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27
00127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
“밧줄병!! 움직여! 궁병! 쏴!! 거리를 벌려! 장창을 이용해라!!”
훌륭하다.
아주 좋다.
지금 상황은 내가 바라마지 않던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너무 잘 풀려서 기분이 나쁠 정도다.
“넌 2군에 가서 기습에 대비하라고 해라.”
“예!!”
혹시 유비와 짜고 기습을 치려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상관없다.
아니.
차라리 와라.
2군이 있으니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관우나 장비가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1군 후군을 움직여 2군에 합류시키면 된다.
여포는 다 잡은거나 마찬가지니까.
“흐아아압!!”
말이 없으니 높이의 이점을 살릴 수 없고 기동성도 살릴 수 없었다.
달려드는 여포의 공격을 방패병이 막았으나 그것에 맞아 그는 튕겨나갔다.
정말 대단한 힘이다.
“말은 없을거다.”
말을 찾는 것인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여포를 향해 씩 웃었다.
저번에도 기병이 끼어들어서 놓쳤다.
그럼 아예 말을 없애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기병은 물론이거니와 마차를 끄는 말도 다 빼버렸고 있는 건 소 뿐이다.
어디 소 타고 싸워보시든가.
“밧줄 던져!!”
갈고리 밧줄이 허공을 날아 여포를 잡으려 한다.
두리번 거리던 여포는 이를 갈며 방천화극을 휘둘렀고 난 여영기와 감녕에게 말했다.
“준비해.”
너무 많이 체력을 깍은 상태에서 잡으면 내가 잡는 것만 못하다.
이번 여포를 잡는 것은 감녕이 되어야 한다.
고개를 끄덕인 그들이 자리로 이동하자 난 두단계 높은 단상 위에 올라가서 상황을 살폈다.
흑귀대와 백귀대의 열정적인 공격에 여포는 기세 좋게 피하거나 시체를 들어 막는 등 어찌어찌 버티고 있었다.
저번에도 그랬지.
하지만 저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힐끔 좌군과 우군이 싸우고 있는 상황을 보았다.
저쪽도 작전대로 장료와 고순을 잘 잡고 있는 모양이다.
아군이 적군을 순조롭게 쓸어버리고 있는 상황을 확인한 나는 단상 위에 설치된 확성기를 잡았다.
저번에 지휘하면서 하도 소리를 질렀더니 목이 아파서 하나 만들었다.
이거 만드느라 대장장이들이 고생했겠지만 뭐 어쩌겠나.
까라면 까야지.
높은 곳에 올라오니 전투의 상황이 잘 보인다.
방패병들이 모여 벽을 만들어 여포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막아두고 있었다.
꽤 거리를 벌린 채 돌을 던지거나 밧줄을 던지고, 또 단궁으로 화살을 쏘아대며 힘을 깍는다.
가끔씩 여포가 달려들어 방패병들의 진형이 무너지고 그 과정에서 몇명씩 죽어나가기는 했지만 이정도는 상정범위 안이다.
“밧줄 던져!!!”
내 외침이 확성기를 타고 확대되어 전장에 울린다.
좀 낫네.
이걸 양산해볼까. 지휘관들한테 아주 좋을 것 같은데.
시끄러운데다가 전투의 열기, 흥분 때문에 병사들이 지휘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확성기를 쓰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난 거대한 확성기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하아아압!!”
발악을 하는구나.
여포의 방천화극이 방패를 후려쳐 깨버렸다.
틈이 생겼지만 곧바로 다른 방패병이 자리를 메운다.
이래서 제대로 훈련받은 정예병이 중요하다는 거다.
전에 조조의 병사들은 방패병이 밀리자마자 대열이 무너졌었는데.
흑귀대와 백귀대들이 움직이며 포위망을 만드는 것에 만족한 나는 힘껏 외쳤다.
“궁병!!”
장궁을 장비시키지 않고 단궁을 장비시킨 것도 여포를 잡기 위해서다.
포위를 한 상태에서 장궁을 잘못 쓰면 그 사거리 때문에 아군이 맞아 대열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
곡사가 아닌 직사를 위해 위력과 사거리가 약하더라도 단궁을 장비시킨 나는 단궁병들이 방패병들의 사이로 활을 겨누고 쏘아대는 것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맞았다.”
아무리 여포가 방천화극을 휘둘러 화살을 막아내는 기행을 펼치더라도 전 방향의 공격은 피할 수 없을거다.
그렇다면 됐다.
이대로만 계속 하면…
어라?
“뭐지?”
여포의 움직임이 변했다.
방어 일변도로 무언가를 찾던 그가 갑자기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상처를 입는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그가 방패병을 후려치고 날뛰기 시작하자 난 당황했다.
“씨발. 가지가지 하네.”
그냥 쉽게 잡혀주면 안되나?
방패를 미친듯이 후려치며, 치명상만 피하고 어지간한 공격은 그냥 맞아버린다.
그의 갑옷이 깨지고 피가 흘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쪽의 벽이 무너지려 한다.
저들만으로는 곤란하다.
“여영기!!! 움직여!!”
이 또한 예상 범위 내다.
지휘관의 부재로 전열이 무너진다면 지휘관을 넣어주면 되는 것이기에.
내 외침을 들은 여영기는 빠르게 무너져가는 전열로 들어가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여포의 막강한 힘에 질린 그들이 여영기와 함께 다시 전열을 만드는 것에 안심한 나는 여포의 움직임을 보고 소리쳤다.
“피해!!!”
“크아아아아압!!!”
방천화극을 뒤로 당긴 여포는 자신의 어깨에 화살이 박히는 것도 무시한 채 있는 힘껏 방천화극을 휘둘렀다.
그의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그 일격에 나자빠지거나 죽어버리거나, 혹은 튕겨나가버리고 길이 뚫렸다.
와 나 진짜.
저 힘은 도대체 뭐냐?
뚫려진 길의 끝에 여영기가 있다.
여포의 방천화극이 그녀에게 향해졌고 여영기 역시 그것을 보았는지 창을 잡았다.
“미친!!”
설마 여기서 여영기가 죽는건가?
허저와 전위도 상대하기 힘든 것이 여포다.
만약 둘이 붙는다면?
난 이를 갈았다.
여영기를 버리기로 했다면 모를까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그녀가 다치는 것은 내 작전 안에 없는 것이다.
감녕에게 소리쳐 병사들을 이끌어 여영기를 구원하라 말한 후 단상에서 뛰어내려갔다.
*****
‘인정한다. 너는 훌륭한 지휘관이다.’
처음부터 자신을 잡기 위한 전략이었다.
방패는 그저 속임수.
자신이 말을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분노보다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기뻤다.
자신을 이렇게 당황하게 하고, 몰아 부칠 수 있는 지휘관이라면 충분히 여영기를 지켜 줄 수 있을 것 같기에.
그녀가 어떤 위기에 봉착해도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기에.
그렇기에 여포는 기뻐하며 방천화극을 휘두를 수 있었다.
“하아아압!!”
달려드는 병사들을 후려친다.
단상 위에서 지휘를 하고 있는 그의 신호에 맞추어 곧장 움직이는 이들.
함진영과 비슷할 정도의 훈련을 한 적병들에 만족했다.
이들이라면 여영기가 고난에 빠졌을 때도 그녀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기에.
“비켜라!!”
벽과 같은 방패를 후려치며 밀려나간 이들이 다시 진열을 만드는 것을 보며 환희를 느꼈다.
그와 동시에 반동탁 연합군 이후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고양감이 몸을 감쌌다.
와라.
이게 천하 최강 여포의 마지막을 장식할 전투라면 최선을 다해주마.
말은 없었다
애초에 이 적진 안에는 단 한필의 말조차 없었다.
지휘관들도 말에 타지 않고 자신의 두발로 걸어 움직인다.
그렇다면 좋다.
와라.
천하 최강을 잡기 위해서 만들어진 진형이라면 최선을 다해주마.
“으랴아아압!!”
방천화극에 찔려 고통을 호소하는 적병을 날려버린다.
그것에 밀린 방패병이 만들어낸 틈을 공략한다.
일점을 후려치는 동안 그것을 막기 위해 적병들은 침착하게 창을 찔렀고 화살을 쏘았으며 암기를 던졌다.
훌륭하다.
적이지만 훌륭하다.
“너희들 따위가!! 이 천하 최강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더냐!!”
밀려난 이들을 보며 포효한 여포는 다음 적을 상대하기 위해 고개를 돌린 순간 딱딱히 굳었다.
찾았다.
그토록 찾던 이를 찾았다.
여영기.
사랑하는 내 딸.
너무나도 아름다워 차마 사랑한다는 말 조차 할 수 없었던 소중한 딸.
전장에서도 땀방울을 흘리며 병사들을 지휘하는,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한번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이는 딸.
아아…
엄열.
보고 있소?
저게 우리들의 딸이라오.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딸이라오.
이 천하최강을 궁지에 몰아 넣는 병사들과, 그런 작전을 짜고 지휘를 하는 지휘관과 당당히 함께하는 저 아름다운 아가씨가.
바로 우리의 딸이라오.
여포는 눈물이 날 것 같은 것을 꾹 참았다.
환희를 드러내서는 안된다.
기쁨을 드러내서는 안된다.
자신은 이곳에서 죽어야 한다.
여영기에 대한 극도의 증오를 보이며 죽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녀가 이곳에서 저 찬란한 빛을 드러낼 수 있다.
여포의 딸이라는, 죄인의 딸이라는, 배신자의 딸이라는 족쇄를 벗어던질 수 있다.
그래야만 그녀가…
“여영기!!”
망설일 이유는 없다.
이제 자잘한 상처는 아무래도 좋다.
여포는 자신의 몸에 꽂히는 화살이나 암기따위는 신경쓰지 않은 채 여영기를 향해 달려갔다.
놀란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미안하다.
하지만 딸아.
누구보다 아름답고, 누구보다 사랑하는 내 딸아.
천하 최강이라는 허명따위는 필요 없다. 그까짓것.
너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단다.
그러니 딸아.
이 못난 애비를 이해해다오.
******
“여영기!!!”
괴물이 포효하는 소리가 들린다.
진유하가 외치는 확성기의 소리보다 더욱 크고, 처절하며, 무서운 소리가 들린다.
소리의 끝에는 방천화극을 들고 피를 흘리며 달려오는 여포가 있었다.
그것을 보며 여영기는 이를 악물었다.
피해야 하나?
피할 수는 없다.
여영기는 창을 꽉 잡고 자세를 낮췄다.
“여포!!!”
이곳에서 저 남자와 자신은 적이다.
창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무뚝뚝한 말을 하며 자신이 창을 잡던 자세를 교정해주던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행복했던 기억이다.
“여영기!!”
달려오는 피투성이의 사내.
여전히 강해보이고, 여전히 무서워보이는 이.
하지만 넘어야 한다.
두려움은 없다.
장료와 고순이 마시고 토악질을 하는 음료를 표정 하나 안바꾸고 모두 마시고 무뚝뚝히 내뱉은 남자를 떠올린다.
그저 한마디 감상이었지만 너무나 기뻤다.
창을 잡는 손에 힘이 풀렸다.
“…아버지.”
여영기는 눈을 감았다.
들어올린 창이 내려가려 하자 다시 한번 괴물의, 아버지의 포효가 들렸다.
“여영기!! 창을 들어라!! 네 신념을 지켜라!!”
“제… 신념은.”
아버지의 외침에 여영기는 창을 들었고 그녀를 향해 방천화극이 움직였다.
무시무시한 기세가 실린 방천화극을 막는다.
기세에 비해 힘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뒤로 몇발자국 밀려나는 것 외에는, 팔이 저릿한 것 외에는 피해는 없었다.
“방해하지 마라!!”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병사들을 일격에 서너명씩 베어넘기는 힘이 어째서인지 자신의 창과 부딪힐때는 약하기 그지 없었다.
“아버지.”
작게 중얼거렸을 때, 피투성이 괴물의, 피투성이 여포의, 피투성이 아버지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그려졌다.
“네 신념을 지킬 수 없다면!! 죽어라!!”
미소는 사라지고 방천화극이 머리를 향해 떨어진다.
그것을 보며 여영기는 창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등신아! 놀고 있냐!?”
옆구리에 통증이 느껴진다.
멍하니 아버지가 자신의 머리를 치려는 것을 보던 여영기가 바닥을 굴렀을 때 방천화극이 사람들 틈에서 튀어 나온 사내의 검에 막혔다.
“…네놈은 누구냐.”
“알 것 없다!!”
“흥패… 오래비.”
왜 여기에?
작전은 이게 아닌데?
여영기는 당황하며 아버지의 앞을 막고 자신을 지키는 감녕을 보았다.
******
“흐압!!”
처음으로 받은 천하 최강의 위력은 웃음이 나올 정도로 약했다.
뭐냐.
이게 전부냐?
차라리 장료의 공격이 나을 정도다.
여영기를 구하고 대신 그 자리에 낀 감녕은 장창을 휘둘러 여포를 튕겨낸 후 뒤를 보았다.
멍하니 자신을 보고 있는 여영기를 향해 감녕은 능글맞게 웃었다.
“쯧쯧. 사랑하는 동생아. 방해만 할거면 저기 가 있으려무나.”
“오래비! 미쳤어!? 뭐하는 짓이야! 아직…”
“작전 변경이다. 도련님이 나한테 맡겼거든. 너 못들었냐?”
아까 전에 울려퍼진 진유하의 외침.
여영기를 구하라는 그 외침을 받고 대열을 이탈해 곧장 이곳으로 온 감녕은 피투성이로 자신을 노려보는 여포에게 시선을 던졌다.
“봐봐. 이제 내가 나설 차례라고.”
“하지만…!”
일격에 병사 서넛을 날려버리는 힘을 보면 아직 여포의 힘은 남아 있었다.
피투성이이기는 하지만 감녕이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여영기의 걱정어린 외침을 무시하며 감녕은 장창을 여포에게 던진 후 장도를 뽑았다.
“망할 영감. 이번에도 부러지면 영감 팔을 부러트려버리겠어.”
싸늘히 웃으며 중얼거린 그는 자신을 노려보는 여포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외쳤다.
“이봐!! 천하 최강!! 이젠 나랑 놀자고!!”
“…네놈은 누구냐.”
목소리만으로도 주변의 분위기가 가라앉을 정도다.
이것이 천하최강이란 말인가?
오싹함이 온 몸을 감돈다.
“우주 최강 감녕!!”
“정신 나간 놈이군.”
자신의 공격을 방해받은 것 때문일까?
여포는 방천화극을 크게 휘둘렀다.
그 반경에 있던 병사들이 공격에 맞아 죽어나가자 감녕은 이를 갈며 외쳤다.
“야! 여영기!! 쟤들 데리고 거리 좀 벌려! 우리 애들 다 죽겠다!”
“오래비!!”
“빨리 해!!!”
악을 쓰는 그녀를 향해 마찬가지로 악을 쓴 감녕은 도를 꽉 쥔 채 여포에게 달려들었다.
병사를 더 죽이려던 여포는 감녕의 공격을 막아내며 피식 웃었다.
“고작 이정도로 우주최강이라고?”
“헹! 아직 안끝났거든!?”
방천화극의 봉에 막혔던 도가 뱀처럼 요상한 움직임을 보인다.
도로 보이기 힘든 화려한 변초가 이어지며 그것이 목으로 다가오자 여포는 고개를 돌려 피한 후 감녕의 몸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웃쌰!”
“쥐새끼 같은 놈.”
“그 쥐새끼한테 물리면 아플텐데.”
여영기가 거리를 벌리고 병사들을 수습하며 자리를 만들자 감녕은 천천히 히죽 웃은 후 도를 당겨 어깨에 걸었다.
“이봐 천하최강.”
“….”
“자기 딸까지 공격해서 지켜야 하는 것이 천하최강의 이름이라면.”
두꺼운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대지를 박차며 화살처럼 튀어나간 감녕은 어깨에 걸치고 있던 도를 크게 내리쳤다.
“그 천하최강!! 이 몸이 짓밟아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