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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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홍농에 주둔한 병력은 대략 일만 가량이었다. 그들은 곽원을 오래 따른 숙련된 병사들이었다. 대개 이러한 상황에서의 아랫것들이란 목숨을 구제하고자 대세에 편승하는 쪽을 택한다. 그러하니 대세를 거스르고자 하는 우두머리에 대해 반역을 꾀하여 마침내 하극상을 일으키거나 혹은 단지 미수로 그치되 내부의 혼란을 가중시키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곽원의 사졸들은 그 대개의 범주 밖에 있었다. 그들은 죽으나 사나 곽원만 바라보는 자들이었다. 곽원이 처음 무부로서 칼을 들 때부터 따랐던 그들은 오로지 곽원의 선택에 의해서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모반 따위는 없었다.
홍농은 그 자체로는 큰 가치가 없는 땅이었으나, 동서의 가장 큰 도시인 낙양과 장안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그리고 그 중요성은 홍농태수 곽원이 아주 잘, 뼛속깊이 알고 있었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며 전군에 명령했다.
“함곡관(函谷關)을 걸어 잠가라!”
함곡관은 진나라 효공 때 세워진 관문으로, 낙양의 서쪽, 장안의 동쪽에 있었다. 곽원의 통제 하에 놓여있었다. 함곡관은 천하제일험관(天下第一險關)이라는 이칭을 지니고 있을 정도로 험준한 관문이었다. 진나라의 수도였던 함양을 수비하던 관문으로서, 마차가 한 대 지나갈 정도의 협로가 이백 리나 이어져 있고 그곳을 함곡관이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옛날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다툴 때 기준이 되었던 것이 누가 먼저 함곡관을 넘어 관중으로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함곡관은 그 상징성이 일개 관문 이상이었고, 그 상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그만 한 실효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곽원의 일언지하의 명령에 함곡관의 거대한 문이 잠가졌다. 곽원은 그곳을 가장 신뢰하는 부장에게 맡기고, 자신은 장합이 지키고 있는 장안으로 향했다.
장합 역시 은왕부의 소식을 듣고 침통한 표정이었다. 곽원은 급히 말을 달려 장안에 당도, 성큼성큼 성부로 들어가 장합을 만났다. 장합은 오랜 벗을 위해 술을 몇 동이 준비해놓았다.
“술을 먹지 않으면 안 되리란 것을 그대도 잘 아시는구려.”
곽원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장합도 어설프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는 어찌하시려오?”
“내 여기 오기 전에 함곡관을 걸어 잠갔소.”
“함곡관을?”
곽원은 팔짱을 끼며 콧김을 뿜었다.
“조조든 제갈찬이든 감히 관중을 넘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외다.”
“은왕 전하의 사자가 홍농을 찾지 않았소?”
장합의 물음에 곽원의 목덜미가 벌게졌다.
“그대마저도 아직까지 은왕을 운운한단 말인가! 은왕이 은왕이려면 이미 하내에서 절명했어야 하오! 그 개새끼가 사자를 보냈기에 당장 그 목을 치고 서한은 갈가리 찢어버렸지.”
장합은 눈을 꼭 감았다.
“음……”
“그대는 제갈찬의 애견이 돼버린 원상과 한솥밥 먹으면서 뒤엉켜 살 수 있겠소?”
장합의 마음도 복잡다단했다. 그는 은왕부를 위해 충정을 다 바쳤다. 조조가 정변을 일으켜 업도를 장악할 때도, 그는 최후까지 원씨를 위해 싸웠다. 삼보를 토평할 때에도 가장 선두에 서서 장제의 뒤통수를 후리고 장안에 깃발을 꽂았다. 이후에는 장안을 굳게 수비하며 마등과 천자 유총의 공세를 숱하게 막아냈다. 이것은 영달이 아니라 모두 은왕부를 위한 분골쇄신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은왕부가 허물어지고, 그가 주군으로 모셨던 원상이 날름 달음박질을 쳤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것은 지금껏 피눈물을 흘리며 봉사해온 장합의 일생에 똥물을 끼얹는 일이었다. 장합은 미지근한 숨을 토했다.
그는 눈을 뜨고 곽원을 바라봤다.
“실은 여러 곳에서 온 사자가 객관에 있소.”
곽원은 눈썹을 씰룩거렸다.
“사자라니?”
곽원의 물음에 장합의 부장 공손독이 대답을 내놓았다.
“량왕 마등의 사자 양천만, 천자 유총의 사자 낙준이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곽원은 콧방귀를 뀌었다.
“젯밥에 관심이 많은 놈들 아닌가.”
곽원의 말이 옳았다. 마등과 유총은 은왕부가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사자를 장안으로 파견했다. 묵은 앙금을 해소하고 자신과 손을 잡자는 뜻이었다. 마등이든 유총이든 장안을 얻게 되는 쪽은 상당한 전력이 배가되는 터였다. 게다가 장합이라는 맹장까지 거저 얻을 수 있으니 일전쌍조(一箭雙鵰)였다. 그렇기에 량왕 마등은 가장 변설에 능하다는 천만을, 유총은 잠시의 고민도 없이 낙준을 파견한 것이었다.
“제갈찬 쪽에서도 사자가 당도했소.”
장합의 말에 곽원의 눈이 커졌다.
“함곡관을 잠가놨는데 어떻게 제갈찬의 사자가 올 수 있단 말이오?”
“한중에 한중태수 겸 우장군 감녕이 머무르고 있질 않소. 그가 급히 사자를 띄운 것이오.”
“교활한 것들.”
곽원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건드리며 말했다.
“허면 그대는 이 셋 중 한 쪽과 손을 잡으려고 하시오?”
장합은 아랫입술을 가만히 깨물었다.
“우리가 내내 버티고 있을 수만은 없소. 누군가와는 손을 잡아야 하지. 그러나 당장은 아니오.”
“당장은 아니라니?”
“누구 좋으라고 이 장안을 남의 손에 덜컥 내줄 수 있겠소? 원상이 우리들의 노고를 일거에 헛것으로 바꾸었다고 하여 공히 적일 따름인 마등이나 유총의 아가리에 떡을 물려줄 수는 없는 일이지.”
“그것은 그렇소.”
“시간을 끈다고 하여 우리에게 불리할 것은 없소. 관중(關中)은 천하의 그 어떤 곳보다도 귀한 땅이오. 우리가 쥐고 있는 이상 다른 제후들이 함부로 할 수 없소이다. 가령 유총이 우리를 침범한다고 하면 마등을 이용하여 제어하면 되오. 마등이 그리한다면 유총을 이용하면 되지. 섣부른 자라면 집안에 두 마리의 호랑이를 들여 위태롭게 되지만, 능숙한 자라면 한 마리의 호랑이로 다른 한 마리를 제어할 수 있소이다.”
장합은 자신 있게 자신을 능숙한 자로 일컬었다. 그것에 딴죽을 걸 만한 사람은 없었다.
“일단은 그들을 차례대로 접견해보겠소.”
맨 먼저 량왕 마등의 사자인 천만이 들었다. 장합의 물음은 간결했다.
“량왕은 우리를 어찌 대접할 것인가?”
천만은 준비해온 답을 내놓았다.
“첫째, 장안을 귀공께, 홍농을 곽원 장군께 맡기고 누구보다 높은 장군으로 대우할 것입니다. 기실 복속이 아니라 연맹을 원하며, 두 분은 량왕 전하의 맹우로서 그 지위를 보장받을 것입니다.”
“알겠소. 물러가시오.”
다음은 낙준이었다. 낙준은 특유의 침착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천자께서는 그대를 장안왕에, 곽원 장군을 홍농왕에 봉할 것이오. 그대들은 천자 직속의 제후로서 천하에 이름을 떨칠 것이오.”
“알겠소. 물러가시오.”
다음은 감녕이 사자로 보낸 신탐이었다. 신탐은 그다지 변설에 능한 자는 아니었으나 준비한 말을 읊을 정도는 되었다.
“합비공께서는 너른 영토를 지니신 까닭으로 각지의 장군들에게 막대한 권한을 일임하십니다. 만일 두 분 상장들이 귀부한다면 장안과 홍농에서만큼은 군왕처럼 군림할 수 있게 되실 겁니다.”
“알겠소. 물러가시오.”
말은 달랐지만 기실 알맹이는 같았다. 장안과 홍농에서의 자율을 허락하겠다. 가능한 최선의 대우를 베풀겠다. 그러나 이 두 조건은 모두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말만 있고 의지는 없는 제안이었다. 당장 형주의 권세를 거머쥘 궁리를 하고 합비공에게 귀부했던 채모와 괴월의 최후가 어떠했는가. 생생한 시사(時事)로서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장합은 그들의 말을 신용하지 않았다.
장합은 량왕 마등도, 천자 유총도, 합비공 제갈찬도 모두 돌려보냈다. 함곡관을 쥐고 있으면 낙양까지 진출한 합비공의 기세가 드세다고는 하나 쉽게 돌파하지 못할 터였다. 일부당관 만부막개(一夫當關 萬夫莫開, 한 사람이 관을 지키고 있으면 만 사람이 문을 열지 못한다). 함곡관은 그런 관문이었다. 게다가 그 북쪽 경계에는 조왕 조조가 도사리고 있으니 함곡관에 압도적인 물량을 쏟아 부을 수도 없는 노릇. 이미 숱한 전쟁에서 전비를 지나치게 소모하고 그들과 모두 싸워 승전한 경험이 있는 장합은 유총과 마등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묵수(墨守).”
장합은 짧게 말했다. 묵가로 이름난 묵자는 수성전의 천재였다. 묵수란 그런 묵자가 성을 지키듯 견고하게 버틴다는 뜻이었다. 장합은 곽원의 손을 잡았다.
“묵수, 그것이 일단의 방침이오.”
곽원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홍농으로 돌아간 곽원에게 그의 외숙부인 종요가 사자로 찾아와 간곡히 귀부를 권고했지만 곽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집안의 어른이기에 똥물을 끼얹지 않은 것을 다행히 여기십시오, 숙부. 부끄러운 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종요는 답답한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조조는 곽가의 관을 부여잡고 눈물을 짜냈다. 그는 관 뚜껑을 손으로 연신 두드리며 통곡했다.
“내가 죽어도 업도에서 죽으라고 하지 않았는가! 어찌하여 갈 때까지 내 명령을 지독히도 안 들어주는 것인가! 어찌, 어찌, 어찌, 어찌!”
조조는 이마를 짚으며 한참 한탄하다가, 정욱에게 명했다.
“곽가의 장례는 제후의 법으로 치르라. 중덕(정욱의 字), 그대가 직접 집전하라.”
정욱 역시 곽가와 교분이 깊었기에 손을 모으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조조의 명을 받들었다.
“그리하겠습니다, 조왕.”
조조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상서 두기를 바라봤다.
“병주에는 그대가 가는 것이 좋겠다, 백후(伯侯, 두기의 字). 병주는 그대가 잘 알지 않는가.”
두기는 그것을 따랐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대는 병주목으로 발령을 내리겠다. 그리고 앙(昻)아.”
조조는 그의 맏아들 조앙(曹昻)을 불렀다. 차분하고 자애로운 성정으로 조조의 신뢰가 깊었으며, 누가 보나 조조의 대를 이어 조왕이 될 재목이었다. 조앙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아비의 부름에 응했다.
“말씀하십시오, 부왕.”
“너는 백후와 함께 병주로 가라. 너를 병주도독으로 명할 터이니 그곳의 군무와 정사를 백후와 의논하여 처리하라.”
그의 처분에 만총이 의문을 표했다.
“전하, 세자를 어찌 외방으로 보내십니까.”
조조는 옷자락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과인은 본초(원소의 字)를 따르지 않으려 한다. 본초는 맏아들 원담을 폐출시키고도 청주로 보내 힘을 기르게 했다. 우매했지. 과인은 세자를 병주로 보내 그곳의 민심을 얻게 할 것이다. 이미 세자로서 업도의 신망이 두터우니 외방의 마음도 얻는다면 누구도 앙이의 권세에 도전하지 못하리라.”
조조는 울음기로 부어오른 눈두덩을 천천히 쓸면서 말을 이었다.
“만일 도전하는 자가 있거든 그게 누구라도 내 손으로 목을 비틀어버리겠다.”
만총은 그 말에 수긍하고 물러났다. 조조는 조앙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 크도록 해라. 네 아비를 못난 원본초와 같지 않게 하여라.”
조앙은 차분한 목소리로 미덥게 말했다.
“신명을 다하겠습니다.”
조조는 편안하게 웃었다.
유주의 답돈을 정벌하러 간 관우는 침착하게 전장에 임했다. 그에게 딸린 삼만의 병력은 그의 유일한 밑천이었다. 함부로 다룰 수가 없었다. 그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답돈 역시 관우의 위명을 두려워하여 섣불리 나서지 않으니, 전황은 일진일퇴였다. 오환의 내부에서는 이런 미적지근한 싸움에 신경질을 부리는 자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원로 소복연이 불만을 토로했다.
“오환왕! 어찌 수염 긴 놈을 두려워하여 답지 않게 숨어만 계시는 것이오!”
선우 누반도 답돈을 비아냥거렸다.
“이럴 거면 나라도 내보내라! 내가 단숨에 관우의 목을 꺾어서 올 테니까.”
이에 전주와 염유 등이 나서서 만류했다.
“관우는 일기당천의 호신(虎臣, 용맹한 신하)입니다. 급히 나서서면 도리어 당하고 맙니다. 관우는 우리가 먼저 불리함을 안고 선공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소복연은 그들을 비난했다.
“이래서 배때기에 기름만 찬 화인들은 안 된다는 것이야! 우리의 기병으로 관우인지 뭔지 하는 놈의 대가리를 밟아 터트리면 그만인 것을!”
누반이 꽥꽥거렸다.
“내가 나갈래!”
꾹 눌러왔던 답돈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말았다. 물이 다 졸아 연기를 뿜는 가마솥처럼 그는 탁자를 쾅쾅 두드리며 벌떡 일어섰다.
“에잇! 젠장! 이 멧돼지들!”
답돈은 신경질적으로 갑주를 입고 투구를 썼다. 그리고 창을 들고 창 자루로 바닥을 탕탕 내리쳤다.
“선우보!”
답돈의 부름에 선우보가 응했다.
“넷, 오환왕.”
“관우의 막사에 다녀와라!”
“옛?”
“구태여 많은 목숨 상하게 하지 말고 둘이서 결착을 짓자고 해라!”
“예엣?”
“너는 옛옛 밖에 모르냐? 관우와 이 답돈이 둘이서 이 전쟁의 결착을 낼 것이란 말이다!”
“예에―?”
더 참지 못한 답돈이 선우보의 정수리를 마구 후렸다. 한 대 때릴 때마다 한 음절씩 뱉었다.
“내! 가! 관! 우! 와! 둘! 이! 서! 싸! 우! 겠! 다! 고!”
총 열세 대를 얻어맞은 선우보는 정수리를 감싸며 부리나케 관우의 진으로 달려나갔다.
“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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