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232
231화 뒤로는 깊은 강이…… 앞에는 여포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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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복을 빠져나온 전해군은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계성에서 포구수까지 일백여 리.
걸어가도 한나절이면 닿을 거리. 하지만 전해군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전해는 슬쩍 뒤를 돌아 쫓아오는 병사들을 흘겨보았다. 모두가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전력으로 수십 리를 달렸으니 보통 사람 같으면 때려 죽여도 못 가겠다고 드러누웠을 터였다.
그나마 공손찬군은 오합지졸을 모아놓은 군대가 아니기에 이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따라붙는 것이리라.
‘조금 숨을 돌릴 시간이 필요하다. 병력을 최대한 보전해가야 주공을 볼 낯이 있다.’
전해는 자신이나 오환돌기들은 말을 타고 달리니 형편이 낫지만 두 다리로 달려야 하는 보병들은 죽을 맛일 터였다. 이대로 진군을 계속한다면 분명 이탈자가 생기게 될 것이고 그들을 챙길 여력이 없었다.
전해는 선두에서 슬쩍 말의 걸음을 늦췄다. 그러자 오환돌기부터 그의 걸음과 보조를 맞췄고 전체적으로 진군 속도가 느려졌다.
“장군, 갈대밭입니다. 전력으로 달려 빠져나가야 합니다.”
부관은 매복을 걱정했다. 눈앞으로 갈대밭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곳은 매복을 의심하는 것이 병가의 상식이다. 게다가 밤안개가 차올라 시야가 뿌옇게 번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매복을 두 번이나 하겠느냐? 지금 여포군은 주공의 군대와 싸우느라 병력을 돌릴 여력이 없다.”
“하지만······.”
“병사들이 많이 지쳤으나 쉬어 갈 수 없으니 속도를 늦추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
전해는 좋은 말로 부관을 타일렀다. 하지만 그의 말이 무색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공격하라!”
위월이 갈대숲에서 뛰쳐나오며 소리치자 전해군을 향해 화살이 빗발쳤다. 그리고 갈대숲에서 복병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 이럴 수가! 이중 매복이라니!’
전해는 또 매복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게다가 복병의 수가 제법 많았다. 밤안개 자욱한 갈대숲 곳곳에서 횃불들이 물결을 이루며 밀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위월과 악진을 필두로 여포군 병사들이 전해군 측면을 공격해왔다. 그 지점이 하필이면 오환돌기와 보병들이 이어지는 구간. 수만에 이르는 전해군은 허리를 찔려 두 무리로 나뉘고 말았다.
“기습이다! 응전하라!”
장수들이 곳곳에서 병사들을 독려했지만 지칠대로 지친 전해군이 여포군의 기습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악진!”
악진은 위월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해야할 일을 알아챘다. 그는 큰 칼을 비껴들고 적진 안으로 뛰어들었다.
파파팟!
악진의 발이 족적을 남길 정도로 강하게 지면을 두드렸다. 그리곤 사람키를 훌쩍 뛰어올랐다. 그의 신형은 말에 앉은 전해군 하급 지휘관을 향해 대도를 앞세워 떨어졌다.
그러자 상대는 급히 검을 들어 악진의 대도를 막았다. 아니 막으려 했다. 하지만 강맹한 힘이 실린 대도에 밀려 검이 기울어졌고, 악진의 도는 그대로 상대를 베었다.
“끄아아악!”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상대는 목덜미부터 반대쪽 옆구리까지 길게 베여 피를 뿌리며 고꾸라졌다. 그러자 악진은 지체 없이 다음 목표물을 찾아 몸을 날렸다.
위월 역시 적병을 상대하기보다는 말에 타고 있는 자들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그는 단칼에 상대를 죽이는 것보다는 큰 부상을 입혀 비명을 지르게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검도 아니건만 위월은 장수 하나의 어깻죽지에 대도를 박아넣고 비틀어 요란한 비명소리를 감상했다.
“비명을 질러라! 더 크게!”
위월은 피에 미친 살인귀가 아니다. 하지만 이 같은 행동을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명령을 내리고 지휘를 해야할 자들을 오히려 비명을 지르게 함으로써 적병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함이었다.
병사들을 지휘해 반전을 꾀하려던 전해군 보병 지휘관들은 위월과 악진에 의해 하나 둘씩 목숨을 잃었다.
위월과 악진이 전해군 보병대를 공략하고 있다면 오환돌기 쪽은 조운이 맡았다. 그는 검창의 밑둥을 지면에 깊숙이 박아 넣고선 속발관에 꽂은 꿩깃을 만지작거리며 거만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조운 자룡이 있는 한 살아서 이곳을 지나지 못하리라!”
조운의 등장에 전해는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소리쳤다.
“무명잡졸이니 신경쓸 거 없다! 돌파하라!”
전해는 시야도 확보되지 않는 이런 곳에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판단했다. 키 높은 갈대밭, 짙은 밤안개. 여러모로 아군이 불리하다는 생각에 이곳을 벗어나 전열을 정비하려했던 것이다.
오환돌기 몇 기가 조운에게로 달려들자 조운 역시 인상을 찌푸렸다.
“뭐라? 이 조 자룡을 무명잡졸이라 하다니!”
조운은 발끈하며 창을 뽑아들고서 오환돌기와 격돌했다. 오환돌기가 조운을 스쳐지나가자마자 썩은 짚단처럼 쓰러졌다.
전해는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볼 수조차 없었다. 그저 조운의 창날이 피로 물들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의 창에 오환돌기들이 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조운은 잔뜩 거만한 표정으로 턱을 지켜들고는 전해에게 손을 까딱여 도발했다. 이에 전해는 조운과 일전을 겨루려 했으나 조운의 뒤로 밀려드는 수많은 횃불의 행렬을 보고는 생각을 접어야했다.
“나를 따르라!”
전해는 조운과 겨루는 것을 포기하고 우회하기로 마음먹었다. 도망치는 입장에서 적병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전해의 기병들이 방향을 바꿔 줄행랑을 놓기 시작했지만 조운은 이들을 쫓지 않았다. 어차피 매복하고 있었기에 말도 없었고, 그가 맡은 이곳의 임무도 여기까지이기 때문이었다.
‘멍청한 놈들! 차라리 내가 더 나을 텐데······.’
* * *
전해군 기병들만이 먼저 전장을 이탈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여포와 노식이었다.
“어쩔 셈인가?”
노식은 안타까운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표정으로 여포에게 물었다. 그러자 여포는 팔짱을 끼고서 전장을 주시할 뿐 답을 내주지 않았다.
“자네, 내 말을 듣고 있는가?”
“듣고 있습니다.”
“어찌할지 묻지 않았는가.”
“장군께서 원하는 답을 드릴 수 없어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음······!”
여포의 말에 노식은 침음성을 터뜨렸다. 이곳의 여포군 병력은 전해군 보병에 비해 삼분지 일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전황을 보건데 전해군은 대패를 면치 못할 듯했다.
백전연마의 명장 노식의 눈은 이를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전해군 보병들은 몰살을 면치 못할 터. 속이 탔다.
“이보게, 여 장군. 저들을 살려주시게.”
“이미 장군께선 저들에게 한 번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거절한 건 저들이 아닙니까? 미련을 버리십시오. 안 될 놈들은 뭘 해도 안됩니다.”
여포는 저들이 구제불능이라 여겼다. 하지만 노식의 생각은 달랐다.
“그저 군령에 따를 뿐 저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공손찬을 주인으로 택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요.”
여포의 말에 노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주에서 태어난 이상 선택권은 없었을 걸세. 유 종정을 보게.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것만으로 십만의 군세를 모았네. 예전에도 그리했다면 유주의 패권을 두고 공손찬과 겨룰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는 군권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유주의 젊은이들은 공손찬을 섬길 수밖에 없었을 테지.”
여포가 말을 아끼자 노식은 그와 시선을 마주하며 정곡을 찔러들어왔다.
“자네가 유주에서 태어났다면 정 자사가 아닌 공손찬을 섬겼을 지도 모르지. 내 말이 틀렸는가?”
노식의 말을 듣고 보니 하나 틀린 말이 없었다. 하지만 여포는 총사 전해도 줄행랑을 놓아버린 지금에 와서 누가 혼란에 빠져버린 병사들을 항복시킬 수 있을까 싶어 노식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노식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구차함을 무릅쓰고 여포에게 재차 청했다.
“그러지 말고 다시 생각해보게. 이, 노식. 여태껏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를 해본 적이 없었네. 그런 내가 자네에게 이렇게 간청하네.”
삼대 신장이라 불리며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명장 노식이 여포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여포는 노식의 청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이 여포의 심중을 헤집었다.
“여 장군, 내게 한 번만······ 제발 단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게. 저대로 유주의 자제들을 장사지낼 수는 없네.”
노식의 말을 듣자마자 여포는 전율을 느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단 한 번의 기회······. 하늘은 내게 잘못된 옛일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셨지. 어쩌면 노식 장군이 간절히 바라던 그 기회가 이것인지도 모른다. 하늘을 대신해 이, 여포가······ 노 장군께 기회를 드리고 싶구나.’
백문루 아래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여포. 하늘이 그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기회를 주었듯 그는 노식에게 기회를 주려 했다.
죽음의 순간에서 시간을 거슬러 돌려보내는 일과 같은 기적을 행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군대를 조금 물리고 노식에게 투항을 권할 기회를 주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좋습니다. 군대를 조금 물리겠습니다. 대신 장군께서 위험에 처하시면 소장은 지체 없이 총 공세를 펼쳐 저들을 단 한 명도 살려두지 않을 겁니다.”
“결단코! 그럴 일은 없을 걸세. 날 믿게.”
“어찌 그리 자신하십니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리 쉽게 움직여지는 게 아니잖습니까?”
여포는 끝까지 노식이 성공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식에게는 꺾이지 않을 신념이 있었다.
“진심은······ 분명 통할 걸세.”
노식은 그리 말하고서 여포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보였다. 노식이 전장으로 걸어 나가자 여포가 소리쳤다.
“나, 여포가 말한다! 내 휘하는 모두 싸움을 멈추고 열 보 물러서라!”
여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거짓말처럼 싸움이 그쳤다. 여포군 장졸들은 적병을 향해 창칼을 겨누면서도 천천히 물러섰다.
전해군 병사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여포군을 경계했다.
싸움이 멈추고 전해군 병사들은 하나둘씩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찾았다. 짙은 안개 속에 가득한 횃불들. 그리고 좁은 시야에 가득한 여포군 병사들의 모습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자신들은 포위되어 있었던 것이다. 실상은 자신들에 비해 그 수가 몇 배 적었으나 이를 알 리 없는 그들은 전의를 잃었다. 더욱이 지휘관들 다수가 전사했고, 총사인 전해와 기병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의 사기가 바닥을 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노식이 횃불 하나를 들고 홀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하지만 밤중에 횃불의 불빛에 기대 그의 얼굴을 알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
“나, 노식이다. 유주의 자제들이여,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하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노식의 얼굴을 아는 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그 목소리를 알아듣는 자는 제법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사흘 전 노식이 홀로 계성 앞에 섰을 때 성벽 위를 지키던 병사들 모두가 그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계성에 다녀간 후로 병사들 사이에 이런 저런 말들이 많았다. 유주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노식을 직접 보거나 그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 감격에 찬 자들도 있었고, 그게 왜 계성에 왔는지를 두고도 이러쿵저러쿵 소문들이 꼬리를 물었었다.
이렇듯 노식은 관심의 중심에 있었지만 항복을 권하는 말을 한 후부터 전해군 병사들이 그를 보는 눈빛이 차가웠다.
“유주의 사내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소.”
“활로가 없다면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용맹하게 싸우다 죽을 뿐.”
“항복이라니!”
천수산성이나 창평 양마장을 지키던 병사들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당연했다. 이들이야말로 공손찬의 정예병들. 비록 지금은 여포군의 책략에 당해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으나 백전무패의 용사들이었다.
퇴각은 있을 수 있어도 항복은 결코 그들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을 터였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한데 어찌 아까운 목숨을 함부로 버리려 하는가? 그대들의 목숨은 그리 하찮은 것인가?”
“유주 사내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을 것이오!”
병사들 사이에서 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노식은 입술을 깨물었다.
“명예······. 좋지. 하지만 목숨보다 중한 것은 없다! 공손찬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정녕 명예로운 일인가? 투항하라! 오늘 살아남아야 내일이 있다. 너희들이 투항한다면 이, 노식! 목숨을 걸고서 너희를 지킬 것이다.”
노식의 목소리에 담긴 진심이 그들의 마음을 조금씩 열리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서로의 눈치만 볼 뿐 행동을 취하는 자들이 없었다.
그들의 반응을 느꼈기 때문인지 노식은 쐐기를 박기 위해 스스로 무릎을 굽혔다.
털썩!
노식이 무릎을 꿇자 그들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주의 아들들이여, 부디 내일을 생각하라.”
노식이 무릎까지 꿇었는데도 여전히 투항자는 나오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여포는 방천화극의 창대를 움켜쥐었다.
“적토야, 아무래도 저들을 살려두기는 힘들 것 같구나.”
여포는 한 손으로 적토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지금 나가 싸우면 정말 싸울 맛이 나지 않을 게 뻔했다. 이미 전의를 잃은 자들. 그럼에도 투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자들.
여포가 적토를 몰고 나서며 혀를 찼다.
“쯧쯧쯧! 노식 장군께서 네놈들의 목숨을 살리려 체면을 버리고 간청하셨거늘······. 눈이 있어도 옳은 것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옳은 소리를 듣지 못하니 눈이 있어 무얼 할 거며, 귀가 있어 무엇 할 것인가!”
여포가 등장하자 여포군 장졸들은 다시금 전의를 불태웠다. 이제 그의 말 한 마디면 공격이 시작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