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취우검 (1)
휴식이 끝나고 재무청장이 카이루스에게 연락했다.
시간이 되었다. 노라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수행하기 위해 이미 헤어진 상태다.
봄하늘을 바라보던 카이루스는 달리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움직일 시간이다. 카이루스의 첫 번째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청와기사단 취우검 달라스 오즐리]청와기사단이 지키고 있는 장소를 확인한 카이루스가 혀를 찼다. 달라스 오즐리를 알고 있는 게 아니라, 그를 상대하러 가야 하는 장소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잔틴.”
무균실이라서 범죄에 대한 내성이 없었던 도시. 적엽기사단장이 지키던 도시를 청와기사단장이 지키고 있다.
“박물관의 배틀기어는 다 분배했겠지?”
“아마도. 실전이잖아?”
대놓고 악의가 느껴지는 테러행위였으니까. 제국 행정시설 181곳에 불이 났다. 방화 시도는 더 많은 장소에서 일어났지만, 성공한 것은 그 정도가 전부다.
전화를 연결하는 전화선은 끊어졌고, 전보를 보내는 전신기로는 한계가 있다.
짧은 시간 안에 다량의 정보를 주고받는 일은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날아온 전보의 신호를 해독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라디오의 주파수는 한정된 자원이기에 기사단과 제국군이 나눠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민간은 지금 난리가 나버렸다는 뜻이다.
“가자.”
카이루스는 가방을 들어올렸다. 일레나는 이미 가방 안에 들어있었다.
“제국을 하루 안에 몇 번이고 왕복해야 할 수도 있다.”
비행에 있어 일레나를 배려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들키지 않게 높은 고도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비행해야 한다.
“알아. 견딜 수 있어.”
“그래.”
카이루스의 말수가 확 줄어들었고, 이건 일레나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꼭 해내고 싶었던 일이었으니까. 일레나는 카이루스의 행동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기사단 숫자가 많을 텐데.”
“의미 없어.”
어차피, 카이루스가 접근하지도 못하게 할 거다. 하늘로 날아오른 카이루스가 가속한다. 일레나는 가방 안에서 기를 쓰고 버틴다.
‘너무… 너무 빡센데!’
비행 중에 일레나는 군말 없이 버티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카이루스가 비행속도를 줄이면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으니까.
괜히 신음 소리나 흘려서 신경 쓰이게 만들고 싶지 않은 거다.
웃긴 건, 카이루스도 지금 전속력을 내는 건 아니라는 중이다. 나름대로 속도를 줄여서 일레나가 버틸 수 있도록 배려 중이다.
침묵의 배려 속에서 비행이 이어진다. 비행 끝에 레잔틴 시가 보인다.
“민간인은 하나도 안 보이는군.”
모두가 군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거처에서 나오지 않는 중일 것이다. 여전히 무균실이어서 그런지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굉장히 잘 따른다.
가만히 있으면 치안대와 군대가 처리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는 거다.
베넷 시에서 위험하니 나오지 말라는 공지가 나오면 다들 짐 싸서 도시를 탈출하려 들 거다. 공권력에 대한 믿음이라는 개념이 없는 도시니까.
“뭐, 그게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이제 밝혀지겠지.”
멸망한 가문의 잔재가, 제국의 검과 방패를 시험할 때다.
“준비해.”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희미한 호흡과 함께 저체온에 덜덜 떨면서도 마음을 다잡았다.
멀리서 착륙해 몸을 녹인 다음 전투에 진입한다는 선택지는 지금 없으니까.
도시의 중심을 향해, 카이루스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결과는 명중이었다.
카이루스가 적중한 도시 광장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쫙 퍼졌다.
“으… 극.”
일레나는 가방에서 기어나왔다.
“약간 시간이 있어 보이는데, 혹시 부탁하고 싶은 게 있냐?”
“나, 어깨 좀… 주물러줘.”
카이루스는 순순히 일레나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불편한 자세로 인해 굳은 몸을 풀어주었다.
그러고 있으려니, 사방에서 사람의 벽이 밀려든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은데?”
“그래. 제국군과 청와기사단.”
복장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일레나 캘로그. 반역자의 딸.”
지친 것 같은 목소리가 담배 연기와 함께 뿜어졌다. 담배 연기가 독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이 쫙 갈라섰다.
포마드로 머리를 빗어넘긴 남자가 서 있다.
손에 쥐어진 에스터크 한 자루를 제외하면 어떠한 무장도 하고 있지 않았다.
“재무청장의 딸에서 반군으로 전락한 기분이 어때?”
“뭐, 그냥 그래.”
카이루스가 일레나를 향해 농담을 던졌다.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방금 전과는 달리 말을 제법 길게 한다.
그런 카이루스를 향해 달라스 오즐리가 입을 열었다.
“카이루스 페더윙. 반역자의 딸과 함께하는군. 가문의 누명을 제국의 태양께서 사하여주었더니.”
“왜, 은혜도 모르는 새끼로 보이나?”
달라스가 에스터크로 카이루스를 겨누며 말했다.
“아니, 그냥 어차피 멸문당할 가문, 폐하의 혜안이 6년이나 앞당겼다는 생각뿐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터빈음과 함께 카이루스가 가속한다.
삽시간에 음속을 뚫고 날아든 카이루스가 검을 휘둘렀지만, 달라스의 몸에는 닿지 않았다.
잠깐, 그의 몸이 서넛으로 보일 정도의 날렵한 회피였다.
“열심히 피해봐, 취우검.”
“그럴 가치가 있다면.”
틈을 타 서서히 접근하던 기사와 병사들이 충격파를 견디지 못하고 휙휙 날아간다.
일레나는 카이루스의 돌진을 예상하고, 이미 충격파의 피해범위를 살짝 벗어나 있었다.
“물러나. 어차피 너희들로는 아무것도 못 한다.”
공격을 피한 달라스 오즐리가 병사와 기사들에게 지시했다.
“일레나.”
“문제없어.”
아군을 뒤로 물리는 달라스와는 달리, 카이루스는 일레나를 뒤로 물리지 않았다.
“곁에 짐을 끼고 싸울 생각인가? 얕보는 것 같은데.”
그런 카이루스와 일레나의 움직임을 보고 달라스가 비웃듯 말한다. 일레나의 실력으로는 카이루스의 방해만 될 뿐이다.
일반적으로는 그게 맞는 판단이다.
“방해?”
일레나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상식이었다. 일레나가 먼저 움직였다. 달라스는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달려드는 그녀를 바라봤다.
조금 뒤, 카이루스 또한 질주한다.
“?”
달라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카이루스의 공격을 피해야 한다. 카이루스의 공격을 피하는 순간, 달라스는 뺨을 스치는 시큰한 통증을 느꼈다.
바닥에 몇 방울의 피가 떨어진다. 일레나의 검이 스치며 낸 상처다.
“뭐야, 별거 없네? 이러니 청와가 적엽보다 못하다는 소리나 듣지.”
일레나가 놀리는 것처럼 달라스를 향해 말했다.
“이 년이.”
제정신 박혀있다면 기사단장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일레나는 이제 반역자의 딸이다.
“지금 바빠?”
옆에서 들린 카이루스의 목소리. 달라스 오즐리는 곧바로 검을 움직였다.
취우검.
눈 한 번 깜박할 사이에 쏟아내는 수십 번의 찌르기가 소나기처럼 카이루스를 노린다.
‘이제 내가 움직일 차례.’
지금 카이루스가 공격해서 달라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일레나도 예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이제 뒤로 빠지고.
카이루스는 달라스 오즐리가 쏟아내는 공격을 막아내고 피한다.
그 움직임이 실행에 옮겨지기 전에, 일레나는 미리 알게 된다. 달라스 오즐리는 전력을 다해 카이루스를 상대한다.
카이루스도 전력을 다해 달라스를 마주한다. 주고받는 공세는 소나기가 몰아치는 폭풍처럼,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벽이 부서지고, 바닥재가 작살나고, 사방팔방에 폭발이 솟구친다.
두 사람의 공방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하지만 일레나는 끼어들 수 있었다. 카이루스의 움직임을 미리 보면, 달라스가 뭘 하고 있을지도 예측할 수 있고.
언제, 어디로 끼어들어 한 수를 날리면 달라스가 당할지 그 맥을 짚는다.
“이… 개같은 년놈들이!”
달라스는 일레나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다시, 몸에 상처가 난다. 종이에 베인 것처럼 하찮은 상처다.
문제는, 상처를 입었다는 거다.
“안 맞는 게 특기라고 하더니. 그렇지도 않은가보네. 늙어서 그런가.”
카이루스가 비웃었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대단하지도 않은 배틀기어를 사용하는 일레나가 이 싸움에 끼어드는 데 성공하다니.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벌써 두 번째다.
그리고, 그 우연은 더 이상 우연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반복되기 시작해, 그 횟수가 벌써 10번을 넘어갔다.
‘합을 맞추는 연습이라도 한 건가?’
하지만, 그건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건 합을 맞추는 거라고 볼 수도 없었다.
어떨 때는 일레나가 먼저 움직인다.
하지만, 또 어떨 때는 카이루스가 먼저 움직인다. 하나의 정신으로 두 개의 몸을 조작하는 것처럼, 일레나와 카이루스의 움직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기적이다.
‘이건.’
일레나를 공격할 수 없다. 그러려는 순간 귀신같이 눈치챈 카이루스가 빈틈을 노리고 달려들어 공격을 쏟아낼 것이다.
그렇다고 카이루스에게만 집중할 수도 없다. 틈을 타고 스며든 일레나가 상처를 남기고 뒤로 빠져버린다.
‘어쩌면.’
달라스는 순간 자신의 삶이 여기에서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여기서?”
그 순간, 칼 끝에서 물방울 하나가 똑. 하고 떨어졌다.
일레나가 뒤로 물러났다. 떨어지는 물방울을 본 것이 아니라, 카이루스가 물러나는 것을 예측했기에.
‘피할 때는 무조건 카이루스의 뒤편으로.’
뒤이어 카이루스 또한 뒤로 빠졌다.
일레나가 예측한 타이밍에, 일레나가 예측한 곳으로. 그녀가 미리 서 있던 곳이다.
당연히, 취우검이 일레나에게 닿을 일은 없다.
“검도 약한 녀석이 자신을 쓰니 슬퍼서 우는 건가?”
다시 한번, 에스터크의 칼끝에서 물방울이 똑하고 떨어진다. 주기적으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이 꽤나 불길하다.
작은 물방울 너머로 달라스 오즐리의 모습이 비춰진다 싶더니.
“이런 씨팔.”
그 자그마한 물방울에서 달라스 오즐리가 튀어나와 카이루스를 향해 검을 내지른다. 물방울 안에서, 사람이 통째로 튀어나왔다.
달라스 오즐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검에서 흘러내린 물방울에서 자신의 형상이 튀어나오는 건가?’
애매하다. 고작 그 정도의 능력이 기사단장이 계속 사용하는 배틀기어의 전부일 리가….
그 순간, 달라스 오즐리가 손에 쥔 물병을 휙 허공에 던졌다. 흩뿌려진 무수한 물방울.
그리고 그 물방울에서 전부. 달라스 오즐리의 형상이 튀어나왔다.
“이, 개새끼가 속임수를 부리네.”
출저는 상관없이, 물이면 가능한 거다. 쉽게 가려고 섭운을 사용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카이루스는 검을 크게 휘둘렀다.
허공에 뿌려진 물방울이 터져나가자, 물방울에서 튀어나온 형상 또한 터져나간다. 물방울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면, 형상도 유지되지 못한다.
‘좋아. 일단 대처법은 알았고.’
카이루스는 등 뒤에 서 있는 일레나에게 말했다.
“계속할 수 있지?”
“문제없어. 이런 걸로 두려워하지는 않아.”
일레나는 카이루스에게 단단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물 조심해라. 피는 신경 쓸 필요 없어보이고.”
저걸 다른 액체에도 쓸 수 있었다면 일레나가 상처를 냈을 때 벌써 사용했을 거다.
물에서만 튀어나올 수 있다. 아마 형상도 비쳐야 할 테고, 물방울을 통해 자신의 형상이 맺힐 수 있도록 형태도 안정적이어야겠지.
빠르게 생각을 마친 카이루스는 칼끝으로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는 달라스와 다시금 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