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87
87화 노라 갈라테아
섭운에 대한 힌트를 얻는 데 성공했지만, 기뻐하는 것보다는 일레나의 회복이 우선이다.
일레나의 두 손은 뼈가 보일 정도로 심하게 다친 상황이다.
“난 괜찮아.”
“네 의견 물어본 적 없어.”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는 차갑게 대답하고는 타냐를 바라봤다.
환자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의사의 소견이 중요하다.
“필요한 조치를 취한 다음 2―3일 정도 안정을 취하면 후유증 없이 치료를 마칠 수 있어요.”
“그건 다행이군.”
하지만 타냐 라이샌드의 소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그건 적절한 조치를 포함해 적절한 환경이 보장되었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일이에요. 여기에서는 불가능해요.”
습하고 더러운 지하수로는 치료를 받기에 적절한 환경이 아니다. 그 정도는 의사가 아닌 카이루스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지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군.”
“네, 최소한 의사로서의 소견은 그래요.”
문제는, 의사로서의 소견에 따라서만 세상일을 처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반드시 올라가서 치료해야 하는 건가요?”
일레나의 말에 타냐가 대답했다.
“회복에 영향을 주는 정도를 넘어, 악화될 가능성도 있어서 권유하는 거예요.”
연조직염, 괴사성근막염이나 패혈증까지. 타냐 라이샌드는 다양한 가능성을 설명했다.
간단하게 말해 지금 다친 걸로 끝이 아니라 불결한 환경으로 인해 균에 노출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확실한 건 아니네요.”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지상으로 돌아갈 거다.”
“지금이 적기라는 건 너도 알잖아.”
일레나의 의견에는 카이루스도 동의한다. 아직 다른 조직들은 지하수로로 내려보낼 팀을 꾸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루카스의 아이들이 고용했던 엽사 세 명을 작살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 지하수로를 돌아다니는 조사팀은 카이루스 일행 말고는 없다.
“이렇게 좋은 상황에 뜬금없이 지상으로 올라가 하루를 낭비하자고?”
베넷 시의 범죄조직들이 정말로 그렇게 대단하다면, 하루가 지난 다음에는 다들 팀을 꾸리는 데 성공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편안하고 쾌적한 탐사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일레나는 자신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꼬이는 게 지독하게 싫었다.
“상관없어. 지상으로 올라가도 문제없다.”
“내 설명은 똥꼬로 들었어?”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가 짧게 대답했다.
“너 탁월풍을 완성했잖아.”
제풍을 완성한 건 아니지만, 일레나는 확실히 제풍의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는 데 성공했다.
“지금부터는 지하수로에 다른 팀들이 싸돌아다녀도 상관없어.”
하루 정도 지상에 올라가서 휴식을 마친 다음 일레나가 완전한 컨디션이 되는 편이 더 이득이다.
“물론, 우리가 하루 안에 폰투스를 찾아낼 수 있다면 나도 지상으로 올라갈 생각은 없어.”
카이루스가 그렇게 말하며 멜빈을 바라봤다. 멜빈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합니다. 입체미로를 통과하는 건 고사하고 찾아내지도 못할 겁니다.”
즉, 여기에서 하루 정도 더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해도 상황에 극적인 변화는 없다는 뜻이다.
“차라리 네가 확실히 회복되는 편이 좋다.”
탁월풍을 완성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이제부터는 협공이 되니.”
제풍을 능숙하게 쓰는 사람이 두 명이면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더 이상 카이루스가 일레나를 배려하기 위해 제풍을 봉인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카이루스가 사용하는 제풍도 일레나의 도움을 받아 더 강렬해질 것이다.
“지상으로 돌아가도 괜찮으니까 돌아가자고 하는 거니. 군말 없이 따라.”
카이루스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정이 났으니 빠르게 지상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여기에서 추가로 조치할 건 없는 거지?”
“네, 조치는 끝났어요. 단지 위생 염려가 있을 뿐이었죠.”
일레나의 양손은 뼈가 보일 정도로 상처가 심각했다. 하지만 타냐 라이샌드는 하루 안에 회복할 수 있다고 확언했다.
“정말 가능한 거야? 하루 안에 회복할 수 있는 상처가 아닌 것 같았는데.”
카이루스가 의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부상당한 부위가 중요한데, 손 같은 경우에는 문제없이 치료해 줄 거예요.”
타냐의 대답을 들은 일레나가 응? 하는 소리를 내고 타냐를 바라봤다.
“다른 사람이 치료하는 건가요?”
“당장 탐색을 강행한다면 제가 제대로 된 치료를 시도해야겠지만.”
기왕 지상으로 올라간다면 타냐 입장에서는 당연히 정형외과 전문의에게 일레나를 보낼 계획이다.
“난 믿을 수 있는 의사를 선호하는데.”
“그러니 더더욱 전문의를 찾아가야죠.”
이야기를 나누며 카이루스 일행은 지상으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다음 날 밤이 새벽으로 넘어가는 경계선 즈음.
베넷 시의 기차역에 기차가 도착했다.
서서히 정차하는 기차 안에서 어린 소녀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체로 내린 밀가루처럼 하얀 피부에 유리알과 같이 푸른 눈동자가 인상적인 소녀다.
나이는 많게 쳐줘도 15살을 넘지는 않아 보인다.
콧노래를 부르며 창밖을 구경하던 소녀가 옆 좌석의 중년에게 말을 걸었다.
“숀 관리자님, 관리자님! 우리 아무래도 도착한 것 같아요!”
“어, 그래. 벌써?”
모자로 얼굴을 덮고 있던 남자가 창밖을 슥 훑고는 말했다.
“정말이지 변하는 게 없는 도시군.”
밖을 살핀 이후, 숀이 내린 감상평은 간단했다.
“그래요? 저는 외출이 처음이라서.”
“그렇겠지.”
노라 갈라테아의 말에 피토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는 걸어다니는 인간흉기로서 완성된 루나시커의 요원이다.
하지만 동시에 노라 갈라테아는 싸움 이외에는 어떠한 경험도 하지 못한 소녀다.
노라 갈라테아는 이번에 동행하는 관리자로부터 상식을 주입받게 된다.
“아, 그거 들었어요? 적이 제풍을 쓴대요!”
“그래. 혹시 걱정이니?”
숀의 질문에 노라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왜요? 루나시커가 긴장해야 하는 상대는 페더윙이지 제풍을 배운 일반인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페더윙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주의는 기울이는 편이 좋을 거다.”
“인지하고 있어요.”
기차에서 내린 노라 갈라테아는 멍하니 기차역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보는 건 처음이지?”
이른 새벽이지만 기차역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숀의 질문에 노라 갈라테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엄청 바글바글해. 이 정도라면 아마… 30분은 걸릴 것 같아요.”
기차역을 돌아다니는 사람을 전부 죽이는 데 30분.
“뭐 내가 보기에도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하겠네.”
숀도 노라의 의견에 동의했다.
더 오랜 시간 사건을 해결하며 경험을 쌓아올린 요원이라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지만.
하지만 노라 갈라테아는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요원이기에 그 정도의 실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
“다른 탐사팀은 3―4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고 들었어요.”
그에 비해, 노라 갈라테아는 한 명이다. 숀이 관리자로서 따라붙긴 했지만 그는 사회생활을 알려주는 역할일 뿐이다.
싸움에서의 역할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숀은 지하수로에 같이 내려가지도 않는다.
노라 갈라테아는 혼자서 싸운다. 그래도 괜찮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주의해야 하는 사람들은 기억해뒀지?”
“글쎄요?”
노라는 능청스럽게 대답한 다음 주변 사람들을 향해 멋대로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겉모습만 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소녀가 멋대로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노라 갈라테아가 기차역에 도착하고, 해가 밝았다. 일레나는 필요한 조치를 마친 다음 병실에 누워 항생제와 재생촉진제를 섞은 수액을 맞는 중이었다.
“루나시커의 악명은 나도 들었어. 하지만 구체적으로 뭐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렇게나 명성이 높은 거야?”
일레나의 말에 옆에 앉아있던 카이루스가 대답했다.
“강하니까.”
“당연히 강하겠지.”
카이루스는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루나시커 요원들의 몸은 특별해. 전신의 관절을 아무런 제한 없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꺾을 수 있어.”
루나시커 요원들에게는 팔이 밖으로 굽는 건 일도 아니다. 손가락을 꺾어서 손톱과 손등이 서로 닿게 만들어도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그거 무섭네. 표정을 보아하니 그게 전부가 아닌 모양인데.”
일레나의 지적에 카이루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팔뚝을 가리켰다.
“사람의 근육은 수축과 이완을 하는 게 보통이지.”
“그렇지.”
“루나시커 요원들의 근육은 이완 대신…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역수축해.”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의 눈에 물음표가 떴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역수축이라니.”
“자 봐.’
카이루스는 왼팔을 구부렸다.
“이러면 우리는 이두에 힘을 주고 삼두에는 힘을 빼지.”
팔을 굽히고 싶다면 이두는 수축하고 삼두는 이완된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루나시커는 아니야. 이두가 수축하는 동시에 삼두는 역수축해.”
마찬가지로, 팔을 필 때는 삼두가 수축하는 동시에 이두가 역수축한다.
카이루스의 말을 듣고 일레나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건지 모르겠어. 근육의 효율이 높으니 확실히 힘은 쎄겠네.”
카이루스가 간단한 예를 들어주었다.
“너, 뒷걸음질로 전력질주할 수 있어?”
“….”
루나시커 요원은 앞으로 전력질주를 하는 것과, 뒷걸음질로 전력질주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전혀 없다.
“전투의 상식을 해체하는 놈들이야.”
물론, 어디까지나 카이루스도 가문의 어르신들에게 들었던 이야기일 뿐이다.
“어마어마한데,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으려나?”
“가능하지. 약 0.075%의 확률을 뚫는 데 성공하면.”
시술에 성공하지 못하면 죽거나 병신이 된다. 그것도 그냥 꿱 하고 죽는 게 아니다.
“개조한 관절과 근육이 모조리 부작용을 일으켜서.”
전신이 산 채로 썩어들어가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고통이 찾아오기 전에 죽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게 산 채로 전신이 썩어들어가는 고통이 이어지다가 마침내 몸이 고통을 극복하고 회복하기 시작하면 살아나는 거고.
몸이 버티지 못하면 죽는 거니까. 고통이 찾아오기 전에 죽여버리면 성공할 수 있었던 피험체를 결과도 보지 않고 죽여버리는 꼴이다.
“잔인하네. 그럼 이 도시에 루나시커 요원이 네 명 온다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카이루스는 일레나의 말에 몸을 살짝 떨었다.
“그렇지는 않을걸.”
네 명이나 오게 된다면 폰투스를 발견하는 일은 불가능할 거다.
물론 그래도 카이루스는 장미정원에 의해 죽게 되겠지만.
“온다고 확정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와도 한 명이 올 거다.”
“고작 한 명? 한 명으로 뭘 할 수 있다고.”
일레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설사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이라 해도 만약을 대비해서 한 명 정도는 더 파견하는 게 상식이니까.
사수와 부사수의 개념은 꼭 군이 아니라도 존재한다.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말이 기업이지 사실상 정부 조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아.”
제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해도 루나시커가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의뢰는 모두 아이란 공화국 정부가 요청한 의뢰들이다.
“…공화국에서 루나시커를 여기에 파견한 목적이 폰투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네.”
공화국의 최고 전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루나시커를 베넷 시에 보낼 수 있는 기회다. 베넷 시를 탐내고 있는 아이란 공화국이 이런 기회를 과연 놓칠까.
카이루스는 일레나의 말에 슬쩍 고개를 저었다.
“나도 예전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의 카이루스는 그런 가능성을 그닥 높게 치고 있지 않다.
‘운하운영위원회가 생각보다….’
훨씬 더 위세가 강력하다. 베넷 시 내부에서 휘두르는 권력 만큼은 아니지만, 도시 외부로 뻗어내는 힘 또한 카이루스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아이란 공화국이 다른 속셈을 품고 루나시커를 이 도시에 파견했다면 그 범죄조직들이 바로 눈치챌 정도로.
그러니까, 이번에 파견된 루나시커 요원의 목적은 폰투스 탐색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