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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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문빙은 백수관을 계속해서 압박하고 서쪽의 제방은 유엽과 춘군이 맡아서 뚝딱뚝딱 짓고 있었다. 이미 서쪽의 강변은 아군에 의해 장악되었으니 적들은 따로 병력을 보내 파괴할 수도 없었다. 하루하루 구축돼가는 제방은 놈들에게 하루하루 커가는 공포이리라. 제방은 강의 이편에서 저편을 가로막고, 강고하게 몸집을 불렸다. 이것은 실제의 효용에 앞서 저들을 압박하는 유용한 패로 작용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상존이 지레 겁을 먹고 사자를 보내 순순히 백수관을 넘길 것을 기대했지만, 바람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적의 방비는 여전히 필사적이었고, 문빙의 얼굴에 잡힌 주름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혹여 제방이 무너지는 것을 우려하여 중군은 뒤로 물려 산기슭에 진영을 구축하고, 문빙의 선봉으로만 관문을 두드렸다. 급하게 갈 까닭이 없었다. 차근차근히……
파서, 탕거.
탕거의 병력은 잔뜩 고무되었다. 촉왕의 깃발이 높은 곳에서 나부꼈다. 법정은 만면에 미소를 띠면서 수급이 담긴 상자를 닫았다. 상자에는 채모의 수급이 담겨있었다. 우는 듯한, 혹은 분노한 듯한 표정으로 채모는 죽어 대가리만 남아 상자에 담겼다. 몸뚱이는 들판에 버려져 들짐승의 불규칙한 치열로 장사지내졌다.
“제갈찬도 이와 같이 되리라! 촉을 넘보는 자는 모두 이와 같이 되리라!”
법정은 팔을 번쩍 들어 선언했고, 병사들은 승전의 뭉클한 기쁨을 만끽하며 법정을 따라 팔을 들었다.
선봉을 자임하여 탕거로 향한 채모는 성문의 앞에서 당당하게 입성을 요구했다. 탕거는 약속한 대로 성문을 열어 채모를 맞이했다. 약속은 거기까지였다. 성벽의 동서남북에 올라 시위를 팽팽히 당기고 있던 탕거의 병력들은, 채모의 선봉이 남김없이 입성하자 당긴 시위를 놓았다. 하늘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었던 화살은 그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그들을 일망타진했다. 채모는 팔만 허우적거리다가 수십 대의 화살을 품고 절명했다. 무력하게 열렸던 탕거의 성문은 다시 강경하게 닫혔다.
채모의 선봉 일만이 그대로 죽었다. 죽어가면서, 투항을 부르짖는 절규에도 법정은 자비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다 죽였다. 남김없이. 투항병을 받아들여 약간의 전력을 보강하는 길 대신, 물 샐 틈 없는 방비를 법정은 택했다. 채모의 선봉을 받아들이고, 이어 손관의 본대까지 끌어들여 한 번에 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부담이 지나치게 컸다. 기습을 가하면 삼만의 병력은 공황에 빠질 터이나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역공을 취한다면 법정의 적은 병력으로 제어하지 못할 것이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은 삼척동자도 아는 금기이지만, 머리가 적당히 굵은 어른은 대탐대실(大貪大失)의 패착 또한 염두에 둬야만 했다. 법정은 채모의 선봉을 취하고 손관의 본대에 대해서는 굳건한 방비를 선택했다. 채모의 수급을 탕거의 성루에 내걸고 법정은 손관의 나머지 이만 병력을 기다렸다.
“중부교위께 보고! 탕거에 입성한 채모 장군의 병력이 전몰하였습니다!”
“뭐?”
손관은 멍한 표정으로 보고를 들었다.
“탕거의 투항은 거짓이었습니다!”
손관은 이명을 느끼며 이마를 짚었다. 그는 우선 진군을 멈췄다.
“경계를 철저히 하라! 이런 산지에서 적습이 가해지면 끝장이다. 이곳에 진지를 구축한다!”
그다지 기민하지 않은 손관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탕거까지 대담하게 진격할 수 있었던 것은 탕거도독 양홍의 내응이 담보되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것이 모두 이지러진 마당에, 또한 일만의 선봉이 그대로 전몰해버린 이 마당에서는 과감한 진격은 과감한 자살이었다. 탕거까지 향하는 길은 좁고 험하다. 만일 적이 눈을 속여 별동으로 뒤를 후리면 나머지 이만 병력도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손관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뿜었다.
“찬, 어떻게 해야 옳을까.”
들리지 않는 응답에 손관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픽 웃었다.
“네가 모르겠으면 백각이나 네 잘난 사촌한테 물어봐. 나는 정말 모르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그는 자신만 쳐다보는 좌우의 부장들과, 그 부장들만 쳐다보는 이만 명의 눈빛을 느꼈다. 그는 억지로 스스로에게 기합을 불어넣고 힘을 주어 명령했다.
“전군! 이곳에서 숙영한다! 쓸데없는 혼란은 용납하지 않겠다! 불민한 시도를 하는 자는 즉시 처단하겠다!”
그렇게 말해놓고 쓸데없는 혼란에 휩싸인 자신의 정신을 단속했다. 잘 생각해보자, 잘 생각해보자. 여기까지 날 끌고 와준 친구를 위해서, 궤계에 속아 억울하게 죽은 일만 개의 목숨을 위해서 잘 생각해봐야해.
부성으로 가서 사령부를 꾸렸던 황권은 급거 성도로 돌아왔다. 함께 부성으로 갔던 법정은 탕거의 내통이 의심된다며 부성에 닿자마자 탕거로 갔다. 그의 말인즉슨 장송이 괴월과 통하고 탕거도독 양홍을 끌어들였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제갈찬이 한중에서 별동을 꾸려 탕거를 경유, 성도로 곧장 찔러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황권은 그 말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아무렴 그래도 그렇지 장송이 통째로 나라를 들어 적에게 바치는 행동을 하겠는가? 아무리 그래도, 그래도.
“안북대장군께서는 그래도 믿음이 있으시니 좋군요. 전군의 총사(摠師)로서 믿음은 유익한 미덕입니다.”
법정은 탕거로 떠나기 전에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저는요, 한낱 모사꾼인 저는, 믿음이 없습니다. 모사꾼에게 믿음은 해독입니다. 저는 불신을 미덕으로 삼겠습니다.”
“장송 등 토족의 도움이 없이는 제갈찬에 맞설 수 없소이다. 괜한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나는 우려할 수밖에 없소.”
“불신만으로 일을 벌인다면 그것은 얼치기입니다. 저는 불신을 통해 진실을 봤습니다. 장송을 불신하여 괴월을 경비 삼엄한 옥에 가두지 않고 사찰에 유수했습니다. 그리하여 장송과 괴월이 만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내통이라는 진실을 확인했습니다. 제가 불신으로 얻은 진실로써 안북대장군을 돕겠습니다.”
법정은 그렇게 탕거로 가서 양홍의 내통을 색출해냈고, 우둔하게도 양홍이 소각하지 않은 양홍과 장송 사이의 서한을 찾아냈다. 서한의 내용은 정황을 모른다면 불분명하게 읽히지만, 정황을 안다면 분명하게 읽혔다. 그것은 증좌로서 양홍의 목과 함께 부성으로 전달되었고, 황권은 그것을 접수하여 즉각 성도로 떠난 것이었다.
“장송과 양홍은 정녕 사람인가!”
유장은 불처럼 날뛰며 나라를 팔아넘기려는 대역죄인을 추포하라 명령을 내렸다. 촉왕의 명령을 받잡은 병사들이 장송의 저택을 들이쳤다. 병사들이 들이닥친 장송의 저택은 텅 비어있었다. 다만 물정 모르는 장송의 처자식이 서로를 껴안고 떨고 있었고, 다만 내당에 한 구의 시체가 목을 맨 채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시체의 밑에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분뇨가 쏟아져있었다. 탁자에는 짧은 글이 쓰인 종이가 놓여 있었다.
아우의 죄가 부끄러워 형이 살지 못한다. 지아비의 죄를 그 처가 알지 못하니 죽이지 말지며, 아비의 죄를 그 자식이 알지 못하니 또한 죽이지 말지어다.
병사들은 장송의 형인 장숙(張宿)의 시신을 수습했다. 장숙은 아무 소용없는 시호를 받고 화장되었다. 촉왕부에는 저족과의 서쪽 국경에서의 보고가 당도했다. 별가 장송이 시종으로 보이는 사내 하나를 거느리고 저족의 땅으로 달아났습니다. 그 사내는 괴월임이 분명하다고, 어리석은 유장도 능히 짐작해냈다.
“어째서 법정은 이것을 알고도 미리 고변하지 않았단 말이냐! 사사로운 친분으로 역적을 살려준 것이냐!”
황권이 이에 대답했다.
“효직(법정의 字)은 구태여 그들을 죽일 까닭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장송과 괴월이 저족의 땅을 살아서 통과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거니와 용케 한중까지 돌아간다 해도, 제갈찬에게 결코 이익이 되지 않으니까요. 책임을 물어 형주의 명망가인 괴월을 죽이면 형주의 민심이 다소 흔들릴 수 있습니다. 만일 죽이지 않는다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실패에 진영 내부가 동요할 것입니다.”
유장은 황권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만일 전하의 손으로 장송을 처단하면 토족들은 혹 전하께서 역적의 죄를 뒤집어씌워 장송을 제거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어찌 감히!”
황권은 냉소했다.
“그런 족속들이니까요. 그러나 놈이 스스로 도망갔다면, 토족들은 의심을 품을 여지가 없습니다. 도리어 장송이 정녕 역적이라며 그를 욕하겠지요.”
“장송이 제갈찬에게 우리의 사정을 낱낱이 가르쳐줄 수도 있는 노릇.”
“그것은 이미 글을 써서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편제를 여러 번 바꾸어 장송의 정보는 헛것이 되어버렸으니.”
“으음……”
더 분풀이를 할 구실이 없어진 유장은 씩씩거리며 분을 삭였다. 그는 장숙의 유언을 무시하고, 순한 눈을 가진 장송의 처와 제 백부가 죽으면서 쏟아낸 분뇨의 고약함을 보고 까르르 웃던 장송의 핏덩이 자제들을 모두 처단했다.
장안의 전황은 지지부진 그 자체였다. 양측은 창칼을 맞대는 시간보다 서로 눈만 부라리는 시간이 점차로 더 길어져갔다. 천병의 수장인 관녕은 무작정 공성하자니 피해가 심하고 아무런 소득 없이 전장에서 물러나자니 막대한 전비가 아까워, 출진하지 않은 채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원소의 상황도 그다지 녹록하지는 않았는데, 장안의 장합은 량왕 마등에 이어 천병을 상대하느라 이골이 날 대로 난 상황이었다. 그 많던 병량도 이제는 셈을 해야 할 만큼 넉넉지 않게 되었다. 홍농에 주둔한 종요 역시 병량의 부족으로 골머리를 썩였다. 본디 은왕 원소의 본거인 병주는 산지가 많아 소출이 신통치 않았다. 아직 가을걷이까지 시일이 꽤 남은 상황에서 대병이 먹을 양곡을 대자니 이제 슬슬 하내에서도 밥을 아껴 먹어라 핀잔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계속 버티면 종요가 먼저 홍농을 박차고 우리를 칠 것이다. 진을 무너뜨리지 않고 유지하면서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이 관건이 될 터.”
관녕은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건드리며 연거푸 휘하 제장에게 침착, 침착을 강조했다.
그 즈음 원병을 청하기 위해 한중으로 향했던 마량은 합비공이 이미 남정을 떠났다는 전언에 머리를 벅벅 긁으며 백수관까지 꽁무니를 쫓아왔다.
“원병을 보내라고 하셨소?”
나는 그 말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얼마나 반갑지 않느냐면, 그 유명한 백미의 고사, 그 장본인이 내가 친히 접견했다는 기쁨마저도 느끼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저 당당한 흰 눈썹이 내 앞에서 걸병(乞兵)을 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꼴이라니. 장안의 사정이 어지간히도 퍽퍽한 모양이다.
“천병의 단독으로는 장안을 점령하기 쉽지 않습니다. 합비공께서 일만 가량의 원병을 보내주신다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일만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러나 우리도 현재 백수관에서 고전하는 터라 장안을 배려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소만……”
내가 퍽 난처한 표정을 짓자 량이가 나서서 중재해주었다.
“우선 병력 오천을 편장군 진익에게 맡겨 장안으로 보내고, 백수를 넘어 가맹관까지 손에 들어온다면 파촉 정벌의 절반은 완수가 된 것이니 그 이후에 추가적으로 파병을 하시지요.”
만만한게 척기, 진익이다. 내가 마량을 건너다보며 눈짓으로 의중을 물으니 마량은 허리를 접으며 감사를 표했다.
“우선 그렇게 해주신다면 천자께서도 참으로 흡족해하실 것입니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등 뒤에 오천의 병력을 거느리고 가는 것이 훨씬 낫다. 그 만하면 체면치레는 한 셈이다.
“알겠소. 편장군 진익 공은 오천 병마를 꾸려 장안으로 향하도록 하시오. 장안의 전황이 급박한 것 같으니 대사마 관 공의 말씀을 받들어 반드시 장안에 황상의 깃발을 꽂도록 하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나는 다시 마량을 바라봤다.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연회를 베풀고 싶으나 그대의 임무가 급하니 묵은 회포는 훗날 풀도록 해야겠소. 서둘러 돌아가도록 하시오.”
“감사합니다, 합하!”
마량이 오자마자 돌아가고, 뒤이어 제방 공사의 감독을 맡았던 청금교위 유엽이 안으로 들었다.
“합비공, 사흘 정도 있으면 제방이 완성될 것입니다. 사흘 후에 방류하시면 반드시 백수관이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둑을 터트리면 백수의 어디까지 잠기겠습니까?”
유엽은 무릎의 바로 아래를 손날로 짚었다.
“이 정도까지는 미칩니다. 양곡이 썩고 놈들의 정신을 팔리게 만들 정도는 되지요.”
나는 입을 앙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방류를 하고 두 시진 후에 총공세를 명하여 단숨에 백수관을 우리 것으로 삼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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