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351
00351 누군가의 개입 =========================
“주군. 몸은 좀 어떠십니까?”
“이제 괜찮다.”
창 밖을 보며 쓰게 웃는 마른 사내.
불과 몇년만에 저렇게 헬쑥해져버린 원술의 모습에 유훈은 불안보다는 기쁨에 몸을 떨었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지만 꾹 참았다.
오래간만에 멀쩡한 정신을 차린 주군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무렁ㅆ다.
“이제 발작이나 환각은…?”
“없다. 현재 상황을 보고해라.”
무덤덤히 답한 그를 향해 기뻐하면서도 유훈은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것에 우울함을 느꼈다.
“알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조조와 원소가 결국 붙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내 세력이 많이 약화되었다는 이야기?”
“아셨습니까?”
“시녀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듣지 못할 정도로 몸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하는 그를 향해 유훈은 머뭇거렸다.
어찌해야 하나.
갑자기 미쳐버려 발작과 환각증상을 일으킨 그였다.
무엇 때문인지 모를 그 증상 때문에 좋은 기회를 몇번이나 날려먹었지만 유훈에게 있어서는 원술의 부활이 차라리 나았다.
“그래…”
바짝 말라붙어 있는 입술을 달싹거린 원술은 침상에서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런 그를 잡아주며 유훈은 물이 담긴 잔을 주었다.
그것을 달게 마신 원술은 유훈의 어깨를 잡으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간 고생이 많았다.”
“아, 아닙니다.”
따뜻한 음성이다.
원술이 미쳐버린 것에 질려버리고 떠난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유훈, 그리고 장훈.
그 외에 몇명만이 원술의 곁에 끝까지 남아 있었다.
원술이 저렇게 미쳐버리고 끝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를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던 유훈은 울컥하는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정말 고맙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이제 기운을 차리시고…”
“원소가 조조와 싸운다고? 그렇다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내 갑옷을…”
“주군. 이렇게 갑자기 움직이시면 몸이 오히려 상하십니다. 좀 더 쉬시는 것이 좋습니다. 원소를 상대할 계책은 저희들이…”
“나에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어.”
“…예?”
원술의 불길한 말에 유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혹시 아직도 광증이 남아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남은 수명을 대가로 이 빌어먹을 병에서 벗어난 것이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젯밤에 온 도사와 거래를 했다. 수명을 대가로 중독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어젯밤에는 자신이 계속 이 방에 있었는데?
잠깐 졸기는 했지만 아무도 이 방에 들어 온 적이 없었다.
혹시 아직 광증이 치료되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원술의 눈은 깊고 맑기 그지 없었다.
“모두 불러다오. 그리고 지금 천하의 상황을 알고 싶구나.”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원술이 비틀거리며 갑옷을 입으려 하자 유훈은 멍하니 그를 바라만 보았다.
“대단하군.”
책사인 염상이 건네 준 문서를 받으며 원술은 쓰게 웃었다.
담담하기 그지 없는 그의 말투였지만 다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다. 염상. 이 정책은 네가 시도한 것인가?”
“그게… 네.”
원술이 광증에 걸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동안 필사적일 수 밖에 없었다.
떠나가는 명사들을 잡지 못하고 호족들의 관리가 힘들었다.
원술의 인기가 날로 줄어들어가고 그가 광증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인기와 원가의 위명에 반해 원술의 힘이 되었을 뿐이었던 이들이 떠나가고 남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많아졌고 군량과 군사용 물자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명사들을 잡는 것이 아닌 백성들을 포용하고 그들의 삶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잘했다.”
“예?”
명사들을 중요시여기며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기를 원하는 원술의 행동과는 반대되는 정책을 펼쳐 간신히 유표나 다른 호족 세력의 움직임을 견제하고 있었던 원술의 부하들은 원술의 칭찬에 당황했다.
많은 명사들이 떠나가는 것을 그대로 놔버린 것에 화를 낼 줄 알았던 원술이 이리 말하다니.
혹시 비꼬는 것인가 싶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모두… 고맙다.”
원술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하들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모두들 당황하며 엎드렸을 때 원술은 허리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
“내가 광증에 걸려 미쳐 있는 동안… 다들 정말 고생해주었다. 고맙고, 또 미안하다.”
“아닙니다!”
“오히려 병에서 나으신 것에 저희들이 감사드릴 뿐입니다!”
“이제 너희들에게 보답을 할 차례가 된 것 같군.”
“주군. 정말 괜찮으신 것입니까?”
지금의 원술은 후장군이 되며 많은 이들의 인기를 끌며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때의 원술이 아니었다.
원가의 위세를 등에 업고 안하무인하고 남을 업신여기던 원술이 아니었다.
“그래. 나는 괜찮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부터 결정하도록 하지. 염상. 유훈 장훈.”
“예!”
“명령만 내려주십시요!”
“유표에게 다녀오도록 하라.”
“유표… 에게? 왜 입니까?”
“그와 정전협정을 맺는다.”
“그 말씀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보고에 의하면 세금 수입은 적고 백성들의 유입은 늘어났다고 하더군.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 빼앗아 오는 수 밖에.”
“어디를 노리시는 것입니까?”
“목표는…”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놓으며 원술은 무덤덤히 말했다.
“산양군이다.”
“그 말씀은 조조와 척을 지겠다는 것입니까!? 원소가 아니라?”
원소를 끔찍하게 싫어하던 원술이었다.
차라리 조조와 손을 잡았으면 잡았지 원소와는 같은 편이 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떠들어대던 원술이었는데 그가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모두가 당황했지만 원술은 무덤덤한 얼굴로 더욱 충격적인 발언을 꺼냈다.
“그래. 언제까지 형님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형님…”
세상에.
원소를 사생아라 비웃으며 그를 무시하고 끔찍하게 싫어했던 원술이 지금 뭐라고 한 것인가.
형님이라고?
그가 말을 꺼내자 다들 당황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원술은 여전히 무덤덤하기 그지 없었다.
“놀랄 일은 아니지 않은가. 비록 원소가 첩의 자식이기는 하지만 그는 원가의 위상을 이리도 높게 만들었다. 비록 적자이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 광증따위에 걸려 어처구니 없이 시간을 날려먹기나 하고. 원가의 이름을 바닥까지 떨어트렸고.”
“그럼…”
원소를 원가의 가주로 인정하겠다는 것일까?
원술이 굽히고 들어간다면 원소로서는 당연히 기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원소가 지금 하지 못한 한가지가 원가의 가주로 인정되지 못한다는 것이니까.
원술에게도 원가의 가주라는 것을 인정받는다면 아직까지 원소를 인정하지 않는 하북의 명가에서도 원소를 긍정하며 그에게 힘을 실어 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예주와 형주 일대의 명가 역시도 원소의 손을 들어주겠지.
원소와 원술의 결합.
진정한 원가가 무엇인지 세상에 알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들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원술은 쓴웃음을 지었다.
“내 아집 때문에 모두들 고생이 많았다. 형님과 연락하여 힘을 합치고 조조를 공격하도록 한다. 그때까지는… 다들 날 도와주기 바란다. 그리고…”
“주군. 그만하시지요.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깨어나자마자 회의를 소집한 원술이다.
조금이라도 더 쉬고 나서 하는게 옳다고 생각하며 유훈은 그를 말렸고 다른 이들 역시 원술을 말렸다.
신료들의 계속되는 만류에 원술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내일 아침부터는 정상적으로 움직이자.”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원술은 비쩍 마른 상태였고 제대로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 하고 있었으니까.
유훈은 걱정스러워하며 그를 데리고 방으로 향했다.
“공께서 이리 건강을 되찾으시니… 천녀 눈물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넌 왜 남아 있었던 것이냐?”
“공을 두고 어딜 가겠습니까…”
방에 도착한 원술은 방에서 노심초사하며 자신을 기다리다가 벌떡 일어나 눈물을 훔치는 여인을 발견했다.
한때는 그녀의 슬퍼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 처량함과 함께 보여지는 안타까움.
그것이 좋아 그녀를 더 찾았고, 그녀가 본부인과 첩에게 시달리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척 했었다.
“…미안하다.”
“예? 아, 아닙니다. 공께서 어찌 천녀에게…”
“너에게도 감사해야겠구나. 정말 고맙다. 내 곁에 남아 있어줘서. 이제는…”
손을 뻗어 자신의 애첩, 풍은의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주었다.
원술이 자신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달래 준 적은 없었다.
그의 달라진 모습에 풍은은 의아해했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처, 천녀는…”
“이제는 웃는 모습만 보았으면 좋겠구나.”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그가 말하자 풍은은 원술의 품에 다소곳이 안겼다.
그런 둘을 훈훈하게 바라보던 유훈은 코 밑을 쓱 닦은 후 조용히 나갔다.
오랜기간 동안 원술의 곁에 남으며 그가 먹을 약을 스스로 달이고, 또 발품을 팔아 영험하다는 명지나 도원을 찾아 기도를 드리는 등 많은 고생을 한 여인이다.
무척이나 아름답던 외모도 꽤나 수척해져 있는 그녀가 이제 보상을 받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유훈이 나가자 원술은 품에 안겨 있는 풍은을 살짝 안고 그녀의 이마에 입맞춰 주었다.
“조금 피곤하구나. 오래간만에 네 품 안에서 잠들고 싶다.”
“예예… 훌쩍. 얼마든지 그러셔야지요.”
원술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무것도 모르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풍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광증에 걸리기 전까지만 해도 아름답던 머리결은 무척이나 상해 있었다.
마음 고생이 심했겠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원술은 폐부 깊숙한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고통과 피비린내를 느꼈다.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끔찍한 고통.
그것을 간신히 삼켜낸 원술은 빠득 이를 갈았다.
비쩍 마른 팔과 손.
이것으로 남은 시간동안 가능할까?
자신이 제정신을 차린 동안 어떻게든 자신을 위해서 살아 준 부하들을 위해 움직여야 했다.
몸이 부숴지더라도.
한바가지 피를 더 토하더라도.
이 생명이 끝나더라도.
그들을 위해서 무언가 해줘야 했다.
그것을 위해서 받은 시간이니까.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든 원술은 방 구석을 노려보았다.
“이만 나오시오.”
아무것도 없는 방 구석을 바라보며 그는 작게 말했다.
그의 말에 방 구석에 희뿌연 무언가가 나타났다.
허름한 도복을 입은 백발의 도인이다.
그의 등장에도 원술은 놀라는 대신 무덤덤한 어조를 유지했다.
“약속을 지켜줘서 고맙소.”
“고마울 것 없소. 어차피 나 역시 부탁받은 일이니까…”
“부탁? 아무튼 상관없지… 그래서. 내 수명은 이제 얼마나 남은거요?”
“이제 반년… 길어야 일년정도일거요. 아니, 더 빠를 수도 있겠지.”
“고작…”
길어야 일년이라니.
평생을 광증에 묶여 살 것인가.
아니면 일년 간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원술은 그를 노려보았다.
원술의 시선에도 도인은 그저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에게 왜 광증이 생긴 것이오?”
“글쎄… 하지만 한가지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것은 약 때문이라고 볼 수 있소.”
“그 약을 누가 나에게 쓴 것인지 알고 있소?”
“그건 모르는데.”
진실일까? 아니면 거짓일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고작 일년여 밖에 남지 않았다면, 아니 그나마도 채우기 힘들것이라면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날 도와줄 수 있겠소? 당신이라면…”
“미안하지만 거절해야겠소. 귀찮은 놈이 날뛰고 있으니. 그자를 어찌하지 못하면 나로서도 방법이 없지.”
“그 귀찮은 자를 잡을 수 있게 내가 돕는다면? 그럼 내 수명을 늘려 줄 수 있소?”
“없소. 당신의 수명을 되돌릴 방법은 없소. 다시 광증을 가져간다면 모를까… 그것을 원하시오?”
그의 말에 원술은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자신을 보고 너무나도 기뻐하던 풍은.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다시 한번 충의를 다진 부하들
더 이상 그들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말해주시오.”
“그런 놈이 있소. 영악하기 그지 없는 까마귀같은 놈이지.”
그게 누구일까?
원술은 궁금했지만 도사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가는거요? 어디로?”
“글쎄… 허도로 가볼 생각이오. 다급한 자가 그곳에 있는 것 같으니. 그곳에서 몇가지 거래를 더 할 수 있을 것 같소.”
“고맙구려. 도움을 줘서.”
수명을 가져간 대신 광증에서 낫게 해주었다.
진짜로 수명이 줄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피를 토할 정도의 고통을 느끼는 것을 보면 확실히 수명이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원술의 씁쓸한 말에 도인은 빙긋 웃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구려. 다른 이들 같은 경우는 모두 동의한 거래를 뒤엎으려고 하던데. 순응하려는 그 모습. 보기 좋소.”
“사람의 수명을 알고 있는 자라면… 한가지만 물어도 되겠소?”
“얼마든지.”
“내 원래 죽음은 뭐였소?”
“모두에게 버림받고 비참하기 그지 없는 죽음이었다는 것만 말해주지.”
참으로 냉정하다.
그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응시하던 원술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고맙소. 잘 가시오. 아. 그 전에.”
원술은 도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대의 이름이 뭐요? 아니, 도사분께는 도호를 여쭤야 하나?”
그의 질문에 떠나려던 도사는 몸을 멈춘 후 빙긋 웃었다.
“나같은 말코에게는 도호따윈 없지. 그저 낭야 사람 우길이라 불러주면 그것으로 족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