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196
***************
진도는 거칠게 관청을 걸었다.
관청 안쪽의 복도를 걸어 안에 들어간 그는 작은 방에서 나오는 시녀에게 물었다.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나.”
“예에…”
“그런가… 법 군사님의 상태를 다른 이들에게는 알리지 말도록.”
“아, 알겠습니다.”
전투에 나갔던 법정이 낙마한 후 피를 토했다.
그리고 그가 정신을 잃은지 꽤 시간이 지났다.
어떻게든 미음과 약은 넣어주고 있지만 그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예쁘장한 시녀가 복도를 걸어가자 그녀를 잠시 지켜보던 진도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열려 있는 창문을 닫고, 문단속까지 철저히 한 그는 품에서 작은 떡을 꺼내었다.
“실패했습니다.”
“…그런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고 알려져 있던 법정은 진도의 말에 천천히 답했다.
그가 눈을 뜨고 슬쩍 몸을 일으키자 진도는 인상을 썼다.
“지독한 놈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현재의 방식을 유지하다니…”
파성이라는 엄청난 미끼를 내걸었는데도 그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진식이 전해 온 말을 떠올리며 진도가 이를 갈자 법정은 씩 웃었다.
자신이 진유하나 방통의 상황이었다면 아마 똑같이 반응했을 거다.
“이런 것은 상대를 이겨먹기 위한 방식보다는 상대가 분노하게 만드는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야. 적이지만 칭찬할만하군.”
법정은 시큰둥히 대답한 후 진도가 준비해 온 떡을 먹었다.
그가 떡을 우물거리는 것을 보며 진도는 조심스레 말했다.
“어쩝니까? 첨병에 의하면 방통과 진유하의 군이 빠른 속도로 파성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겠지. 나라도 그럴테니까.”
“기습을 해보려 했지만…”
“그런 짓은 관두게.”
아군이 파성을 나오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바라는 바일테니까.
떡을 씹어먹으며 법정은 눈쌀을 찌푸렸다.
파성을 내어주는 척 하며 내부에서 적을 습격하려 했거늘.
하지만 진유하나 방통이나 보통 놈들이 아니었다.
“거기에서 잡았어야 했는데…”
낙봉산에서 방통을 잡지 못한 아쉬움에 법정은 입맛을 다셨다.
방통을 잡지 못한 순간 어쩌면 패배는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남만과 가맹관이 움직이다니.
어제 왔던 전서구의 서찰을 떠올리며 법정은 입술을 핥았다.
“난감하군. 나라도 복귀를 하는 것이 최선인데…”
“파성을 내어주고 복귀하시는 것은…?”
“그건 본말전도에 불과해. 발등의 불은 끌 수 있지만 결국 그 불은 몸을 덥치게 될거다.”
만약 법정까지 파성을 지키지 않고 성도로 복귀한다면?
진유하나 방통은 얼씨구나 하고 파성을 공략할 것이고 그리 되면 성도는 세곳에서 공격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되면 기회는 완전히 사라진다.
그저 목숨만 붙어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쉽지 않군요.”
“쉬운 방법을 택하려면 위국에 투항을 하는 것이었지. 뭐, 지금 와서는 무리지만.”
이제와서 자신들이 투항을 한다고 하더라도 진유하나 방통이 그냥 넘어가겠는가?
투항을 받아주는 척 하다가 그대로 죽여버릴 놈들이다.
오랜 시간 싸워왔기에 서로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
법정이 눈을 감고 고민하자 진도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편히 쉬셔야 할텐데.”
“아니. 괜찮아.”
무뚝뚝히 답한 법정은 진도에게 다음 책략을 말해주었다.
그가 잠자코 듣자 법정은 천천히 말했다.
“일단 나는 계속 정신을 잃고 있다는 것으로 알리도록 하게. 최소한 저들에게 일말의 방심이라도 이끌어낼 수 있을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라도 마음을 비우고 쉬십시요.”
“알겠네. 고마우이.”
법정이 빙긋 웃자 진도는 작게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법정은 가슴을 억눌렀다.
낙마한 것은 계획적이었지만 피를 토한 것은 그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저번 이후로 계속 각혈은 이어지고 있었다.
머리를 쪼개는 듯한 두통.
뭔가를 먹어도 안이 꽉 막힌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때때로 이어지는 각혈까지.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온 비릿한 피를 간신히 삼킨 그는 물을 꿀꺽 마신 후 한숨을 쉬었다.
“후우…”
편히 쉬라고?
그럴 수 있겠나.
시시각각 상황은 변해가고 있었다.
익주가 절체절명의 순간인데 쉴 수 있겠나.
자신의 비루한 생명의 불꽃을 모두 불사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점의 반격의 기회를 살려야 했다.
그러려면 최대한 생각을 하고, 버텨야 한다.
안정을 위해서, 라는 이유로 지도조차도 전부 치워버려 그저 머릿속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빠르게 전략을 구상하며 적들을 상상한다.
그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올지.
그것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이상 내가 꺽어야 한다.’
방통과 진유하.
무섭도록 뛰어나고, 무섭도록 치밀한 자들이다.
한명을 상대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데 둘이라니.
‘이번 책략으로 그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손 안대고 파성이라는 거대한 성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다.
일반적인 장군들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그들은 일반적인 놈들이 아니었다.
이 제안을 거절할 줄이야.
“제길.”
생각할 수록 아쉽다.
낙봉산에서 방통만 잡았어도 이렇게까지 밀리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법정은 골머리를 썩히며 하루를 지새웠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마땅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법정이 고민한지 며칠이 지났을 때.
법정은 진도의 보고에 이를 갈았다.
적이 거의 근접하여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아마 오늘이나 내일 쯤 적들은 진형을 꾸리고 보급로를 마련할 것이다.
그것이 끝나면 그때부터 수성전의 시작이다.
그 전까지 대응할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상황이 좋지 않은데…”
성도에서 온 보고에 의하면 적들이 가맹관을 뚫었다고 한다.
자동에서 내려오는 적들을 맞이하기 위해 황권이 움직였다고 하지만 과연 그가 막을 수 있을까?
‘실수였어.’
어떻게든 가맹관에서 버티게 했어야 했는데.
남만에서 맹획과 축융부가 배신을 했다는 것에 너무 과하게 움직여버렸다.
자신이 성도에 있었다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텐데.
아니.
“비의만 남아 있어줘도…”
비의가 있었다면 그는 맹획과 축융부를 오히려 설득해 그들이 위군과 싸우게 했을 것이다.
남만인들과 친한 비의가 없으니 다른 이들이 그들을 설득할 재간이 없었다.
“제길…”
결국 이렇게 된 가장 큰 문제는 비의의 죽음이다.
비의가 살아 있었다면 남만 쪽에 대한 걱정이 없었을 것이다.
“가장 큰 실수를 저질러버렸어.”
법정은 인상을 쓰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비의는 죽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충분히 지불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지. 지금 해야 할 일은…”
가맹관을 뚫었다고 하더라도 자동성의 공략 자체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성도에는 엄안이 있으니 주변 백성들을 끌어들여 맹획과 축융부 정도는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다.
아무리 맹획과 축융인이 남만에서 날고 긴다고 해봤자 작전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이들이다.
단순 전투라면 모를까 몇만 이상의 대규모 전투는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특히나 이런 야전 같은 경우는 총괄 지휘를 누가 하느냐에 큰 영향을 끼친다.
“양수가 할까?”
위국의 승상.
한의 태부인 양표의 아들이며 수경원의 제자다.
몇차례 전쟁에 참여했지만 군공은 그리 많이 세우지 않았던 자다.
과연 그가 얼마나 잘 할 수 있을까?
“…정말 믿는 것 외에는 답이 없겠군…”
자동에서 막아주고, 성도에서 남만과 위국 연합군을 잡아야 한다.
그것만 된다면 상황을 역전시킬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양수는 위국의 명망 높은 승상. 그를 잡는다면 위국을 크게 흔들리게 할 수 있어.’
거기에 자신만 어떻게든 하면 된다.
법정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나만 잘하면 된다. 나만…’
“법 군사. 들어가겠습니다.”
왕평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들어오자 법정은 갈라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인가.”
“적들이 진을 갖추고, 공성장비를 설치하고 있습니다만…”
“적의 공성장비는?”
저번 공격으로 적들은 공성장비를 대부분 불태웠다 들었다.
아무리 위국이라고 하나 공성장비의 여유는 없을 것이다.
법정이 기대감을 품고 묻자 왕평은 조심스레 답했다.
“적들이 보유하고 있는 공성장비는… 충차와 투석기 정도입니다.”
“그정도면 아직 괜찮아.”
파성의 성벽은 두터우면서도 단단하다.
어지간한 투석기 몇대로는 성벽을 무너트릴 수는 없었다.
파성에서 보유하고 있는 물자도 상당하니 버티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곳에서 진유하와 방통을 잡아두고, 엄안이 남만군을 치는 것을 기다리다가 적이 빈틈을 보이게 하자.
그렇게 한다면…
‘아니야. 그걸로는 부족해.’
“일단… 성문을 모두 닫고 출입을 철저하게 통제하게. 그리고… 내 상태가 위독하다는 소문을 내게나.”
“적들이 그것을 받아들일까요?”
왕평은 회의적인 표정이었다.
괜히 그런 소문을 내서 아군의 사기만 위축되면 어떡하나.
그가 걱정하자 법정은 고개를 저었다.
“적들의 방심을 이끌어내야 한다. 만약 적들이 정란을 가져오고 성벽 위를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더 힘들어져.”
“음… 알겠습니다.”
적이 성 내로 들어오는 것만 막아낼 수 있다면 된다.
법정은 한숨을 쉬었다.
“쉽지 않겠군…”
파성에서 조금 떨어진 우물가에 도착한 조운은 병사들을 보았다.
다들 의문스러운 얼굴이었다.
“조 도위님. 정말 여기가 맞습니까?”
“하하. 그렇지. 나도 처음 봤을 때는 이게 길인가 싶었어. 덩그러니 폐우물이 있다니. 마을의 흔적도 없는데 말야.”
“조 도위님도 참… 확신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아니 없을 가능성도 있어서. 하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그가 느긋하게 말하자 다들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처음에는 뭐하는 놈인가 싶었다.
갑자기 굴러들어와서 떡하니 도위직을 차지했다.
진유하와 방통의 사제라고는 했지만 늘 싱글거리는 웃음에 마른 몸 때문에 그들과 비슷한 문관인 줄 알았다.
정예병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문관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방구석에 처박혀서 책만 읽는 서생 정도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가 아니었다.
그 관평을 가볍게 압도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자라니.
그 덕분에 그에 대한 호감이 늘어나 있던 정예병들이었지만 이런 곳에 파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비밀통로가 있다는 말은 쉽게 믿기 어려웠다.
“내 사부님께서 이리 말씀하셨지.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고.”
“그렇습니까?”
“그래. 파성이 단단한 성으로 유명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 살던 많은 이들은 고민을 했지.”
“무슨 고민을 했습니까?”
“어떻게든 성의 검문을 피해서 오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야.”
한에서 인신매매는 불법이며 중죄에 속한다.
하지만 그것은 많은 부를 쌓게 해준다.
파성에 있는 하통에는 먹고 살기 위해 상경한 이들이 많았다.
그들을 납치해서 남만이나 다른 곳에 노예로 팔아넘기면 막대한 이문을 취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파성에 있는 파락호나 인신매매범들은 그들을 납치해 이득을 얻길 바랬고 그들 스스로 틈을 만들어버렸다.
그것이 바로 이 비밀 통로였다.
꽤 오래 전에 본 것이라 이 비밀통로가 아직 남아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도 확인할 수 있다면 한번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자… 한번 들어가보지. 자네들은 이곳에서 대기해주게나.”
이미 마른 우물에 밧줄을 설치하고 조운이 밑으로 내려간다.
바짝 마른 우물 밑에서 그는 우물에 있는 돌들 여기저기를 꾹꾹 눌렀다.
그렇게 몇번이나 눌렀을까?
돌 중 하나가 쑥 안으로 파고든다.
“일단 이쪽은 막히지 않았는데…”
돌들을 밀어가며 성인 남자 한명이 간신히 드나들만한 통로를 발견했다.
조운은 작은 횃불을 든 후 위를 보며 말했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바로 복귀하게. 밧줄은 안으로 버리고.”
“괜찮으시겠습니까?”
“길도 좁은데 굳이 여럿이 갈 필요 없잖은가. 그럼 다녀오겠네. 하루가 지나도 내가 오지 않는다면 사형… 아니 승상부주께 말씀드려주게나.”
“음… 알겠습니다. 부디 몸 조심하십시요.”
“그래.”
안쪽이 막혔을 수도 있고, 매몰되었을 수도 있다.
거기에 밖으로 나가도 경계가 삼엄해 쓰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구멍이 있다면 파고드는 것이 남자 아니겠는가.
조운은 대나무 통 안에 있는 촛불을 보며 중얼거렸다.
“사부님. 부디 저희를 가호해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