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825
825화 천망회회(天網恢恢) 소이불실(疎而不失) (2) >
장락궁.
여포와 헤어진 곽가는 장락궁의 높은 담벼락 위로 뛰어올랐다.
용맹으로 따지자면 여포군에서 곽가가 무슨 무게가 있으랴. 하나 그가 직접 나선 것은 무력으로 장락궁을 열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마침 장락궁을 나서겠다 실랑이를 벌이던 하 태후와 궁의 위사들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곽가가 하 태후와 면식은 없었다. 그래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장락궁에서 그런 의복을 입을 수 있는 여인이 또 뉘 있으랴.
“누구냐!”
장락궁의 시위 하나가 소리쳤다. 그러자 곽가는 손바닥을 펴보였다.
“진정하시오. 나는 적이 아니오.”
“어찌 함부로 궁의 담을 넘는단 말이냐?”
“아직 넘지 않았소.”
“말장난은 그만두는 게 좋을 텐데?”
시위들 중 수노를 든 자들이 앞으로 나와 곽가에게 겨누었다.
“태후 마마! 소신은 여포 장군의 휘하에 있는 곽가 봉효라고 합니다.”
곽가는 담장 위에서 태후를 향해 읍했다. 그러자 태후는 곽가에게 희망을 걸었다.
“세상 천지에 어떤 신하가 태후보다 높은 곳에서 읍을 한단 말인가! 어서 내려와 다시 읍하라!”
태후가 손짓하자 곽가는 홀로 담장 안으로 뛰어 내렸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여포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곽가의 신변에 화가 닥치거나 그가 신호를 보낸다면 장락궁이건 어디건 문을 박살내고 들이칠 터였다.
“소신, 곽가 봉효가 태후 마마를 뵙습니다.”
곽가가 다시 하 태후에게 예를 갖추었다. 그러자 하 태후가 물었다.
“대체 이 소란은 무엇이냐? 아는 대로 고하라.”
“예, 태후 마마. 신은 여포 장군을 따르는 자이온데 지금 동 상국 휘하의 배신자들이 명문회와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뭐라? 명문회가? 그 늙은이들이 기어이 일을 치르는 구나! 그래, 성상께선 무사하시고?”
곽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알지 못합니다.”
“동 상국은……? 상국은 지금 무얼 하고 있단 말이냐?”
“상국의 행방도 알 수 없으나 지금 여 장군의 군세와 동 상국의 군세가 힘을 합하여 역도들을 몰아내고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상국의 휘하에 배신자가 있다면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알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니냐?”
곽가는 고개를 조아렸다.
“여포 장군의 군세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금 여 장군이 천자를 구하기 위해 보화전으로 갔습니다.”
“성상께서 보화전에 있단 말이더냐?”
“장담은 못합니다. 다만 여 장군이 짐작하는 바가 있어 흉수에 의해 보화전에 붙잡혀 계실 거라 짐작할 따름입니다.”
이에 하 태후가 시위들에게 명했다.
“보화전으로 간다! 어서 문을 열거라!”
* * *
시위들은 하 태후의 명에 따르지 않았다. 시위 중 하나가 나서서 곽가를 흘겼다.
“태후 마마, 낯선 자의 말만 믿고 장락궁을 벗어나심은 옳지 않은 줄로 압니다.”
“너희는 저자의 말이 거짓이라 여긴단 말이냐?”
“예, 마마. 이는 필시 태후 마마와 저희들을 장락궁 밖으로 꾀어내려는 수작입니다.”
그러자 이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곽가가 대소를 터뜨렸다.
“아하하하! 가소롭다. 지금 장락궁 궁문 밖에는 이미 여 장군의 수천 정병이 날 기다리고 있느니라. 힘으로 어찌해보고자 했다면 손바닥을 뒤집는 것 만큼 쉬운 일이거늘 왜 수작을 부린단 말이냐?”
“뭐라? 네놈 눈에는 우리 위사들이 그리 하찮게 보였단 말이냐? 내 오늘 서량 용사의 검이 얼마나 매서운지 똑똑히 보여주겠다!”
시위 하나가 참을성 없이 곽가에게 검초를 뿌렸다. 그러나 상대는 곽가. 여포군에서 그의 용맹은 별 볼 일 없는 것이나 궁의 위사 하나 정도는 우습다.
곽가는 검을 뽑지 않고 검집 채로 휘둘러 위사의 검초를 흘려버렸다. 그리고 검집의 끄트머리로 위사의 명치를 깊숙이 눌러주었다.
“쿠헉!”
위사는 주저앉아 자기 뱃속에 뭐가 들었는지 굳이 꺼내 확인하느라 바빴다.
곽가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른 위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네놈들의 주인에게 화가 닥쳤는데 어찌 수하된 자로 자신의 몸만 보전하려 몸을 사리는가? 그러고도 너희가 서량의 용사를 자처할 수 있더란 말이냐?”
그는 아직도 뽑지 않은 검으로 그들을 겨누며 말을 이었다.
“적은 보화전에 있다! 가자!”
이윽고 장락궁의 궁문이 열리고 곽가는 태후와 함께 보화전으로 향했다.
모란전에 왕쌍이 갔듯 장락궁으로도 조조의 수하들이 들이닥쳤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고순의 일권에 묵사발이 나버린 상조가 이곳에 올 일은 없을 터였다.
* * *
여포가 들어간 후 줄곧 닫혀 있던 보화전의 문이 열렸다. 곽가와 하 태후가 들어선 것이다.
‘저자가 바로 여포?’
하 태후가 보화전 안에서 처음 본 것은 여포의 뒷모습이다. 거구의…… 그것도 근육으로 똘똘 뭉친 젊은 사내의 넓은 등.
여포는 갑주도 전포도 제대로 걸치고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복도를 돌파하고, 하후 형제와 조인을 상대로 싸웠던 만큼 갑주도 절반쯤 떨어져 나갔다. 전포도 풀어 던진 지 오래다.
다만 여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속발관에 꽂힌 두 가닥 긴 꿩 깃만은 거짓말처럼 멀쩡했다.
넝마처럼 되어버린 갑주 사이사이로 도드라져 보이는 근육. 피와 땀으로 얼룩진 사내의 향취가 그녀의 눈과 코를 사로잡았다.
육욕? 그런 것과는 다른 감정이다.
하 태후는 낯설음과 익숙함이 교차되는 모순된 감정에 몸서리쳤다.
그녀 앞에서 속살을 보일 수 있었던 사내는 선천자 영제뿐이었다. 환관은 사내도 계집도 아닌 자들이니 제외. 낯설 것이다.
하나 이와 상반되는 익숙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오라버니가 먼저 간 후로 홀로 남겨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지. 그것은 내게 힘이 없기 때문이야. 동 상국은 노쇠했고, 휘하를 단속하지 못했으니 희망도 없다. 하나 여포라면…….’
하 태후에게는 힘이 없었다. 저고와 고석병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나 하 태후가 그녀들처럼 용맹을 지니게 될 리는 만무했다.
그렇다고 뜻대로 움직일 군세를 거느린 것도 아니다.
하진이 살아있을 때와는 달리 홀로 남겨진 그녀에게는 보호자가 필요했다. 강력한 군세를 지닌 여포와 같은 영웅호걸이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감상은 이제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한 걸음씩 걸음을 옮겨 나아갈수록 여포의 등에 가려졌던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태후 마마십니다.”
곽가가 언질을 해주자 여포는 가벼운 목례로 예를 대신했다.
“여포 봉선이 태후 마마를 뵙습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예를 갖추지 못함을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하 태후는 여포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성상!”
하 태후는 아들의 목에 칼이 겨누어진 것을 보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그 모습조차 조조에게는 여흥에 불과했다.
“관객이 늘었구먼. 태후?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 송구하게 되었소이다.”
하 태후는 조조의 시선이 자신의 몸뚱아리를 유린하는 것처럼 더럽게 여겨졌다.
“네놈은 누구냐? 누구길래 감히 용체에 칼을 들이댄단 말이냐?”
“태후, 섭섭하외다. 어찌 이, 조 맹덕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이오? 우리가 그런 사이가 아니잖소?”
“무엄하다! 그 더러운 입을 그만 놀리지 못할까? 본 태후가 너 같은 난신적자와 무슨 사이란 말이냐?”
“입을 놀리지 말라 해놓고 또 무슨 사인지 물어보는 건 또 무슨 경우란 말이오?”
조조는 하 태후를 놀리는데 재미가 들린 듯 했다. 하기야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해도 천자와 진류왕이 그의 수중에 있었다. 그러면 여포도, 하 태후도 그에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 여겼다.
“이이……!”
하 태후는 노기를 누르며 온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다. 자신의 아들이 조조에게 인질로 잡혀 있으니 말이다.
“조조!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이냐?”
* * *
하 태후는 조조와 교섭을 시도했다. 조조 역시 이를 단번에 알아채고는 히죽거렸다.
“흐흐흐! 왜? 천자를 살려주면 뭐라도 해줄 거요?”
“원하는 게 무엇이냐? 성상을 해치지 않는다면 내 무엇이든 해줄 것이다.”
“보화전에서 태후와 운우지락을 나누고 싶은데 들어주겠소? 질펀하게 놀아봅시다. 역대 천자들이 다 지켜볼 것이니 화끈하지 않겠소?”
“이…… 이런 미친……!”
“아하하하! 들어줄 것도 아니면서 왜 물어봤소?”
하 태후는 조조의 이 웃음소리를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자는 내 아들을…….’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오자 하 태후는 몸서리를 쳤다. 하나 이대로 아들이 죽는 모습을 두고 볼 어미는 없을 터.
“성상을 무사히 돌려준다면 본 태후는 역대 천자의 신위 앞에 맹세한다. 네놈을 살려서 보내줄 것이다.”
하 태후가 약조를 했으나 조조는 약속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남이 한 것이든 자신이 한 것이든 말이다.
“부탁이라는 건 말이오. 좀 더 애절하게 해야 들어줄 마음이 생기지 않겠소?”
“더 무얼 하란 말이냐?”
“눈물을 쏟으며 절규를 하란 말이오. 안 그러면 태후의 아들이 죽소.”
아들을 살리는 일인데 그까짓 곡소리를 못 내랴. 그러나 하 태후의 눈물도, 절규도 조조의 악행을 막을 수는 없다.
“그거 밖에 안 되오? 재미가 없구나. 선생, 어찌하면 좋겠소?”
조조가 턱짓을 하며 묻자 희지재도 반쯤 미쳐버린 듯 조조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어미가 보는 앞에서 아들이 죽는 것도 좋은 그림이 될 듯합니다.”
“오호라! 그게 좋겠구려.”
곽가는 조조와 희지재의 놀음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속내는 타들어가고 있었다.
‘어찌 저리 뜸을 들인단 말이냐? 어서 하나라도 없애라.’
곽가는 자신이 조조를 응원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기야 조조가 악행을 거듭해온 악인이기는 했으되 따지고 보면 곽가에게는 은인이나 마찬가지다.
조조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곽가는 지금 여포의 편이 아니라 조조의 편에서 천인공노할 짓을 행하고 있을 터였다.
조조가 순채를 노린 덕분에 연인을 다시 만나 이루지 못할 사랑을 이루었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조조는 여포에게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 할 터. 물론 이곳에서 그의 손으로 천자와 태제를 없애줘야겠지만…….
* * *
여포는 엉성한 연기로 조조의 불장난에 장단을 맞춰주려 나섰다.
“이놈, 조 아만아! 네놈이 천자를 해한다면 살아서는 보화전을 나설 수 없다.”
“살아 나갈 마음이 없다. 이, 조조 맹덕의 이름이 한조를 끝장낸 자로 태사록에 남을 텐데 무엇이 아쉽겠느냐?”
“안 된다!”
여포의 성의 없는 연기에도 조조는 속아 넘어갔다. 그는 천천히 천자의 목을 베어나갔다.
“흐으으으~!”
천자의 입에서 헛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오며 목에서 피를 철철 쏟아냈다.
그 순간 하 태후의 시간이 멈추었다. 아마도 하늘이 노랗다는 표현은 지금 그녀의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그녀가 비명을 질러댔다. 하나 그런다고 죽을 사람이 안 죽는 것은 아니다.
천자의 용포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자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연이어 그의 고개가 축 늘어졌다.
천자의 최후 치고는 너무도 허망한 것. 동탁에 의해 옹립되었으나 하 태후의 수렴청정으로 인해 제 손으로는 한 순간도 천하를 경략해보지 못했다.
머리가 굵어진 후에는 사자묘에 의해 농락당했고, 오석산의 노예가 되어 이지를 상실한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하나 여포는 그에게 동정심을 품지 않았다. 오석산 때문이건 뭐건 간에 그는 노식에게 절망을 주었던 자다. 오히려 잘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포는 속내를 드러낼 수 없었다. 곁에는 하 태후가 있으니까. 여포의 사정을 알기에 곽가가 소리쳤다.
“이놈! 감히 천자를 시해하다니! 네놈이 그러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내 말하지 않았더냐? 살아 돌아갈 마음이 없다고. 너희들이 역사의 증인이다. 이, 조조 맹덕이 천자를 시해했노라!”
대소를 터뜨리는 조조를 보며 여포는 때가 되었다고 여겼다. 복수의 때가…….
그러나 곽가에게는 아직 일렀다. 천자가 죽었다고 해도 여전히 진류왕 협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조조가 진류왕마저 죽일 때까지 여 장군께서 출수하지 않으셔야 할 텐데…… 이 일을 어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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