는 바보가 아니다. 나름의 계획이 있을 테고, 그 계획에는 병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 뿐이다.
“모든 국가기밀은 주기적으로 갱신하지.”
“그렇겠지.”
정보는 최신화가 필요하다. 아무리 중요한 정보라 해도 일정 주기를 두고 수정한 다음, 기존의 것은 파기하고 새것으로 갈아치운다.
당연한 일이다.
“발로른 제국에서 가장 긴 주기를 가지고 있는 서류들의 교체 주기가 어떻게 되는지 아나?”
“…3년.”
아무리 변화가 없는 정보라 해도, 3년에 한 번씩은 갱신한다. 설사, 바뀌는 부분이 없다 해도 새 것으로 교체하고 낡은 것은 철저한 관리하에 파기한다.
즉, 6년의 시간이라면 발로른 제국이 가지고 있는 모든 행정서류는 최소 2번 갱신되었다는 뜻이다.
“뭐, 그거라도 주워모은 거야?”
“옛 정보를 어디에 쓰겠나.”
다시 한번 툭, 재가 떨어진다.
“새로 갈아치우는 정보에 손을 써두었지.”
“어떤 식으로? 아니, 애초에 재무청장이라 해도 거기에 손을 쓸 수 있나?”
카이루스의 말에 시미드 캘로그가 낮게 웃었다.
“서류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만 정보가 기입될 종이에는 손을 쓸 수 있지 않겠나.”
슥, 하고 그가 내민 것은 서류였다. 제국 정부가 사용하는 종이는 한 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튼튼하고, 이면지로 쓸 수 있고, 심지어 세 번까지 재활용이 가능하다. 이 기업이 생산한 종이는 제국의 모든 공무에 사용된다.
“종이에 수를 썼다니.”
“원래 종이는 잘 타는 법 아닌가?”
종이회사에 공급되는 펄프에 이것저것 섞어, 평범한 종이보다 훨씬 더 잘 타게 만들어 두었을 뿐이다. 멍하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이루스가 혀를 차며 질문했다.
“불은 누가 붙이는데?”
세상만사 다 그렇지만, 추락할 각오로 나무에 열린 과일을 따는 사람은 없다. 온갖 중요한 서류가 보관되어 있는 곳에 들어가 불을 지르면, 실력이 있지 않은 한 무조건 잡혀서 아작난다.
“대의를 위한 숭고한 희생을 할 거라느니,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라느니 하는 개소리 하지 마라.”
정말 그런 소리를 하면, 카이루스는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시미드 캘로그를 철도에 던져버릴 생각이다.
사람을 뭘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건지. 다들 그렇게 정의롭고 숭고한 존재들이었다면 베넷 시가 존재할 수 없다.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
시미드 캘로그가 짧게 대답했다. 대답을 듣기 전까지 기찻길을 노려보고 있던 카이루스는 곧바로 대답했다.
“더 정확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제국에서 매해 노동교화소에서 출소하는 인원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마침내, 카이루스의 시선이 제대로 시미드 캘로그에게 향했다.
“약 47만 명이다. 그중 약 21%은 다시 교화소로 돌아가지.”
“적응할 수 없으니까.”
교화소 안과 밖은 다르다. 그리고 일반인이라면, 그 누구도 한 번 노동교화소에 들어갔던 녀석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나저나 전과자들 더럽게 많네.”
이러니 사람이 마구 뒈져나가도 베넷에는 항상 사람들이 있는 거다. 매해 제국에서 배출하는 전과자만 47만 명이라니.
“6년 동안 나는 계속해서 전과자들의 뒤를 추적했지.”
그중에서 쓸만한 녀석이 있나 확인한 거다.
“850명을 건졌네.”
많은 숫자가 아니다. 6년 동안 출소한 사람의 숫자만 해도 300만에 근접하는데, 그들을 고르고 고르다보니 남은 사람이 850명이라는 뜻이니까.
“그중에 한 명은 나겠네.”
카이루스의 말에 시미드 캘로그가 대답했다.
“행동할 수 있지만, 능력이 부족한 자들이야. 그래서 구체적으로 자신들이 하는 일이 뭔지 잘 모르지.”
날 이렇게 힘들게 하는 그냥 제국 엿 먹어라! 라는 생각을 하는 자들.
또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을 구할 길이 없는 자들.
빚을 잔뜩 지고, 경마장과 도박장에서 하루의 반짝임이 평생의 부유함이 되기를 기도하는 자들.
“생각보다 사람은 많아.”
“그래, 나도 알아.”
사람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는 카이루스도 잘 알고 있다. 시미드가 이런 사람들을 쓸 생각 없이, 요상하게 정의감 같은 것만 넘치는 병신들을 데려올까 봐 걱정했던 거다.
“850명이라.”
몰래 행정기관에 불 지르는 일이다. 한곳에 많은 사람을 보낼 이유가 없다.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어디에 써먹게?”
“여럿으로 쪼개서 제국 여기저기에 뿌려놓을 생각이야.”
제국을 하나로 이어주는 전선을 자르고, 여기저기에서 분란을 일으킬 예정이다.
서류가 불타 없어지고, 제대로 된 연락을 취할 수 없게 된다.
“일이 벌어지고 나면 이번 사태를 확인하고 방비책을 강구하고자 인근 도시에서 협력차 찾아왔다는 식으로 접근할 거야.”
당하는 입장에서는 도착한 녀석들의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런 화재가 온갖 장소에서 다발적으로 일어나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행정이 완전히 마비되어버린다. 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약간의 장난질은 믿을 수 없는 혼란을 야기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군과 치안대의 시선을 돌려야 하네.”
카이루스도 무슨 소리인지 대충 이해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따로 있다.
“황도치안대와 호국경은?”
혼란이 계속되면 황도에 주둔하고 있던 기사단과 군부대는 안정을 위해 황도 밖으로 파견될 수 있다.
하지만 황도치안대는 아니다. 평시에는 황도를 지키지만, 일이 터지면 황궁을 지킨다.
온갖 시술을 받은 초인부대가, 무슨 일이 있어도 황도를 떠나지 않고 황제를 지킬 거다.
그리고 현 제국제일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호국경 덴버 허드슨도 떠나지 않을 거다.
“황궁을 지킨다면, 건드리지 않으면 될 일이야.”
수도와 가스를 차단하고 황궁으로 들어가는 모든 물류를 막아버린다.
“황도치안대의 규모는 약 3,500이야. 거기에 더해 궁 안에서 생활하는 자들까지 모두 합치면 만 명이 훌쩍 넘지.”
하루에 소모하는 생필품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요점은, 황도치안대만 남을 정도로 황도 밖을 쑥대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원래는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자네가 있지 않나.”
고작 6년 정도의 준비로 일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짧으면 10년… 더 길게는 15년도 바라보며 계획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시미드 캘로그는 그럴 이유가 없어졌다.
비행.
지금 이 세상에서 발로른 제국의 드넓은 국토를 하루 안에 몇 번이고 왕복할 수 있는 건 카이루스뿐이다.
“최대 속도가 음속의 다섯 배라고 했나? 그럼 한 시간 안에 6,000km도 주파 가능하겠군.”
“그 속도로 나는 건 전투 상황이야.”
평상시에는 음속의 2―3배 정도로 비행한다. 물론, 그래도 시속 3,000km에 육박한다.
“발로른 제국 국토의 횡단거리는 8,500km고, 종단거리는 약 3,200km네.”
“숫자로 들으니 이 망할 제국이 얼마나 넓은지 감이 확 오네.”
제대로 다 파악하기도 힘들 정도의 머릿수와 무지막지한 크기의 땅은 발로른 국력의 원천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토록 땅이 넓기에 평시에도 인구수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정도다.
시미드 캘로그가 말한 행정마비가 성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제국은 대혼란에 빠진다.
“자네는 약 세 시간이면 발로른 제국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도착할 수 있어.”
기차 같은 걸 타고 다니면서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게다가 적은 다수를 이리저리 이송해야 한다.
지도에 표시된 곳으로 카이루스가 날아가서 싹 아작낸 다음, 다시 하늘로 날아버리면 적은 대처할 방법이 없다.
카이루스가 착륙한 곳에 하필이면 기사단장이 대기하고 있었다면 모를까.
사실 그것도.
“한 명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두 명 이상의 기사단장이 대기 중이어야 일을 그르치는 거다. 한 명은 카이루스가 충분히 감당할 자신이 있다.
“제국에 이 난리가 났는데 한 곳에 두 명의 기사단장이 있을 수는 없겠지.”
주요 도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군부대가 지키고 있을 거다. 그리고, 카이루스에게 있어 적의 머릿수는 의미가 없다.
카이루스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반역이 성공할 가능성이 확 올라갔고, 계획 자체도 훨씬 단순해졌다.
“해야 할 일은 알아먹었다.”
“연락망 차단은 루나시커에서도 협조해 줄 모양이더군.”
카이루스는 하하하, 하고 찬바람 나게 웃었다. 외세 도움을 받는 건 썩 현명한 짓이 아니다.
“당신은 황도로 가겠지?”
“그러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않나.”
반역을 했는데, 그 모든 것을 준비하고 지휘한 사람이 황도에 없으면 모든 것이 이상해진다.
모든 것을 준비한 사람이 성공하면 가장 많은 것을 손에 넣고, 실패하면 가장 많은 것을 잃는 건 당연하니까.
“…일이 만에 하나 잘못된다면. 자네가 약속을 지킬 거라 생각하겠네.”
“일레나 말이지. 약속은 나도 기억하고 있어. 최선을 다하마.”
카이루스는 그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잠깐 간이역의 철도를 바라보며 고민하던 시미드 캘로그가 입을 열었다.
“혹시.”
“이 일에서 일레나가 빠졌으면 하냐? 그런 건 내가 아니라 일레나에게 말해야지.”
카이루스는 일레나의 보호자가 아니다.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다. 그녀에게 배틀기어 사용법과 검을 가르쳐 주었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일레나가 무엇을 할지는 카이루스가 정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가. 그렇겠지. 알았네.”
시미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두 명이 이야기 잘해보라고.”
카이루스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카이루스가 앉아 있던 자리에, 이번에는 일레나가 앉았다.
자리에 앉은 일레나는 시미드 캘로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시미드 캘로그로서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설득했다.
위험한 일이고,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일에 너까지 휘말리게 하고 싶지는 않다.
뭐 그런 이야기들.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