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26
장안의 저택에 도착하니 집안의 노복들이 달려 나와 물건들을 받아 들었다. 홀가분해진 양수가 빠른 걸음으로 안채로 들어가자, 다른 노복들이 빠르게 움직여 문을 열어 주었다.
“전서를 쓸 것이네. 준비해 주시게.”
노복들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가자, 예형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는 이런 편한 집을 두고 외부에는 어찌 돌아다니는가? 어째 손 하나를 움직일 필요가 없군.”
양수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형님도 알지 않습니까. 우리 집안은 홍농 양가 중에서도 고관들이 줄줄이 나오고, 제 외가 또한 하남의 원씨 종가의 피를 이었다는 것을요.”
“그것과 이것은 좀 다르지 않은가.”
“게다가 제가 독자입니다.”
“아이고, 대단하군그래. 비천한 나는 좀 쉬어야겠네.”
잠시 후, 노복이 비단과 붓, 묵을 가져오자 양수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말했다.
“수춘에서 보내 준 지(紙)로 가져오게.”
노복이 고개를 숙이며 물러가자, 예형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 그리 까다롭게 따지나? 지(紙)나 금(錦)이나 가격은 차이가 별로 없을 터인데.”
양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쓰기에는 종이가 더 편합니다. 비단은 글씨가 약간씩 번지니 말입니다.”
잠시 후, 노복들이 종이 뭉텅이를 가져오자 양수는 평평한 석판 위에 한지를 올려 두고 옥으로 된 서진을 받친 후에 글을 써 내려갔다.
자리에서 일어나 양수가 글을 쓰던 모습을 본 예형은 꽤 신기해하며 물었다.
“종이 질이 좋군. 먹도 잘 먹고 번지지도 않게 글씨가 예쁘게 나오는데, 그것이 수춘후가 내준 물건인가?”
양수는 글을 빠르게 써 내려가면서 예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께서 가져가시겠다면 조금 내드리겠습니다.”
“그래 주겠는가? 나야 좋지. 그 정도 질을 갖춘 종이는 비단보다 비싸다던데, 맞나?”
예형은 기분이 좋아진 듯 몇 개의 종이를 들고 자리로 돌아가 이리저리 바라보자, 양수가 답해 주었다.
“수춘후가 동쪽의 진(辰)국 쪽에서 닥나무를 가져와서 만든다고 하니, 꽤나 비싸긴 할 것입니다.”
양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예형은 조심스러운 손으로 한지를 받쳐 들며 조심스럽게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하이고, 그런 건 빨리 말을 해야지. 이런 물건을 자네는 어떻게 그리 마구 쓰는가?”
양수는 그런 예형을 바라보며 웃었다.
“형님의 생각처럼 그렇게 비싸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루에도 수백 장을 찍어 내니 말입니다.”
그 말에 예형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양수를 바라보았다.
“조가에서 가장 부자는 조홍이라 하던데, 이제 그 말을 바꾸어야겠군.”
“종이를 만들어 낸다고 하여도 양질의 종이를 만들다 보니 그리 많이 벌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네가 어찌 그리 자세히 아는가?”
양수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남의 원가 휘하에 있던 상단 대부분이 지금 홍농 양가의 이름에 의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수춘후가 만드는 물건들을 기다리고 있지요.”
순간, 예형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양수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제후가 된 인물이 만민의 귀감이 되어야 할 터인데, 이상한 데 매달려 있군. 그리고 자네는 친우라면 그를 계도해 주어야 할 것 아닌가.”
“형님, 종이 다시 돌려주시겠습니까?”
양수의 말에 예형은 깜짝 놀라 종이를 품에 품었다.
“아니, 주겠다는 것을 어찌 다시 빼앗으려 하는가?”
“이상한 데 매달려 만든 물건인데, 어찌 형님에게 그것을 드리겠습니까. 형님 돈으로 비단 사서 쓰시지요.”
그러나 예형은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또한 이 질 좋은 종이에 자신이 지은 시를 쓰고 인을 찍어 남기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게 그런 것이 아니라 물건은 좋지. 좋은데,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닐 터인데 말이야. 응? 아니 그런가?”
양수는 손을 들어 올리며 종이를 한 번 후후, 불어낸 뒤에 부채를 들고 종이를 살짝 말렸다. 그러고 나서 서신을 접어 비단함에 넣고 일어났다.
“장난입니다, 장난. 저는 서신을 노복에게 맡기고 오겠습니다.”
“그 서신, 누구에게 보내는 것인가?”
“부공(父公)께 보내려고 합니다.”
“태상께 말인가? 가후가 말하듯, 직위를 청하려 하는가?”
“혹여 가후가 다른 생각을 한다면, 제가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잠시 멈추시게. 가후가 진짜 모반을 하려고 한다면 자네가 나설 시간이 있겠는가? 그전에 목이 베일 것이네.”
“그래서 감시자가 되기 위해 감군(군대를 감시)을 할 수 있는 도독 위를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히 군을 감독하며 이상을 감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능구렁이 같은 사람이 자네에게 속내를 드러낼 것 같은가? 그리고 도독이 된다고 하더라도 여남의 고 도독 같은 자리는 아닐 것이네.”
“알고 있습니다. 기껏 해 봐야 감군 정도이겠지요”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러는가?”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어차피 모반하려 한다면 군의 움직임에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일어나면 저를 통하여 경종을 울릴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예형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자네 마음대로 하게. 자네를 따라온 내가 잘못이지.”
“그래서 좋은 물건들을 좀 챙겨 주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실패할 일을 제가 하지도 않을 테고요.”
***
한편, 전풍이 보낸 서신 중 하나가 당도한 곳은 오현의 손가였다.
손권의 앞에는 주유와 장소, 장굉이 앉아 있는데, 손권은 서신을 만지작거리면서 머리가 허옇게 센 주유에게 물었다.
“어찌해야겠습니까? 작금 오회(오, 회계)의 상황으로는 장강을 넘어 서주를 공격할 만큼 충분한 힘이 없지 않습니까?”
주유는 곰곰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였다. 오회의 대성 중에서 손책의 암살에 가담한 이들이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특히 태사자의 휘하에서 일하는 육가와 주가, 우가가 거금을 쏟아부은 것은 예상할 수 있는 바였다.
또한, 손가의 힘으로 대다수의 연관된 가문과 인물들을 알아내었다.
그러나 주유는 그들을 모두 완전히 밝혀 색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정도에서 끝을 맺고 싶었다.
손책의 뒤를 이어 손가의 인물을 오정후로 올리고 오회를 장학하기 위해서는 호족들을 모조리 처리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승태가 원가와 내통한 이들이 적힌 치부책을 모조리 불태운 것처럼 말이다.
또한 칼은 검집에 있을 때 가장 무섭다는 말처럼 저들에게 치부책이 있다는 사실을 암암리에 알게 하여 공포심으로 누르려 하고자 했다.
그러나 진등이 강동에 손책 암살에 기여한 모든 이들을 모조리 밝혀 버리면서 강동은 정말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그 사실이 외부로 드러나 버리자 주유로서는 그들을 처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처벌하지 않는다면 손가의 내부에서부터 분열되고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손가의 인물들과 호족의 대립이 격심해지자 오와 회계에서 다시 내전이 일어났으며, 곳곳이 전장이 되어 버렸다.
그에 손강의 아들들인 손분, 손보가 강동을 지킬 수 없다는 생각에 유수구로 나아가 승태에게 투항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결국 중원에서 원소와 조조가 대립하는 동안 주유는 어떠한 일도 하지 못하고 오의 호족들과 대립하고 무너트리는 데 모든 힘을 다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태사자는 승태의 지원을 받아 남으로는 여릉, 북으로는 시상까지 점령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풍이 바라는 대로 강을 건너 서주를 침탈한다고 한다면, 역으로 당할 수도 있었다.
“수춘후의 눈이 북으로 향할 때, 단양과 예장까지 손을 뻗어 태사자를 몰아내고 장강 이남을 차지할 기회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손권은 주유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형님이 있었다면 이러한 때 군을 이끌고 허도까지 쳐들어갔을 텐데, 아쉽습니다.”
손권의 말에 주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아무리 백부라 하여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주공께서 호족들을 다시 다잡아 주었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손권은 주유의 칭찬에 기쁨을 느끼며 웃음을 지었다. 그때, 장굉이 나서며 물었다.
“하지만 태사자도 수춘후의 지원을 받는 인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인물을 공격하는 것은 수춘후를 공격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인데, 후일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주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수춘후가 지원한다고 하여도 완전히 휘하의 장수는 아니니 먼저 간 백부의 복수를 명분 삼아 태사자를 쫓아내야 할 것입니다.”
“형님의 복수라······ 좋습니다.”
손권은 주유의 말에 극히 공감하였다. 손책에 대한 복수라면 손가 내부에서도 자신이 큰소리를 치며 임할 수 있을 것이고, 오에 남은 호족들은 자신의 흠을 덮기 위해서라도 종군을 자청할 것이었다.
주유가 단순히 복수의 기치를 내세우는 것은 단순히 명분을 만들기 위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승태 휘하에서 수군을 이끄는 것은 이전의 내전에서 넘어간 손가의 인물들입니다. 그들도 백부의 복수라고 하면 아마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금전적으로 지원을 해 줄 수도 있겠지요.”
장굉과 장소는 주유의 말에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수춘후가 그들을 의심하겠군. 혹여 내통하는 것인지 하고 말이야. 아니, 내통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겠지.”
손권은 이야기를 들으며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들에게 물었다.
“좋습니다. 차라리 제가 직접 이야기를 해 보지요. 수춘후에게 서신을 보내고, 손위 사촌들에게도 서신을 보내는 것입니다.”
장굉과 장소는 손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총명하십니다. 어차피 의심만 키우는 일이니, 당당히 하는 것이 좋겠지요. 서신은 제가 쓰겠습니다.”
손권이 이 정도면 되었다는 표정으로 서신을 건네었다. 주유는 급히 받아 들고 품에 넣었다.
“이 정도 하면 전풍도 만족할 것입니다. 수춘후의 뒤에서 뒤통수를 간지럽게 했으니 말입니다.”
“저는 주 형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손권이 예를 표하자, 주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하의 예로 답하고 일어나 물러나갔다.
장소와 장굉도 그 자리에서 뒷걸음질로 물러 나가자, 홀로 남은 손권은 진이 빠졌는지 무너지듯이 자리에 누워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내가 원한 것은 이런 삶이 아니었는데. 나는 현장이나 태수나 되어 떵떵거리며 살려고 했는데, 형님은 어째서 나 같은 놈이 손가를 이끌 것이라 말해서는······.”
암울한 마음에 손권은 순간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시비들을 불러 말했다.
“술을 좀 내오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손권은 술 한 병을 벌컥거리면서 비우고 나서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래도 형님이 선택한 나다. 잘해야지, 잘.”
***
손권이 술을 마시고 뻗어 있는 동안 장소와 장굉, 그리고 주유는 따로 앉아 서신을 작성하였다.
“공근.”
“말씀하시지요.”
“과연 태사자를 꺾을 수 있겠는가?”
“붙어 봐야 알 것입니다. 제아무리 수춘후의 지원을 받아 강남의 일대를 장악했다고 평가 절하한다지만, 태사자는 본시 백부도 어려워하던 인물이니까요.”
주유의 대답에 장굉과 장소는 한숨을 내쉬었다.
“산을 넘으면 더 큰 산이 언제나 서 있군.”